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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TAR 그것이 알고 싶다 6~10] 숫자로 보는 핵융합 ,"300초"

구름위 2016. 1. 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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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초. 5분이라는 시간은 대부분 우리 일상에서 짧은 순간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업무 중간에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커피 한 잔을 타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시간. 또는 끓는 물에 라면을 넣고 면이 익길 기다리는 시간 정도이다.

 

하지만 5분이라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는 순간도 있다. 재난사고나 교통사고 등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초기 5분을 ‘골든타임’이라 부른다. 구조를 위해 현장으로 출동하는 긴급차량의 골든타임은 화재의 초기진압과 응급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간으로, 5분이 기적을 만들 수 있는 희망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 플라즈마, 널 알아가는 시간

 

핵융합연구에 있어서도 5분, 300초라는 시간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 KSTAR의 최종 플라즈마 운전 목표는 300초이다. 핵융합에너지의 상용화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플라즈마를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장시간 운전기술이라고 하는데, 왜 KSTAR에서 300초 플라즈마 운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매년 KSTAR 실험 결과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보는 것이 플라즈마 운전시간이다. ‘몇 키로암페어(kA)의 전류 상태에서 몇 초간의 플라즈마를 유지했다’는 실험 결과가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2008년 KSTAR의 첫 번 째 플라즈마 실험 때로 잠시 돌아가 보면, 당시 KSTAR의 운전시간은 249ms(밀리초·1ms는 1000분의 1초)였다. 그야말로 찰나다. 이를 최종 목표인 300초로 늘리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핵융합실험에서 운전시간을 늘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단순히 플라즈마 운전시간 증가라는 목표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장시간 운전을 통해 플라즈마의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 오로라처럼 사라지는 널 잡기 위해

 

핵융합 반응은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에서 일어난다. 고체, 액체, 기체와는 다른 제4의 물질로 불리는 플라즈마는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로 존재한다. 고온고압의 전하를 띄고 있는 플라즈마를 토카막과 같은 인공장치를 사용해 가둔다고 해도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가려 한다. 이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플라즈마를 토카막 안에 얌전히 잡아두기 위해서는 100만분의 1초 단위로 동작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플라즈마의 움직임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플라즈마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밖에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플라즈마가 가둠 장치를 빠져나가려고 할 때 이를 잡아주는 동시에, 플라즈마 상태를 핵융합이 가능한 초고온·초고압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것이 필수다. 그러기 위해서는 플라즈마 움직임의 양상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하고, 그래야 다음 단계인 정상적인 운전기술 확보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된다.

 

● 태양과 다른 방법으로, 태양을 닮고 싶어

 

핵융합로가 모방하려는 태양의 경우 이 같은 플라즈마의 불안정성을 거대한 중력이 제어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의 중력으로는 아주 적은 양의 플라즈마조차도 가둘 수가 없다. 지구에서는 토카막 장치 같이 자기력을 이용(자기장 가둠 핵융합)하는 등의 방법으로 플라즈마의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자기장의 세기를 무한정 높여서 태양과 유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힘들다. 따라서 플라즈마의 불안정성을 제거하고 장시간 운전에 최적화 된 상태에 대한 연구, 즉 플라즈마의 안정성 확보가 관건이다.

 

이처럼 핵융합에너지의 상용화는 핵융합로 내부에서의 초고온 플라즈마의 움직임을 완벽히 파악하고 제어하여, 연속 운전에 다다를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생애주기처럼 이론적으로 플라즈마의 타임스케일을 300초라고 보고, 그 시간 안에 대부분의 불안정 요소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즉 300초 이를 달성하면 핵융합로 건설에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 ‘300초’에 다가가는 또 한걸음

 

지난해 KSTAR는 실험을 통해 고성능 플라즈마를 500kA전류 상태에서 20초간 유지하는데 성공하였다. 최초플라즈마 실험에 성공한지 5년 만에 첫 해 실험보다 100배 가까이 플라즈마 유지시간을 늘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금년도 실험에서는 30초간 고성능 플라즈마 상태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올해도 핵융합에너지 상용화에 필요한, 그리고 플라즈마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300초에 한걸음 더 다가갈 예정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생애주기처럼 이론적으로 플라즈마의 타임스케일을 300초라고 보고, 그 시간 안에 대부분의 불안정 요소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KSTAR 그것이 알고 싶다 7] 숫자로 보는 핵융합, "1억 도"

2011년 개봉한 영화 '생존게임 247℉'는 사우나에 갇힌 사람들의 필사적 탈출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에서 정상체온 36.9도의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최대의 온도를 120도로 상상한다.

 

물이 끓기 시작하는 100도, 영하 10도 까지 떨어지는 겨울철 기온, 40도 안팎의 뜨끈한 목욕물 등이 우리가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온도다.

 

그렇다면 핵융합에너지의 필수조건으로 꼽히는 100,000,000℃(1억도)는 어떨까. 이 상상하기 힘든 온도를 과연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만큼 온도를 올려야 하는 이유는 멀까.

 

● 태양의 비밀을 풀다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1억℃ 라는 온도는 다름 아닌 태양에서 비롯된다. 20세기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태양에너지의 원천이 바로 핵융합이었다. 태양 내부에는 수소, 중수소, 삼중수소가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융합반응을 일으킨다.

 

그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반응이 수소 원자 4개가 뭉쳐 하나의 헬륨으로 바뀌는 핵융합반응이다. 이때 수소 원자 4개를 합친 질량과 핵융합반응으로 생긴 헬륨의 질량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이 차이가 만든 핵융합에너지를 방출하는 별이 바로 태양이다.

 

태양의 중심은 1500만℃ 정도의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이다. 태양이 지닌 엄청난 중력과 높은 플라즈마 온도 덕분에 수소 원자핵들이, 서로 밀어내는 핵력을 이기고 융합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에서 이러한 핵융합 반응을 인공적으로 만들려면 태양과 유사한 환경, 즉 초고온과 압력을 지닌 플라즈마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등장한 조건이 1억℃다 .

 

왜 하필 1억℃여야만 할까. 태양은 그 7분의 1만으로도 앞으로 50억년 동안 방출할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다는데 말이다. 태양은 지구보다 월등히 높은 중력을 지니고 있기에1500만℃에서도 핵융합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태양보다 더 높은 온도의 플라즈마 상태가 돼야만충분한 수의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핵융합 반응에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정도로 활발한 핵융합 반응을 위해서는 1억℃라는 초고온의 플라즈마 상태가 필요한 것이다.

 

태양에너지의 원리는 1939년 독일의 물리학자 한스 베테가 처음 밝혀내, 핵융합이 현실적인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전환점이 되어 주기도 했다.

 

● 1억℃, 어떻게 만들고 어디에 담을까

 

문제는 1억℃의 플라즈마를 어떻게 만들고 어디에 담느냐다. 이 정도 온도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답은, 이미 실현되고 있고 가능하다는 것이다.

 

온도의 과학적인 정의를 보자. 온도는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나 분자의 열운동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따라서 입자들이 빠르게 움직이면 온도가 올라간다. 1억℃ 환경을 만들려면 그 만큼의 속도로 입자들을 움직여 주면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자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해야 하는데 대표적인 방법이 전자레인지처럼 전자기파 형태로 에너지만 전달하는 방식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입자빔을 쏘아 충돌시킴으로써 온도를 올리는 고속입자빔 방식이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가 만든 대형 강입자충돌기로는 7경℃까지 온도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핵융합로가 초고온 플라즈마를 과연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첫 번째 비밀은 자기장에 있다. 플라즈마 상태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상태로 전기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즉 전기적 성질을 갖는 입자는 자기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강력한 자기장 그물로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묶어 둔다면 물질에 직접 닿지 않고 공중에 뜬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자기장으로 진공용기 안에 초고온 플라즈마를 가두는 핵융합장치인 토카막의 원리가 바로 이것이다. 또 다른 비밀은 밀도이다. 이는 목욕물과 사우나를 비교해보면 쉽다. 목욕물은 42℃만 되도 뜨겁지만 사우나에서는 100℃에서도 버틸 수 있다. 물질의 밀도 때문인데 대기 중에 존재하는 입자의 숫자가 적으면 온도가 높아도 전달하는 열에너지의 크기는 작다.

 

요컨대, 미래의 핵융합로에 갇힌 1억℃의 플라즈마가 갖는 총 열에너지는 같은 부피의 수 백 ℃의 대기가 갖는 열에너지와 비슷하다. 이 때문에 핵융합반응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생성되는 에너지를 고려해도 텅스텐이나 탄소와 같은 특수 재료를 활용하면 표면에 닿는 플라즈마의 온도를 견딜 수 있는 용기를 만들 수 있다.

 

현재도 인류는 이 1억℃를 만들고, 가두고, 유지하기 위한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 과정 속에 있다. 지구 위의 태양이라는 꿈을 이루어 줄 국제핵융합실험로인 ITER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원료로 초전도자석에서 나오는 강력한 자기장이 1억5000만℃까지 올라가는 플라즈마를 가두게 된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인류는 태양보다 뜨거운 태양을 만들어 꿈의 에너지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KSTAR 그것이 알고 싶다 8] 숫자로 보는 핵융합, "-268도"

1911년 11월 18일 영국의 스코트가 드디어 남극점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노르웨이 국기가 꽂혀 있었다. 나흘 전인 14일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이 이미 남극점에 도착한 것이다. 비록 ‘최초’라는 타이틀은 놓쳤지만 살을 에는 추위와 눈보라를 뚫고 남극점에 도착한 스코트 역시 위대한 모험가로 기록되어 있다.

 

남극은 지구상에서 기온이 가장 낮은 곳이다. 연평균 기온이 영하 50~60℃. 남극대륙 고원지대에 있는 러시아 보스토크 기지 인근은 공식 관측 기준으로 영하 89.6℃를 기록했고, 일본 기지 ‘돔 후지’가 있는 해발 3779m 지점은 영하 94.7℃로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1월의 평균 기온이 0.5℃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같이 어마어마한 영하의 온도를 체감하기 힘들게 만든다. 아이스크림 공장의 냉동창고 온도는 영하 35.9℃, 드라이아이스도 영하 78.5℃에 불과하다.

 

● 그렇다면 영하 268℃는?

 

이론상으로나 가능하다는 ‘절대영도(-273℃)’에 가깝다. 절대영도는 어떤 물체에서 전자기 복사가 방출되지 않는, 다시 말해 분자 운동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상태의 이론적인 최저온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온도에 근접한 영하 268℃가 실제로 구현되는 곳이 있다. 핵융합에너지 기술 개발을 위한 핵융합연구장치 이야기다.

 

국내 연구진은 2007년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를 자체기술로 완공하였으며, 2008년 5월 최초플라즈마 발생을 위한 시운전에서 영하 268℃의 극저온 냉각운전에 성공했다. 1억℃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발생시켜야만 활발한 핵융합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극한의 낮은 온도는 왜 중요한 걸까.

 

핵융합에서의 극저온은 초고온과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핵융합 반응은 태양보다 뜨거운 온도를 유지해 원자핵들이 반발력을 이기고 융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어떻게 가둘 수 있느냐는 것. 이 정도 고온을 견딜 수 있는 물질이나 재료 역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자기장을 이용해 만드는 그릇 '토카막'

 

과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자석을 이용해 만든 핵융합 장치 ‘토카막(Tokamak)’을 발명했다. 플라즈마가 전기적 특성을 갖고 있는 점에 착안해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하면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일반 전자석을 이용하여 자기장을 만들 경우 플라즈마를 가두기 위해 오랫동안 자석에 전류를 흘려주게 되면, 저항 때문에 열이 발생하고 가동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초전도 자석이다. 어떤 종류의 금속이나 합금을 절대영도 가까이 냉각하면 전기저항이 갑자기 사라져 전류가 아무런 장애 없이 흐르는 초전도 현상이 발생한다. 결국 1억℃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가두기 위해서는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에서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자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핵융합장치인 KSTAR를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물질을 담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그릇’으로 표현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KSTAR는 30개의 초전도 자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무게만 300t(톤)에 달한다. 이런 거대 규모의 초전도 자석을 영하 268℃까지 내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완전한 초전도 상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열 침입이 없도록 초고진공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초전도 토카막 극저온 냉각 달성이라는 신기록을 세운 것도, 극저온 냉각 시운전을 단번에 완료한 것도 한국이 처음이다. 이 같은 극저온 기술은 이제 핵융합 장치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적용된다.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LNG 선박, 인공위성 발사체, 적외선 감시 정찰, MRI, 극저온 수술 등으로 범위가 확대되면서 우리의 일상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문센과 스코트가 영하 50~60℃의 남극점 정복에 도전한 지 100년 만에 인류는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의 세상을 정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물질을 담기 위해 가장 차가운 그릇을 만든 한국의 핵융합 기술이 있다.

 

[KSTAR 그것이 알고 싶다 9] 숫자로 보는 핵융합, “260”

‘여긴 어딜까?’ ‘나는 누구지?’ 알 수 없는 세상에 내던져진 그들은 외롭고 또 두려웠다. 밝고 뜨겁지만 이상하리만치 적막한 세상. 137억 년 전 우주는 그들 소립자들만의 세상이었다. 더 이상 쪼갤 수도 나눌 수도 없을 만큼 미소한 이들은 빅뱅과 함께 137억 년 전 존재하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무명의 것들에 불과했다.

 

눈부신 태초의 빛이 사위어가며 소립자들은 차츰 서로를 알아보았고, 수없이 많은 이끌림과 헤어짐, 부대낌 속에 마침내 의미를 만들어 간다. 수소, 헬륨, 핵융합, 물질, 시간, 공간, 별, 생명…. 온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두뇌들이 모인 대덕연구단지. 이곳에는 또 다른 신세계를 꿈꾸는 소립자들이 있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도전적인 미션일 ‘인공태양 만들기’에 나선 260명의 국가핵융합연구소 구성원들이다.

 

인공태양 기술은 태양이 불타는 원리를 이용한다. 태양은 수소의 핵융합 반응으로 엄청난 열과 에너지를 쉼 없이 내뿜는다. 가벼운 수소가 고온에서 합쳐져 무거운 헬륨으로 바뀔 때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원자의 질량이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생성하는 것이다.

 

핵융합은 핵분열의 수천 수만 배 에너지를 발생하면서도 더 안전하다. 원자력 발전이 값비싼 우라늄 원료를 필요로 하는 것과 달리 핵융합의 원료가 되는 중수소와 삼중수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무제한 사용이 가능하다. 심화되는 에너지 위기에서 인류를 구원할 꿈의 에너지원인 것이다.

 

하지만 지구는 태양이 아니다.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태양과 같은 환경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먼저 핵융합의 연료인 수소와 삼중수소가 필요하다. 이어 이들 원자핵들이 결합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1억 도 이상의 플라즈마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둬둘 수 있는 거대한 토카막과 같은 가둠장치가 있어야 한다.

 

[KSTAR 그것이 알고 싶다 10] 숫자로 보는 핵융합, "7"

7은 행운의 숫자다. 7이 ‘럭키 세븐(Lucky 7)’이 된 데는 야구의 공이 컸다.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7회 공격 때 타자가 친 공이 외야 플라이로 날아가다가 마침 강풍이 불면서 파울볼이 홈런이 됐다. 다른 경기에서도 7회만 되면 유독 득점이 많이 나왔던 메이저리그에서 이렇게 ‘럭키 세븐’이라는 용어가 자리를 잡았다.

 

사실 7은 이미 오래전부터 행운을 상징하는 숫자였다. 일주일은 7일, 무지개 7색, 7음계, 7개의 대륙과 7개의 바다로 나뉘는 지구…. 인간이 만들어 낸 것에 신화와 우연성까지 더해져 ‘7’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행운의 숫자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 7은 인류의 새로운 도전을 상징하는 숫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꿈의 에너지이자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에너지 개발을 목표로 출범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나라가 7개국이기 때문이다.

 

ITER는 화석 연료 고갈과 환경 문제를 대비해 핵융합에너지의 상용화 가능성을 실증하기 위해 추진하는 인류역사상 가장 큰 국제공동과학기술 프로젝트이다. ITER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EU, 러시아, 중국, 인도 등 7개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7개 회원국은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카다라쉬에 핵융합실험로를 건설하고 있다. ITER 참가국들은 공동연구개발을 통해 2040년대에는 핵융합에너지를 상용화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핵융합에너지 국제공동개발사업은 지난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핵융합 분야의 협력을 ‘공동성명’에 포함시켜 발표했고, 1988년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산하에 ITER 위원회를 구성한다.

 

미국, EU, 러시아, 일본 등 핵융합 선진국들이 서로의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국제적인 공동 연구 장치를 건설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하지만 공동개발 사업은 생각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막대한 비용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가장 먼저 핵융합 공동개발을 추진했던 미국도 실험로를 비롯한 장치 개발과 건설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로 2001년 잠시 사업에서 탈퇴했을 정도다.

 

결국 2001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ITER 이사회는 앞서 1998년 최종 확정된 설계안을 뒤집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새로운 설계를 했다. 이어 중국이 2003년 합류, 미국도 다시 ITER에 합류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2003년 5월 정식회원국이 되었고 인도가 2005년 마지막으로 사업에 참여하면서 지금의 7개국이 완성되기에 이른다.

 

ITER의 새로운 설계가 완료된 이후부터는 어디에 핵융합실험로를 건설할지를 두고 참여국들이 신경전을 벌였다. 자국에 ITER를 둔다는 건 기술력과 접근성뿐 아니라 수백수천배의 부가적인 경제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2003년 ITER사업에서 철수한 캐나다가 가장 먼저 건설부지를 제공하겠다고 나섰고 이후 일본, 스페인, 프랑스가 유치 경쟁에 뛰어 들었다. 최종적으로 프랑스(EU)와 일본이 경합하다가 상호 합의 하에 프랑스 카다라쉬로 결정된 후 비로소 2006년 10월 ITER사업의 본격적인 출발을 의미하는 공동이행협정이 이루어졌다.

 

이들 7개국은 사이좋게 건설비와 사업비를 나눴다. 건설국인 EU가 전체비용의 45.5%를 부담하기로 하고 나머지 여섯 개 나라가 9.1%씩 분담한다.

 

또 ITER 건설은 회원국별로 할당된 주요 장치를 각국에서 제작하고 조달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은 회원국들 사이에서 할당된 ITER 장치 및 부품 개발·조달을 가장 모범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7개국의 이 위대한 도전은 ‘럭키 세븐’의 행운과 희망의 기운이 녹아 있다. ‘꿈의 에너지’로 성큼성큼 다가서는 가운데 7은 이제 미래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알리는 숫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