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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 죽이고 큰소리치는 서구, 그 뻔뻔함의 비결

구름위 2015. 10. 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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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이 끝난 이래 5000만∼5500만 명이 서구의 (신)식민주의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학살이었다. 그 대부분은 자유, 민주주의 같은 고매한 슬로건 아래 자행됐다. 몇 안 되는 유럽계 국가(미국과 서유럽)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저지른 일이다. 그런데 서구 민중의 대다수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세상이 미쳐버린 건가?"

"실종자 5000만이라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도 서양은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지금도 자신들이 일종의 도덕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나아가 자기네 조직과 미디어와 가치관을 통해서 이 세상을 좌지우지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온 세상에 심어주고 있다. 서양인들은 어떻게 이처럼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일까?"

체코계 미국인으로 중남미와 아프리카, 중동, 중국, 동남아 등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서방의 압제 및 착취와 이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투쟁의 실상을 다큐멘터리 영화와 르포 기사 등으로 전하고 있는 독립 언론인 안드레 블첵(Andre Vltchek)의 질문이다.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의 소개로 알게 된 <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베가북스, 2014년 9월 펴냄)은 '세계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엄 촘스키(86)와 안드레 블첵이 이틀에 걸쳐 나눈 대화를 묶은 책이다. 2013년 영국 플루토 프레스(Pluto Press)에서 출간된 이 책의 원제목은 <서양의 테러리즘에 관하여: 히로시마에서 드론 전쟁까지(On Western Terrorism: From Hiroshjma to Drone Warfare)>다. 2001년 부시가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은 가짜이며,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후 특히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차지한 2차 대전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서방의 비서방에 대한 테러라는 의미다. 위의 블첵의 질문은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9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3장은 미국 등 서방에 의한 테러의 실상과 그 실상이 왜 서구 민중에게는 은폐되었는지, 나아가 테러 세력인 서방이 어떻게 해서 해방자로, 세계가 따라야 할 모범으로 둔갑했는지를 파헤친다. 4∼8장은 구소련과 동유럽, 중국과 인도, 라틴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방의 테러와 이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마지막 9장에서는 미국 세력의 쇠퇴와 앞으로의 세계를 전망한다.

안드레 블첵은 누구?

ⓒ베가북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눈에 띈 것은 안드레 블첵의 독특한 이력이었다. 그는 1963년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체코인 아버지와 중국계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20대 초반까지 체코에서 살았다. 소련 정부 관리였던 그의 할아버지는 스탈린의 숙청 당시에 처형당했으며, 체코 핵물리학자였던 아버지는 1968년 프라하의 봄 때 소련의 무력 진압에 실망해 공산당을 탈당했다. 그는 22세이던 1985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컬럼비아대학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한 뒤 전 세계 분쟁 지역의 실상을 보고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인도네시아 최고의 작가로 추앙받고 있는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와의 대담집 <작가의 망명>(2011년 후마니타스에서 번역 출간)을 비롯해 에세이집 <서구의 테러: 포토시에서 바그다드까지>, 그리고 미국의 배후 조종에 의한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권의 전복 및 뒤이은 수하르토 정권의 잔혹상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잠들다: 민족의 파괴>, 서방 측 사주에 의한 르완다 및 우간다의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개입 실상을 파헤친 다큐멘터리 <르완다 책략> 등이 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행적에서 드러난 것처럼, 블첵은 구소련 체제의 비민주성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소련 공산주의의 긍정적 측면을 적극 평가하고 있다. 예컨대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3세계 민족 해방 운동에 대한 지원으로 수많은 나라들의 해방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소련의 긍정적 유산이라는 것이다. 또한 "소련은 (동유럽의) 자기네 식민 국가들보다 오히려 더 가난했던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국"이었다. 정치적 억압을 했을망정 경제적으로는 이들 국가들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적 착취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블첵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출신 교육자와 나눈 대화를 이렇게 전한다.

"(1970년대 후반) 소련이 지원하고 있었을 때의 아프가니스탄은 어땠습니까?"
"아, 우리나라가 희망을 지닌 적이 있었다면 바로 그때뿐이었습니다.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교사로 일할 수 있었고 남자들과 동일한 권리를 누렸으며, 그나마 나라가 국민을 위해서 발전하고 있던 때는 소련이 들어와 있었을 때뿐이었지요." 
"하지만 그건 우리가 책을 읽어서 알고 있는 거랑 다르네요!"
"물론 당신이 그런 내용을 읽게 될 리는 없지만 말입니다(…)." (128쪽)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박노자를 떠올렸다. 소련에서 태어나고 자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가 한국의 대학으로 유학을 와서 신자유주의에 물들고 봉건적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한 것처럼, 공산 체코에서 자라난 블첵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서방의 기만과 위선을 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첵은 스탈린주의를 위대한 가치 체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소련의 이념에는 서구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단호하게 맞서는 사상, 즉 세상을 긍정적인 변화로 이끌었던 사상이 있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소련 시절에 저질러진 대량 학살을 이유로 공산주의를 철저히 거부해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이유로 서유럽식 민주주의도 거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그리고 다른 서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과 여타 지역에서 살육한 사람들의 숫자는 동시대 소련에서 살육된 사람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블첵은 이 책의 서문에서 "세계 전역에서 수많은 인간들의 고통을 야기하는 사건들의 대다수는 탐욕의 결과,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구대륙, 그리고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건너간 후손들이 저지른 짓이다. (…) 모든 비극의 거의 전부가 서구의 지정학적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촉발되었고 조종되고 있다. (…) 우리는 보통 이를 식민주의, 신식민주의, 제국주의, 또는 기업의 탐욕 등으로 부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른바 서방의 비서방에 대한 착취와 압제가 지금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촘스키는 지식인 사회운동가의 전선에서, 자신은 콩고, 르완다, 우간다, 이집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오세아니아 등 서방 측 범죄의 현장에서 증거 수집을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두 사람은 "누구나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와 세계 시민 모두의 참된 자유를 위해서, 그리고 식민주의와 파시즘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정교한 프로파간다

그렇다면 서방은 어떻게 해서 2차 대전 이후 5000만 명 이상의 비서방권 인민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면서도 세계의 해방자, 지도자를 자처할 수 있게 된 것일까? 해답은 두 가지다. 유럽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와 서방의 정교한 프로파간다가 그것이다.

<1984년>의 작가 조지 오웰은 '비(非)인간'이라는 뜻의 'unpeople'이란 말을 썼는데, 촘스키에 따르면 유럽계 사람들은 자신들을 '인간(people)'으로,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죽거나 다치거나 경제적 착취를 당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비인간(unpeople)'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종주의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500년 넘게 이어져온 서방의 유구한 전통이다.

17세기 초, 네덜란드 식민주의 창시자 중 하나인 얀 피터르스존 쿤은 "유럽에서는 누구든 자기 소유의 가축을 마음대로 해도 되지 않은가? 동인도(지금의 인도네시아)의 주인들과 그가 소유한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네덜란드의 가축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런 생각은 현재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정교하게 다듬어져 온 서방의 프로파간다다. 촘스키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식민화뿐만이 아니라 지적이고 도덕적인 식민화도 있다. 계급 사회와 억압이 이룩했던 주된 성과는 '비인간'들로 하여금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것"이라고 지적한다. 비서방의 비인간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서방의 이념과 체제를 따라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 것이 바로 서방의 정교한 프로파간다라는 것이다.

반면 소련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나라들의 해방을 가능하게 만들었음에도 이 같은 사실을 대중의 무의식 속에 한 번도 각인시키지 못했다. 중국은 지난 몇 십 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를 상대로 한 이념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 블첵은 "러시아 프로파간다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중국의 프로파간다 역시 얼마나 나빴는지, 정말 믿을 수가 없을 정도"라고 개탄하면서 "공산주의 공식 선전이나 중국의 공식 선전 시스템은 너무나 허약해서 자국을 방어하기조차 힘들다"고 지적한다.

블첵은 "예를 들어 베트남전이나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에 대한 동유럽 언론의 정직한 보도조차 프라하, 부다페스트, 심지어 모스크바의 일부 서클에서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미국에 건너왔을 때 나는 내가 서구의 프로파간다에 의해 얼마나 오도되고 있는지 깨닫고 사실 충격이 컸다"고 털어놓는다. 소련과 동유럽의 지식인들은 자국의 관영 언론을 철저히 불신한 반면 BBC 등 서방 언론에 귀 기울였고 서방 언론이 전하는 '뉴스'를 모두 진실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나는 동유럽에서 자라난 사람으로서, 국민들이 정부의 공식적인 해명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각성, 그리고 자기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지극히 높았다는 것이다. (…) 미국인들 혹은 서구의 국민들보다는 동유럽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더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체제에 대해서도 훨씬 더 비판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계 6대주에서 살아본 나로서는 사실 서양인들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세뇌를 많이 당했으며 가장 정보가 부족하고 비판 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나아가 "서양인들의 세계에는 단 하나의 극밖에 없다.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 다른 이상, 다른 이념들을 비교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겐 시장 근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고 다당 의회 체제, 입헌군주제가 움직이는 단 하나의 체제가 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자신들의 이념과 체제에 대한 서방인들의 맹목적 믿음, 그리고 서방이 비서방 민중에게 저지른 압제와 착취에 대한 무지 속에 서방의 프로파간다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 목적이나 목표가 무엇이든, 많은 군중을 움직이고 동원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서방 프로파간다의 성공 비결은 자신의 약점은 철저히 은폐하는 반면 (구소련이나 중국 등 서방의 이념과 체제를 따르지 않는) 적들의 약점을 대대적이고 집중적이며 반복적으로 부각하는 것이다. 때로는 거짓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촘스키에 따르면,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는 수백 명을 살해한 반면 비슷한 시기(1989년 12월) 파나마를 침공한 미국은 수천 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등 서방 언론은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잔혹함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심지어 이라크 병사가 병원 인큐베이터에 있는 쿠웨이트 아기들을 살해했다는 터무니없는 얘기를 뉴스로 보도해 후세인 정권을 '악마화'하기도 했다(15세이던 주미 쿠웨이트 대사의 딸을 목격자로 내세웠다). 반면 미국의 파나마 침공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했다. 당시 미국의 침공으로 파나마 제2의 도시 콜론이 완전히 폐허가 된 채 현재까지 방치돼 있지만 파나마 침공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정보들은 철저히 비밀에 감춰져 있다. 이라크의 폭력은 대대적으로 보도한 반면 미국의 폭력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또한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1983년)으로 살해된 사람이 소련의 프라하 침공(1968년)에 의한 희생자보다 훨씬 많지만, 전자는 거의 얘기되지 않는 반면 후자는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소련 체제의 잔혹함을 강조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또한 블첵에 따르면 "미국의 TV나 신문들이 미국의 경제·정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것보다도 중국의 TV나 신문이 그들의 경제·정치 정책에 대해 훨씬 더 비판적"이다. 나아가 세계적으로 공정하다고 알려진 영국의 BBC보다 중국의 CCTV가 훨씬 더 공정하며 외부의 비판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인다고 말한다.


인도 감싸기 vs. 중국 때리기

한편 서구의 프로파간다는 끊임없이 인도를 미화하는 반면 중국을 헐뜯고 있다. 인도가 서구식 민주주의를 따르는 반면 중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블첵은 "소위 (중국의) 티베트 이슈는 신문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날이 없지만, (인도의) 카슈미르 분쟁은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카슈미르의 잔혹함은 티베트에는 비교도 되지 않는데도(…)"라고 말한다.

촘스키에 따르면 서방의 지식인과 언론들은 1950년대 중국의 대약진운동 당시 기근으로 2500만∼3000만 명이 사망한 사실을 끊임없이 물고 늘어진다. 공산주의 체제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도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아마르티아 센 등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47∼1979년(인도 독립에서 중국이 자본주의를 도입한 시기까지) 인도에서는 1억 명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다. 동일한 시기에 공산 중국에서는 최대 3000만 명이 굶주림에 희생된 반면 민주·자본주의 국가인 인도에서는 1억 명이 숨진 것이다. 이에 대해 센 등은 "중국이 그 수치스러운 굶주림의 기간 중에 잃어버린 목숨과 꼭 같은 인민들을 인도는 8년마다 한 번씩 잃어버렸다"고 개탄했다. 하지만 중국의 사례는 대대적으로 부각되는 반면 중국보다 더한 인도의 참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블첵은 "내로라하는 서구의 미디어치고 인도 시스템을 비난하는 곳은 하나도 없다. 인도는 인도네시아처럼 극도로 난폭한 나라임에도 이처럼 난폭한 나라를 서구 언론은 평화롭다, 참을성이 있다고 칭찬한다"면서 "(인도가) 중국을 저지하는 완충 역할을 해주는 한, 서구의 사기업을 대신해 천연자원을 약탈해 주는 한, 서구의 야만적인 자본주의를 지지해 주는 한" 서방 언론의 인도 감싸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블첵은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인도 친구들은 인도가 중국식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음을 비통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독한 신분제도와 극심한 가난 등 사실상 중세에 머물러 있는 인도에 비하면, 정치가 경제를 통제하는 한편 인민들의 사회경제적 삶의 향상에 힘을 기울이는 '중국식 사회주의'에 훨씬 더 큰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틈날 때마다 중국 곳곳을 돌아다닌다는 블첵은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는 많은 시위에 대해 (서방이 바라는) 친시장경제적인 개혁이 아니라 좀 더 사회주의적인 개혁을 원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이들은 중국공산당의 깃발을 들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서방의 아류, 동유럽과 동남아 vs. 자주적인 중국과 중남미

촘스키와 블첵은 서방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거부하는 중국과 중남미에서 미래의 희망을 본다. 반면 동유럽은 "수십 년 동안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압제자의 편에 설까 꿈꾸어 왔고", "서양의 사상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냥 좋아하는" 서방의 아류일 뿐이다. 이들은 뿌리 깊은 유럽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는 서방 세계에 의존할 뿐, 대안적 정치 체제나 사회 체제에 관한 논의가 전혀 없다. 동남아야말로 서구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요새라고 블첵은 말한다. 동유럽과 동남아는 서방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할 뿐이다.

블첵은 "동유럽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일에만 관심이 있다.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이 훨씬 더 인도주의적이고 국제적 시야를 지녔다"고 지적한다. 촘스키는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착취가 소련의 동유럽에 대한 억압보다 훨씬 심했다는 사실이 학계에 잘 알려 있지만, 이러한 사실이 대중의 인식에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국이 저지른 어마어마한 폭력에 대한 동유럽과 중남미 지식인의 대응은 극단적 대조를 이룬다. 동유럽은 침묵하는 반면 중남미는 적극 항의한다. 예를 들어 동유럽의 대표적 반체제 인사로 추앙받고 있는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배후 조종에 의한 엘살바도르 예수회 수사 학살 사건은 애써 외면하면서 미국을 '자유의 나라'로 치켜세웠다. 반면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있는 독재희생자추모인권박물관에는 미군이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감옥에서 저지른 잔혹한 고문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유화들이 있다. 콜롬비아 출신의 위대한 미술가 페르난도 보테로가 그린 것이다. 동유럽 지식인들은 자신들에 대한 소련의 압제만을 문제 삼을 뿐 미국의 폭력에는 눈감은 반면, 중남미 지식인은 미국의 폭력에 희생된 중동에 연대의 손을 내민 것이다. 블첵은 "위대한 콜롬비아 예술가와 위대한 칠레의 한 박물관이 굳건한 연대를 과시하면서 아랍인들을 향해 공감의 손을 뻗었다. 동유럽에서는 이런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한다.

▲ 이라크에서 작전을 전개하는 미군(2006년 모습). ⓒ위키미디어커먼스

 

미국 세력의 쇠퇴

촘스키는 "세상은 변한다. 변화를 저지할 수 있는 서구의 능력도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현실과 다른 대안 사회에 대한 목마름이 점점 커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패권의 전성기는 2차 대전 직후였다. 서유럽과 일본이 전쟁으로 황폐해진 반면 미국은 전쟁의 피해를 전혀 겪지 않은 채 전 세계 생산량의 50퍼센트를 차지하는 압도적 경제 대국, 그리고 군사 강국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이 유럽 대륙에 진출했을 때 주력한 것은 다음 세 가지였다. 반파시즘 저항 세력을 없애는 것, 막강한 노동 운동을 무력화하는 것, 파시즘 동지들과 함께 전통적 정권을 옹립하는 것. 미국은 유럽 대륙의 독자 노선을 허용하거나 유럽 민중의 사회경제적 삶의 향상을 이룩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세계를 미국의 영향권 아래 묶어두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 패권 구상은 1949년 중국의 공산화, 그리고 베트남전쟁(1961∼1975년)의 실패로 결정적 타격을 입는다. 물론 1965년 비동맹 노선의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권을 무너뜨리고 미국식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면서 동남아의 자주 노선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다. 제3세계의 자주적 정부를 전복하고 미국식 시장경제를 이식하는 이른바 '자카르타 해법'은 이후 칠레(1973년 아옌데 정권 전복) 등 중남미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냉전 이후, 2003년 단행한 이라크 침공의 실패와 2008년 금융 위기로 미국의 경제·군사적 패권은 크게 약화됐다. 특히 최근 10년 동안 남미를 잃은 것은 미국으로서는 커다란 전략적 손실이었다. 미국의 전통적 세력권이었던 남미가 미국의 품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은 남미에서 거의 완전히 고립됐다.

앞으로 세계는 어떻게 될까?

촘스키는 "미국의 세력은 여전히 압도적이고, 거기에 도전장을 내미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그 힘은 줄어들고 있다. 과거에 했던 것과 같은 일들을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정부를 그저 뒤집어엎지는 못한다. 중동이나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도 개입할 만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고 진단한다.

한편 블첵은 "이제 제국은 미국에다 유럽연합까지 품고 있으며 심지어 일본까지 포함할 정도가 됐다. 이 세 개의 세력이 결합한다면 상황은 2차 대전 직후와 크게 다르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미국의 쇠퇴는 분명하지만 미국과 유럽과 일본 등 기존 지배 세력이 연합한다면 변화의 가능성이 봉쇄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결국 앞으로의 세계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이를 바꾸려는 세력 간의 대결에서 결정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리영희 선생의 첫 저서인 <전환시대의 논리>가 발간됐다. 이후 40년이 지났지만 전환은 완료되지 않았다. 전환시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환시대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올해 초 번역 출간된 <역사는 현재다>(타리크 알리와 올리버 스톤의 대담집, 오월의봄 펴냄)도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한다. 파키스탄 출신의 저명한 사상가인 타리크 알리와 미국의 진보적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의 대담집으로 1차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