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역사속 신무기<45>카타프락토스

구름위 2017. 1. 9.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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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신무기<45>카타프락토스

6세기 초 비잔티움제국의 중장기병
2007. 12. 03   00:00 입력 | 2013. 01. 05   03:26 수정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s Copernicus·1473∼1543)가 처음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을 때 그는 자신의 주장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현대인들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상식 중의 기본 상식으로 통하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사회적 반향과 파문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이론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화로 불리는 ‘과학혁명’의 시초가 됐다.코페르니쿠스와 견줄 수 없지만 비잔티움제국의 장군 플라비우스 벨리사리우스(Flavius Belisarius·505∼565) 역시 ‘발상의 전환’을 통해 군사적 측면에서 빛나는 업적을 쌓은 인물이다.

그는 보병을 중심으로 한 과거 로마군단 편제를 과감히 개편, 6세기 초 카타프락토스(cataphract·사진)로 불린 중장기병을 비잔티움제국 육군의 새로운 주력으로 삼고 외적 침공에 대비했다. 당시 그의 판단과 행동은 적지 않은 반대에 부딪쳤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만든 중장기병 카타프락토스는 비잔티움제국 수호의 일익으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중세기사의 원형이 됐다.

서기 520년 벨리사리우스는 활과 창·장검과 베르툼으로 무장한 최초의 중장기병 부대를 훈련시키기 시작했고 이들은 마상에서 모든 무기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궁술은 훈족의 것을, 마상 창술은 고트족의 것으로 모방했으며 전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받아들였다.

카타프락토스는 창기병으로 보이지만 그들이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은 궁술이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어떤 무기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최강의 고트족 중장기병과 싸워 이겨야 하는 만큼 이들의 무장과 훈련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당대 최강의 중장기병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카타프락토스의 가장 큰 특징은 넓고 안락한 안장과 등자다. 벨리사리우스는 기병들이 안장에 앉아 두 손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등자로 몸을 지탱하며 두 무릎으로 말을 몰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목에서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긴 사슬갑옷을 걸쳤고 왼팔에는 끈이 달려 있는 중간 크기의 원형 방패를 끼우고 다녔다.

가죽 장화 위에 다시 쇠로 된 전투화를 신었고 투구는 단순한 것이었으나 가벼우면서도 튼튼했다. 손과 손목은 건틀릿(gauntlet)으로 불린 금속 장갑으로 보호했다.그들의 기마 역시 강력한 마갑을 갖췄다. 지휘관과 장교, 전열의 말은 강철 가슴 띠와 마갑으로 머리와 목·가슴을 보호했고 모든 말들은 무거운 마갑을 착용한 상태에서도 복잡한 전술기동이 가능토록 충분히 단련됐다.

모든 장교가 하급병사를 거느렸으며 지휘관이 아니라도 중장기병 4∼5명마다 하급병사가 배치돼 이들이 오직 전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부대에 따라 갑옷 위에 입는 겉옷, 창기병의 창끝에 다는 깃발, 투구의 술 등 군장에 독특한 색깔이나 문양을 넣어 소속을 표시했고 이러한 전통은 중세 기사에 그대로 세습됐다

역사속 신무기<46>샴쉬르

이슬람을 상징하는 대표적 도검
2007. 12. 10   00:00 입력 | 2013. 01. 05   03:27 수정

우리가 흔히 아라비안나이트(The Arabian Nights’ Entertainment)라고 알고 있는 천일야화(Alf laylah wa laylah)는 아랍어로 기술된 세계 최대 최고의 설화 문학 작품이다.

주요 이야기만 180편에 이르며 이외에도 108여 편의 단편이 있고 그 방대한 작품은 책뿐만 아니라 영화·드라마·만화 등 다양한 문학작품의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 프랑스의 A. 갈랑은 1703년 프랑스어판을 출판하면서 원작에는 없던 ‘알라딘과 이상한 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등의 이야기를 임으로 삽입하기도 했다.

아라비안나이트가 이슬람을 상징하는 대표적 문학작품이라면 이슬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확한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어도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초승달처럼 완만하게 휘어진 검신과 그 반대 방향으로 구부러진 손잡이가 특징인 검을 손꼽을 것이다. 독특한 외형 덕분에 이슬람세계를 묘사한 수많은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칼의 이름이 바로 샴쉬르(shamshir·사진)다.

페르시아어로 ‘사자의 꼬리’를 뜻하며 페르시아의 대표적인 검이자 이슬람권에서는 현재도 절대왕권 또는 신념이나 순교를 뜻하는 이슬람교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그 외형에서도 알 수 있듯 샴쉬르는 베기 용으로 특화된 검이며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일격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을 지니고 있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여느 검들과 달리 칼날이 완만하게 휘어져 정확히 베지 않더라도 단지 스치는 것으로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반면 찌르기 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검에 큰 충격이 가해지더라도 그 충격을 분산해 흘려버릴 수 있기 때문에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전투 중 실수로 검을 놓치거나 검이 부러지는 일도 거의 없었다.

독특한 외형으로 인해 길이 80∼90㎝, 무게 1.5∼2㎏ 내외의 것이 가장 많이 사용됐고 너무 길어지면 오히려 사용이 불편했기 때문에 1m가 넘는 것은 전투용이 아닌 의전용으로 사용됐다.샴쉬르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기병의 탄생과 마상검술의 발전 과정에서 검신이 점점 휘어졌다는 설과 9세기께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을 통해 페르시아에 전래됐다는 설이다.

이 외에도 그 기원에 대한 여러 가설이 존재하지만 현재는 유목민들을 통해 아시아에서 페르시아로, 페르시아에서 다시 이슬람과 서양 세계로 전해졌다는 설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페르시아에는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별동대나 근위대를 중심으로 10세기 초부터 사용되기 시작했고 13세기께에는 주변국에도 널리 보급돼 이슬람의 가장 대표적인 검으로 자리 잡았다.

기병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 양상의 변화와 십자군전쟁으로 인해 샴쉬르는 서양 세계 각국으로 전파됐고 이후 기병도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역에 따라 샴쉬르는 라틴어의 시미테라, 프랑스어의 시메테레, 영어의 시미터, 아랍어의 사이프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