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군주 - 고종① 대원위 분부 시대 무관의 제왕’ 흥선군 권문세가와 전면전 대원군 초상. 대원군은 극적으로 집권했지만 그 앞에는 과거와 전혀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863년 12월 8일. 재위 14년의 철종이 사망했다. 5남6녀를 두었으나 금릉위 박영효에게 시집간 4녀 영혜(永惠)옹주를 제외하고는 어려서 모두 죽어 .. 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2013.06.19
개국군주 망국군주 - 태조④ 역성혁명 베갯머리 송사로 정한 후계자, 피바람을 예고하다 남은(南誾)과 조인옥(趙仁沃) 등이 위화도 회군을 건의했을 때 이성계 추대는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태조실록은 남은 등이 돌아와 “전하(殿下:이방원)에게 알리니, ‘이것은 대사(大事)이니 경솔히 말할 수 없다’”라고 처음에는 이방.. 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2013.06.19
개국군주 망국군주 - 태조③ 과전법 실시 귀족의 땅을 백성에게 개국의 씨앗을 뿌리다 이성계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계기는 위화도 회군이다. 우왕 14년(1388) 3월 명나라가 고려와의 접경지역에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해 갈등이 발생했다. 그간 국사교과서는 철령위를 함경도 원산만이라고 설명해 왔지만 최근 중국 사서(史書).. 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2013.06.19
개국군주 망국군주 - 태조② 天命 전쟁영웅에게 쏠린 민심, 개국의 원동력이 되다 <1> 황산대첩비 전북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에 있다. 이성계는 운봉전투로 남방 사람들에게도 무명을 떨쳤다. 일제는 반(反)시국적인 고적(古蹟)을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이 비를 깨뜨렸다. 지금 서있는 비석은 1957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2013.06.19
개국군주 망국군주 - 태조① 건국의 뿌리 21세 ‘격구 천재’ 이성계, 고려 조정에 얼굴을 알리다 1.준경묘(濬慶墓).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있다. 목조 이안사의 부친 이양무의 묘인데, 이안사는 전주를 떠나 삼척으로 이주한 후 사망해 이곳에 묻혔다. 2.덕안릉. 함경도 영광군 풍상리에 있는 목조 이안사의 무덤이다. 18.. 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2013.06.19
성공한 국왕들 - 정조10 정조 독살 의혹 임금을 묻은 다음 날, 노론은 역사를 되돌리기 시작했다 최근 정조가 노론 벽파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이 공개되면서 일부 학자는 ‘심환지와 노론 벽파는 정조의 죽음과 관련이 없다’ ‘정조 독살설은 시골에서나 떠돌던 야담’이라고 주장했다. 정조는 재위 24년(1800) 6월 28일 사망하는.. 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2013.06.19
성공한 국왕들 - 정조⑨ 화성의 탄생 민심이 원한 건 변화 … 신도시발 농업·상업 혁명 시동 정조가 수원 화성이란 신도시를 건설하기로 한 것은 정치적 결정이었다. 사도세자 묘소인 현륭원의 배후도시란 사실 자체가 정치적 의미일 수밖에 없었다. 노론을 비롯한 반대파들은 화성에 대해 자신들이 장악한 한양에 맞서는 .. 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2013.06.19
성공한 국왕들 - 정조⑧ 민심 확보책 임금의 ‘서민 프렌들리’ … 숨죽인 신도시 반대 여론 정조가 화성 신도시를 착공한 재위 18년(1794)은 사도세자가 살아 있었다면 환갑을 맞는 해였다. 또한 태조 이성계가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한 지 400년 되는 해이기도 했다. 정조는 늦어도 사도세자가 칠순을 맞는 갑자년(1804)에 완.. 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2013.06.19
성공한 국왕들 - 정조⑦ 수원 용복면 현륭원 음지의 사도세자 양지로 … 정조의 조선 개조 시작되다 정조의 숙원사업은 사도세자 묘 이장이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양주 배봉산 갑좌(甲坐) 언덕에 묻고 수은묘(垂恩墓)라고 불렀다. 제왕(帝王)과 후비(后妃)의 무덤이 릉(陵), 왕세자나 세자빈 또는 왕비가 아니었던 국왕의 사친(私親.. 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2013.06.19
성공한 국왕들 - 정조⑥ 왕대비의 반격 왕의 동생 제거하라” 오빠 잃은 정순왕후 정조에 복수 칼 겨눠 정조 즉위 후 노론이 사실상의 임금으로 여긴 인물은 왕대비 정순왕후였다. 정조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노론은 인목대비 유폐를 명분으로 광해군을 내쫓은 서인의 적자였다. 정조는 일곱 살밖에 .. 역사 ,세계사/우리 역사 이야기 2013.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