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진화에 진화 150년, 전사와 생사를 나누다

구름위 2017. 1. 11. 20:52
728x90

진화에 진화 150년, 전사와 생사를 나누다

<1>건빵


  ‘두 번 구운 빵’ 비스킷이 뿌리 추위·더위·습기도 견디게 개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처럼 전쟁도 식후경이다. 나폴레옹이 한 말인데 정확하게는 “군대도 먹어야 진격한다”고 말했다. 먹어야 싸울 수 있다는 진리는 동서양이 마찬가지였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친 것도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으니(以食爲天) 군량미부터 확보하라”라는 참모 역이기의 조언 덕분이다.

 전쟁과 음식은 뗄 수 없는 관계다. 고대의 전쟁부터 현대전까지, 장군에서부터 병사에 이르기까지 먹지 않고는 싸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에는 전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잔 술을 수천의 병사가 나누어 마시고 승리한 전투도 있고 고깃국 한 그릇 때문에 패한 전쟁도 있다. 전쟁에 얽힌 음식 이야기에는 작전의 교훈, 인생의 지혜가 숨어 있고 미처 몰랐던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이 있다. 음식으로 읽는 전쟁 이야기를 연재한다.
 

기사사진과 설명
건빵은비스킷에서기원해발달한식품이다. 19세기뉴욕맨해튼에있던비스킷공장. (뉴욕관광지첼시마켓에전시된사진)

건빵은비스킷에서기원해발달한식품이다. 19세기뉴욕맨해튼에있던비스킷공장. (뉴욕관광지첼시마켓에전시된사진)




건빵은 비스킷에서 기원해 발달한 식품이다.  19세기 뉴욕 맨해튼에 있던 비스킷 공장. (뉴욕 관광지 첼시 마켓에 전
시된 사진)


 옛날 병사들은 전투가 치열할 때 무엇을 먹으며 싸웠을까? 밥 해먹을 시간적 여유조차 없을 때 먹던 전투식량이 주먹밥이었고 말린 쌀이며 미숫가루였다. 그런데 주먹밥이 문제였다. 날씨가 습한 여름이면 한나절만 지나도 밥이 쉬어 먹을 수가 없었고 겨울에는 꽁꽁 얼어 이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싸울 때도 많았다. 이런 황당한 상황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건빵이다. 전투 중인 병사의 허기를 달래 준, 엄지손가락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건빵은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든 것일까?

 무심코 먹는 건빵이고, 너무나 사소한 식품이라서 누가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들었을 것 같지도 않지만, 건빵은 장기간의 세월에 걸쳐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건빵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또 다른 전쟁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건빵의 뿌리는 비스킷인데 제국주의 일본군에서 비스킷을 개량해 건빵으로 발전시켰다. 그런데 건빵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복잡한 시대적 배경이 얽히고설켜 있다.

 일본은 19세기 중반,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유럽을 흉내 내려고 갖가지 개혁을 추진했다. 심지어 병사들에게 하루 세끼 밥 대신 빵을 먹이기도 했는데 키 작은 일본인의 체형을 서양인처럼 만들겠다는 시도였다. 유럽인들은 빵이 주식인 만큼 빵을 먹으면 키도 커질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병사들의 반발이 심해 밥 대신 빵을 지급하는 계획은 곧바로 취소됐지만, 빵을 이용해 휴대용 전투식량을 개발하려는 계획은 중단 없이 지속됐다.

 이전까지 일본군의 비상 전투식량은 주먹밥이었다. 하지만 주먹밥은 앞서 지적한 불편뿐만 아니라 많이 휴대할 수도 없고 장기간 보관도 쉽지 않아 대체품 개발이 절실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서양의 비스킷을 응용해 개발한 전투식량인 ‘중소면포’였다.

 중소(重燒)는 두 번 구웠다는 뜻이고 면포(麵包)는 빵이니까 중소면포는 ‘두 번 구운 빵’이라는 뜻이다. 비스킷(biscuit) 역시 비스(bis)는 두 번, 킷(cuit)은 요리이니 두 번 요리한 과자라는 뜻이다. 즉 비스킷을 한자로 번역한 것이 중소면포다. 빵이나 과자를 두 번 구우면 수분이 없어져 장기보관이 가능해진다. 중소면포가 곧 건빵의 원조인데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크기가 수첩만 해 휴대가 어려웠고 군복 주머니에 넣으면 잘 부스러져 먹기도 불편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그러나 1894년 청일전쟁을 계기로 휴대용 전투식량인 중소면포를 더욱 개선해 발전시킨다. 전쟁터가 섬나라 일본을 벗어나 한반도와 대륙으로 옮겨지면서 보급선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식량을 제때 공급하기 어려워지자 가볍고 휴대가 편리하며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비상식량이 필요해졌다. 그리하여 유럽에 기술자를 파견해 각국의 군용식량을 연구한다.

 1903년 러일전쟁이 끝나면서 새로운 비상 전투식량이 만들어졌다. 이름도 종전의 중소면포에서 건면포(乾?包)로 바꿨다. 마를 건(乾)에 면포는 빵이니 바로 건빵이다. 중소면포가 건빵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은 병사들이 싫어했기 때문이다. 두 번 구웠다는 뜻의 중소(重燒)와 큰 부상을 당했다는 중상(重傷)의 일본어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건빵은 이후에도 개량작업이 계속됐는데 지금처럼 먹기 편하고 휴대도 간편한 소형 건빵이 나온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만주 전선의 극한 추위, 동남아의 더위와 습기를 모두 견딜 수 있도록 개선된 것이다.

 건빵은 현재 우리 국군과 일본 자위대가 비상 전투식량으로 채택하고 있고 중국 인민군도 압축병간(壓縮餠干)이라는 이름의 건빵을 전투식량으로 지급한다. 또 건빵의 뿌리는 서양의 비스킷으로 미국과 유럽 각국의 전투식량에 대부분 비스킷이 포함돼 있으니 생김새와 이름만 다를 뿐 건빵은 전 세계 군인의 전투식량인 셈이다.

 작은 과자에 불과한 건빵이지만 그 속에는 전쟁의 역사와 전투의 속성이 모두 깃들어 있다. 전투력 극대화를 목표로 작은 건빵 하나를 개선하는 데 약 150년의 세월과 노력이 투자됐기 때문이다. “군대는 먹어야 진격한다”는 나폴레옹의 사상과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유방의 정신이 무심코 먹는 건빵 한 조각에 모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