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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⑦ 후쿠시마 사고는 피할 수 없었다 ⑧ 방사선 오염 물질을 먹이는 나라

구름위 2015. 10. 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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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억하시나요? 사고 위험성과 핵무기 반대 여론으로 주춤했던 핵에너지가 21세기 환경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각광받던 시점에서 발생한 사고라 세계 각국 정상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죠.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원전 안정성과 신뢰에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는데요. 친핵론자들은 심각한 원전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으며,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안전 대국이라는 일본에서 첨단 과학 기술로 무장한 핵 발전소가 폭발하는 것을 보니, 그런 주장은 인간의 오만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은 21세기 ‘대전환의 시대’에 중요한 화두인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프레시안》의 과학·환경 담당 기자인 강양구 기자와 함께 이야기하는 연재 게시물입니다. 지난 시간의 「원자력 제국의 희생자들」에 이어 이번 시간에는 과거 악명 높았던 핵 발전소 사고를 차례로 살펴보면서, 근거 없는 의심이 아니라 합리적인 비판 의식을 가지고 핵 발전소의 안정성을 꼼꼼히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핵에너지가 지구 환경과 인류를 구할 ‘노아의 방주’가 될지 아니면 인류 전체를 몰살할 ‘아마겟돈’이 되어 돌아올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소한 문제가 겹친 참사: 스리마일 섬 사고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 우리나라 곳곳에서 핵 발전소 사고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목소리가 들리면 한국 정부를 비롯한 핵 발전소 옹호자는 항상 ‘절대 안전’을 되뇌곤 한다. 그런데 핵 발전소는 과연 사고로부터 안전할까? 그러니까, 후쿠시마 사고를 염두에 두고서 이것저것 안전장치를 보완하면 그런 사고가 반복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장담컨대, 핵 발전소 사고는 피할 수 없다. 우선 과거의 핵 발전소 사고를 하나씩 복기해 보자.

벌써 30년이 넘었다. 1979년 3월 28일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 주의 미들타운 근처에 있는 스리마일 섬 핵 발전소에서 큰 사고가 났다. 대중에게 핵 발전소의 위험을 최초로 각인시킨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공식적으로 이 사고는 핵 발전소 노동자의 사소한 잘못 탓에 발생한 인재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스리마일 섬 사고는 정말로 인재였을까? 진실은 훨씬 복잡하다.

먼저 스리마일 섬에서 그날 진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일 대학교 사회학 교수인 찰스 페로의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를 살펴보자. 이 책의 핵심 내용은 미국 기자 맬컴 글래드웰의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의 「위험의 총량 : 챌린저 호 폭발 사고의 또 다른 진실」에 요약되어 있다.


① 스리마일 섬 사고는 냉각수를 거르는 거대한 필터가 막히면서 시작됐다. 사실 이 문제는 드물게 발생하는 것도, 심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② 필터가 막히면서 습기가 공조 시스템으로 새어 들어가 2개의 밸브를 작동시키는 바람에 냉각수가 차단되면서 문제가 커지고 말았다.

당시 스리마일 섬 발전소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한 비상 냉각 시스템이 있었지만 ③ 그날은 웬일인지 비상 냉각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밸브가 열리지 않았다. 더구나 ④ 밸브가 닫혔음을 알리는 표시등이 그 위에 있던 스위치에 달린 수리 기록표에 가려져 있었다. 그래도 세 번째 안전장치인 압력 조절 밸브가 작동했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⑤ 공교롭게도 압력 조절 밸브는 고장이 나 있었다. 닫혔어야 할 압력 조절 밸브는 계속 열려 있었고 그 사실을 알리는 계기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엔지니어들이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원자로의 (노심이) 용융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이처럼 스리마일 섬 사고는 다섯 가지 이상의 문제가 겹치면서 일어났다.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301쪽)


자, 어떤가? 그렇다. 그 날 스리마일 섬 핵 발전소와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지독히’ 운이 없었다. 하나씩 일어났으면 대수롭지 않게 대응했을 일들이 '우연히' 여러 개가 겹치면서 예상치 못한 상호 작용을 통해 거대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은 일상생활에서도 아주 많다.

나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정오까지 보내야 할 중요한 글이 있었다. 그런데 ① 문서를 집 컴퓨터에 저장만 해 두고 가져오지 않았다. ② 오전에는 대개 집에 있던 동생도 그날은 일찍 학교로 나갔다. ③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탔는데 길이 막혀서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④ 얼른 집에 달려갔더니 주머니에 열쇠가 없었다. 아침에 열쇠를 챙기지 않고 나온 것이다. ⑤ 집을 잠그고 나간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수업 중인지 휴대 전화를 꺼 놓은 상태였다. 결국 나는 강제로 문을 따고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이미 오후 1시였다. 결국 나는 마감을 지키지 못했다.

사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이렇게 서너 개의 불운이 겹쳐서 때로는 심각한 결과를 낳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공학 구조물 중 하나인 핵 발전소에서 스리마일 섬 사고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페로는 앞에서 언급한 책에서 스리마일 섬 사고와 같은 재난을 ‘정상 사고(Normal Accident)’라고 부른다. (‘정상 사고’는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의 원서 제목이다.) 페로가 보기에, 핵 발전소와 같은 복잡한 인공물이 작동하는 과정 속에서는 항상 사소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고 그런 문제들이 겹쳐서 발생하는 사고는 피할 수 없다.


사고가 발생했던 스리마일 섬의 제2원자로 제어실 John G. Kemeny et al, U. S Government/wiki


 


 

 


우연한 실수가 낳은 참사: 체르노빌 사고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베이징에서 나비가 날개를 한 번 펄럭이면 그것 때문에 뉴욕에서 폭풍우가 친다는 ……. 나비의 날갯짓 같은 미세한 변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나게 증폭돼 뉴욕에서 폭풍우를 일으키는 것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강조한 과학 용어다.

1961년 겨울,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MIT 과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츠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성능이 좋은 컴퓨터로 기상 예측 모형을 시험 중이었다. 마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지구와 행성의 운동 경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정확한 법칙만 발견한다면 날씨를 예측하는 일도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컴퓨터는 그 강력한 도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로렌츠는 몇 달 전에 한 번 작업했던 기상 예측 시뮬레이션을 다시 한 번 검토하기로 한다. 1분 1초가 아까웠던 그는 지름길을 택했다. 이전에 출력한 데이터의 초기 조건을 컴퓨터에 직접 입력한 것이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당시만 하더라도 엄청났던 컴퓨터 소음을 피해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돌아온 그는 깜짝 놀랐다.

시뮬레이션 결과가 애초와 달라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컴퓨터에 직접 입력한 숫자들이 문제였다. 애초 숫자는 0.506127과 같은 소수점 이하 여섯 자리였는데, 로렌츠는 그 중에서 0.506처럼 소수점 이하 세 자리만 입력했다. 1000분의 1 정도의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다. 바로 나비 효과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이 나비 효과는 이후에 ‘카오스(chaos)’ 이론으로 정립된다. 그 핵심은 나비 효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초기의 미세한 변화가 결과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런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기 조건이 조금만 달라져도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바로 1986년 4월 26일의 체르노빌 핵 발전소 사고가 그랬다. 사실 29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날 체르노빌 핵 발전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구)소련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은폐했을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여기서는 현재까지 공개된 사실을 놓고서 사고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해 보자. 당시 (구)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체르노빌 4호기는 1983년 12월에 가동을 시작해 고작 3년도 안 된, 최신식 핵 발전소였다. 4월 25일 발전소 측은 체르노빌 4호기를 놓고서 작은 실험을 계획했다.

이날 실험은 핵 발전소의 증기 터빈이 원자로가 멈추고 나서도 관성에 의해서 얼마나 더 돌아가는지, 그래서 전기를 얼마나 더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보려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런 실험을 왜 했을까? 사정은 이랬다. 체르노빌 4호기는 원자로가 멈췄을 때, 냉각 장치 등을 가동할 수 있는 비상용 발전기가 있었다.

그런데 발전소 측은 원자로가 멈추고 나서 비상용 발전기가 전력을 생산하기까지 1분 정도의 시차가 생긴다는 사실을 걱정했다. 그러니까 이 1분 동안 원자로가 멈추더라도 관성에 의해 증기 터빈이 계속 돌아서 사용 가능한 수준의 전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실험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예상했던 것보다 원자로의 출력이 훨씬 더 낮아졌다. (현재로서는 노동자의 조작 미숙이 유력한 이유로 꼽힌다.) 발전소 측은 출력이 더 낮아져 원자로가 멈추는 상황을 막고자 출력을 다시 높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원자로의 핵분열을 조절하는 제어봉도 수동으로 제거했다. (사고를 부르는 위험한 조치였다!)

이때부터 파국이 시작되었다. 원자로의 출력이 낮아지자 원자로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펌프로 가던 전기의 양이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냉각수의 양이 줄어들면서 원자로가 과열되기 시작했다. 열 받은 원자로의 내부 압력이 높아지자 낮았던 출력이 갑자기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발전소 직원은 다시 원자로의 출력을 낮추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원자로의 출력을 낮추려면 제어봉을 다시 집어넣어야 하는데 원자로는 그 시간(약 18초)을 참지 못했다. 원자로의 출력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발생한 열 때문에 냉각수까지 모조리 증기로 변했고 내부의 압력은 계속 높아졌다. 결국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4분쯤 압력을 이기지 못한 원자로가 ‘펑’ 하고 폭발했다.

원자로 내부와 외부의 사소한 조건의 변화가 방사성 물질의 외부 유출을 막고자 설치된 원자로 천장 덮개를 날려 버릴 정도의 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원자로에서 나온 증기가 1000킬로미터 상공으로 치솟았고, 거의 1000톤에 가까운 방사성 물질이 건물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나비 효과의 결과는 너무나 끔찍했다.


 

천장 덮개가 날아간 체르노빌 제4원자로 IAEA Imagebank/flickr


 


 

 


귀찮은 문제가 낳은 참사: 챌린저 호 폭발 사고


그렇다면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는 어떤가? 그 사고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나기 삼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혹시 우주 왕복선인 챌린저 호 폭발 사고를 기억하는가? 1986년 1월 28일 발사 후 73초 만에 산산조각나면서 승무원 일곱 명이 전원 사망한 그 비극적인 사건 말이다. 우주 비행사가 아닌 37세의 여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가 이 사고로 사망해 큰 충격을 주었다. 나도 텔레비전에서 활짝 웃고 있는 매콜리프의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챌린저 호 사고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져 있다. 우주 왕복선을 발사할 때 추진력을 더해 주는 로켓 부스터의 틈새를 막는 고무 부품인 오링(O-ring)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당일 아침의 추운 날씨 때문에 고무로 만들어진 오링이 탄성을 잃었고, 이 때문에 연결 부위로 뜨거운 분사 가스가 새어 나오면서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챌린저 호 사고는 전형적인 ‘인재’ 같다. 그러나 다이앤 본은 『챌린저 호 발사 결정: 미국 항공 우주국의 위험한 기술과 문화, 그리고  일탈(The Challenger Launch Decision: Risky Technology, Culture and Deviance at NASA)』에서 또 다른 진실을 보여 준다. 이 책은 번역되지 않았지만, 『불확실한 세상』에 실린 김명진의 글 「실험실을 벗어난 과학 기술, 확대된 불확실성」과 글래드웰의 책에서 그 핵심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의 엔지니어들은 우주 왕복선이 처음 발사되기 훨씬 전인 1977년부터 오링의 틈새 문제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주 왕복선 발사 시 생기는 오링 틈새의 크기를 알아내기 위해 지속적인 실험을 진행했고, 실험 결과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힘든 협상을 거쳤다.

그 결과 그들은 오링의 틈새와 그로부터 빚어질 수 있는 손상이 ‘수용 가능한 위험(Acceptable Risk)’이라고 보고 우주 왕복선의 발사를 추진했다. 그리고 1981년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우주 왕복선을 성공적으로 발사하는 과정에서 오링이 손상된 사례가 때때로 발견되기는 했지만, 그러한 오링의 손상은 우주 왕복선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았다. (『불확실한 세상』, 302쪽)

 

 

 

 


심지어 발사 당일 아침에는 엔지니어들 사이에 토론도 있었다. 몇몇 엔지니어들이 오링 손상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지만, 그전에 훨씬 더 손상이 심했을 때도 우주 왕복선을 성공적으로 발사시켰던 다수의 관리자, 엔지니어들은 그런 의견을 묵살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본은 이렇게 말한다.


챌린저 호 발사에 이르는 결정은 규칙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런데 과거에 단 한 번도 잘못된 적 없던 문화, 규칙, 절차, 규범이 이번에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챌린저 호 폭발 사고는 간부들이 비도덕적인 계산을 하기 위해 규칙을 어겨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규칙을 따른 끝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305쪽)


한번 생각해 보자. 1987년에 챌린저 호는 이미 세 차례나 발사에 성공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낳아야 하는 엔지니어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성공이 반복될수록 ‘수용 가능한 위험’의 대상을 더욱더 늘렸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되뇌던 이런 생각을 공유했을 것이다. ‘직접 해 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잖아!’

어디 오링뿐이었겠나? 우주 왕복선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부품 중에는 오링처럼 ‘수용 가능한 위험’을 안고 있는 것들이 수없이 많다. 설사 오링의 틈새 문제를 많은 비용(!)을 들여서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제2, 제3의 문제가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운이 안 좋았을 때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후쿠시마 핵 발전소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사고가 난 발전소는 1971년부터 무려 40년간 가동 중이었다. 물론 그 동안에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았지만, 결정적인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지난 40년간 핵 전문가, 발전소 노동자는 알게 모르게 ‘수용 가능한 위험’의 숫자를 늘렸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후쿠시마 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었을까?


 

챌린저 호 폭발 사진 NASA/wiki


 


 

 


잠재적 문제가 낳은 참사: 후쿠시마 사고


후쿠시마 핵 발전소가 지진 해일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뜬금없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떠올렸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금문교는 1937년에 세상에 등장했다. 거센 조류, 짙은 안개, 험한 지형 등 온갖 난관을 뚫고 건설된 이 다리를 미국 토목학계에서는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는다.

1937년 5월 27일, 20만 명의 시민이 모여서 진행한 개통식을 보면서 엔지니어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20만 명이 다리 위에서 자유롭게 거니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엔지니어들은 50년이 지나고 나서야 자기들이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위험을 알게 된다.

1987년 금문교 개통 50주년을 맞아서 샌프란시스코 시 정부는 다리를 오가는 차량을 통제하고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시민에게 다리를 전면 개방했다. 새벽부터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구름처럼 다리로 몰려들었다. 다리의 양끝에서 출발한 시민들이 다리 가운데서 만났을 때에는 다리 위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모두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림짐작해도 약 25만 명의 시민이 다리 위에 서 있었다. 금문교는 지난 50년 동안 버텨 왔던 어떤 무게보다 훨씬 많은 무게를 버텨야만 했다. 정말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리 중간 부분이 3미터나 아래로 축 쳐졌고, 다리를 매단 케이블 몇 가닥이 이미 느슨해진 상태였다.

만약 그때 누군가가 “다리가 무너진다!” 하고 외마디 외침이라도 질렀다면, 수십만 명이 그대로 수장되는 대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람은 없었고(사실, 다리 위에 있던 사람들은 위험한 상황인지 몰랐다!), 사람들이 우왕좌왕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없어서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미국의 엔지니어들은 금문교가 개통된 지 50년이 지나서야, 설계 시 전혀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십 만 명의 시민이 수장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감수하고서야, 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 있었던 금문교의 숨은 결함이 밝혀진 것이다.


사실 현대의 인공물을 둘러싼 온갖 사연을 살펴보면, 이런 일은 부지기수입니다. 헨리 페트로스키가 『인간과 공학 이야기』에서 강조했듯이, 안타깝게도 대다수 엔지니어들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배웁니다. 그래서 마이크 마틴과 롤랜드 신진저는 아예 이런 과정을 ‘사회적 실험’이라고 부릅니다. (『불확실한 세상』, 299~300쪽)


핵 발전소, 우주 왕복선, 다리가 안전하게 제 역할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이를 사회적 실험이라고 한다.) 아무리 사전에 검사를 많이 하더라도 최종 검사는 그것이 사회 속에 던졌을 때에서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최종 검사는 금문교의 예처럼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대참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후쿠시마 사고 후에 일본의 핵 전문가들은 땅을 치며 후회했을 것이다. ‘지진 해일이 핵 발전소를 덮쳐서 발전소의 모든 전기가 끊어지는 상황에 대비했어야 했는데 …….’ 하고 말이다.

글쎄, 어떤 방법이 있었을까? 바닷가의 핵 발전소를 다 폐쇄해야 했을까? 만약의(?) 위험에 대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해일이 덮쳐 정전되더라도 냉각 기능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핵 발전소를 개조라도 했어야 했나? (물론 불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지금 핵 발전소 중에서 걱정 없이 가동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라도 남겠는가?


 

이걸 어떻게 막아? Ben Salter/flickr


 


 

 


핵 발전소 사고의 불편한 진실


이 시점에서 핵 발전소 사고의 불편한 진실을 언급해 보자. 혹시 앞에서 살펴본 1979년 스리마일 섬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사고,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약 30년 새 일어난 세 핵 발전소 사고를 꿰뚫는 공통점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놀랍게도 세 사고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앞에서 살폈듯이 세 사고의 원인은 똑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마찬가지로 미국, (구)소련, 일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고가 일어난 배경 역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일본은 재난이나 재해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방비를 갖춘 나라로 알려져 있었는데도 후쿠시마 사고를 막지 못했다.

핵 발전소가 무서운 진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보통 과거에 일어난 사고를 염두에 두고서 각종 안전장치를 덧붙이곤 한다. 스리마일 섬, 체르노빌, 후쿠시마로 이어지는 지난 30년도 그랬다. 하지만 사실 세 사고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네 번째 사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까? 이 질문에 답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무섭다.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청와대까지 나서서 “국내의 핵 발전소는 안전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의 핵 발전소는 일본보다 안전장치를 훨씬 더 많이 해 놓았기 때문이란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핵 발전소 바로 밑에서 진도 6.5의 지진이 나도 끄떡없다.” 그렇다면 만에 하나 진도 7.0 이상의 지진이 나면 어찌 되는 것인가?

후쿠시마 사고를 초래한 진도 9.0의 지진과 14미터를 초과하는 초대형 해일은 일본에서도 발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스리마일 섬 사고, 체르노빌 사고, 챌린저 호 사고,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를 살펴보면, 이런 호언장담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 알 수 있다. 현대의 위험 사회에서 대형 사고는 이렇게 발생한다.

대형 사고는 평소에 통제가 가능했던 사소한 문제들이 겹치면서(스리마일 섬 사고), 미처 예상치 못한 초기 조건의 변화가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면서(체르노빌 폭발 사고), 평소에는 위협이 아니었던 귀찮은 문제가 갑작스럽게 불거지면서(챌린저 호 사고),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잠재적 문제들이 드러나면서(후쿠시마 사고) 비롯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얘기를 듣고서 이렇게 푸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사는 방법뿐인가?" (독일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바로 이 점을 포착해 현대 사회를 ‘위험 사회’로 규정했다.)

스리마일 섬 사고, 챌린저 호 사고, 후쿠시마 사고는 분명히 우리가 만든 세상이 첨단 기술의 실패가 낳은 재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 곁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위험을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페로는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에서 위험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 첫째는 대단치 않은 조치만으로도 감소시킬 수 있는 위험, 둘째는 대응하는 데 중대한 노력을 요구하는 위험, 셋째는 어떤 편익도 훨씬 능가하는 위험이다. 일단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가지 인공물을 놓고서 이것이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따져 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첫 번째, 두 번째의 경우에는 페트로스키가 지적했듯이 실패로부터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위험을 줄여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고서도 지난 5일 낚시 어선 돌고래 호 사고가 발생한 것을 보라!) 그리고 세 번째 위험의 경우에는 그것을 폐기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를 가진 시민들 사이의 논쟁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현대 과학 기술이 낳은 위험은 우리에게 또 다른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 세계에서, 또 한국에서 핵에너지를 둘러싼 대논쟁이 벌어진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자, 핵에너지는 페로가 말한 세 가지 위험 중 어디에 속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에너지, 책책!

☞「위험의 총량 : 챌린저 호 폭발 사고의 또 다른 진실」(『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맬컴 글래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김영사, 2010년)

맬컴 글래드웰이 <뉴요커The New Yorker>에 실었던 수많은 칼럼과 기고문, 기사 중에서 그를 대표할 수 있는 19개의 꼭지를 주제별로 가려 만든 책이다. 특히 해당 내용이 있는 2부는 사회 현상을 통해 이론을 정립하고 현실을 진단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문제를 다룬다.

☞「실험실을 벗어난 과학 기술, 확대된 불확실성」(『불확실한 세상』, 김명진 외 지음, 사이언스북스, 2010년)

이 책은 정치, 경제, 문화, 생태ㆍ환경, 과학 기술이라는 다섯 가지 영역에서 불확실성의 다양한 얼굴을 찾아내고 그것을 입체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저자 중 한 사람인 김명진은 대중의 신화와 달리 과학 기술이 숙명적으로 내포할 수밖에 없는 불확실성에 주목한다.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찰스 페로 지음, 김태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13년)

이 책에서 저자인 찰스 페로는 원자력 발전소, 화학 공장, 항공기, 선박, 댐, 유전자 조작 등 인간이 만든 복잡한 시스템은 참사의 위험, 다시 말해 아무리 안전장치를 덧대도 피할 수 없는 사고 가능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인간과 공학 이야기』(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최종준 옮김, 지호, 1997년)

17개의 공학 기술 에세이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단순 장난감 새총에서부터 석유 시추선, 핵발전소 등에 이르는 공학 구조물, 컴퓨터, 심지어 문학 작품에서 발생하는 실패 사례를 통해 공학이 무엇인지, 엔지니어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성공적인 설계를 위하여 실패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다음 시간에는 8편 「후쿠시마 산 먹거리는 괜찮을까?」에서 방사능 물질의 위험성, 특히 방사성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그에 대한 논란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 ⑧ 방사선 오염 물질을 먹이는 나라

라돈 온천이 몸에 좋고 특히 관절염이나 신경통 같은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 보셨을 텐데요. 하지만 이 라돈 또한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방사선을 내뿜는 방사성 물질이랍니다. 라돈 온천이 몸에 좋다는 의견은 극미량의 방사선량은 괜찮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요. 그렇다면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한 지 3여 년이 지난 지금, 후쿠시마 산 농수산물은 먹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또한 최근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선이 갑상선 암 발병과 연관성이 있다는 정부 보고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방사성 물질이 인간에게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과 학설이 난무하면서 우리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습니다.

「강양구의 에너지 톡톡」은 21세기 ‘대전환의 시대’에 중요한 화두인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프레시안》의 과학·환경 담당 기자인 강양구 기자와 함께 이야기하는 연재 게시물입니다. 지난 시간의 「후쿠시마 사고는 피할 수 없었다」에 이어 이번 시간에는 모든 이들이 건강과 관련하여 궁금해 하실 방사성 물질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핵 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키는 문제인 방사성 물질, 그것이 위험한 ‘진짜 이유’를 알아보는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후쿠시마 사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의 연재에서 살펴봤듯이 핵 발전소는 ‘위험 사회’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핵 발전소 사고를 그토록 무서워하는 것일까? 흔히 핵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서 있었던 것처럼 핵폭탄이 폭발하는 상황을 연상하곤 한다. 하지만 절대로 핵 발전소가 ‘펑’ 하고 폭발하는 일은 없다.

핵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우라늄에는 방사성 우라늄(우라늄-235)이 아주 적은 농도(약 2~5퍼센트)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쿠시마 사고처럼 핵 발전소가 통제 불능이 되더라도 도시 하나를 날려 버릴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며 원자로가 폭발할 위험은 없다. 물론 통제 불능이 된 원자로 내부의 에너지는 그것의 격납고를 날려 버리기에 충분한 폭발력을 갖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에서 핵 물질을 감싸고 있던 원자로 격납고가 파괴되어 내부에 있어야 할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또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역시 격납고가 파괴되어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유출되었다. 그런데 대중의 오해와는 달리 이 두 건의 폭발 사고는 핵분열 반응에 의한 폭발 때문이 아니었다.

체르노빌 사고에서는 가열된 원자로가 냉각수 등을 기화시켜서 내부의 수증기 압력이 높아졌고, 결국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한 격납고가 폭발했다. 후쿠시마 사고도 비슷했다. 냉각 장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원자로가 열을 받자(1200도 이상) 핵연료에 포함되어 있던 지르코늄이 수증기와 반응해 수소를 내놓았다. 이 수소와 수증기의 압력이 결국 격납고 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격납고가 폭발할 때 쏟아져 나오는 물질 가운데는 플루토늄, 세슘, 요오드, 스트론튬 같은 유해 방사성 물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외부로 나온 방사성 물질은 일본의 세슘 분유와 시금치를 비롯해 후쿠시마 해역과 태평양의 방사능 수산물처럼 일상생활 곳곳으로 들어와 오랫동안 치명적인 위험을 불러일으킨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핵 발전소 인근 반경 30km 이내는 지금까지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D. Markosian/wiki



 


세슘을 무서워해야 하는 까닭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 주는 예를 하나 들어 보자. 2006년 11월 23일, 영국 런던에서 한 남자가 죽었다. 그는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러시아 스파이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였다. 2006년 11월 1일, 초밥을 파는 식당에서 쓰러지고 난 지 23일 만이었다. 사인은 놀랍게도 …… 방사선 중독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9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이 암살 사건의 배후에 어떤 나라, 어떤 기관이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영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는 서로를 배후로 지목하는 상황이다. 비밀은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 양국 정보기관의 기밀문서가 공개되고 난 뒤에야 밝혀질 것이다. 아무튼 리트비넨코 암살에 쓰인 것이 바로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210이다.

폴로늄-210의 반감기는 약 100일이다. 암살범들이 반감기가 약 8일인 요오드-131이나 약 30년인 세슘-137 대신 폴로늄-210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암살 준비부터 실행까지의 기간을 염두에 두면 반감기 100일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었을까?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렸던 방사성 물질인 세슘-137도 마찬가지다. 이 방사성 세슘이 몸속으로 들어오면, 그것은 사람의 몸속에서 안정적인 물질인 바륨-137로 바뀔 때까지 계속 방사선을 방출한다. 바로 이 방사선이 몸속의 세포를 파괴하거나 변형시키면 백혈병 같은 혈액 암이나 갑상선 암 같은 고형 암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몸속으로 흡입된 방사성 세슘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방사선을 방출하는 것일까? 이 자리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를 고등학교 과학 시간이나 언론을 통해서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반감기란 방사성 물질의 방사능이 원래 값의 절반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확률적으로 계산한 것이다.

세슘-137의 반감기는 약 30년이다. 즉 30년이 지나야 방사성 세슘의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30년이 지나도 방사성 세슘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전히 나머지 절반은 방사선을 내뿜을 것이기 때문이다. (컵을 가득 채운 물을 30년에 걸쳐서 마신다고 가정해 보자. 30년 후에도 여전히 컵에는 물이 반이 남아 있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으로 유명한 리처드 멀러에 따르면, 보통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를 30번 정도 거쳐야 완전히 방사능을 잃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방사성 세슘이 안전해지려면 900년(30년×30번)이 걸리는 셈이다. 이론적으로는 일단 방사성 세슘이 몸 안으로 들어오면, 그것은 방사선을 내뿜으며 평생 우리 몸을 공격한다.

다행히 사람은 몸속의 위험한 물질을 끊임없이 밖으로 배출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몸속으로 들어온 방사성 세슘은 원래의 반감기와는 상관없이 몸 밖으로 배출될 수도 있다. 보통 방사성 세슘의 절반 정도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10일 정도다.


에너지, 책책!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리처드 멀러 지음, 장종훈 옮김, 살림, 2011년)

지도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고급 과학 지식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사실과 아이디어, 대통령이 결정을 내릴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핵심적인 과학 상식들을 정리한 책이다.



 


방사성 물질은 얼마나 위험한가?

그렇다면, 후쿠시마 핵 발전소에서 발생해 한반도로 유입된 방사성 물질은 얼마나 위험한 것일까?

유해 방사성 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위험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일정 수준 이상의 방사선량에 단기간 노출되었을 때 발생하는 위험이다. 흔히 '급성 방사성 증후군'이라고 불린다. 이 경우, 방사성에 노출되고 나서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되며, 출혈이 생기다 심해지면 사망에 이른다.

유해 방사성 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또 다른 위험은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10~20년 후에 암을 유발하거나, 혹은 유전자 변형을 일으켜 다음 세대에 영향을 주는 경우다. 알다시피, 이 위험은 '매우’ 불확실하다. 통계적으로는 어른보다는 어린이가, 남성보다는 여성이 방사성 물질의 독성에 취약하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특히 100밀리시버트(mSv, 방사능 물질에 의한 신체의 충격량, 즉 피폭 정도를 나타내는 단위) 이하의 낮은 방사선량에 노출되었을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고 있지 않다. (일반인의 노출 방사선량은 연간 1밀리시버트 이내, 핵 발전소 종사자 등은 5년간 100밀리시버트 범위 내에서 연간 20밀리시버트 이내로 권장된다.)

다만 국제 방사선 방호 위원회(ICRP), 미국 국립 과학원 등 다수의 보건 기구는 '암이나 유전 질환이 생길 위험은 노출된 방사선량에 비례해서 커진다.'라는 데 의견을 모은다. 이런 의견을 염두에 두면 극미량의 방사선량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상태(연령, 성별, 유전적 특성)에 따라서 암 발생 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기형 새끼 돼지 Vincent de Groot /wiki




방사성 물질이 몸에 좋다는 사람들

극미량의 방사선량의 위험이 하도 불확실하다 보니, 실제로 극미량의 방사선량은 몸에 좋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주로 핵 발전 산업과 이해관계를 갖는 전문가들이 이런 과감한 주장을 펼친다. 선진국 중에서는 핵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가 전체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프랑스 보건 당국이 이런 견해를 공식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선진국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을 부정한다.

요약하면, 100밀리시버트 이하의 아주 적은 방사선량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 대목에서 '사전 예방의 원칙'이 중요하다. 아무리 적은 방사선량이라도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니, 바로 이 점을 고려해서 공중 보건 정책을 수립해야 사회적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여기서 방사능 기준치를 둘러싼 오해도 살펴보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ICRP는 1년에 1밀리시버트를 방사선량 노출의 기준으로 삼았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 기준이 ‘사회적 합의’라는 사실이다. 즉 1년에 1밀리시버트까지만 방사선량에 노출되면 '절대 안전하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원칙적으로는 방사선량에 전혀 노출이 안 되어야 한다. (즉 0밀리시버트여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 최소한의 목표치, 즉 사회적으로 관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1밀리시버트를 정해 놓은 것이다. 1년에 1밀리시버트의 방사선량에 노출되면, 암 환자가 발생할 확률은 1만 분의 1~10만 분의 1 정도다. 대략 이 정도면 한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 수준으로 보고 정해 놓은 것이 바로 방사능 기준치이다.

이것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4800만 명 전 국민이 연간 1밀리시버트의 방사선량에 노출되면, 480(10만분의 1)~4800(1만분의 1)명의 암 환자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만약 100마이크로시버트(즉 0.1밀리시버트)라면, 암 환자가 48~480명의 암 환자가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개인이야 위험에 대한 감수성이 어떤지에 따라서 무시할 수도 있는 수치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수천 명의 암 환자가 추가로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이다. 방사능 기준치라는 것을 맹신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라돈 온천이 몸에 좋다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Pat (Cletch) Williams/flickr



 


후쿠시마산 먹을거리는 안전할까?

그렇다면 후쿠시마산 농산물이나 수산물은 안전할까? 사실 정확히 모른다. 자연으로 유출되는 방사성 물질은 여러 요인에 의해서 중화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자연의 자정 능력이다. 태평양으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은 희석되기 마련이어서 당장 태평양에서 잡은 참치가 방사성 물질의 영향을 받았다고 걱정할 이유는 없다. 

2011~2014년 후쿠시마 먹을거리를 검사한 일본 정부는 첫 해(2011년) 방사능 기준치를 넘는 식품이 3.3퍼센트에 불과하다는 발표를 했었다. [바로가기] 하지만 이는 확률의 장난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1000건 중에서 33건, 1만 건 중에서는 330건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후쿠시마 먹을거리 1만 개가 있으면 기준치가 넘는 330개가 사람 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일본에서는 텔레비전에서 후쿠시마 농산물 시식 꼭지를 진행하던 앵커가 급성 백혈병에 걸려서 일본 열도를 불안하게 만든 사례도 있었다. 물론 이 앵커가 후쿠시마 농산물 때문에 급성 백혈병에 걸렸는지 혹은 전혀 다른 요인이 따로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불확실성이다.)

결론적으로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점증하는 수산물에 대한 불안은 태평양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생각해 보면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많은 시민이 후쿠시마 해역은 물론이고 (해류 탓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본과 한반도 인근에서 잡힌 수산물을 조심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반응은 아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꾸준한 샘플 조사를 통해서 국민에게 정보를 계속해서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 정부의 압박에 휘둘려서 후쿠시마나 그 주변에서 생산된 먹을거리의 수입 규제를 푸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불확실하긴 하지만 위험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먹을거리를 왜 굳이 수입해야 하는가? 후쿠시마 먹을거리를 못 먹어서 우리가 굶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생각해 보자. 후쿠시마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은 핵 사고의 심각한 위험을 하나 더 말해 준다. 바로 ‘불안’이다. 핵 사고는 끔찍하지만 불확실하기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을 자극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안전하다고 믿는 것보다 불안하다고 믿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저렇게 망가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불안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핵 발전소를 늘리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만약 산둥 반도의 핵 발전소가 폭팔해 ‘황사’ 대신 ‘핵사’가 날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핵 물질이 한반도에 도달하기도 전에 불안이 바로 패닉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럼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가 과연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나 있을까?


당신의 식탁은 안녕하십니까? jetalone/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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