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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신무기<77>갈레온<Galleon>

구름위 2017. 1. 1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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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신무기<77>갈레온<Galleon>

당대 최강 전투함으로 평가
2008. 07. 28   00:00 입력 | 2013. 01. 05   03:59 수정


1588년 종교적·경제적·정치적으로 갈등관계에 있던 영국과 스페인이 대서양의 제해권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영국 남부해안에서 양국 함대가 맞붙었고 도버해협, 북해로 장소를 옮기며 약 10일간 계속된 치열한 해전은 당대 최강으로 평가받던 스페인 무적함대(Spanish Armada)의 패배로 종결됐다.

특히 영국과 스페인 해군의 주력함으로 활약한 갈레온(Galleon·그림)은 비록 해전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당대 최강의 전투함으로 평가받기에 손색이 없다.사실 갈레온은 신대륙으로부터 각종 보물과 금을 수송하던 스페인 보물선으로 더 유명하며 기존의 캐랙(carrack)을 유선형으로 다듬고 더욱 발전시킨 범선이다.

캐랙과 전투용 코그(fighting cog)에 비해 선체가 약간 짧고 갤리선보다 폭이 조금 좁았지만 그 어느 범선보다 빠른 속력과 우수한 기동성을 자랑했으며 상당량의 화물을 수송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뛰어난 무장과 강력한 전투력도 갖췄기 때문에 코그나 캐랙과 선단을 이뤘을 때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물론 이들 선박까지 충분히 호위할 수 있었다.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보통은 15세기 하상초계에 사용된 베네치아노선 갈리오니(gallioni)에서 유래됐다고 보며 최초의 갈레온은 1525년 등장했다. 갈레온은 다수의 함포를 운용할 수 있는 두 개의 주갑판(fulldeck)을 갖췄으며 표준 규격 없이 무게 300∼1000톤, 전장 45∼55m 내외의 다양한 크기로 건조됐다.

영국과 스페인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국가에서 갈레온을 건조해 군함으로 운용하고 있었고 베네치아에서 건조한 갈레온은 1537년 터키 노선과 교전을 벌여 승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과 스페인이 가장 많은 갈레온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영국 갈레온과 스페인 갈레온으로 구분한다.

스페인 갈레온은 선체가 다소 높고 근거리 전투에 최적화돼 있는 반면 영국 갈레온은 선체가 낮고 스페인 갈레온에 비해 기동성이 우수해 원거리 전투에 최적화돼 있다는 점이 다르다.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영국 침공을 위해 동원한 스페인 무적함대의 수는 무려 137척이었고 그중 대형 갈레온만 65척이었다. 대구경 함포의 경우도 스페인 함대는 489문을 보유해 98문을 보유한 영국 함대를 압도했다.

그러나 영국 함대는 위력은 약했지만 사정거리가 월등히 긴 소구경 함포를 스페인 함대보다 약 3배나 많은 1874문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197척의 영국 함대 중 대부분은 군함이 아닌 개인 소유의 사략선이었지만 새로 건조된 갈레온이었기 때문에 우수한 기동성을 바탕으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 포격전을 전개할 수 있었다.

물론 이 해전의 승패를 결정지은 것은 갈레온과 함포가 아닌 ‘프로테스탄트 바람’으로 불린 남서풍과 악천후, 북해의 거친 바다와 암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레온은 이후 전장 범선이 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함포 역시 제2차 세계대전까지 해군의 주력 무기로 활약하게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역사속 신무기<78>위용함<great ships>

국왕·귀족 자기만족 위해 건조
2008. 08. 04   00:00 입력 | 2013. 01. 05   04:00 수정

인류의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간혹 이성적·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경우를 종종 살펴볼 수 있다.

군사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닌데 17세기 전반 유럽 각국이 위용함(great ships·그림)이라 불리는 대형 갈레온 건조에 주력한 사건 역시 이러한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와 영국 함대의 해상결전 당시 다수의 함포로 무장한 갈레온(Galleon)이 보여준 위력은 유럽 각국이 앞 다퉈 비슷한 유형의 범선을 건조하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그러나 사실 영국 함대가 스페인 무적함대를 상대로 우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작고 빠른 영국의 무장상선, 즉 나오스(naos)나 갈레온 중에서도 가장 작고 빠른 범선들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각국은 보다 크고 많은 숫자의 함포와 화려한 장식으로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위용함 건조에 노력을 경주했다. 이 때문에 위용함은 군함의 본래 목적보다 예술적 가치와 기준에 따라 서열이 정해졌으며 대부분의 경우 실제 군사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국왕 혹은 귀족들의 자기 만족을 충족하기 위해 건조됐다.

원래 위용함이란 3층 갑판을 가진 대형 범선을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70여 문의 함포를 탑재한 2층 갑판을 가진 함형이 가장 보편적인 위용함으로 건조됐다.역사상 가장 유명한 위용함은 스웨덴의 와사(wasa)로 학자들 역시 이견이 없다. 이 희대의 최고급 전투함은 위신을 우선하던 국왕의 욕심 때문에 포 갑판을 한 층 더 만들었다가 결국 안정성을 상실하고 1682년 처녀 항해에서 침몰한 비운의 위용함이다.

그러나 최초의 위용함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존재한다.2층 또는 3층 전투갑판을 지닌 위용함이 본격적으로 건조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전반으로 1637년 영국에서 건조된 소버렌 오브 더 시즈(sovereign of the seas)를 최초의 위용함으로 본다. 소버렌 오브 더 시즈는 용골 38.7m, 전장 70.7m, 폭 14.2m 크기에 최초로 100문의 중형(重型) 함포를 탑재한 본격적인 위용함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56문의 함포를 탑재하고 1610년 건조된 프린스 로열(prince royal)을 최초의 3층 위용함으로 본다.물론 사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위용함의 등장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으며 해군 및 군함 발전사에 긍정적인 측면과 영향도 있었다. 16세기 유럽 각국이 보유한 해군력의 실체는 엄밀히 말하면 국왕 또는 국가 소속이 아닌 개인 소유의 사략선을 중심으로 한 민간 군사기업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위용함의 등장으로 정규 해군 전투함과 민간 무장상선 간에 뚜렷한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고, 이것은 국가의 해군력 강화 및 실효적 해상 지배라는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여졌다.위용함의 등장은 전통적인 3층 전열함(the ship of the line)이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고 말할 수 있으며 군함과 상선의 구분을 보다 명확하게 하는 하나의 지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