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살라미스 해전

구름위 2013. 12. 1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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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 해전 - 기원전 480년 9월

 

 

 

 

크세르크세스 1세의 페르시아 원정군은 테르모퓔라이를 돌파했다. 아르테미시온에서 철수한 그리스 함대는 아테네의

요청에 의해 팔레론 만의 살리미스 섬에 함선을 집결시켰다. 여기에 사전에 트로이젠에 집결중이던 다른 그리스 함대도 합류해

총 지휘관으로 에우리피아데스가 선출되어 전장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

 

테르모퓔라이, 아르테미시온의 방위선이 돌파당함으로 그리스군은 사실상 아티카를 포기해버렸다. 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함락의 보고가 들어오자 전군은 공황상태에 빠져 대부분의 장군들은 이스트모스에서 결전장을 삼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는 지휘관인 에우리피아데스를 방문하여 다른 주장을 제안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리미스의 함대집결을 풀면 각 도시의 함대들은 모두들 고향으로 되돌아 가버려 재집결이 어렵다고

거듭 주장했다. 다음날 아침, 다시 열린 회의에서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에서 해전을 강력히 주장했다.

에우리피아데스는 아테네 함대의 이탈을 우려하여 살라미스에서 해전을 결정했지만 코린토스의 아데이만토스는 이에 강하게

반대하여 회의는 결렬되었다.

 

토론이 한창일 때, 테미스토클레스는 비밀리에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사자를 보내 그리스 함대가 이스트모스에

대기중이라 말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와 내통한 것은 전쟁에서 패할 경우 활로를 확보하기 위함이었고 또 페르시아

함대를 살라미스로 유인해내기 위함도 있었다.

 

페르시아 측은 테미스토클레스의 말을 믿고 한밤에 병사를 프슈타레이아 섬에 상륙시켜 살라미스 섬의 퀴노슬라 반도에서

그리스 본토까지의 해협을 선단으로 봉쇄했다. 더우기 데오도로스에 의해 이집트 함대 200척이 살라미스 섬의 바깥측을 우회하여

메갈라에 접하는 수로를 봉쇄했다.

 

그리스 함대는 페르시아 함대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이기나에서 지원을 받아 온 아테네의 아리스테이데스가

회의에 출석해 그리스 함대가 완전히 포위되었기 때문에 전투준비를 서두르라고 권고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리스테이데스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테네스의 군선 1척이 페르시아에서 이탈해 그리스 쪽으로 도망쳐 온 일이 일어났기에 사태를 파악한 그리스 측도

전투준비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군선인 3단도선(三段櫂船), 사진은 모형으로 살라미스 해전 당시의 주력함이었다.

 

 

 

 

 

 

 

당시 그리스군의 함선은 삼단도선이 380척, 그 외 선박 6척을 포함해 총 386척이었다. 이에 반해 페르시아 측은

삼단도선 684척 외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 일대에서 끌어모은 여러 종류의 선박 수십 척을 보유하고 있었다.

페르시아는 군선 말고도 군마수송선 및 보급선 등도 다량 보유중이었다고 한다.

 

기원전 480년 9월 20일(29일이란 말도 있다) 아침, 테미스토클레스는 병사들에게 훈시를 한 후 그리스의 모든 함대를

정박지에서 일제히 출격시켰다. 페르시아 함대는 그리스 함선의 출격을 보곤 퀴노슬라 반도를 넘어 살라미스 수역으로

침입해왔다.

 

그리스군은 페르시아 함대를 확인하고는 노를 반대로 저어 페르시아 함대와는 반대쪽 방향인 살라미스 섬으로 상륙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이에 대해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테미스토클레스가 수로에 일정 시간이 되면 부는 바람(시로코)을 이용하기 위해

페르시아 함대 앞에서 노를 반대로 저어 후퇴해 시간을 끌었다.

 

헤르도토스에 의하면 그리스측은 서쪽에 아테네 함대, 동쪽에 스파르타 함대를 배치했는데 페르시아측은 서쪽에 페니키아 함대,

동쪽에 이오니아 연합함대를 전개시켰다고 한다. 전투가 시작되자 헤르도토스는 두 개의 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테네에 의하면 아테네 군선 1척이 전열에서 이탈해 페르시아 함대로 돌진하자 다른 군선도 이를 구하기 위해 모두 돌격하여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또 아이기나에 의하면 신탁을 받은 아이기나 삼단도선이 페르시아 군선에 먼저 전투를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군의

면전에 한 여성이 나타나 전군을 고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 전투가 살라미스 해역에서 이루어졌는지, 또 모든 세력이

격돌했는가, 그리스 함대가 포위망을 돌파했는가 하는 것은 옛부터 전해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헤르도토스도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세한 사실은 현재도 불명이다.

 

그러나 헤르도토스는 페르시아 함대의 패인을 군선의 혼란과 이탈로 들고 있다. 플루타르코스는 테미스토클레스가 바람을

기다렸다는 기술을 적어 놓은 것을 보면 함선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 높이가 크고 무게가 나가는 그리스 군선에 비해

병사를 적선에 난입하기 위해 중심점이 높은 페르시아 함선은 시로코에 의한 높은 파도 및 일몰 전에 부는 마에스트로라는

서풍에 의해 생긴 높은 파도로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으리라고 추측된다.

 

전투해역도 좁아 대함대를 모두 출격시킬 수 없고 높은 파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경량의 페르시아 함대는

혼란상황에서 육중한 그리스 군선의 선박돌파 전법에 모두 깨어져 태반이 침몰하고 전력에서 이탈하는 선박도 부지기수였다.

이 전투에서 명성을 얻은 것은 아이기나 함대와 아테네 함대였다.

 

아테네의 장군인 아리스테이데스는 살라미스 해안에 포진시켜 둔 중무장 보병을 이끌고 프슈타레이아 섬에 상륙해

페르시아 패잔병들을 전멸시켰다. 패전을 깨달은 크세르크세스 1세는 일몰과 함께 함대를 팔레론 만까지 후퇴시킴으로서

살라미스 해전은 종결되었다.

 

그리스 함대는 이 전투가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크세르크세스 1세는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여 전투를 포기해

마르도니우스에 상륙부대만을 남기고 자신은 페르시아 함대와 함께 본국으로 철수했다. 그리스 함대는 페르시아 함대의

퇴각을 알고는 안드로스 섬까지 추격했지만 여기서 군사회의를 연 후 이후의 대응방안에 논의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바로 크세르크세스를 추격해 헬레스폰토스에 강행군할 것을 주장했지만 에우리피아데스는 크세르크세스의

귀로를 막으면 궁지에 몰린 페르시아측이 결사적으로 반격할 수도 있다고 의견을 냈기에 모두들 이에 찬동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추격하던 아테네 함대를 정지시키고 크세르크세스에겐 전령을 보내 부하에게 명하여 페르시아 함대의 추격을 막았노라고 전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해군의 승리로 인해 페르시아 원정군의 진격은 중지되고 페르시아 전쟁은 교착상태에 이르렀다.

페르시아군이 북쪽에서 후퇴했다고 하지만 아직 그 세력은 건재했으며 이듬해엔 다시 아테네가 점령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의 전의는 점차 흥미를 잃어 이득도 별로 없는 페르시아 원정군은 다시 몰리게 되었다.

 

이 의미는 살라미스 해전이 페르시아 전쟁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으로 페르시아의 기운이 그리스에 밀림을 의미했다.

이 전투의 견인적인 역할을 한 아테네에 있어서도 살라미스의 승전은 강력한 해상국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헤르도토스에 의하면 당시 아테네는 지도적인 입장이 되었고 승전에 공헌한 테미스토클레스는 평정된 안드로스 섬을 점령해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페르시아 및 다른 섬의 도시국가들로부터 금품을 진상받았다고 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함대의 건조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전투 후 외항인 페일라이에우스를 정비해 이곳을 아테네의

성벽으로 삼은 공로를 남겼지만 오만하고 독선적인 태도와 탐욕으로 인해 이를 싫어한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도편추방 및

국가반역죄의 고발을 당해버려 적국인 페르시아로 도망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추방에 의해 고결한 인물로 알려진 아리스테이데스가 아테네의 지도자가 되어 페르시아의 침략에 대비해

폴리스의 연합체인 델로스 동맹을 성립하게 되었다. 그는 함선을 제공하지 않은 폴리스에 대해 대신 상납금을 바치게 했는데

상납금의 대부분은 아테네의 점령지에서 나온 것이었기에 아테네의 해상국가 대두의 자금줄이 되었다고 한다.

 

 

 

 

출처 : 헤르도토스<일리아드>, 플루타르코스<영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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