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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신무기<73>바스타드 소드<bastard sword>

구름위 2017. 1. 1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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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신무기<73>바스타드 소드<bastard sword>

베기·찌르기 적합한 두가지 특성의 검
2008. 06. 30   00:00 입력 | 2013. 01. 05   03:55 수정


서로 다른 종이나 계통 사이의 교배에 의해 생긴 자손을 뜻하는 사전적 의미로 잡종(雜種·hybrid)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종교배(異種交配)와 같이 보다 우수한 품종을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시도되는 다양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며 그 결과에 따라 단성잡종, 양성잡종, 다성잡종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무기 발전사 측면에서 수많은 잡종 무기가 등장하지만 이름 자체가 잡종을 뜻하는 검이 있다는 것이다.

1422년 벨린초나(Bellinzona) 전투에 처음 등장해 당시 스위스 용병들이 전투에 승리하는 데 일조한 바스타드 소드(bastard sword·사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5∼16세기 서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이 검은 길이 115∼140㎝, 날의 폭은 2∼3㎝, 무게 2.5∼3㎏으로 베기와 찌르기 모두에 적합했고, 이름 자체가 유사(類似) 잡종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당시 서유럽에서 베기에 적합한 검은 게르만 검, 찌르기에 적합한 검은 라틴 검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바스타드 소드는 그 두 가지 특성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사실 실전에서는 검의 종류를 불문하고 베기와 찌르기가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으로 검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스타드 소드는 베기와 찌르기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한 손 혹은 양손으로 사용할 수 있고, 검의 크기 역시 장검과 단검의 중간형태로 최적화돼 있는 등 다양한 검의 특징이 한데 집약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바스타드 소드가 등장한 15세기께 보병이 사용했던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날 끝이 예리한 찌르기용 라틴 검 또는 양손으로 사용하는 베기용 게르만 검이었다.

실전에서 바스타드 소드는 사용자에게 여러 이점을 제공했는데 당시 다른 검들에 비해 크기가 적당해 기동성이 뛰어났고 양손을 사용하면 보다 강력한 일격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대신 롱 소드와 같이 보다 크기가 큰 양손 검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갑옷이나 방패와 같은 충분한 방호구를 갖추고 있어야 했다.

바스타드 소드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며 13세기께 이미 바스타드 소드의 원형이 되는 검이 서유럽을 중심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바스타드 소드는 15세기께 스위스에서 탄생했으며 독일과 스위스를 중심으로 다양한 검의 제작과 발전이 이뤄져 17세기 중반까지 널리 사용됐다.

영국과 독일에서 만들어진 바스타드 소드는 외형이나 장식이 비교적 간단하거나 수수한 반면, 스위스에서 만들어진 바스타드 소드는 외형이나 장식이 정교하거나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바스타드 소드는 매우 균형 잡히고 근접 전투에 최적화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검의 장점만을 두루 갖추고 있는 뛰어난 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스위스 용병들은 바스타드 소드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히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자신의 명성을 드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바스타드 소드 역시 화약무기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보병 전투가 변화함에 따라 급격히 전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역사속 신무기<74>컬버린<culverin>

사정거리 300∼800m의 야포
2008. 07. 07   00:00 입력 | 2013. 01. 05   03:56 수정

프랑스의 국왕 샤를 8세(Charles VIII·재위 1483∼1498)가 1494년 이탈리아를 전격 침공했을 때 그의 결정과 행동이 어떤 역사적 파장을 낳을지 정확히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은 유럽사회 전반에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마키아벨리(1469∼1527)의 군주론(君主論·II Principe)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특히 군사적 측면에서 샤를 8세는 이탈리아 침공을 통해 야포의 위력을 유감없이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포위 공격이 무엇인지를 직접 검증했다.

샤를 8세는 피렌체, 로마, 나폴리를 차례로 점령하고 이듬해 포르노보에서 곤차가(1466∼1519) 휘하의 베네치아와 밀라노 연합군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전 이탈리아를 손에 넣었다. 특히 컬버린(culverin·그림)이라 명명된 프랑스군의 새로운 대포가 보여준 엄청난 화력에 혼비백산한 이탈리아인들은 변변한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샤를 8세에게 무릎을 꿇었다.

당시 샤를 8세가 사용한 컬버린은 사정거리 300∼800m, 포신 길이 1.2∼3m, 포신의 무게 1∼3톤으로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프랑스와 유럽 각국에서 사용한 야포다. 컬버린은 라틴어로 ‘뱀’을 의미하는 데 동시대의 다른 대포에 비해 구경이 작고 가늘면서 긴 포신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포신의 크기에 따라 그레이트 컬버린(great culverin), 바스타드 컬버린(bastard culverin), 데미 컬버린(demi culverin)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구조는 모두 동일하다.청동으로 주조된 이 대포는 이전의 그 어느 대포보다 가볍고 포신이 바퀴 달린 포대 위에 설치돼 있어 빠른 이동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발사 속도 또한 매우 빨랐다.

특히 포가(砲架)와 포이(砲耳)를 도입해 포신(砲身)을 상하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고 안정적인 탄도와 포신의 각도 조정을 통한 정밀 포격이 가능했다.돌 대신 금속 주조를 통해 만든 포탄을 사용해 위력을 배가했고 여전히 표적은 적군이 아닌 적군의 진지와 시설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전투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미 프랑스는 유럽 최고의 야포(野砲) 운용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1450년 포르미니 전투에서 컬버린 2문을 사용해 영국이 자랑하던 롱 보를 무력화하고 전투에서 승리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 당시 컬버린이 실제 위력을 발휘한 것은 나폴리 왕국의 국경 요새가 저항해 온 단 한 차례뿐이었다.

물론 프랑스 포병들은 집중 포격을 통해 불과 여덟 시간 만에 과거 7년간의 공성전에서도 철벽을 자랑하던 성벽을 돌무더기로 만들어 버렸다.컬버린의 등장은 직접적으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힘을 위축시키고 주변 영방(領邦) 국가들을 무력화했다. 이후 컬버린은 1512년 라벤나 전투, 1515년 마리냐노 전투에서 프랑스가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