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새해 첫날 콩·채소·돼지고기 먹으면 운수 대통”

구름위 2017. 1. 13. 21:09
728x90

“새해 첫날 콩·채소·돼지고기 먹으면 운수 대통”

미국식 콩밥


美 남부 주민 초토화 작전 속 콩 덕분에 생존  조지아 주 등 토박이 사이에서 내려오는 풍습

기사사진과 설명

미국 남부의 새해 음식 호핑존.



기사사진과 설명
셔먼 장군이 이끄는 북군이 불태운 미국의 남부도시 콜럼비아.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불타는 애틀랜타의 장면. 셔먼 장군의 초토화 작전이 배경이다. 필자제공

셔먼 장군이 이끄는 북군이 불태운 미국의 남부도시 콜럼비아.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불타는 애틀랜타의 장면. 셔먼 장군의 초토화 작전이 배경이다. 필자제공




새해가 되면 지구촌 곳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한 해 소원이 이뤄지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떡국을 먹고, 중국은 만두를 먹으며 스페인은 포도를 먹는다. 떡국과 만두에는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소망이 담겨 있고 스페인 사람은 새해 처음 먹는 포도 맛으로 한 해 운세를 점친다. 포도 맛이 달면 달콤한 한 해를, 시면 힘든 한 해를 보낸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새해 첫날 콩 요리를 먹는다. 대표적인 것이 호핑존(Hoppin John)이라는 음식인데 미국식 콩밥이다. 콩과 쌀을 순무 잎사귀나 양배추 등의 채소·베이컨·햄 등의 돼지고기와 섞어 요리하는데, 이렇게 먹으면 운수 대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콩과 채소, 돼지고기를 먹는다고 왜 운수가 트일까?

 일단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콩은 동전을 상징하는데 새해 첫날 최소 365개 이상을 먹는 것이 좋다. 일 년 내내 돈이 마르지 않고 들어오라는 뜻이다. 채소는 지폐다. 미국 달러를 그린백(Greenback)이라고 부른다. 지폐 뒷면이 녹색이기 때문이니, 푸른 채소를 먹는 것은 곧 달러가 들어오라는 주문이다. 돼지는 전통적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부를 상징한다. 그뿐만 아니라 돼지는 주둥이로 땅을 파헤쳐 먹이를 찾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부를 찾아 나선다는 뜻도 있다.

 콩·채소·돼지고기로 조리한 요리는 그러니까 동전에서 지폐까지 돈이란 돈은 싹쓸이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부자 되는 것이 새해 꿈의 전부가 아닌데 왜 이런 풍속이 생겼을까?

 사실 미국의 새해 음식이라고 했지만 미국인 중에는 이런 풍속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미국인 전체가 먹는 새해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 그것도 조지아 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토박이 사이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새해 음식이고 풍습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콩과 순무 잎사귀, 양배추는 새해 음식치고는 초라한 재료들이다. 그럼에도 미국 남부 사람들은 왜 새해 첫날 콩과 채소를 먹으면서 한 해 운수를 빌까?

 이것은 전쟁이 만들어낸 풍속이다. 남북전쟁 당시 북군을 이끈 윌리엄 셔먼(William T. Sherman) 장군의 초토화 작전이 만들어낸 결과다. ‘바다로 가는 행군’이라고 불린 초토화 작전의 핵심은 남부 연맹의 중심지였던 조지아 주에서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바닷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지역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었다. 적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 전투수행 능력을 무력화하고 전의를 꺾어 더 이상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작전이 시작되자 셔먼 장군은 휘하 부대에 한 달 치 식량을 지급하고 진격을 명령했다. 북군이 조지아 주 수도인 애틀랜타에 도착했을 때, 탄약을 제외한 식량이 완전히 바닥났다. 북군은 이때부터 양식을 현지 조달했는데, 다른 말로는 약탈을 시작한 것이다. 저항하는 주민은 사살했고, 집과 농경지는 철저하게 불태웠다. 애틀랜타를 점령한 북군은 주민을 교외로 소개시킨 후 도시를 태워 시가의 90%를 파괴했다고 하니까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북군이 조지아 주를 지나갈 때 철도를 파괴하면서 다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레일을 엿가락처럼 구부려 놓고 떠날 정도로 약탈과 파괴를 했기에 남부지역 주민들은 셔먼 장군을 ‘악마’라고 부르며 치를 떨었다.

 메뚜기 떼가 지나간 것처럼 남부를 휩쓸며 파괴하고 약탈한 북군이지만 미처 없애지 않고 남겨 둔 것도 있었다. 콩이었다. 콩 중에서도 완두콩이나 강낭콩은 빼앗았지만 동부 콩만큼은 빼앗지도 밭을 태워 없애지도 않았다. 동부 콩은 메주를 만들 때 주로 쓰는 콩이다. 북군이 동부 콩에 손대지 않은 이유는 사람이 먹는 곡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동부 콩은 가축사료 내지는 흑인 노예나 먹는 작물이었다. 굳이 소각할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콩을 우습게 안 것은 동양도 마찬가지다. 우리 역시 감옥 간다는 뜻으로 ‘콩밥 먹는다’고 하는데 예전에는 죄수에게 콩밥을 먹였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중국에서 항우와 유방이 싸울 때 항우가 병사들이 콩밥을 먹는다는 보고를 듣고는 바로 철군을 결심한다. 콩밥을 먹을 정도면 군량이 바닥난 것이니 병사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시 남북전쟁 이야기로 돌아와 북군의 파괴로 잿더미 속에 남겨진 남부 주민들은 동물의 사료, 노예의 음식이었던 콩으로 끼니를 때우며 전쟁을 버텼다. 비록 가축사료로 여겼지만 영양은 풍부했기에 전쟁을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전쟁에서는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행운일 수 있다. 콩이 있었기에 생존할 수 있었으니 콩이야말로 행운의 음식일 수 있다. 콩이 있었기에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대사를 읊으며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새해 첫날 콩과 채소를 먹으면 한 해의 운수가 좋아진다고 믿는 풍속이 여기서 비롯됐다. 평범하게 하루를 살 수 있다는 것, 남북전쟁의 고통을 겪었던 남부 주민들만이 실감할 수 있는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