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 화성 궤도에 진입하던 미국의 ‘화성 기후 궤도선(Mars Climate Orbiter)’이 대기와 마찰로 파괴됐다. 이 탐사선을 제작했던 미국 기업 록히드 마틴은 야드파운드법을 기준으로 제작했는데, 탐사선을 실제로 운용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계기에 표시된 숫자들을 미터법 단위로 이해해 조종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추진력 수치를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탐사선은 화성에서 예정보다 100km 아래인 60km 지점의 낮은 궤도에 진입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지대에서는 과속으로 인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 미국의 속도 단위는 마일(mil)이고 캐나다의 속도 단위는 킬로미터(km)로 다른데, 국경을 넘어서면서 단위 변화를 무심코 과속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단위들. 그런데 국가별로 다르게 사용되는 단위들로 인해 자칫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단위의 통일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중 길이를 재는 단위, 미터(meter)는 현재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미터법이 제정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미터법은 1799년 12월 10일, 프랑스에서 도입됐다. ‘미터’라는 용어의 어원은 ‘잰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인 메트론(metron) 혹은 라틴어 메트룸(metrum)에서 유래됐다. 18세기 말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는 시민 혁명이 한창이었다. 혁명을 이끌어낸 계몽사상가들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척도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실제로 그 당시 프랑스에는 약 800개의 이름으로 25만개나 되는 도량단위가 쓰이고 있었다. 이를 통일하려는 시도는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측정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었고, 여러 측정 장치들이 개발되고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다양한 양들에 대해 정밀한 측정을 시도했다. 과학이 정성적 단계에서 정량적 단계로 발돋움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당시 유럽 과학의 중심지였던 파리 과학아카데미에서 주도했다. 과학아카데미 회원들은 과학사의 잠재력을 국가를 위해 유익하게 쓸 수 있는 예로써 도량형의 개혁을 주장했다. 과학아카데미의 회원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했던 새로운 도량형 체계는 임의적이지 않고 표준 원기(原器)를 잃어버리더라도 쉽게 재생이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단순해서 사용하기 편리하며 합리성, 보편성을 갖춰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10진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프랑스과학아카데미는 최종적으로 ‘북극에서 적도까지 지구 자오선(子午線) 길이(90도)의 1000만분의 1을 새로운 단위 미터로 한다’고 공표했다. 이 결정에 따라 프랑스과학아카데미가 선발한 최고의 천문학자였던 장바티스트조제프 들랑브르(Jean-Baptiste-Joseph Delambre, 1749∼1822)와 피에르프랑수아앙드레 메솅(Pierre-Francois-Andre Mechain, 1744∼1804)은 측량원정을 떠났다. 이들은 정확한 자오선 길이의 측정을 위해 1792년 6월 각각 파리의 북쪽과 남쪽으로 떠난다. 정치적 대변혁기에 이뤄진 그들의 측량원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북극에서 적도까지 정확한 자오선의 길이를 측정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던 천문학자들. 좌측이 들랑브르, 우측이 메솅.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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