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된장 볶았을 뿐인데… 인기 식을 줄 모르네”

구름위 2017. 1. 11. 21:23
728x90

된장 볶았을 뿐인데… 인기 식을 줄 모르네”

짜장면


임오군란때 청나라 통해 전해져 중국에선 서태후가 먹으며 유행

 

기사사진과 설명

고난의 시절 먹었던 된장 볶음, 짜장을 가공하자 국민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재탄생했다. 사진은 인천 짜장면 박물관에 전시된 모형으로, 졸업식 후 짜장면 한 그릇을 즐기던 우리네 옛날 모습이다.


짜장(炸醬)은 중국말로 볶은 된장이라는 뜻이다. 된장은 자체를 날로 먹기는 어려운 식품이지만 볶아서 가공하니 훌륭한 음식이 됐다. 짜장면의 탄생이다.

 짜장면은 본래 가난한 농민이나 막노동꾼이 먹던 형편없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런 짜장을 누가, 그리고 왜 가공을 해서 맛있는 음식으로 탈바꿈시켰을까? 한국과 중국에서 짜장면이 인기를 얻게 된 비결이 무엇일까?

 된장을 볶은 짜장면이 인기를 얻은 계기는 엉뚱하게도 전쟁이었다. 한국과 중국 모두 거친 노동과 피난길의 배고픔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짜장면에 얽힌 감춰진 역사다.

 짜장면은 우리에게 국민음식이나 다름없다. 뿌리는 중국이지만 철저하게 한국화된 식품이니 사실상 우리 음식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중국에도 짜장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 짜장면과는 한참 다르다.

 한국 짜장면은 알려진 것처럼 중국에서 전해졌다. 대한제국 시절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 병사들이 인천항을 통해 조선에 상륙했다. 청나라 병사들은 군수물자를 하역시킬 부두 노동자들까지 함께 데리고 왔는데 주로 산둥성 출신 노동자인 쿨리들이다. 이들이 부두 노동을 하며 먹었던 음식이 고향에서 먹던 짜장면이다.

 임오군란이라는 난리통에 들어온 짜장면을 고급 중국음식점인 청요리집에서 가공을 한다. 쿨리(苦力)들이 먹던 짜장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도록 캐러멜을 첨가해 고급화한 것이다. 부연하자면 중국집 주인이자 주방장들이 자신들이 먹던 짜장면을 메뉴로 개발한 것이 한국에서 히트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한국 짜장면이 발달한 배경이다.

 짜장면은 중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특히 수도인 베이징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베이징 시내를 다니다 보면 ‘옛날식 베이징 짜장면(北京 炸醬麵)’이라는 간판의 국수집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통 짜장면’이라는 간판으로 손님을 유혹할 정도로 베이징 시민들에게 짜장면은 추억의 음식이다. 예전 중국 사람들이 그만큼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이고 중국인 스스로도 짜장면은 중국 북방을 대표하는 국수였다고 말한다. 짜장면이 산둥성에서 발달한 음식이라는 우리의 상식은 사실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중국 짜장면은 우리 짜장면과는 한참 다르다. 삶은 국수에 볶은 된장을 얹어 비벼 먹는데 한국 사람은 먹기가 힘들다. 그저 뜨거운 물에 삶아 낸 국수에다 우리 된장과 비슷한 된장을 넣고 거의 익히지 않은 숙주나물과 생오이, 무채와 배추 이파리 등을 넣고 비벼서 먹는다. 된장을 볶았기 때문에 ‘짜장’이라고 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으로는 거의 날된장에 비벼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삶은 국수에 장독에서 퍼온 날 고추장을 넣고 비빔국수를 만든 것에 지니지 않는다. 그리고 반찬 삼아 밭에서 딴 오이나 채소를 썰어서 넣었을 뿐이다.

 짜장면은 중국에서도 정말 먹을 것이 없는 시골 농촌에서 또는 부두 노동자들이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먹던 문자 그대로의 막국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본고장이라는 중국에도 짜장면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요리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 좋아하는 중국이지만 명나라, 청나라 문헌에서 짜장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지금과 가장 가까운 기록으로 1894년과 1915년에 발행된 무협소설에 짜장면이 간신히 등장한다. 근대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루쉰의 소설에 짜장면이 겨우 언급됐을 정도다.

 “한밤중 야식이 나왔는데 식탁 한편에는 삶은 국수를 담은 커다란 접시 한 그릇이 놓여 있고 또 다른 한편에는 오리고기를 넣고 볶은 짜장 한 그릇이 놓여 있다.”

 중국에서도 짜장면이 대중적으로 도시 주민들에게까지 퍼진 것은 거의 20세기 들어서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짜장면이 베이징 시민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이 됐을까? 삶은 국수에 넣을 것이 없어 된장을 넣고 먹었던 중국식 막국수, 짜장면이 베이징의 대표국수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청나라 말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서태후(西太后) 때문이었다.

 서양 열강들이 청나라를 넘보던 1900년, 중국에서 민중봉기인 의화단의 난이 일어난다. 그러자 자국민 보호를 핑계로 영국·미국·독일·프랑스·일본·러시아·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8개국이 연합군을 만들어 베이징을 점령한다. 추억의 명화 ‘북경의 55일’이 바로 이 사건을 무대로 만든 영화다.

 이때 서태후와 황제 광서제가 자금성을 버리고 멀리 시안까지 피난을 갔는데 허겁지겁 도망치느라 제대로 준비를 못 하고 떠났다. 배가 고픈 서태후 일행이 도중에 농가에 들러 짜장면을 한 그릇 얻어먹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삶은 국수에 된장을 비빈 짜장면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고 하니 곱빼기를 먹은 셈이다.

 전쟁이 끝나 자금성으로 돌아와서도 피난길에 먹었던 짜장면이 생각나 가끔씩 주문을 했다. 그러자 궁중 요리사들이 짜장면을 맛있게 만들었고 태후가 먹으니 고관대작들도 따라 먹으며 베이징에 퍼졌다. 시골 음식인 짜장면이 베이징에서 유행하게 된 배경이다.

 시장이 반찬이고, 된장도 볶으니 요리가 된다. 형편없는 중국식 막국수, 짜장면이 한국과 중국에서 모두 전란으로 인해 가장 인기 있는 음식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