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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의 자부심 “우리는 소고기구이를 먹는다”

구름위 2017. 1. 13.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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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의 자부심 “우리는 소고기구이를 먹는다”

로스트비프


18세기 영국 보통 가정에서도 먹을 수 있는 생활 수준  먹고 살기 힘든 프랑스, 영국인을 ‘로스트비프’라 조롱

기사사진과 설명

웰링턴 장군을 기념해 만든 요리인 웰링턴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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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링턴 장군이 나폴레옹을 물리친 워털루 전투, 윌리암 새들러 작품, 1839년 이전. 필자제공

웰링턴 장군이 나폴레옹을 물리친 워털루 전투, 윌리암 새들러 작품, 1839년 이전. 필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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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링턴 장군 초상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영국과 마주 보고 있는 프랑스 북부의 작은 도시, 에파플르에 영국군 묘지가 있다. 북쪽으로는 조각가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의 배경이 된 도시 칼레가 있고, 더 북쪽으로는 ??르크가 있다. 지명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지역은 영국과 프랑스의 애욕으로 점철된 곳이다. 칼레는 중세 말기, 영국과 프랑스가 100년 동안 전쟁을 벌인 곳, ??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독일군 포위를 뚫고 철수한 곳이다. 그리고 에파플르는 프랑스 땅에서 죽은 영국 병사들이 묻힌 장소인데 이곳 영국군 묘지는 낙서로 가득 차 있다.

 “소고기 구이들아, 고향으로 꺼져라(Roastbeefs, Go Home).”

 소고기 구이, 로스트비프(Roast Beef)는 프랑스에서 영국인을 조롱할 때 쓰는 말이다. “양키 고 홈”과 비슷한 뜻인데 한국과 일본처럼 영국과 프랑스의 감정싸움을 읽을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왜 영국인을 로스트비프라고 놀리는 것일까?

 로스트비프가 영국을 상징하는 요리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전후, 영국인은 일요일이면 커다란 소고기를 덩어리째 구우며 나름의 풍요를 즐겼다. 하지만, 세계 3대 요리라고 자랑하는 프랑스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 로스트비프는 그저 소금이나 소스를 발라 굽는 소고기 덩어리일 뿐 요리도 아니었다. 그러니 영국인을 보고 “소고기를 구워 먹는 것들”이라고 조롱한 것이다.

 놀림을 받는 영국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프랑스 사람을 개구리(French Frogs)라고 놀렸다. 프랑스 사람들이 개구리 요리를 먹는다고 놀린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프랑스에서 아무리 조롱해도 영국인은 오히려 로스트비프를 먹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소고기 구이를 먹는다”며 자랑했다. 18세기 중반에는 ‘전통 깊은 영국의 로스트비프’라는 제목으로 노래까지 지어 불렀고, 영국 해군 병사들이 식당에 갈 때 합창을 하며 행군했다. 다음은 노래의 첫 부분이다.

 “로스트비프를 먹으며 영국의 영혼은 고상하고 우리의 피는 고결해졌네. 영국군은 용감무쌍, 조국 영국은 위대해졌네. 전통 깊은 영국의 로스트비프. 비실비실 프랑스 음식은 야채에 고기 몇 점 넣은 수프, 춤이나 추면서 말랑말랑 물러 터졌지, 전통 깊은 영국의 로스트비프…(후략).”

 1748년 영국의 풍속화가 윌리엄 호가트(William Hogarth)가 같은 제목의 그림을 그렸다. 영국에서 칼레 항구로 운반되는 로스트비프 덩어리를 탐욕스러운 프랑스 신부와 비쩍 마른 프랑스 병사들이 침을 흘리며 바라보는 장면이다. 프랑스의 조롱과는 반대로 소고기를 먹는 영국인의 자부심을 그린 것인데 영국인들은 왜 로스트비프를 먹는다는 사실에 오히려 자부심을 느꼈던 것일까?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경제가 빠르게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목축업이 발달해 소고기기 풍부했다. 과거에는 귀족들이나 먹을 수 있었던 로스트비프를 일요일에는 보통 가정에서도 먹을 수 있도록 생활 수준이 향상됐다. 커다란 소고기를 통째로 구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는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했다. 프랑스 대혁명이 자유·평등·박애를 모토로 내걸었지만, 발단은 먹고 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소고기를 먹는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못사는 프랑스인들을 경멸했고, 프랑스에서는 졸부가 된 영국을 보며 요리도 아닌 “그저 소고기를 구워먹는 것들”이라고 멸시했던 것이다.

 소고기를 놓고 벌인 영국과 프랑스의 자존심 싸움이 최고조에 이르게 한 것이 웰링턴 스테이크라는 소고기 요리다. 웰링턴 스테이크는 소고기를 빵으로 감싼 후 버섯과 와인, 그리고 각종 소스를 첨가해 굽는 스테이크다. 빵 맛과 함께 부드러운 소고기의 맛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조리한 것인데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패배시켜 국민적 영웅이 된 웰링턴 장군, 즉 웰링턴 공작인 아서 웨슬리 경에게 바친 요리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알려졌다.

 나폴레옹이 수적 우위를 활용한 전격적인 기습전을 구사한데 반해 웰링턴 장군은 방어전술로 승리를 거둔 장군으로 유명하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 철저한 계획과 준비를 통해 적군을 끌어들여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자신이 구상한 방식으로 전투를 벌여 승리한 것이 바로 나폴레옹 시대 유럽의 판도를 바꾼 워털루 전투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작전계획을 수립하다 보니 연구를 하느라 제대로 식사를 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장군이 건강을 해칠까 걱정한 요리사들이 빵 속에 소고기를 넣어 구운 것이 웰링턴 스테이크라는 것이다. 이 유래가 진짜일까?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다. 영국인의 자부심, 특히 군사적, 경제적으로 프랑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데 대한 자부심이 소고기구이, 로스트비프와 웰링턴 스테이크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음식이 병사와 국민의 사기를 올릴 수 있고, 애국심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전통 깊은 영국의 로스트비프가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