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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하우스의 역사

구름위 2015. 10. 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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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카페에서 무엇을 하나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비지니스 미팅을 하기도 하고, 모임을 열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겠죠. 현대인들에게 카페는 놀이터이자 쉼터이자 일터인 것 같습니다.

먼 옛날의 카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인류가 커피를 처음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9세기경 에티오피아에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커피는 곧 홍해를 건넜고, 예멘의 아덴항을 통해 아라비아반도에 퍼졌습니다. 처음에 종교 의식에서나 사용됐던 커피는 점차 종교적인 의식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기호품으로 변해갔습니다.

커피하우스의 기원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자연히 15세기 이후 중동에는 커피하우스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라고 알려진 곳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1475년 개점한 ‘키바 한(Kiva Han)’입니다. 당시 오스만 제국에서 커피가 얼마나 중요했냐 하면, 여자들은 남편이 매일 일정량의 커피를 제공하지 못하면 이혼을 할 권리가 있었을 정도라고 합니다. 중동에서 가장 활발한 도시이자 종교와 문화적 중심지였던 메카에서 커피하우스는 사람들이 사회적, 정치적 견해를 나누는 곳으로 발전해갔죠. 1530년대 이후 커피하우스는 다마스쿠스와 카이로 같은 중동의 도시로도 퍼져나갔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커피하우스 풍경

커피 문화가 유럽에 전래된 것은 17세기 들어서의 일입니다. 아랍과 이슬람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커피를 마셨던 탓에, 기독교 문화가 지배적인 유럽인들은 커피에 대해 “이교도들이나 마시는 음료”라고 생각했거든요. 커피는 실제로 ‘이슬람교도의 와인’이라고 불렸습니다. 이탈리아의 무역상들이 커피를 유럽으로 들여왔지만 문화적 거부감이 너무 커서 유럽 전역에 전파되기는 어려웠습니다.

교황 클레멘트 8세

이 편견을 깨뜨린 것은 교황 클레멘트 8세입니다. 클레멘트 8세의 측근들이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고 선포해달라”고 청원했지만 커피를 마셔본 교황은 “악마의 음료라기에 이건 너무 맛있으니 커피에게 세례를 주겠다”고 선언했다고 합니다. 1600년경의 일입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 시기를 즈음해서 커피가 유럽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입니다. 1629년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유럽 최초로 커피하우스가 탄생합니다. 영국 런던에는 1650년, 프랑스 파리에는 1672년 첫 커피하우스가 생겼습니다. 커피하우스는 이후 유럽 문화와 예술과 정치와 혁명의 중심지가 됐습니다.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한 유럽의 근대

커피하우스가 생겨나기 전 사람들은 선술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도한 음주로 인한 질병과 다툼이 일상이었죠. 그런데 커피와 커피하우스가 등장합니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음료를 파는 건전한 공간. 커피하우스에서 런던의 신사와 파리의 부르주아들은 가십과 패션과 시사와 정치와 스캔들, 철학과 자연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엔 커피하우스의 민주적인 특성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영국 기준으로 커피값 1페니만 있으면 누구나 커피하우스에 입장해 논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거죠. 영국에서는 ‘커피하우스 정치인’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습니다. 하루 종일 커피하우스에 죽치고 앉아서 비현실적인 정치적 견해를 퍼뜨리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17세기 영국 런던의 커피하우스를 묘사한 그림

커피하우스는 근현대 유럽의 경제와 정치, 학문이 탄생한 곳입니다. 영국 과학자로서 최고의 영광이라고 하는 과학자들의 모임인 ‘왕립학회’도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했습니다. 왕립학회 초기 회원이었던 아이작 뉴턴과 로버트 보일, 로버트 훅 등이 커피하우스에 모여 토론한 내용은 근대과학의 토대가 됐죠.

1870년대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전쟁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로이드’라는 이름의 커피하우스에는 상인들과 선원들, 해운업계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영국 대형 보험사 로이드의 효시가 바로 이곳입니다. 세계적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도 커피하우스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류사회 신사들이 즐기는 고급 회원제 클럽 문화가 생겨나면서 영국의 카페 문화는 쇠퇴해갔다고 합니다.

커피하우스는 혁명을 잉태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파리에서 커피하우스는 볼테르와 장 자크 루소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아지트가 됐습니다. 볼테르가 즐겨 찾았다던 ‘르 프로코프’는 1686년 문을 열었는데, 아직도 파리에서 영업중입니다. 귀족들의 폐쇄적인 살롱 문화와 달리, 누구나 찾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피하우스는 평등과 공화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이었죠. 커피하우스에서 민중들을 만나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개혁의식을 키워간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은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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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르 프로코프’의 풍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콩도르세, La Harpe, 볼테르와 디드로

‘르 프로코프’의 현재 모습

미국 독립혁명의 근거지 역시 커피하우스입니다. 미국에서는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영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차 대신 커피를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면서 차 문화 대신 커피 문화가 발전했습니다. 미국의 첫 커피하우스는 1689년 보스턴에서 문을 열었고, 이곳 역시 사람들이 정치적 의견을 나누는 장소의 역할을 했다고 해요.

커피하우스를 싫어한 위정자들

사람들이 커피하우스에 모여 정치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할 위정자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여러 왕과 술탄들이 커피하우스 문을 닫으려 시도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영국의 왕 찰스 2세일 거예요. 1675년 12월 찰스 2세는 다음해인 1676년 1월 10일을 기해 영국의 모든 커피하우스를 폐쇄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커피하우스에서 사람들이 모여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바람에 정치에 대한 뜬소문이 확산돼 국왕의 명예가 훼손되고 사회가 혼란해진다는 명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저항이 강력했습니다. 런던뿐 아니라 영국 전역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졌고 찰스 2세는 결국 칙령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1676년 1월 초 이를 철회했습니다. 대신 찰스 2세는 커피하우스 주인들이 불온 신문이나 유인물을 발행하지는 못하게 막았다고 해요. 당시 커피하우스가 여론의 집결지였던 만큼 온갖 신문들과 인쇄물들이 커피하우스에서 발간됐거든요.

찰스 2세와 같은 시도를 한 지도자들은 이전에도 여럿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4세는 1633년 커피하우스를 모두 폐쇄하고 커피 유통을 금지시켰습니다. 화재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사실은 불만이 많은 사람들과 군인들이 비밀스레 모여서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꾀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콘스탄티노플의 커피하우스들은 1675년에나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1511년 메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커피하우스에서 사람들이 정치 얘기를 하는 것을 마뜩찮아했던 메카 총독이 도시 전역의 커피숍을 금지시켰다고 하네요.

여성과 커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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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과학자 에빌리 뒤 샤틀레

1674년 영국 여성들이 발표한 ‘커피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청원’

지금은 여성들이 카페 문화를 더 많이 즐기는 듯 하죠. 그러나 과거 커피하우스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커피하우스에 출입할 수조차 없었죠. 18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여성 과학자인 에밀리 뒤 샤틀레는 동료 수학자 피에르루이 모페르튀가 자주 가던 커피하우스에 함께 가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남장을 했다고 합니다. 남자 옷을 한 벌 해 입고 커피하우스에 유유히 입장한 샤르테는 모페르튀와 자연스레 합석했습니다. 커피하우스 주인은 샤르테가 여자인 것을 눈치챘지만 귀한 손님들을 잃고 싶지 않아 모른 척 했다고 합니다. 샤틀레는 남자 옷을 입은 채 그 커피하우스를 계속 드나들 수 있게 됐습니다.

영국에서는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커피하우스 문화에 반발하는 청원을 내기도 했습니다. 남편들이 커피하우스에서 마시는 커피와 토론에 빠져서 집에 들어오지 않자 반발하기 시작한 거였죠. 1674년 발표된 ‘커피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청원’에서 여성들은 “커피는 남자들을 빈둥거리게 만들고 돈을 허투루 쓰게 할 뿐 아니라 정력까지 감퇴시킨다”라고 주장합니다. 남성들은 ‘커피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청원에 대한 남성들의 대답’이라는 글을 발표해 “해롭지도 않고 정신을 맑게 하는 이 음료에 왜 화풀이를 하느냐”고 반박했어요. 여성들이 커피 문화를 향유할 수 없다는 차별성 때문에 반발이 터져 나왔던 것이 아닐까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가 된 커피하우스떼

19세기와 20세기, 유럽의 커피하우스는 작가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자 이들이 모이는 곳이 됐습니다. 파리 생제르맹 데프레에서 1880년대에 영업을 시작한 두 카페, ‘카페 레 되 마고(Café Les Deux Magots)’와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알베르 카뮈, 파블로 피카소, 시몬느 드 보부아르,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지식인들과 작가, 미술가들의 아지트였습니다. 파리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한 이 커피하우스들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로리타> 같은 문학작품과 영화에서도 숱하게 언급됐습니다. 두 커피하우스는 아직도 파리에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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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카페 레 되 마고’와 ‘카페 드 플로르’의 현재 모습

20세기 미국으로 가 볼까요. 미국의 커피하우스는 20세기 중반 팝 음악의 발전과 뗄래야 뗄 수 없습니다. 커피하우스가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바뀌면서 포크 가수들이 커피하우스 한복판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게 된 거죠. 1960년대 기존의 가치관에 대항하는 히피 문화가 확산되며 사회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자유로워진 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미국 대중음악의 한 축인 포크음악은 커피하우스 공연을 통해서 발달했습니다. 세계적인 뮤지션 조안 바에즈나 밥 딜런 같은 사람들도 처음에는 커피하우스에서 기타 한 대를 들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스타벅스의 시대

에스프레소는 높은 압력을 이용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추출해 낸 진한 커피입니다. 에스프레소를 물에 타면 아메리카노, 우유에 타면 카페 라테가 되죠. 1980년대 미국 시애틀의 한 커피 원두 판매점 경영에 새로 참여하기 시작한 하워드 슐츠라는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1971년 시애틀에서 영업을 시작한 이 원두 판매점의 이름은 스타벅스. 슐츠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다가 밀라노에서 에스프레소 바를 방문했고, 스타벅스를 에스프레소 바처럼 커피를 파는 곳으로 변신시키자고 동업자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커피를 쉽고 빠르게 만들어 파는 커피하우스가 늘 바쁜 미국인들에게 환영 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였죠. 하지만 동업자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슐츠는 1985년 스타벅스에서 쫓겨나 ‘일 조르날레’라는 커피하우스를 개업했습니다. 장사는 놀랄 만큼 번창했고 2년 후 결국 슐츠는 스타벅스를 인수합니다. 오늘날 전세계를 지배하는 커피 공룡 스타벅스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

스타벅스는 놀랄 만큼 성장했습니다. 1992년 미국 전역에 165개의 점포를 소유하게 됐고, 1995년 일본 도쿄 매장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부터 2007년 사이 스타벅스는 매일 평균 2개씩의 신규 매장을 열었다고 합니다. 2015년 기준으로 스타벅스는 65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매장은 2만1536곳에 달합니다.

스타벅스는 현대 커피 문화의 표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같은 커피를 맛볼 수 있을 정도로 표준화된 메뉴와 커피맛,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 테이크아웃 위주의 음료 제조 시스템, 주문을 한 뒤 카운터에서 직접 찾아와야 하는 방식까지. 스타벅스 이후 우후죽순 생긴 다른 프랜차이즈 커피하우스들은 스타벅스의 성공방식을 모방하며 발전했습니다.

저자
남지원 | 경향신문 기자
제공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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