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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의 저격전

구름위 2017. 1. 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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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의 저격전

소련군 스나이퍼 투입 독일군에 강력 저항
2008. 05. 13   00:00 입력 | 2013. 01. 05   03:48 수정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의 붉은군대는 무기력한 전투에서 저격전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인식하고 많은 스나이퍼를 다양한 방법으로 운용했다.소련의 스탈린그라드를 둘러싼 거대한 전쟁은 최고 가치의 저격전으로 명승부를 기록했다. 볼가 강의 스탈린그라드 시 확보를 둘러싼 도시지역 전투에서 쌍방의 저격수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1942년 9월 독일의 제6기갑군과 4기갑군은 우크라이나의 광대한 평원으로 진격, 소련군을 포위해 스탈린그라드로 몰아붙였다. 독일군의 계속된 포격으로 모든 시가지가 불타서 붕괴되고, 저격수들에게 적합한 시멘트와 돌무더기 지형으로 변해 버렸다.

궁지에 몰린 소련군 부대에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라는 스탈린의 엄명이 떨어졌고, 적개심에 불타는 소련군 스나이퍼들이 시가지 전투에 투입됐다. 그들은 며칠씩 잠복작전에 들어가 시가지에서 고립된 상태로 활동했다. 적의 총구 앞에 노출된 지역으로 잠입한 저격수들은 온종일 부동상태를 유지하고 진지 이동은 오직 밤에만 가능했다.

소련군 스나이퍼들은 굶주린 늑대처럼 이를 갈았다. 소련의 상징인 스탈린그라드 시를 잿더미로 만든 독일군 원수들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영하 30~40도의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 저격수들은 먼저 살인적인 추위와 싸워야 했다. 고립된 진지에서 굶주림과 갈증, 그리고 공포와 싸우며 지루함을 견뎌야 했다.

소련의 일급 스나이퍼들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유례없는 명성을 날렸다.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유명한 저격수는 우랄산맥의 사냥꾼 출신 바실리 자이체프(Vasili Zaitsev) 중사였다. 그는 스탈린그라드의 제284 소총사단 1074연대의 저격수로 임무를 수행했다. 8월~10월 말까지 그는 200명 이상의 독일군을 죽였고, 부상으로 후송될 때까지 총 400여 명의 독일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일명 ‘토끼’라는 별명을 가진 자이체프는 스탈린그라드에서 하루 평균 30~40명의 독일군을 사살했다.자이체프는 자르(Lazur) 화학공장의 넓은 부지에 임시로 자신의 저격수 훈련소를 세웠다. 훈련은 기초적인 것이었지만 저격수의 생존율을 크게 향상시켰고, 독일군 살상 수를 높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단 2일 동안의 훈련과정이 끝나면 수료생들은 즉시 전선으로 투입됐다.

붉은군대의 저격수들은 독일 제6군사령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모든 병사가 소련군 망원 조준경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느끼자 사기가 떨어졌고 공격 결정력을 잃었다.독일군은 생포된 소련의 신문기자에게서 자이체프의 명성을 들었다. 그는 독일군의 주요 표적이 됐다. 소련군 저격수의 기를 꺾어 놓기 위해서는 자이체프를 반드시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됐다.

사실상 독일군의 위협이 되는 소련군 저격수는 자이체프 외에도 많았다.이 무렵 독일 베를린 근처 작센의 스나이퍼 훈련소장인 쾨니히 소령이 스탈린그라드로 특파됐다. 소련군의 판단에 의하면 독일의 유명한 저격수인 그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 하인츠 토르발트 대령으로 위장하고 있고, 그가 자이체프를 제거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라고 믿었다.

자이체프와 그의 동료 저격수들은 쾨니히의 출현으로 살기를 띠기 시작했다. 소련군이 전후 기록에서 밝혔듯이 전선에서는 쾨니히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했으며, 자이체프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모든 저격수들은 독일군 전방 진지에 대한 일일 정찰 보고를 했다. 나는 나치 저격수들의 사격과 위장술, 그들의 스타일까지 알게 됐다. 그러나 쾨니히 훈련소 우두머리의 존재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내가 그를 찾고 있는 것처럼 그도 주의 깊게 나를 관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졌다. 적의 망원조준 소총에 의해 동료인 모로쵸프가 죽었고 시예킨이 부상했다. 그들은 모두 노련한 저격수며 베테랑들이었다. 이제 분명한 것은 내가 찾던 나치의 ‘슈퍼 저격수’가 드디어 나타났다는 것이다

1942년 10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과 독일군의 최고 저격수들은 상대방을 탐색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소련군 저격팀의 자이체프는 관측수인 쿨리코프와 같이 며칠 동안 교전중인 시가지를 정찰했다. 그는 독일군 저격수의 어떤 흔적이라도 찾아내기 위해 적군의 최전선을 면밀히 살폈다.

어느날 저녁 무렵, 자이체프가 드디어 의심나는 곳을 찾아냈다. 소련군이 계속 저격을 당한 곳이라면 독일군 저격수가 잠복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자이체프가 이를 먼저 눈치챘던 것이다. 자이체프는 침착하게 정확한 위치를 밝혀내기 위해 준비했다. 상대는 아마도 독일 최고의 저격수 쾨니히가 분명했다.

상대를 발견한 것은 자이체프뿐만 아니라 쾨니히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동안 쌍방은 몸을 숨긴 채 숨을 죽이며 망원 조준경을 응시했다.

소련군 자이체프 중사의 발견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공명심에 불타는 한 공산당 정치 지도원이 이를 확인하고자 최전선으로 먼저 나섰다가 참호 위로 올라온 짧은 순간에 한 발의 총알을 맞고 제 무덤을 판 격이 되었다. 독일군 최고의 스나이퍼에게 그 정도는 식은죽 먹기! 쾨니히의 잘 조준된 사격은 그 지도원을 단발에 참호로 쓰러뜨렸다.

그러나 소련 정치 지도원의 피격은 쾨니히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세계 역사상 최고의 명사수 대결! 자이체프는 영화로도 제작된 쾨니히와의 저격전을 이렇게 회고 했다.“오랜 시간 동안 나는 예상되는 적의 위치를 관찰했지만 그가 숨은 정확한 장소를 발견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쏜 총성으로 보아 저격수가 바로 앞 쪽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조준경으로 계속해서 살펴보았다. 왼쪽에는 파괴된 탱크가 한 대 있었고 오른쪽에는 토치카가 있었다. 탱크와 토치카 사이의 평평한 땅 위에는 철판이 놓여 있었고 부서진 벽돌 조각이 약간 쌓여 있었다. 그것들은 언제나 그곳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적의 입장이 되어 깊이 생각했다. 저격수에게 어느 위치가 더 좋을 것인가? 탱크와 토치카? 아니면 철판 밑? 그가 전문가라면 아마 철판 밑에 총안구를 만들었을 것이고 밤에는 그 위로 기어 올라왔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확실히 공간지대의 철판 밑에 있을 것이다! 나는 예감이 확실하다고 믿었다.

나는 진지에서 나무로 만든 인형을 잡고 약간 들어올렸다. 그러자 나치 저격수가 총을 발사했다. 조심스럽게 인형을 제자리에 내려놓고 탄도구멍을 검사했다. 탄환은 앞쪽에서 직선으로 발사됐다. 이는 분명 그 저격수가 철판 밑에서 쏘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는 그의 머리 일부분이라도 내 눈에 들어오도록 유인할 기회가 온 것이다. 그를 즉시 해치우려고 시도하는 것은 헛된 일이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통상 독일군의 기질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 저격수는 아마 그가 만든 좋은 진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저격진지를 다시 바꿔야만 했다. 우리는 야음을 틈타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위치를 잡았다.

해가 떠올랐다. 쿨리코프(Kulikov)가 공포탄을 쏘았다. 우리는 저격수의 호기심을 끌어야만 했던 것이다. 아침에는 망원 조준경에 비친 햇빛으로 우리 위치가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에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소총 위로 그늘이 드리워졌고, 태양은 독일군의 진지를 비추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철판의 모서리에서 무엇인가 반짝거렸다. 이상한 유리 조각이나 망원 조준경인가?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쿨리코프는 가장 노련한 저격수만이 할 수 있는 유인술로서, 조심스럽게 그의 군모를 들어올렸다. 순간 그 독일군이 총을 쐈다.

“탕! -” 총성과 함께 쿨리코프가 벌떡 일어나며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쿨리코프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 독일에 유학해 쾨니히의 저격학교를 졸업했고 이러한 기만전술을 그곳에서 배웠다. 그 독일군 저격수는 4일 동안 찾아 헤맨 나를 마침내 잡았다고 믿었고 철판 바로 밑에서 머리를 반쯤 들어올렸다. 그것이 바로 내가 기대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모신 나강을 겨냥하면서 숨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와 함께 독일군의 머리가 뒤로 떨어지는 모습이 조준경 속으로 보였고 그의 소총 망원 조준경은 움직임 없이 태양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 붉은 군대의 영웅 자이체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 최고의 SS 저격수 쾨니히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소련군에게 대단한 선전감이 됐다. 그러나 독일 측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부정했다.

최고 저격수 쾨니히나 토르발트의 존재조차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전쟁사의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하지만 이 전투에서 자이체프가 사용한 공포의 모신 나강 소총은 유명세가 따랐다. 전장에서는 더 많은 ‘파시스트’들이 사살됐고, 자이체프의 총은 오늘날까지 스탈린그라드의 전승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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