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 1973

[스크랩] 조선인 포로가 조선으로 귀국 안 하는 이유는?

임진왜란 후 포로로 잡혀간 피로인(被擄人) 쇄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했다. 선조 36년(1603년) 일본을 장악한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는 조선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이었으므로 포로 쇄환에 부정적이지 않았다. 선조 40년(1607) 여우길(呂祐吉)과 경섬(慶暹) 등을 일본에 회답사(回答使)로 ..

[스크랩] 명나라의 순장(殉葬)제도에 희생된 2명의 조선여인

명나라에 선발된 후비(后妃)들은 대부분 적막한 고초를 겪어야 했을 뿐아니라, 더욱 잔혹한 현실 즉 순장에 직면해야 했다. 황제가 붕어하면, 황궁안은 통곡소리로 가득하다. 그녀들은 죽은 황제를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죽은 황제를 위하여 순장될까봐 두려워서 우는 것이..

[스크랩] 정조대왕 화성능행도(華城陵幸圖), 수원능행도(水原陵幸圖))

조선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수원에 가서 어머니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의 회갑연 행사를 치뤘는데 그 행차와 잔치 모습을 그린 화성능행도(華城陵幸圖, 수원능행도(水原陵幸圖)) 를 소개해 드립니다. 배를 이어서 다리를 만들어 한강을..

[스크랩]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그리고 대원군의 정치체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그리고 대원군의 정치체계 병인, 신미양요는 사실 대원군 집권기에 일어난 일이고 그로인해 오히려 대원군은 집권기반을 더 튼튼히 하였다. 그렇기에 삼군부는 대원군의 개혁 때 다루어야 했지만, 후술하겠지만 병인양요 이후 완전 설치되었고 또 신미양요를 겪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