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식품인 동시에 화학무기였다
- <3>17세기 화생방 무기 ‘고춧가루’
임진왜란 때까지 최루탄으로 사용
초기엔 식용보다 독초이자 의약품
고추 섞은 소주 마시고 다수 사망
“소주에 고춧가루 타서 마신 후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그까짓 감기 따위는 바로 떨어진다.”
독감 환자에게 술을 강권할 때
농담처럼 하는 말이다. 실제로 고춧가루 탄 소주를 마셔 본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 경우 감기가 나을 수는 있지만 부작용이 더 크다. 술
때문에 증상이 악화될 수 있고 고춧가루 때문에 장이 약한 사람은 쓰린 속까지 참아야 한다.
그런데 “감기에는 고춧가루 탄 소주가
특효”라는 말은 왜 생겼을까? 예전부터 농담처럼 전해지는 말이기는 하지만 고춧가루 탄 소주가 실제 감기약으로 쓰였던 것일까?
임진왜란 때 전해진 고추는 화생방 무기로 사용됐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적진에뿌리면재채기가나오고눈물이쏟아져적들이도망간다”고했으니옛날엔화생방무기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필자제공 |
민간요법으로 쓰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마신 역사는 무척 오래됐다는
것이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1592년 임진왜란 이후인데 이 무렵에 벌써 소주에 고추를 타서 마셨다.
광해군 때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고추에는 강력한 독이 있다. 주막에서 왕왕 고추를 심는다. 맹렬한 성질을 이용해 소주에 고추를 섞어서 팔기는 하는데
그것을 마시고 죽은 사람이 적지 않다”고 기록해 놓았다. 당시 우리 조상들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매운맛 때문에 고추를 독약처럼 여겼었던 것
같다.
고추가 아무리 맵다고 해도 한두 명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고추 탄 소주를 마시고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는 할 수 있다. 조선의 소주는 요즘 같은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순수 증류주였다. 그렇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가 50도를 훨씬
넘는 독주였다.
소주가 얼마나 독했는지는 1720년,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이의현의 ‘경자연행잡지’라는 기행문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북경 사람들은 조선의 소주가 너무 독하다며 마시지 않고, 마셔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독한 ‘배갈’을 마시는
중국인들이 조선의 소주를 보고 독하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맹렬한 성질’이 있다는 고추까지 타서 마셨으니 이수광이 기록에 남긴 것처럼
“고추 탄 소주를 마시고 죽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기록이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고춧가루 탄 소주를 마시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그까짓 감기 떨어지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고추는 우리 음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조미료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처음 고추가 전해졌을 때는 먹는 채소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식용이 아니라 오히려 독약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고추 탄 소주’
역시 주막집 주모가 사람이야 죽거나 말거나 더 독한 술을 만들 생각에 독약에 가까운 고추를 소주에 섞은 것일 수 있다.
고추에
관한 우리나라의 옛날 기록을 보면 살벌할 정도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이 저서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고추의 용도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고추는 매운 작물이기 때문에 먹으면 입술이 마비되거나 목이 막힐 정도라고 했고 많이 먹으면 몸에 종기가 난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임신한
여자가 고추를 잘못 먹으면 아이가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에 전해진 초창기 고추 종자가 어떤 품종이었는지는 밝혀진 것이
없지만 무척 매운 종자였던 모양이고 따라서 고추를 살벌한 독약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러니 이규경은 고추가 화생방 무기로도
쓰인다고 했다. 말린 고추를 가루로 만들어 적진에 뿌리면 코에서는 재채기가 나오고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적들이 도망간다고 했으니 영락없는
지금의 최루탄이고 화생방 무기다. 임진년 이후에 전해졌다고 했으니 일각에서는 왜군이 조선을 침공하면서 전략무기로 고추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물론 고추를 독약처럼 다루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제대로 이용하면 훌륭한 약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추운 날, 먼 길 떠나는 사람이 버선 속에 고추를 넣으면 발이 시리지 않아 오래 걸을 수 있으며 이질 치료에 약효가 뛰어난데
생고추를 끓여 그 물을 마시면 이질이 즉석에서 낫는다고 기록했다. 이 외에도 장이 막혀 대변을 보지 못할 때 고추를 먹으면 바로 설사를 해 속이
뚫린다고 했으니 약효는 분명한데 왠지 약과 독약의 경계가 애매한 느낌이다.
사실 고추는 처음부터 조미료로 전해졌던 것은 아닌
듯하다. 남미가 원산지인 고추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우리보다 약 100년이 앞선 1493년이다. 콜럼버스가 두 번째로 아메리카 대륙을 항해할 때
동행했던 디에고 찬카라는 의사가 멕시코에서 고추를 가져왔는데 찬카는 이듬해 고추의 약효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니 유럽에 전해진 고추 역시
조미료가 아닌 약품, 그것도 치료 용도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독약, 내지는 화생방 무기로서의 용도에 주목했던
것이다.
실제로 찬카가 고추를 채집한 멕시코에서는 고추를 조미료는 물론이고 감기, 천식 치료제로도 사용했고 전쟁터에서는 고추 즙을
뿌려 적의 눈을 멀게 하고 고추를 태워 상대방을 질식시키는 화생방 무기로도 사용했다.
지금은 고추가 그저 양념으로 쓰는
조미료이고 채소이지만 예전 고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식품인 동시에 화학무기였고, 독약이었으며 치료약이었으니 용도가 정말로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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