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무기 이야기

소련 여군 저격수들

구름위 2017. 1. 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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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여군 저격수들

여성 특유 섬세한 감각으로 뛰어난 활약
2008. 05. 27   00:00 입력 | 2013. 01. 05   03:50 수정


제2차 세계대전 시 동부전선에서 전투를 치른 소련의 스나이퍼들은 전장의 킬러로서 당당하게 평가를 받았다. 그들은 독일군의 전의를 꺾고 최전선에서 적의 지휘관과 참모는 물론 포병과 공용화기사수, 무전병, 운전병, 헌병 등 주요 표적을 골라 무차별하게 쓰러뜨렸다.

소련군의 대추격전에서 최고의 스나이퍼들이 그 살인의 기록을 크게 갱신했다. 시도렌코(I. Sidorenko)가 500여 명을 사살했고, 야코플비치(N.Yakovlevich) 496명, 쿨베르티노프(Kulbertinov) 486명 등 많은 저격수가 독일군에게 복수했다. 실제 이들의 전과는 자이체프의 명성을 능가하는 끔찍한 기록이었다.

과거 나폴레옹 군대를 곤경에 빠뜨린 러시아 코사크족의 명예와 용맹성이 저격술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국토를 불태워 버린 적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전장에 투입돼 훌륭한 전사로 싸웠다. 소련군은 특히 산악지방에서 동원된 여성들을 훈련시켜 여군 저격부대를 편성, 전장에 투입했다.

이들은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저격전을 벌이고 수많은 독일군을 사살했다. 여군 저격부대장이면서 독일군 300여 명을 사살한 로사 사니나는 “조국을 피로 물들게 한 원수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전쟁 동안 그들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됐다. 독일군의 폭격과 추위, 배고픔, 지옥을 방불케 하는 가혹한 전쟁터에 여성들이 내몰렸기 때문이다.

또 독일군 저격수들의 이른바 ‘소련군 사냥’도 만만치 않았다. 전쟁에 참여한 2000여 명의 소련 여군 스나이퍼 중에서 후일 살아남은 자는 겨우 500여 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전투는 여성들에게 참혹했다. 소련군의 최전선에 투입돼 저격전을 벌이고 다행히 생존한 여군 스나이퍼 칼루지나(Kalugina)는 독일군과 싸운 저격전의 실상과 그 지옥과 같았던 전장의 모습을 회상했다.

“살인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참호 위에서는 포탄이 터지고 죽어가는 병사들과 화약냄새만 온종일 진동했다. 그날 나는 친구 타냐·마르샤와 같이 전선을 지켜보기만 했다. 너무 무섭고 힘들어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동무들은 전과를 올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복귀해 그들의 자랑스러운 경험담을 들었다.

마르샤와 나는 밤새 자아 비판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겁쟁이! 겁쟁이! 겁쟁이! 왜 우리가 전선에 온 거야? 독일놈들에게 복수를 하자!’우리는 너무 부끄러웠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며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다. 다음날 우리는 다행히 독일군 한 명씩을 쏘았다. 이제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끔찍한 대가가 곧 뒤따랐다.

마르샤와 내가 교대하고 위치를 바꾸기 위해 몸을 살짝 일으키는 순간이었다.‘퍽!’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총소리와 함께 마르샤가 쓰러졌다. 피투성이가 된 채…. 나는 마르샤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이때 장교들이 달려와 소리쳤다.“조용히 하라! 독일놈들이 박격포를 쏜다! 우리는 그곳에 마르샤를 묻고 돌아왔다.”

독일군과의 저격전에서 명성을 날린 전설적인 소련 여군 스나이퍼들은 전쟁사에 공포의 살인 기록을 남겨 놓았다. 루드밀라 파블리첸코(Lyudmila Pavlichenko)가 309명을 사살했고, 저격부대장인 니나 알렉세이 로코프스카야(Nina Alexe Lobkovskaya)가 308명을 사살했다. 그 외에 나탈리 마리아, 로사 예고로브나 사니나 등 많은 여성 저격수가 활약했다.

소련 최고의 여군 저격수 루드밀라 파블리첸코는 미모의 키에프 주립대학 대학생이었다. 그녀는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 입대해 소련군 제25보병 사단의 저격수가 됐다. 학생시절 사격선수였던 그녀는 오데사 지역에서 두 달 반 동안 187명을 사살했고, 1년 후 세바스토플 전투에서 박격포탄으로 부상당하기 전까지 10개월 동안 독일군 309명을 사살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수립했다.

그가 부상당하자 소련 군당국은 영웅적인 여성 스나이퍼를 구조하기 위해 흑해의 잠수함까지 동원해 후송시키는 데 성공했다. 루드밀라는 소련군의 사기를 올려주는 최고의 상징적 인물이면서 병사들의 우상이었다. 루드밀라는 부상이 완쾌되자마자 소련 시민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백악관을 방문했다.

만일 그녀가 부상당하지 않고 종전시까지 작전했다면 최소한 500~1000명의 독일군을 사살했을 것으로 추정됐다.최고의 살인 기록을 수립한 그녀는 1974년 10월 58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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