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햄 통조림, 스팸

구름위 2017. 1. 1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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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시민의 단백질 공급원

햄 통조림, 스팸


종전 후에도 공급 넘치자 국민들 염증 느껴 ‘애국식량’에서 ‘스팸 메일’이란 오명 남겨

기사사진과 설명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며 배급제를 시행했다. 배급 물자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선 런던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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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시민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된 햄 통조림 스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시민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 된 햄 통조림 스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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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발행한 배급통장(왼쪽)과 통장에 찍힌 배급 쿠폰.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발행한 배급통장(왼쪽)과 통장에 찍힌 배급 쿠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영국 런던의 시민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달걀은 원칙적으로 2주일에 한 개를 먹었다. 고기도 역시 일주일에 500g을 넘지 못했다. 빵과 고기를 주로 먹는 서양인에게는 형편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신선한 우유나 채소, 치즈 같은 가공식품도 공급량이 제한됐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구입할 수 없었다.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그러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전쟁 시작과 함께 독일은 잠수함, 유보트를 동원해 섬나라 영국을 봉쇄하고 해상 운송로를 차단했다. 물자난에 시달리게 된 영국정부는 1949년 1월 8일 자로 배급제를 실시하면서 주민들은 의무적으로 거주지 식품점에 등록하고 배급통장을 지급받았다. 물건을 살 때는 돈과 함께 배급통장을 제시하면 통장에 적힌 쿠폰에 도장을 찍어 준다. 할당된 쿠폰을 넘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물건을 살 수 없었다. 배급되는 쿠폰이 계란은 2주일에 한 개, 고기는 일주일에 500g, 치즈는 일주일에 30g이었다.

 전쟁으로 전면적인 배급제가 시행됐지만 예외적으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식료품도 있었다. 예컨대 감자는 마음대로 살 수 있었고, 햄은 공급이 엄격하게 제한됐지만 스팸으로 알려진 햄 통조림은 아무런 통제 없이 마음껏 구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생산한 햄 통조림 스팸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은 물론이고 영국군과 러시아군을 포함한 연합군, 그리고 연합국 시민들에게 부족했던 단백질을 공급해준 전쟁의 숨은 공신이었다. 동시에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지금은 ‘스팸메일’이라는 오명의 주인공이 됐다.

 햄 통조림 스팸은 전쟁이 키운 음식이다. 적절한 기술과 타이밍이 동시에 작용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는데 스팸을 보통명사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미국의 식품회사인 호멜에서 만든 상표다. 또 햄 통조림으로 유명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햄 대체 통조림이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 소재한 호멜 사는 1927년, 세계 최초로 햄 통조림을 만들었다. 햄의 원료는 돼지 다리 살인데 통조림을 만들고 난 후 부산물로 남는 엄청난 양의 돼지 어깨 살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별 쓸모없는 싸구려 어깨 살 때문에 고민하던 호멜 사는 1937년 어깨 살을 다진 후 여기에 햄을 섞고 소금과 전분을 넣어 햄 통조림을 대체할 수 있는 식품을 만들고 스팸(SPAM)이라는 브랜드로 시장에 내놓았다. 스팸은 돼지고기 어깨 살과 햄(Shoulder of Pork And HAM)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부가가치가 낮은 돼지 어깨 살을 고부가가치의 햄 통조림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호멜 사에 운도 따랐다. 제2차 세계대전이 유럽으로 확산되면서 냉동저장이 필요 없는 스팸은 군용 식량으로 제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의 야전식량으로 채택돼 미군은 물론이고 영국군, 러시아군까지 연합군 모두에게 공급됐다. 전선의 장병들에게 신선한 고기를 공급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햄 통조림을 무제한 공급했기에 병사들은 스팸을 ‘특수 군용고기’라고 불렀다.

 스팸은 값싸고 풍부한 돼지 어깨 살을 갈아 다져서 만들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 식량배급 대상품목에서 제외되면서 미국은 물론 영국으로 엄청난 양이 보내졌다. 전쟁 중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영국민들도 햄 통조림만큼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전쟁 중 연합군과 시민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됐기에 스팸은 ‘애국 음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45년,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 그리고 배급제도 폐지됐지만 값이 싼 햄 통조림은 끊임없이 공급돼 영국 국민의 식탁을 점령했다. 미국에서 무더기로 수입되는 햄 통조림이 드디어 문제가 됐다. 전후 영국의 양돈 산업 부활을 방해하고 있는 데다 햄 통조림에는 신물이 났다. 사람들은 신선한 고기를 먹고 싶었고, 햄도 소금에 절여 저장한 제대로 된 햄이 그리웠다.

 당시의 영국인들이 햄 통조림인 스팸을 얼마나 지겨워했는지 1970년대에 방영된 영국 BBC 방송의 코미디 시리즈에까지 스팸이 등장했다. 식당 메뉴에 적힌 음식들이 모두 스팸 통조림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음식을 주문해도 스팸을 넣지 않고는 만들 수가 없었다. 이 코미디가 인기를 끌면서 스팸은 쓸모없이 넘쳐나는 물건의 대명사가 됐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 이전, 1980년대 PC 통신 시절에 악질 누리꾼이 BBC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온 스팸 관련 대사를 인용해 통신 접속을 독점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스팸이라고 불렀는데 이어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는 쓰레기 메일을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과 시민의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햄 통조림, 스팸이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다량으로 공급이 이뤄지면서 사람들이 결국 싫증을 느끼게 됐고 급기야 ‘스팸메일’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남겼다. 세상일이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