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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고 풀 때를 알아야” 사기가 올라간다

구름위 2017. 1. 1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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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고 풀 때를 알아야” 사기가 올라간다

술 한잔과 용병술


한나라 황제 무제, 흉노 물리친 곽거병 장군에 승전 축하로 술 한 병 하사

술을 샘물에 붓고 병사들과 한 바가지씩 마신 뒤 이어진 전투서 연전연승

기사사진과 설명

흉노를 경계해 쌓은 만리장성의 서쪽 끝가욕관 전경. 필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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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거병 장군 동상.

곽거병 장군 동상.


주천(酒泉)은 술이 솟는 샘이라는 뜻이다. 주당들한테는 더없이 반가운 단어이겠기에 술집 간판으로도 자주 쓰인다. 실제 주천이라는 지역도 있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가 그곳인데 예전에 이곳에 술 솟는 샘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중국에도 주천이 있다. 간쑤 성에 있는데 중국어로는 주취앤이라고 발음한다. 예전 서역으로 통하는 실크로드 길목에 있는 도시였고, 현재는 중국의 인공위성 발사기지가 위치해 있다.

 이곳은 어떻게 주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을까? 역시 물에서 술맛이 나는 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 주천과 다른 점은 강원도 영월의 주천이 자연적으로 술이 솟는 샘인 반면 중국의 주천은 샘물에 술을 부어 인공적으로 술맛이 나도록 만들었다. 자연과 인공의 차이인데 얽혀 있는 옛 이야기에 병법과 처세의 교훈이 있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무제 때 표기장군 곽거병(?去病)이 이곳에서 북방을 위협하던 흉노를 물리치고 대승을 거뒀다. 크게 기뻐한 무제가 승전을 축하하는 의미로 술 한 병을 하사했다.

 황제가 하사한 술이니 더 이상의 영광이 없겠으나 고작 술 한 병을 갖고 수많은 장병이 다 함께 나눠 마실 수는 없었다. 이 무렵 병사들은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고향을 떠나 서역의 전쟁터로 온 지도 오래돼 향수도 깊었다. 장병들의 사기를 올릴 필요가 있었다. 곽거병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병사들을 모두 불러 모아 큰 소리로 말했다.

 “병사들이여 여러분의 용기와 불굴의 투지 덕분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적을 물리쳐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황제께서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해 술 한 병을 내려주셨다. 우리 모두 황제께서 보내 주신 술을 마시자!”

 그리고는 술을 샘물에 쏟아 부었다. 이어 곽거병이 먼저 한 바가지를 떠서 마시고 장병들이 차례차례 샘물을 떠마셨다.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까지 치솟았고 이어진 전투에서도 연전연승했다. 술 솟는 샘이라는 뜻의 주천이라는 이름이 생긴 내역이다.

 황제가 하사한 술 한 병을 혼자 마실 수 없어 샘물에 부어 병사들과 함께 마신 곽거병은 장병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덕장(德將)이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평소 부하의 춥고 배고픔을 챙겨주는 그런 속 깊은 장군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다. 그럼에도 장병들은 그를 믿고 따랐다. 왜 일까?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곽거병을 이렇게 평가했다. “젊어서 이미 높은 벼슬을 지냈고 짧은 시간에 고귀한 신분이 됐기에 사병을 돌볼 줄 몰랐다.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하면 황제가 그를 위해 수십 대 수레 분의 음식을 보내주었는데 돌아올 때는 양식 실은 수레를 버렸고, 남은 양식과 고기가 있었음에도 병사들 중에는 굶주린 자가 있었다. 병사들은 배고픔을 참고 견디고 있었지만 표기장군은 구역을 표시해 놓고 공차기를 즐겼다. 그에게는 이와 같은 일이 많았다.”

반면 대장군이었던 위청(衛靑)에 대한 평가는 대조적이다. “대장군은 사람됨이 인자하고 선량하며 겸허했고 온화한 성품으로 황제의 환심을 샀지만, 세상에서 그를 칭찬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기중심적인 표기장군 곽거병은 장병들에게 인기가 높고, 인자하고 겸허한 대장군 위청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성과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실적은 결과로 말한다. 사기에서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곽거병은 기병 5만 명을 거느렸으며 군수품 수송은 대장군의 군대와 동등했다. 하지만 부장이 없어 고급 장교로 대신했다. 그리고는 적진 깊숙이 1천여 리를 진격해 흉노의 좌익부대와 결전을 벌였는데 참수하거나 사로잡은 전공이 이미 대장군보다도 많았다.

황제가 직접 곽거병을 이렇게 칭찬했다. “사로잡은 포로만 7만443명이 넘었지만 아군의 피해는 10분의 3밖에 줄지 않았으며 적군에게서 식량을 탈취해 먼 곳까지 진격하면서도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곽거병 휘하 부대에서는 특진하거나 포상을 받는 장교와 사병이 많았던 반면 대장군 휘하 장병들은 상을 받은 자가 없었다. 선량하며 온화한 대장군 위청과 달리 표기장군 곽거병은 과묵하고 감정을 잘 표현하지는 않지만 기개가 있어 행동할 때는 과감했다. 감히 황제가 하사한 술 한 병을 샘물에 쏟아 부어 장병과 함께 마신 것도 마찬가지다.

 손자병법에는 군대의 사기에도 주기(cycle)가 있다고 했다. 손자는 군의 사기를 하루에 비유해 아침처럼 날카로운 기운이 있고, 낮처럼 게을러질 때가 있으며 저녁때처럼 집으로 돌아갈 생각만 할 때가 있다고 강조했다. 성과에 따른 적절한 보상도 중요하지만 타이밍을 맞춰 병사들의 기세를 올리면 조직의 전력은 급상승할 수 있다. 회식 자주한다고 사기가 올라가지는 않는다. 조이고 풀 때를 알아야 한다.

곽거병이 술 한 병을 오아시스의 샘물에 부어 나눠 마시며 5만 명 장병의 사기를 끌어 올릴 수 있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