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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레인지

구름위 2015. 10. 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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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봄, 미국 보스턴의 한 레스토랑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입구에 붙은 안내문을 읽고 있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우리 레스토랑에서는 불을 사용하지 않고 마이크로파로 음식물을 조리합니다.”

마이크로파로 요리를 한다는 건 전자레인지를 사용한다는 의미다. 요즘엔 일반 가정은 물론 편의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전자레인지가 무엇이 그리 신기해서 사람들은 그 안내문을 읽고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그 레스토랑에서 사용한 전자레인지가 인류 최초의 전자레인지였기 때문이다.

레이시온에서 출시한 레이더레인지.  ⓒ 위키미디어 CC BY-SA 3.0

레이시온에서 출시한 레이더레인지. ⓒ 위키미디어 CC BY-SA 3.0

그때 처음으로 전자레인지를 개발한 미국의 무전장비회사 레이시온은 보스턴의 그 레스토랑에서 전자레인지로 여러 가지 요리를 시연해 보이며 실용성을 점검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했던 것이다. 다음해인 1947년 레이시온은 마침내 ‘레이더레인지’라는 이름으로 첫 제품을 출시했다.

레이더레인지는 마이크로파를 생성하는 전자관을 식힐 수 있는 배수관 시스템까지 내부에 장착돼 있어 높이 167㎝에 무게가 340㎏이나 나갈 만큼 크기가 매우 컸다. 게다가 가격마저 매우 비싸서 주로 레스토랑이나 항공사 등의 상업적 용도로 팔려 나갔다.

1952년에는 가정용 전자레인지가 처음 선을 보였으며, 차츰 주방의 필수품이 되어 갔다. 1975년경 미국의 전자레인지 판매액은 가스 조리기구의 판매액을 초과할 만큼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8년 삼성전자에서 첫 제품을 출시한 이후 수출 주력상품으로 떠오르면서 점차 대중화되었다.

전자레인지에서 사용되는 마이크로파는 주파수가 아주 높은 대신 파장은 매우 짧은 극초고주파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파는 1초에 24억5000만 번이나 전계의 방향이 바뀌어 진동함으로써 물 분자와 서로 부딪쳐 마찰열을 일으키고, 그 열로 인해 음식물이 익거나 데워지게 된다.

따라서 전자레인지는 프라이팬이나 냄비처럼 조리기구를 먼저 데운 다음 그 열을 음식물에 전달해 조리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직접 데우므로 가열효과가 높고 가열속도도 빠르다. 또한 전자레인지 내부는 열기를 방출하지 않으므로 늘 청결하며, 식품을 용기에 담은 채 가열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주머니 속에서 녹아버린 초콜릿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처럼 과학적인 조리기구를 발명한 이가 초등학교 중퇴자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퍼시 스펜서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서, 1894년 미국 메인주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재혼해 버려 초등학교도 채 끝내지 못한 채 10살 때부터 제지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16세 무렵 제지공장에서 전기를 설치하기 위해 게재한 전기설치 기술자 모집 공고를 보고는 사장을 설득해 그 작업에 투입됐다. 관련 서적을 독학해 제지공장의 전기 설치 작업에 성공한 그는 그 후 실력이 뛰어난 전기 기술자로 성장했다.

스무 살 무렵 해군에 입대한 그는 무전병으로 근무하면서 삼각함수와 미적분 등의 수학을 비롯해 화학, 물리학, 야금학 등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과학 분야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된다. 제대 후 그는 무선장비 회사인 레이시온에 보조 연구원으로 입사해 20년 후 책임 연구원이 되었다.

그가 근무했던 레이시온은 당시 레이더에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는 ‘마그네트론’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와 관련된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 연구에 몰두했다. 마그네트론이란 양극과 음극으로 구성되어 마이크로파를 발생시키는 진공관이다.

그런데 어느 날 스펜서는 실험 도중에 매우 이상한 경험을 했다. 배고플 때 먹으려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초콜릿바가 질퍽하게 녹아 있었던 것. 그는 직감적으로 초콜릿바를 녹인 범인이 마이크로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 우연한 발견에 흥미를 느낀 그는 다음날 옥수수 알갱이를 가져와 마이크로파를 발생시키는 마그네트론 옆에 두었다. 그러자 잠시 후 옥수수 알갱이가 터지며 팝콘이 되어 버렸다. 달걀로 실험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익어버린 달걀을 보며 그는 자신의 발견을 이용해 조리기구를 발명하기로 마음먹었다.

곧바로 발명에 착수한 그는 전자레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그 발명품을 본 레이시온 사는 1945년 특허를 등록하고 상용화에 착수했다. 이때 스펜서의 나이는 51세였다.

영양소 파괴 괴담, 사실일까

스펜서가 전자레인지를 발명할 무렵 다른 사람들도 마이크로파의 가열 효과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해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은 대신 스펜서는 아이 같은 호기심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조리기구를 발명했다. 즉, 우연한 발견이 바로 발명으로 이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거기에 호기심과 노력이 더해진 결과의 산물인 셈이다.

미국 농무부에 의하면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가 음식물에 파고들 수 있는 깊이는 최대 3~4㎝에 불과하다. 때문에 전자레인지는 온전한 요리보다는 이미 요리가 끝난 음식을 데우거나 냉동된 식품을 해동시키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전자레인지에는 한때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생기고 마이크로파가 음식물의 구성분자를 뒤섞어 영양소를 파괴한다는 등의 괴담이 나돈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거짓으로 밝혀졌다.

미국 암학회에 의하면 전자레인지 문이 완전히 닫혀 있는 상태에서 흘러나오는 전자파는 미량으로서 일상적인 수준이며, 문이 열릴 경우 자동으로 작동이 멈추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또한 전자레인지로 조리할 경우 일부 식품들의 영양소가 줄어든다는 기존의 실험 결과는 열에 의한 일반적인 조리법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일 뿐 전자레인지만의 특별한 문제점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의 가이 크로스비 교수에 발표에 의하면, 전자레인지는 다른 조리법에 비해 음식물의 온도를 높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 오히려 영양소 파괴가 적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