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나라마저 잃게 한 작은 음식 우리들 인생살이 교훈 담았네

구름위 2017. 1. 11. 20:57
728x90

나라마저 잃게 한 작은 음식 우리들 인생살이 교훈 담았네

<2>양고기 국서 유래 ‘양갱’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빈대떡에는 빈대가 없는데 양갱에는 무엇이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양고기가 없다.  달달하면서 입에 착 감기는 맛의 과자 양갱은 팥으로 만든다. 팥 앙금에 한천과 설탕을 섞어 반죽해 만드는데 전통 한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은 중국에서 기원해 일본에서 발달한 과자다.  별생각 없이 먹는 간식이고 맛있는 과자인 양갱이지만 그 기원이 엉뚱하다. 그뿐만 아니라 양갱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음식의 유래와 지도자들이 알아야 할 교훈, 나아가 인생살이의 지혜가 담겨 있다. 양갱의 포장지에서 얽혀 있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양갱 포장지를 보면 대부분 한글로 양갱이라고 써놓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羊羹이라는 한자도 함께 적어 놓았다. 읽기조차 어려운 한자여서 대부분 무심코 지나치지만 뜻을 알고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양갱의 양(羊)은 동물 ‘양’을 뜻하는 글자이고, 갱(羹)이라는 한자는 ‘국’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양갱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양고기 국’이라는 의미가 된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팥으로 만든 과자에 왜 엉뚱하게 양고기 국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일까? 붕어빵은 붕어와 전혀 관계가 없지만 양갱은 원래 양고기 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양갱은 14세기부터 16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중국에 유학 갔던 일본 승려가 귀국해서 만든 과자라고 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양고기 국을 많이 먹었는데 양고기로 국을 끓인 후 식으면 고기에 포함된 젤라틴 성분이 굳어져 말랑말랑해진다. 이렇게 굳어진 음식을 떡처럼 빚어서 간식으로 먹었다는 것이다. 일본 승려가 유학을 끝내고 돌아올 때 이 음식을 가지고 왔는데 불교에서는 육식을 금하기 때문에 절에서는 만들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양고기 국물을 식혀 만드는 대신 팥 앙금을 넣어 만든 것이 양갱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인 일본의 에도시대 때 차 문화가 발달하면서 차와 함께 먹는 과자로 양갱이 인기를 얻으면서 지금의 양갱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전해지는 양갱의 기원인데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중국인들이 양고기 국물을 식혀서 말랑말랑한 젤리 상태의 간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은 중국 문헌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중국인들은 지금도 양고기를 즐겨 먹지만 옛날에도 양고기 국,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양갱을 좋아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양고기 국인데 양갱으로 사람을 섭섭하게 해 나라가 망한 사례도 있으니 중국의 여러 역사책이 ‘양갱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춘추전국시대에 중산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어느 날 중산국 왕이 도성의 사대부들을 모두 불러 모아 거창한 연회를 베풀며 양고기 국을 대접했는데 그 자리에 대부인 사마자기라는 사람도 있었다. 참석한 사람들에게 양고기 국을 나눠 주다 준비했던 양고기가 부족해 마침 사마자기 앞에서 양고기 국이 떨어졌다.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사마자기가 화를 참지 못하고 이웃 강대국인 초나라로 건너가 초왕에게 중산국의 약점을 알려주며 군사를 일으켜 토벌할 것을 권했고 마침내 초왕이 쳐들어와 중산국은 결국 망하고 말았다.  

 

초나라의 공격으로부터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중산국 왕이 변장을 하고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보니 평소 믿었던 신하들은 모두 흩어져 사라졌고 생각지도 못했던 병사 두 사람만이 창을 들고 뒤에서 자신을 호위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중산국 왕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짐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그대들은 어찌하여 창을 들고 나를 따라오고 있는가?”라고 묻자 두 사람이 대답했다. “저희들은 형제간으로 예전 저희 아버님이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 됐을 때 임금님이 갖고 있던 식은 밥을 나눠 주시어 목숨을 건진 적이 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혹시 중산국에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들은 목숨을 걸고 그 은혜를 갚으라’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렇게 달려와 주군을 모시는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중산국 왕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은 양이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베푸는 것이 중요하구나. 남에게 원한을 사는 것은 행동의 깊고 얕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을 얼마나 상하게 했는지가 문제로구나. 내가 한 그릇의 양고기 국 때문에 나라를 잃었지만 한 그릇의 식은 밥 때문에 두 용사를 얻었노라.”  

 

한나라의 유향(劉向)이 춘추전국시대 때 활동했던 전략가들의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전략을 모아서 쓴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이야기다.  

 

‘양갱의 교훈’인데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별 뜻 없이 했던 행동 하나가 다른 사람한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자신한테는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조그만 호의가 상대편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일생의 은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양고기 국에서 비롯된 양갱에 담긴 기상천외의 유래이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