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러시아 이야기

목공예술과 석공예술의 절묘한 조화

구름위 2014. 9. 1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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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개축, 바실리 성당 건축(16세기)

 

 

16세기의 붉은 광장
크렘린 동쪽 벽을 따라 펼쳐져 있다. 멀리 성바실리 대성당이 보이고, 주위 건물들이 잘 꾸며져 있는 가운데 장이 서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러시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으로 모스크바의 크렘린이 있다. 견고한 성벽, 양파 모양의 돔을 가진 여러 개의 성당, 화려한 궁전, 이반 종루라 불리는 높은 탑이 돋보이는 모스크바의 크렘린은 오랜 동안 러시아와 소련 권력의 핵으로서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왔다.

 

또한 러시아에서 가장 러시아적인 건축물을 들라면, 대부분 모스크바 붉은 광장 한편에 자리 잡은 바실리 대성당을 꼽는다. 바실리 대성당은 러시아의 전통적인 목조건축술과 비잔틴과 서유럽에서 유입된 석조건축술을 결합시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러시아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모스크바 크렘린이 현재의 외형을 갖추고 바실리 대성당이 건축되는 등, 러시아를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지어진 것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즉 이반 3세에서 바실리 3세, 이반 4세로 이어지는 러시아 전제권력의 확립이다. 왕권이 강화되면서 그와 함께 외형적으로도 모스크바의 격을 높이려는 노력이 경주된 결과다.

 

러시아는 본디 나무가 많은 나라다. 오랜 옛날부터 러시아인들은 나무로 집을 짓고 성을 쌓아왔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목조건축술과 목공예가 발달했다. 그러던 중 10세기에 비잔틴에서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비잔틴의 석조건축술이 들어왔다. 초기에 세워진 교회들은 비잔틴 예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기단이나 돔의 모양과 색깔 등, 러시아적인 특징도 많이 가미됐다.

 

14세기에 지어진 성당들에서는 전통적인 목조건축술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외벽을 흰 돌로 쌓고 그 위에 로마네스크 풍의 양각 장식을 하거나, 지붕 모양을 여러 가지로 변형시킨 것들이 그 예다. 이어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국가의 통일이 빠른 속도로 추진된 15세기 말, 16세기 초에는 유럽 최고의 건축술이 들어와 모스크바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놓는다.

 

1474년 이반 3세는 베네치아에 특사를 보내 이탈리아인 건축사들을 초빙했다. 피오라반티, 솔라리오, 루포, 알레비지오 등의 이탈리아 명장인들은 러시아의 일급 건축가들과 힘을 합쳐 크렘린의 탑과 성벽을 돌로 견고하게 고쳐 쌓고, 궁전도 당당하게 새로 지었으며, 크렘린 안의 유명한 세 성당도 건축했다.

 

이때 지어진 우스펜스키(성모승천) 성당, 블라고베시첸스키(수태고지) 성당, 대천사 미카엘 성당은 크렘린의 성스러운 심장이 됐고, 각각 황제의 대관식 · 결혼식 · 장례식 장소로도 사용됐다. 돌로 지은 이 성당들에는 당시 유럽을 풍미하던 르네상스 양식이 짙게 반영됐는데, 그럼에도 전체적인 외관은 러시아풍을 잃지 않고 있다. 비잔틴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 러시아의 전통적인 목조건축술, 이슬람 양식이 혼합되어 빚어낸 뛰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우스펜스키 성당은 당시 러시아와 그리스의 일급 미술가들이 힘을 합쳐 그린 내부 벽화로도 유명하다. 성화상이 주를 이루는 이 벽화들은 장중한 기풍과 화려한 색채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행해진 대관식에 참석한 귀족과 주교들의 입에서는 절로 감탄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고 한다. "아아, 여기가 바로 천국이로다!" 이후 많은 러시아 성당들이 이 성당을 모델로 하여 지어졌다.

 

이 시기에 정착된 성당의 양파 모양 돔은 이슬람 건축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긴 하나, 러시아인의 소박한 신앙심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양파 형 돔의 뾰족한 끝에 달린 십자가는 러시아인들에게 하늘을 뚫고 구세주에게 다가가는 길잡이였다.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양식의 지붕을 올린 교회당이 등장했다. 목조건축에 쓰이던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돔 대신에 팔각뿔 천막형의 높다란 지붕을 올린 것이다. 그와 더불어, 국가의 통일을 이룩한 자신감과 기쁨을 반영하여 관례에 얽매이지 않은 환상적인 건축물들이 많이 지어졌다. 가장 러시아적이면서도 기상천외한 양식의 바실리 대성당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반 뇌제는 1552년에 볼가 유역으로 진출하여 킵차크 한국의 후예인 카잔 한국을 멸한 후,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성당을 세워 승리의 중개자인 성모 마리아에게 바친다. 이것이 바실리 대성당으로, 1560년에 완공됐다. '바실리 블라젠니(복된 바실리)'라는 이름은 1588년에 성당 북동편 구석에 유로디비(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수도자), 성 바실리의 제실이 증축된 데서 기인했다.

 

바실리 대성당은 단층집처럼 보이는 하나의 커다란 기단 위에 높은 탑 모양의 본채를 짓고, 그 둘레에 비슷한 모양의 교회 8개를 배치한 독특한 형태의 성당이다. 건립될 당시에는 색채와 형태가 지금처럼 복잡하진 않았으나 17세기에 돔의 모양을 바꾸고 바깥 복도에 뾰족한 지붕을 덮어 화려하게 채색했다.

 

9개 교회 모두 넓은 팔각기둥 위에 좁은 팔각기둥이 놓여 있는 모양이고, 주변의 8개 교회는 지붕이 양파 모양이나 중앙 교회만은 천막형이다. 높이와 모양이 각기 다른 둥근 지붕들이 각 교회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강조한다. 밝고 다양한 색채와 풍부한 장식들도 그 강렬한 인상을 북돋운다.

 

이 성당의 아름다움을 잘 대변하는 것으로, 바실리 대성당과 이반 뇌제에 얽힌 일화 하나가 전해진다. 완성된 바실리 대성당을 본 이반 뇌제는 매우 흡족했다. 화려한 색채, 다채로운 형태, 물감과 돌의 완전한 조화, 이 모든 것이 차르의 마음에 쏙 들었다. 괴팍한 차르는 성당을 설계한 두 러시아인 건축가를 불러 그 재능을 칭찬해주었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신하에게, 다시는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만들지 못하도록 두 사람의 눈알을 도려내라고 명했다.

 

바실리 대성당은 목조건축술을 석조건축에 활용하여 절묘하게 조화시킨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함께 석조건축술의 영향을 받은 목조건축도 크게 발전했다. 모스크바 교외에 세워진 콜로멘스코예 궁정과 북부의 키지 섬에 세워진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소박한 나무로 지어졌으면서도 보는 이들의 넋을 빼앗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