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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트 오브 더 씨’를 보고] 고래 잠수 능력의 비밀은…

구름위 2016. 1. 2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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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하고 본 영화(또는 읽은 책)에 실망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가끔은 그 반대일 때도 있다. 영화 ‘하트 오브 더 씨(In the Heart of the Sea)’가 그런 경우로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영감을 준 실화라고 해서 봤는데 꽤 흥미로웠다.

 

향유고래를 사냥하는 영화의 한 장면. 고래사냥은 불과 8미터 길이의 작은 보트 두 세척으로 고래를 잡는 위험한 작업이다.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제공

 

실화란 1820년 11월 20일 태평양 한 가운데서 포경선 에식스호가 커다란 향유고래에 받혀 침몰한 사건이다. 향유고래는 머리가 정말 커다란 이빨고래로 몸길이 20미터 몸무게 50톤 내외의 거구다. 고래사냥을 하다 졸지에 모선을 잃은 선원 스무 명은 고래사냥 보트 세 대에 나눠 타고 남미를 향해 표류를 시작한다.

 

 

물과 식량(건빵)이 떨어져가던 한 달 만에 기적적으로 섬을 발견하고 상륙했지만 무인도에 먹을 것도 마땅치 않아 다시 떠나기로 한다. 이때 선원 세 명은 섬에 남기로 해 열일곱 명이 보트 세 대에 나눠 타고 떠났다. 오랜 표류 끝에 에식스호 침몰 89일 만에 한 척(세 명)이 구조됐고 94일 만에 다른 한 척(두 명)이 구조됐다. 그 뒤 섬에 남아있던 세 사람도 구조돼 모두 여덟 명만이 살아남았다. 표류 중에 모두 열두 명이 죽었는데 초기 몇 명을 빼고 나머지는 다 동료들의 밥이 됐다.

 

 

영화는 사건이 나고 5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에식스호의 마지막 생존자인 토머스 니커슨이 자신을 찾아온 멜빌의 집요한 요청에 못 이겨 밤새 당시 체험을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니커슨은 배가 출항하던 1819년 불과 열네 살로 선원 스물한 명 가운데 가장 어렸다.

 

 

영화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많았는데 특히 앞부분의 고래사냥 장면이 대단했다. 1819년 8월 12일 당시 미국 포경산업의 메카였던 동부 연안의 섬 낸터킷의 항구를 출항한 에식스호는 대서양을 내려오는 두 달이 넘게 고래를 구경하지 못해 초조해하다가 마침내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향유고래 무리를 발견한다.

 

 

참고로 당시 고래잡이는 고래고기가 아니라 고래기름을 얻는 게 목적이었다. 포경선에는 고래기름을 짜는 설비가 설치돼 있어서 항해는 기름통을 다 채울 때까지 계속된다. 빠르면 1년이지만 운이 없으면 3~4년에도 다 못 채운다.

 

 

포경선이 고래 무리에 접근한 뒤 고래잡이 보트 세 대를 내리고 각각에 여섯 명씩 올라탔다. 선장 조지 폴라드 2세(벤자민 워커)와 일등항해사 오언 체이스(크리스 헴스워스), 이등항해사 매슈 조이(킬리언 머피)가 각각 보트를 지휘하며 고래를 향해 돌진했다.

 

 

보트가 고래 한 마리에 다가간 순간 누군가가 작살을 던졌고 정통으로 맞혔다. 놀란 고래는 잠수를 시작해 끝없이 밑으로 내려갔다. 작살 뒤에 묶은 줄이 딸려가면서 연의 얼레에서처럼 감아놓은 수백 미터 길이의 줄이 엄청난 속도로 풀리면서 바닥을 드러내기 일보 직전이 됐다.

 

 

선원 하나가 도끼를 들고 줄을 끊을 채비를 하자(안 그러면 배가 딸려 들어가므로) 체이스가 제지한 뒤 재빨리 줄을 옆의 보트로 넘겨 그곳의 줄에 묶으라고 명령한다. 이제 추가로 수백 미터가 확보됐지만 줄은 계속 풀리고 결국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수십 미터를 남겨놓고 안 되겠다 싶어 도끼를 들어 내리치려는 순간 줄이 더 이상 풀리지 않는다. 고래가 더 참지를 못하고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에 뜬 지친 고래는 창에 수차례 찔리고 결국 숨구멍에서 피의 분수를 토하며 죽는다.

 

진화계통도 상으로 본 포유류 미오글로빈의 표면전하. 해양 포유류 미오글로빈의 표면전하값이 큼을 알 수 있다. - 사이언스 제공

 

●근육에 미오글로빈 고농도로 존재

 

 

영화에서처럼 실제 향유고래는 수심 1km보다도 깊이 잠수할 수 있다고 한다. 주로 먹이를 찾아 내려가는데 그러다보니 한 시간 넘게 물속에서 버티기도 한다. 1분 잠수도 못 견디는 필자로서는 경이로운 능력이다. 이처럼 고래와 물개 같은 포유류뿐 아니라 펭귄 같은 조류 역시 대단한 잠수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도대체 이 친구들은 어떻게 이런 능력을 갖게 됐을까.

 

 

이들 포유류와 조류의 조상은 바다로 돌아가거나 바다를 사냥터로 삼게 되면서 그에 맞게 적응(진화)했다. 즉 몸이 물속 생활에 적합하게 유선형으로 바뀌고 포유류의 경우 사지가, 펭귄의 경우 날개가 지느러미 형태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물고기 아가미에 해당하는 기관을 만들지는 못했기 때문에 물에 녹아 있는 산소를 이용하지는 못했다. 결국 숨을 참는 시간을 늘리는 쪽으로 진화하게 됐다.

최대잠수시간(분, 세로축)과 몸무게(kg, 가로축), 근육의 미오글로빈 농도(빨간 점선)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 고래의 조상인 육상 포유류 파키세투스는 덩치도 작고 미오글로빈 농도도 낮아 최대잠수시간이 짧은 반면 바다로 돌아와 어느 정도 적응한 바실로사우루스의 경우 덩치도 커지고 미오글로빈 농도도 높아져 최대잠수시간이 꽤 길어졌다. 향유고래는 더 커지고 농도도 더 높아져 물속에서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 사이언스 제공

 

 

먼저 덩치(몸무게)를 키웠다. 덩치가 클수록 대사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단위 무게 당 산소소모량이 적다. 반편 산소 충전 능력, 즉 산소를 머금는 폐와 혈액, 근육의 부피는 몸무게와 비례한다. 고래가 괜히 커진 게 아니다. 그러나 이 전략만으로는 잠수 시간을 몇 배 늘리는 정도다. 좀 더 중요한 전략은 미오글로빈의 농도를 높이는 것이다.

 

 

미오글로빈(myoglobin)은 근육에 존재하는 단백질로 산소분자를 저장했다가 세포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의 근유에도 물론 미오글로빈이 있다. 그런데 이들 해양 포유류나 조류의 근육에는 육상 동물보다 미오글로빈이 수십 배 더 들어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돼지는 근육 1그램당 2~4mg인데 비해 향유고래는 70mg에 이른다. 고래 살코기가 적자색인 이유다. 그 결과 산소를 많이 저장할 수 있어서 상당 시간 숨을 쉬지 않아도 활동할 수 있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해양포유류 또는 조류는 육상동물보다 산소충전용량이 수십 배 더 큰 셈이다.

향유고래의 미오글로빈 구조. 1958년 단백질로는 최초로 구조가 밝혀졌다. - 위키피디아 제공

 

 

2013년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이 잠수부들이 고농도의 미오글로빈을 지니게 된 비결을 밝힌 논문이 실렸다. 즉 이런 동물들은 근육 1그램당 최대 100밀리그램까지 미오글로빈을 함유하고 있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근육세포가 이렇게 미오글로빈을 많이 만들 경우 단백질이 서로 엉켜 붙어 침전되면서 큰 일이 난다. 즉 육상 포유류와 해양 포유류는 미오글로빈의 구조가 다르다는 말이다.

 

 

영국 리버풀대 마이클 베렌브릭 교수팀은 포유류 130종의 미오글로빈 아미노산 서열을 바탕으로 미오글로빈 단백질의 구조를 추정한 결과 잠수력이 뛰어난 동물일수록 단백질의 표면 전하값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돼지나 사람의 경우 미오글로빈의 표면 전하가 +1이 채 안 되는 반면 고래나 물개류는 +4가 넘는다는 것.

 

 

미오글로빈은 아미노산 153개로 이루어진 구형의 작은 단백질이지만 분자의 관점에서는 꽤 덩치가 크다. 따라서 표면 전하가 +1 정도면 농도가 올라갈 경우 서로 달라붙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4 정도가 되면 정전기적으로 서로 밀쳐내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달라붙지 않는다는 것. 그 결과 해양 포유류는 근육세포에 미오글로빈이 고농도로 존재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연구자들은 현생 고래류의 미오글로빈 아미노산 서열을 바탕으로 고래류의 미오글로빈 진화를 재구성했다. 이에 따르면 약 5400만 년 전 육상에서 살았던 고래 조상 파키세투스(Pakicetus)의 미오글로빈 표면전하는 +1.1이었고 농도는 6mg/g이었다. 그런데 3600만 년 전 해양에서 살았던 고래 바실로사우루스(Basilosaurus, 수염고래와 이빨고래의 최근 공통조상)의 미오글로빈 표면전하는 +3.7이었고 농도는 21mg/g이었다.

 

 

한편 파키세투스는 늑대만했던 데 반해 바실로사우루스는 몸무게가 6.5톤에 달했다. 연구자들은 몸무게와 미오글로빈 농도를 바탕으로 최대잠수시간을 추측하는 식을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파키세투스는 1.6분이고 바실로사우루스는 17.4분으로 나온다. 한편 바실로사우루스보다 덩치가 더 크고 미오글로빈 농도도 더 높은 향유고래는 73분 정도다.

 

 

학술지 ‘생물화학저널’ 9월 25일자에는 해양 포유류 근육세포에서 미오글로빈이 고농도로 존재할 수 있게 된 또 다른 요인을 밝힌 논문이 실렸다. 아포글로빈(apoglobin), 즉 산소분자가 달라붙는 부분인 헴(heme)과 결합하지 않은 상태인 미오글로빈의 안정성 역시 주요한 요인이라는 것. 미오글로빈 유전자가 발현되고 번역이 일어나면 먼저 아포글로빈이 만들어지고 여기에 헴이 붙어 기능을 하는 미오글로빈이 된다.

 

 

그런데 육상 포유류의 경우 아포글로빈이 많아지면 미오글로빈이 되기도 전에 입체구조가 풀리면서 서로 달라붙어 침전해버린다는 것. 반면 해양 포유류의 아포글로빈은 구조가 안정해 별 문제 없이 미오글로빈으로 바뀐다. 분석 결과 향유고래의 아포글로빈은 사람의 아포글로빈보다 60배 정도 더 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고래류의 진화과정에서 미오글로빈 아미노산 서열에서 몇 군데가 바뀌면서 안정성에 큰 차이가 생긴 것이다.

 

 

사실 향유고래의 미오글로빈은 과학사에서도 유명한 분자다. 최초로 3차원 구조가 밝혀진 단백질이기 때문이다. 1958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의 존 캔드류 교수팀은 X선 회절법으로 향유고래 미오글로빈의 구조를 밝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 연구로 캔드류는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밝힌 동료 막스 페루츠와 함께 1962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캔드류가 향유고래 미오글로빈을 택한 건 결정을 만들기 위한 단백질을 쉽게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에식스호의 최연소 선원이었던 토머스 니커슨이 말년에 작성한 수기에 직접 그린 그림으로 거대한 향유고래(오른쪽)가 에식스호를 들이받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PS. 에식스호 비극의 진실

 

필자는 ‘조선일보’ 토요일자에 실리는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의 ‘명랑소설(笑說)’이라는 코너를 즐겨 읽는데 지난주 글도 재미있었다. 남 교수는 지난 여름 독일에 갔을 때 영화 ‘국제시장’의 흔적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얘기를 들어보니 영화에서와는 달리 파독 광부 가운데 탄광에 들어간 사람은 일부였다고 한다. 대부분은 탄 분류 작업 등을 했다고. 딴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당시 한국인의 몸이 워낙 왜소해 독일인에 맞춘 채굴장비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파독 간호사들도 시체를 닦는 막일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일부였을 뿐이라며 현지 정착 간호사들이 영화를 보며 약간 불쾌해했다고 한다. 남 교수는 글 말미에서 “독일에 다녀온 뒤 그러리라 짐작하고 단정했던 일들에 대해 한 번씩 다시 생각해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쓰고 있다.

 

 

문득 영화 ‘하트 오브 더 씨’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한 번 확인해보기로 했다. 먼저 멜빌의 취재에 대해 알아봤다. 그런데 멜빌이 니커슨을 만났다는 얘기가 없다. 물론 멜빌이 에식스호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모비딕’을 구상한 건 맞지만 니커슨과의 인터뷰가 아니라 일등항해사 오언 체이스가 구조된 이듬해인 1822년 발표한(실제는 대필 작가가 쓴) 수기 ‘포경선 에식스호의 난파 이야기’를 읽은 게 계기가 됐다.

 

 

좀 당황한 필자는 영화에 대해 알아봤는데 2000년 출간된 동명(In the Heart of the Sea)의 논픽션이 원작이었다. 너새니얼 필브릭이라는 사람이 쓴 책으로 전미도서상까지 수상한 베스트셀러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바다 한가운데서’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왔고 절판됐다가 이번 개봉에 맞춰 재출간됐다.

 

 

책을 사 읽어보니(영화보다 더 재미있었다) 작가가 어떻게 용인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에서는 많은 사실이 왜곡돼 있었다. 소설 ‘모비딕’의 모티브가 된 실화라는 영화의 선전을 그대로 믿고 영화 내용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 ‘바다 한가운데서’를 통해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을 언급한다.

 

 

먼저 가장 어린 선원이었던 토머스 니커슨이 말년에 사건에 대해 언급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찾아온 멜빌에게 구술한 게 아니라 레온 루이스라는 작가의 권유에 따라 수기를 쓰게 된 것. 1876년 초고를 완성한 니커슨은 노트를 루이스에게 보냈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루이스를 이를 출판하지 않았다.

 


그러다 1960년 우연히 노트가 발견됐고 1980년 포경업 전문가인 에두아드 스택폴의 손에 들어간다. 결국 1984년에야 낸터킷역사학회가 출판했지만 대중에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1986년 낸터킷으로 이사한 너새니얼 필브릭은 니커슨의 수기를 알게 되고 에식스호 사건에 흥미를 느껴 오랜 시간 취재를 거쳐 2000년 ‘바다 한가운데서’를 출간한 것이다.

 

 

한편 영화에서는 일등항해사 오언 체이스를 주인공으로 설정하면서 그를 정의로운 영웅으로 만들었다. 반면 선장 조지 폴라드 2세는 열등감을 지닌 속 좁은 사람으로 나오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체이스는 성격이 거칠고 독단적이었고 니커슨의 수기에 따르면 장기간 표류로 열두 명이 죽게 된 것도 어쩌면 체이스 때문이라는 것.

 

 

즉 태평양에서 고래에 받혀 배가 침몰한 뒤 선장은 바람을 타고 남서쪽으로 항해해 남태평양 소시에테 제도로 가자고 했지만 식인종 소문을 두려워한 체이스가 이등항해사 매슈 조이와 함께 우겨서 남미를 목적지로 하게 됐다는 것. 만일 선장의 말을 따랐다면 한두 주일 만에 남태평양 섬 어딘가에 도착했을 것이고 물론 당시에는 이미 식인종이 사라진 뒤였다.

 

 

또 영화에서는 구조된 체이스가 직접 나서 섬에 남아 있던 세 사람을 구조한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구조 뒤 칠레에서 회복하고 있던 체이스는 동료들과 3월 2일 포경선 이글호를 타고 낸터킷으로 향했다. 헨더슨섬에 있던 세 사람을 구조한 건 칠레를 떠나 호주 시드니로 향하던 무역선 서리호였다. 물론 정보를 듣고 들른 것이다.

 

 

사실 스물여덟에 처음 선장이 돼 출항한 폴라드도 선장으로서 자질에 문제가 있었다.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이상적인 유교식 가정처럼 당시 포경선 역시 ‘냉정하고 힘차게 몰아붙이는 선장’과 ‘붙임성 있고 꼼꼼한 항해사’가 한 조를 이루는 게 이상적인 조합이었다. 필브릭은 책에서 “에식스호는 항해사의 본능과 자질을 가진 선장(폴라드)과 선장의 야망과 열정을 가진 항해사(체이스)를 태운 채 출항하여 결국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배를 잃고 그 고생을 했음에도 폴라드는 1821년 11월 21일 포경선 투 브라더스호의 선장이 돼 다시 바다로 나갔다. 이때 조난에서 살아남은 선원 가운데 두 사람도 승선했는데 그중 하나가 니커슨이다. 그러나 1823년 투 브라더스호는 태평양 하와이 인근에서 암초를 만나 좌초했다. 폴라드는 포경선 선장으로 두 번 항해에 나서 두 번 다 배를 잃은 것이다. 바다에서 버림받은 폴라드는 고향 낸터킷에서 야경원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허먼 맬빌이 실제 만난 사람은 니커슨이 아니라 바로 폴라드 선장으로 ‘모비딕’을 출간한 이듬해인 1852년이었다. 그는 훗날 폴라드에 대해 “그 섬사람들에게 그는 하찮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잘난 척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들이었다”고 회상했다.

 

 

한편 영화의 주인공 일등항해사 오언 체이스는 사고 뒤 일등항해사로 한 번 더 포경선을 탄 뒤 스물일곱이던 1825년 포경선 윈슬로호의 선장이 됐고 1840년 은퇴할 때까지 포경선 선장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바로 이해에 열아홉 청년인 허먼 멜빌은 포경선 애큐시넷호를 탔고 태평양의 한 섬에서 다른 포경선 선원들과 어울리다 체이스의 아들 윌리엄 헨리를 만났다. 멜빌은 에식스호에 대해 많은 걸 물었고 체이스의 아들은 아버지의 수기를 빌려주었다. 멜빌은 그때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그 놀라운 이야기를, 그것도 에식스호의 조난 지점과 같은 위도에서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놀라운 영향을 끼쳤다.”

 

 

물론 ‘모비딕’에서 모비딕에게 다리 하나를 잃은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해브의 모델은 폴라드가 아니라 체이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