전쟁...../전쟁이야기

폭격기 승무원에 ‘달걀 프라이’면 사기 ‘쑥’

구름위 2017. 1. 13. 21:43
728x90

폭격기 승무원에 ‘달걀 프라이’면 사기 ‘쑥’

달걀과 병사


영국 ‘삶은 달걀과 병사’ 등 부족한 물자·평범한 재료로 새로운 명품 음식  만들어

 

   병사들이 분말 달걀에 질려 고안해낸 요리인 ‘삶은 달걀과 병사’. 전시에는 전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모든 물자는 품귀현상을 빚게 마련이다. 식품도 예외가 아니어서 평시에는 먹지도 않은 음식이 전쟁 때는 구할 수조차 없는 귀한 재료가 된다. 이럴 때 병사들은 천재성을 발휘한다. 평소에는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음식 재료를 갖고 일류 요리사 못지않은 명품 요리를 만든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수준이다.

기사사진과 설명
달걀 분말 통조림을 검사하는 모습. 필자제공

달걀 분말 통조림을 검사하는 모습. 필자제공



기사사진과 설명
병사들이 분말 달걀에 질려 고안해낸 요리인 ‘삶은 달걀과 병사’.

병사들이 분말 달걀에 질려 고안해낸 요리인 ‘삶은 달걀과 병사’.



 

 ‘삶은 달걀과 병사’라는 희한한 이름의 요리가 있다. 사실, 요리라고 부르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평범한 음식인데 달걀을 노른자가 거의 익지 않도록 반숙으로 삶아 놓고, 식빵 중에서 가장 자리의 딱딱한 껍질을 잘라 내 구운 것이 전부다. 먹는 방법은 반숙한 달걀 껍질을 깐 후 노른자가 드러나도록 조심스럽게 윗부분을 자른다. 그리고 구운 식빵 껍질로 달걀의 노른자를 소스 삼아서 찍어 먹는 것이다. 액체 초콜릿에 찍어 먹는 과자를 생각하면 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맛이 색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영국 런던에서 크게 유행했다. 달걀이라고는 구경도 하기 힘들었던 전쟁이 끝나고 신선한 달걀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널리 퍼졌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신선한 달걀을 먹을 수가 없었다. 달걀 자체가 배급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구할 수 있는 것도 날달걀이 아닌 분말 달걀이었다.

  영국의 경우 생 달걀은 특별한 경우에만 먹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독일로 출격하는 폭격기 승무원에게는 신선한 달걀로 부친 프라이가 제공됐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못할 승무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나머지 영국에 남는 장교와 병사는 가릴 것 없이 모두 분말 달걀을 먹었다. 그러니 반숙한 달걀 노른자에 소스 삼아 빵을 찍어 먹는 ‘삶은 달걀과 병사’라는 음식이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참고로 ‘삶은 달걀과 병사’는 군인이 먹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은 아니다. 식빵 껍질을 잘라 놓은 모습이 마치 행군 중인 병사(soldier)가 줄지어 선 모습과 같아서 생긴 영어 속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광범위하게 미움을 받던 음식이 분말 달걀이다. 달걀은 전쟁 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한다. 역대 전쟁의 역사에서 달걀은 국민 모두에게 긴요한 양식이었지만 잘 깨지기 때문에 보관과 수송이 어려워 애를 먹었다. 하지만 2차 대전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동결건조법이 개발되면서 분말 달걀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생 달걀은 더 구하기가 어려워졌지만 대신 분말 달걀로 전시의 부족한 영양을 보충할 수 있었다. 문제는 맛이 없는데다 분말 달걀로 만들 수 있는 요리도 별로 없어 스크램블이나 오믈렛 정도만 만들 수 있었기에 먹다가 질려서 신선한 생 달걀을 더욱 그리워했다.

  그 결과 모두가 분말 달걀을 미워했지만 사실 정부는 미움 받는 분말 달걀 생산을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영국의 경우 전쟁터를 피해 생산 공장을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그리고 싱가포르가 함락된 이후에는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옮겨 수송했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전쟁 중에 특허까지 포기했다. 결국 전후에는 미국 회사가 분말 달걀의 생산을 주도하게 됐다.

 분말 계란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달걀의 장기보관이 문제였다. 전투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꼭 필요한 중요 식량이었지만 깨지기도 쉽고 오래 보관할 수도 없어 군량으로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몇 년 전, 미국의 CNN 방송 사이트에서 ‘악마가 낳은 끔찍한 요리’ 운운했다고 혼이 난 피단이라는 음식이 있다. 오리 알이나 달걀을 소금과 잿더미에 묻어 삭힌 음식인데 껍질을 까면 속이 새까맣게 변해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낯설어 보일 수도 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중국 음식점에서 오향장육같은 요리를 주문했을 때 나오는 새까만 오리 알, 혹은 달걀이 대부분 피단이다. 까맣게 굳은 흰자위에 담황색의 무늬가 마치 소나무 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송화단(松花蛋)이라고 부르는데 맛을 들이면 그 곰삭은 맛에 빠지게 된다.

 피단은 오리 알이나 달걀을 찰흙·소금·왕겨·석회 등을 섞은 곳에 파묻은 후 두 세달 동안 삭혀서 만든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달걀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나 흰자위가 굳어져 아교상태로 바뀌며 반투명의 맑은 흑색을 띤다.

 피단은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식품이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朱元璋)이 군사를 일으키면서 동정호 일대 농민들로부터 다량의 오리 알을 거둬 들였다. 전투가 벌어졌을 때 병사들에게 전투식량으로 지급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수요량보다 너무 많은 오리 알을 수집했다. 다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현지 농부의 말에 따라 소금을 섞어 잿더미 사이에 묻어 뒀다 꺼냈더니 알이 삭았다. 덕분에 몇 개월씩 장기 보관을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데다 맛까지 좋아 병사들로부터 인기가 높았다. 이렇게 발달한 피단이 지금은 중국에서 외국 정상과의 만찬에도 내놓는 요리가 됐다. 일선 병사들은 평범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스스로 사기를 올리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