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전쟁 부산물이 세계인의 인기 음식으로 변신

구름위 2017. 1. 1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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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부산물이 세계인의 인기 음식으로 변신

세계의 부대찌개


통조림 햄·소시지·계란·치즈가루 등이 기초가 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부대 고기’로 만들어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던 2008년 말, 가족과 함께 하와이에서 휴가를 즐겼다. 이때 골프를 즐기며 먹은 음식이 화제가 됐는데 쌀밥에 통조림 햄을 얹어 김으로 감싼 하와이안 무수비라는 음식이었다. 어렸을 때 하와이에서 자란 오바마 대통령이 즐겨 먹었다는 하와이 대표 음식인데 미국 본토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다. 무수비는 도대체 어떤 음식일까?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 파스타다. 우유로 만든 생크림 소스에 햄과 베이컨, 계란과 치즈를 풀어 만든다. 간단하고 단순한 요리인데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일본 오키나와에는 찬푸루라는 전통음식이 있다. 채소와 두부, 혹은 통조림 햄 등의 재료를 볶아 만든다. 오키나와 대표 음식으로 예전에는 두부가 중심이 돼 장수음식으로도 꼽혔지만 지금은 햄이 들어가는 퓨전 음식으로 바뀌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미국 하와이와 일본 오키나와 그리고 이탈리아, 지리적으로도 멀고 문화적으로도 서로 이질적인 나라지만 세 가지 음식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미군부대에서 나온 ‘부대 고기’ 때문에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부대찌개도 마찬가지다. 사실 음식 형태만 다를 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부대 고기, 즉 통조림 햄과 소시지, 계란과 치즈가루 등 부대 음식이 기초가 됐다는 점에서는 서로 다를 것이 없다.

 다시 말해, 부대찌개와 같은 음식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의 크림 파스타, 카르보나라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카르보나라는 이탈리아어로 숯이라는 뜻의 카르보네에서 비롯된 단어로 로마 근교의 숯 만드는 일꾼들이 로마에 숯을 팔러 와서 먹은 음식이라는 설도 있고, 이탈리아의 정치단체 이름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유력한 설명 중 하나가 부대 고기 관련설이다.

 1944년, 미군이 독일군을 몰아내고 로마를 탈환했다. 이때 로마는 식량난으로 허덕였는데 미군부대에서 다량의 베이컨과 햄, 그리고 계란가루와 치즈가루가 흘러나왔다. 로마시민들이 미군부대에서 구한 음식재료로 만들었던 파스타가 바로 크림 파스타 카르보나라라는 것이다.

 실제 카르보나라라는 이름이 요리책에 처음 보이는 것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라고 하니까 그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됐건 부대 고기가 크림 파스타 발전에 기여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오바마 대통령 덕분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무수비는 하와이에서 생선 대신 햄을 이용해 만든 하와이판 김초밥 내지는 주먹밥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하와이에는 태평양 함대 사령부가 있었고 진주만을 비롯한 곳곳에 해군 기지가 있었다. 병사들에게 신선한 고기 대신 다량의 햄 통조림이 보급됐는데, 넘치는 가공식품이 주민들에게도 보급됐다.

 하와이는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계 이민이 많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 쌀밥을 많이 먹는데 전쟁 중 신선한 생선과 고기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고, 부대에서 나오는 햄 통조림이 넘쳐났기 때문에 생선 초밥 대신 햄 초밥을 만들어 먹었다. 무수비(むすび)라는 말 자체가 일본어로 주먹밥이라는 뜻이다.

 제2차 대전 중 부대 고기를 이용해 만든 음식이 지금은 관광객들이 일부러 찾아 먹는 하와이의 대표 음식으로 발전했고, 급기야 오바마 대통령이 어렸을 적 추억을 되살리며 먹으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음식이 됐다.

 오키나와의 찬푸루 역시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채소 두부 볶음인 찬푸루는 오키나와가 옛날 독립국이었던 유구국(琉球國) 때부터 발달한 음식으로 이름 자체도 ‘섞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원래 일본·중국·동남아 음식이 혼합돼 발달한 음식인데 제2차 대전 후 오키나와에 미군기지가 생기면서 북미의 햄과 베이컨까지 섞여 퓨전 음식으로 발달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한국의 부대찌개 역시 6·25전쟁을 전후해 미군 PX에서 흘러나온 햄이나 소시지를 한국식으로 찌개에 넣어 먹은 것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부대찌개가 크게 유행한 것은 1970년대 말, 80년대 초반이다. 전쟁 때 생겼다는 음식이 왜 이때 유행했을까?

 따지고 보면 부대찌개의 유행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 시기와 일치한다. 먹고 살 만해지자 국내 육가공 산업이 발달하면서 질 좋은 소시지와 햄이 나오며 부대찌개가 유행했다. 사실, 70년대 초반만 해도 국산 햄과 소시지는 품질이 떨어져 찌개에 넣고 끓이면 풀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니 부대찌개는 질 좋은 국산 소시지, 그리고 소득수준의 향상, 어려웠던 시절의 향수가 어우러져 만든 유행이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는 경제가 회복된 이후, 하와이의 무수비와 오키나와의 찬부루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이후 유행한다. 모두 미군부대 고기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각 나라의 명물 음식으로 발전했다.

 일부에서는 부대찌개라는 이름에 거부감을 표시한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고기로 만든 음식이니 자존심 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고난을 극복한 의지의 상징이기 때문에 더욱 자랑스러운 측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