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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등 위기상황에서 준비했던 ‘비상식량’

구름위 2017. 1. 1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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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등 위기상황에서 준비했던 ‘비상식량’

주먹밥과 삼각김밥
2013. 06. 19   15:47 입력


한국 주먹밥, 외침의 고통 함께 나누며 극복해  일본 삼각김밥, 내전 중에 무사·안녕 기원 담아

기사사진과 설명

한국의 둥근 주먹밥(왼쪽)은 주먹을 닮았고 일본의 삼각형 주먹밥은 산을 닮았다. 한일 양국의 주먹밥에는 전란에 대처하는 백성들의 의식이 반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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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주먹밥을 뭉치는 모습.

6·25전쟁 당시 주먹밥을 뭉치는 모습.



   이 세상에서 주먹밥을 먹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 정도다. 우리처럼 쌀밥을 먹지만 중국과 동남아에서는 주먹밥을 보기 어렵다. 대신 바나나 잎사귀 등에 밥을 싸서 먹는다. 우리 밥과는 달리 쌀에 끈기가 없어 뭉치기도 어렵고 날씨가 더워 맨밥은 쉽게 상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밥을 뭉쳐 먹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주먹밥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주먹밥의 공통점은 먼저 두 나라에서 모두 전쟁 때 병사들이 먹던 전투식량이었거나, 혹은 피난길에 또는 먼 길 떠날 때 먹은 음식이라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평소와 다른 위기상황에서 준비했던 비상식량이다.

 차이점은, 한국 주먹밥은 문자 그대로 주먹처럼 둥글게 뭉치지만 일본은 삼각형으로 뭉친다. 우리도 즐겨 먹는 삼각 김밥의 뿌리가 바로 오니기리(おにぎり)라고 하는 일본 주먹밥이다. 단순히 모양 차이 같지만, 한일 양국 주먹밥의 생김새에는 전란과 같은 비상시국에 대처하는 두 민족의 자세가 반영돼 있다.

 일본 주먹밥이 삼각형인 까닭은 신의 모습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고대 일본 신화집인 ‘고사기(古事記)’에 보면 신은 산(山)의 모습을 닮았다. 옛날 일본인들은 산을 신처럼 숭상했기 때문에 밥을 산과 같은 삼각형으로 뭉쳐 먹으며 신의 기운을 내려받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고대 일본은 ‘신령의 나라’라고 했을 정도로 곳곳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산에도 바위에도 다 신이 산다고 믿었으니 주먹밥에도 신의 기운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뭉치다’라는 뜻의 ‘오니기리’라는 말이 귀신을 물리친다는 말과도 비슷하므로 주먹밥을 삼각형으로 뭉쳐 먹으면 부적을 지닌 것처럼 귀신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본은 내전에 시달린 나라다. 봉건 영주들끼리 사무라이를 동원해 끊임없이 싸웠으니 전쟁에 동원된 병사는 물론 백성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었다. 그러니 주먹밥 하나를 먹으면서도 신의 도움을 빌려 목숨을 보전하고 전쟁의 어려움을 이겨내게 해 달라고 빌었다. 삼각형 주먹밥에 깃든 일본인의 의식이 흥미롭지만 얼마나 전쟁에 시달렸으면 주먹밥에조차 안녕과 무사의 기원을 담았을까 싶다.

 반면 한국 주먹밥은 투박하다. 평소에는 요즘처럼 예쁘고 맛있는 주먹밥을 만들었지만, 난리 때는 그저 꽁보리밥을 주먹처럼 뭉쳤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전쟁처럼 큰 전쟁을 치르기는 했지만, 전란이 잦은 나라는 아니었다. 굳이 주먹밥을 먹으면서까지 신에게 빌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위아래 가릴 것 없이 위급상황에서 먹는 비상식량이었을 뿐이다.

 임진왜란 때 일이다. 선조가 먼저 의주로 피난을 떠났고 중전인 의인왕후가 뒤따라 피난길에 나섰다. 당시 왕비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선조는 총애하는 후궁으로 임해군과 광해군의 생모인 인빈 김씨와 피난을 갔기에 중전인 의인왕후는 신하 몇 명과 함께 별도로 길을 떠나야 했다. 선조 때 학자인 이식이 쓴 ‘택당집’에 남편 없이 홀로 피난길에 나선 중전의 고난이 기록돼 있다. 의주로 올라가는 길목의 어느 마을에 도착했는데 고을이 모조리 파괴됐기 때문에 중전에게 바칠 점심마저 얻을 수 없게 됐다. 그리하여 여러 신하가 상의한 끝에 보따리에서 준비해 간 주먹밥을 꺼내어 중전께 올렸다. 국모인 왕비가 피난길에 쭈그리고 앉아 주먹밥을 베어 먹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처연하다.

 전쟁이 났을 때는 임금과 왕비, 병사를 가릴 것 없이 주먹밥을 먹었다. 행주대첩의 승리는 주먹밥을 먹으며 싸운 결과였고 가깝게는 6·25전쟁 때 군인들이 참호에서 먹던 밥도 주먹밥이다.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던 정일권은 “남자는 물론 여자도 행주치마 졸라매고 하루에 세 끼 먹던 밥을 두 끼로 줄여 주먹밥을 날라야 할 것”이라는 담화를 발표한다. 전쟁이 나면 으레 주먹밥을 장만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으니 주먹밥은 전쟁음식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먹밥은 단지 전란 때 먹는 고통의 음식만은 아니었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고통을 함께 나누며 고난을 극복했던 음식이다.

 “공주에 사는 박축이라는 사람은 쌀을 내어 죽을 끓여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해 살려낸 것이 300여 명이나 되고 정무경이라는 이는 콩을 삶아 주먹밥을 만들어 길거리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눠줘 구제했습니다. 이런 난리를 당해 남을 구제할 마음을 가졌으니 포상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권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의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기록이다.

 유일하게 손으로 밥을 뭉친 주먹밥을 먹는 나라인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주먹밥은 주먹형과 삼각형이라는 생김새만큼이나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 내전에 시달린 일본의 삼각형 주먹밥에 개인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소원이 담겼다면 외침을 겪은 한국의 주먹형 주먹밥에는 힘을 합쳐 외세의 침입을 이겨내려는 투박한 화합의 의지가 들어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6·25전쟁의 아픔을 되새기자는 의미로 곳곳에서 주먹밥 체험행사가 열린다. 어려운 시절 먹었던 음식에서 지금은 별미가 된 우리의 주먹밥과 일본의 삼각 김밥에서 찾은 주먹밥에 담긴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