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역사속 신무기<39>‘ 색스 ’

구름위 2017. 1. 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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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신무기<39>‘ 색스 ’

고대 게르만계 색슨족 고유 단검
2007. 10. 22   00:00 입력 | 2013. 01. 05   03:20 수정


그 이름을 논함에 있어 발음에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색스(seax·사진)는 게르만 민족의 일파인 색슨족 고유의 단검이다. 해드액스·색스·씨액스·스크라마액스, 또는 스크램액스 등 여러 가지 알려져 있으며 흔히 게르만식 단검이라고 부른다.

색스는 크기가 큰 전투용 나이프로 예리한 한쪽 날을 갖고 있으며 일직선 칼등과 매우 예리한 날 끝이 특징이다. 손잡이 부분은 칼등 쪽에 달려 있으며 날이 있는 방향으로 구부러져 있는 것이 일반적 형태다.

색스의 원형은 청동기시대에서 할슈타트 문명(기원전 900∼500)에 걸쳐 출현한 것으로 보며 라텐문명(기원전 500∼)에 이르러 철의 등장과 더불어 색슨족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됐다. 그 증거로 다양한 연대에 걸쳐 게르만족 여러 부족 전사의 무덤에서 부장품으로 색스가 출토되고 있다.

색스는 일반적으로 길이로 종류를 구분하며 7.5㎝ 길이의 포켓 나이프에서 30∼40㎝의 단검, 85∼100㎝의 도검까지 다양한 길이와 형태가 존재한다. 길이가 긴 종류의 랑색스(langseax)는 색슨족 전사들의 무기였고 반대로 짧은 길이의 해드액스와 중간 길이의 세액스는 일상도구 및 호신용 무기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크림액스는 최초의 식탁용 칼로 불리기도 하는데 스크램은 음식이라는 뜻이므로 스크램액스는 ‘음식 먹는 칼’로 해석할 수 있다.다만 처음부터 식탁용 칼로 사용된 것은 아니며 전투용 단도가 점점 작아져 변형된 것으로 본다. 스크래머색스에 대한 기록은 6세기 프랑스 중서부 도시 투르에서 활동했던 저명한 역사 저술가 그레고리우스가 집필한 저서 ‘프랑크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중세를 거치면서 점점 작아진 색스가 현대 헌팅 나이프와 포켓 나이프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프랑크족의 이름이 프란세스카라는 무기 이름으로부터 비롯됐듯 색슨족 이름 또한 이들이 쓰던 세액스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의 미들색스와 에색스 지방에서 색스는 영구적 상징을 나타내는데 이는 이들 지방의 문장(紋章)에 나타나는 3개의 색스 문양에서 잘 나타난다.한편 색스는 단순한 도구 이상의 의미와 함께 자신의 신분을 표시하는 신분증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로마시대부터 중세 봉건사회까지 지배계급과 자유민들만 무장할 수 있었으므로 색스를 지니는 것은 곧 이것을 지닌 이가 자유민임을 나타내는 표식으로 인식됐다. 색슨족 전사들은 혁대 앞쪽에 평행으로 된 칼집에 색스를 넣어 착용했으며 색슨족 고유무기로 서기 804년 프랑크 국왕 샤를마뉴에 의해 완전히 병합된 이후에도 그 명맥을 유지했다.

하지만 중세 기사도의 도래와 함께 대형 색스는 점차 그 모습을 감췄고 소형 색스는 장검 및 투창과 한 쌍을 이루며 기사의 야전 장비로 사용됐다. 이후 점차 크기와 용도가 축소돼 일상생활 및 가정용 도구로 변화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주머니칼(Pocket Knife)이나 레저용 헌팅 나이프(Hunting Knife) 등에서 색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역사속 신무기<40>바이킹 검

8~11세기 서유럽에서 널리 사용
2007. 10. 29   00:00 입력 | 2013. 01. 05   03:21 수정

바이킹은 모든 침략자들이 그러하듯 북쪽에서 남하하며 서유럽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주로 바다를 통해 침공한 바이킹은 닥치는 대로 죽이고 훔치고 불태우며 유럽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바이킹은 단순한 약탈자들이 아니었으며 언제나 신중하고 영리하게 행동했다. 바이킹의 주무기는 무시무시한 크기의 양날 도끼였고 활 역시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무기였다. 그러나 양날 도끼는 상대방에게 위압감과 공포를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무기이며 활은 기습공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한 무기다.

실제 정규군과의 전투가 벌어지면 바이킹은 일렬로 정렬해 방패와 방패를 조밀하게 맞대고 방어진을 만든 다음 바이킹 검(Viking sword·사진)을 들고 싸웠다.바이킹 검은 8세기에서 11세기까지 서유럽에서 바이킹이 사용했던 검이다. 길이는 60∼80㎝며 무게는 1.2∼1.5㎏ 정도로 로마군이 사용했던 스파타(spatha)와 사용법·외형 등에서 거의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바이킹 검의 기원을 스파타로 보기도 한다. 손잡이 끝에 무게 추 역할을 하는 폼멜이 부착돼 있고 방패를 사용한 밀집대형에서 적과의 근접전이 벌어졌을 때 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적화돼 있다.그러나 바이킹 검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진짜 이유는 서양 중세 암흑기에 단접(forge welding) 방식으로 만들어진 가장 대표적인 검이기 때문이다.

단접이란 서로 다른 2개의 금속재료를 용융점(鎔融占) 부근까지 가열해 가압접합(加壓接合)하는 가공법으로 서양 중세 암흑기에 북유럽에서 유행한 철제무기 제작법이다. 단접은 똑같은 작업을 최소 수백 회에서 최고 수천 회 반복해야 하는 단순하면서도 끈기를 요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장인의 실력에 따라 완성된 무기의 성능도 큰 차이를 보였다.

망치로 두드려 만들었기 때문에 해머단접이라고도 하며 이 기법으로 완성된 무기는 표면이 마치 대리석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바이킹 검은 중세 암흑기에 북유럽을 중심으로 널리 사용됐으며 주로 베는 목적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폭이 넓고 두껍게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담금질을 통해 검의 강도를 높였기 때문에 전투 중 강한 충격을 받더라도 부러지지 않고 휘어져 버렸다.

바이킹들은 이 검을 신비하고 마력을 지닌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검 자체를 의인화했으며 검 표면을 뱀의 비늘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종종 독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11세기 이후에는 검의 길이가 더욱 길어져 1m가 넘는 바이킹 검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이 장검들은 버서커(berserker)로 불린 바이킹 전사들이 사용했다.

특별히 선발된 이들 바이킹 전사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본대와는 별도로 각자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적의 전열을 뚫고 들어가거나 지휘관을 척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바이킹 검과 양날 도끼로 무장한 이들은 무적이었다. 이들의 활약으로 바이킹 검은 직·간접적으로 북유럽 세계 검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으며 수많은 전설과 신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