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상공의 야간 암살 작전
-1956년 수에즈 전쟁 전야
단 한 기의 이스라엘 야간 전투기가 지중해 상공에서 거둔 대 전과를 소개한다.
1956년 이집트의 대통령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이스라엘의 남부항인 에이라트로 들어가는 티란 해협을 봉쇄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이스라엘은 영국 프랑스와 연합하여 이집트를 기습했는데 이스라엘이 Kadesh 작전이라고 했던 이 전쟁은 세계 전사에서는 수에즈 전쟁 또는 2차 중동전이라고 불리운다.
결과는 시나이 반도를 석권한 이스라엘의 대승리였지만 미국과 소련의 간섭으로 철수해야 했고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함에 성공했다.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이겼지만 이집트는 정치적으로 승리한 것이다.
이 풍운 급박한 전쟁 전야, 이집트의 참모 본부의 장군들은 시리아로 날아가 군사 동맹을 맺고 귀환하다가 이스라엘 공군이 단 세 기밖에 보유하지 않았던 영국제 미티어 야간 전투기 중 한 기의 매복에 걸려 격추되었다.
이스라엘 최초의 제트 전투기- 영국제 미티어기
참고로 56년 수에즈 전쟁 전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공군 전력을 살펴 본다.
이집트 공군은 총 210기의 공군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 중 150기가 제트 엔진으로 추진되는 전투기와 폭격기들이었다.
이스라엘은 총 176기의 공군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전투기는 117기였다. 그러나 제트 전투기는 53기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는P-51 무스탕 같은 프로펠라 전투기들이었다.
전력의 핵심인 전투기의 세력 균형은 이집트 대 이스라엘이 3대1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스라엘 제트 전투기들은 영국제 미티어, 프랑스제 우라강, 그리고 역시 프랑스제 미스테르 전투기들이었다. 이스라엘 전투기 중에 그런대로 이집트의 최신형 전투기들인 소련의 MIG-15, 또는 MIG-17 등과 맞설 수 있는 전투기는 프랑스의 미스테르 전투기 16기만 있었을뿐이었다.
1956년 10월 28일 저녁. 이스라엘 공군 사령관 톨코우스키는 간부급 조종사들을 집합시키고 다음날 오후 이스라엘 공수 부대를 시나이 사막에서 수에즈 운하 건너 밀타 패스에 투하하는 공수 작전으로 전쟁이 시작 된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공군에 이미 비상은 걸려 있었고 만반의 전투준비는 완료되어 있는 상태였다. 수에즈 운하를 몰수당하고 화가 난 영국과 프랑스가 개입하므로 그 뒤의 6일 전쟁과 같은 제공권 확보를 위한 선제 공습 임무는 공군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톨코우스키는 짤막하게 개전 결정 사실과 최선을 다해 달라는 정신 훈화만 하고 급히 브리핑 룸을 나섰다. 뒤에 남겨진 브리핑 룸의 조종사들도 흥분된 표정들로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그 자리에 꼭 참석했었어야 할 야간 전투기 편대장이 보이지 않았던 사실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편대장은 그 시각에 중요한 임무를 받고 지중해의 캄캄한 공중을 날고 있었다.
톨코우스키 사령관은 발걸음을 바삐하여 관제실로 향했다. 관제실에 이스라엘 국방군(IDF)의 참모 총장 모세 다얀이 와있었다. 시끄러운 무전기의 단속음과 함께 레이다 화면을 초조하게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관제실이 무거운 긴장감으로 짙게 짓눌려져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이날 아침 개전을 앞둔 전투 준비로 바쁜 톨코우스키에게 극비 전보가 날아왔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시리아 조직망을 통해서 얻은 정보였다.
영국과 프랑스가 개입하고 이스라엘과 맞서게 될 이집트의 나세르는 동맹국이 급히 필요했다. 호전적인 시리아가 그 대상이었는데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가고 이집트의 국방상 아마르 원수가 이끄는 이집트 군 참모 본부 장군들이 동맹 협약에 조인하러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 갔고 업무를 끝낸 이들이 바로 그날 저녁에 다시 같은 항공기편으로 이집트의 카이로로 돌아 갈 것이라는 정보였다.
비밀 전문은 이집트 합참 요인들의 명단과 항공기의 모델명 그리고 중요한 다마스커스 공항의 출발 시간을 담고 있었다. 이들이 탈 항공기는 소련제 일류신(社) 수송기였다.
톨코우스키는 환호하였다. 개전을 앞두고 적국의 국방 장관을 승리의 제물로 삼아 버릴 좋은 기회였다. 그는 잠시 참모들과 상의하고 이스라엘 공군의 다른 기지에서 근무하는 미티어 야간 전투기 편대장 차또 치톤을 호출했다. 차또는 영국제 야간형 미티어 세 기로 편성된 이스라엘 공군의 유일한 야간 전투기 편대장 이었다.
여기서 잠깐 영국제 미티어(METEOR-流星) 전투기를 소개한다.
미티어 전투기는 독일 ME-262 전투기와 함께 제트 전투기의 원조에 속한다.
독일 제트 전투기 Me-262에 대항하기 위해서 1944년 7월에 전선 투입되었던 영국 최초의 제트 전투기 미티어기.
주로 독일 V-1 로케트 등의 격추 임무를 수행해서 제트기 간 전투는 없었다.
2차 세계 대전 중 개발되어 전쟁이 끝나기 직전 영국 공군 일선에 배치되기도 한 이 전투기는 쌍발 엔진을 가지고 있고 20미리 기관포를 네 문 갖추고 있다. 곡선미를 기본으로 하던 영국 전투기 설계의 기본이 그대로 반영되어 스피트화이어와 모스키토와 같은 둥근 곡선들이 특징이다.
제트시대를 열은 원조 전투기의 영예는 얻었지만 급속히 기술이 발전해가던 그 당시의 전투기 세계에서 미티어는 이미 한국 전쟁 때부터는 구식의 색채가 진해진 전투기가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에 의해서 기대를 받고 한국 전쟁에 투입되어 적기 MIG-15기와 격투를 벌여 서로 격추시키고 격추당하였지만 그 성능의 열세가 확인되어 공중전의 주역 자리를 미 공군 F-86에게 내주고 지상 공격에만 쓰이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었다.
이스라엘의 적국 이집트는 이미 1949년 영국에서 첫 전투기로 미티어를 도입하여 이스라엘보다 한걸음 앞선 제트 공군시대를 열었다.
프로펠러 전투기인 P-51밖에 없어서 불안을 느끼던 이스라엘은 전투기 도입을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어느 나라도 이스라엘에게 제트 전투기를 팔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영국이 방침을 바꾸어 1952년 미티어 전투기 14기의 판매를 승인 하였다. 1953년 6월 17일 첫 인도분인 두 기의 미티어가 이스라엘 공군 기지에 도착했을 때 이스라엘 수상 벤 구리온이 직접 환영 행사에 참석 할 만큼 이스라엘은 제트 전투기의 도입을 열망했었다.
미티어들은 전부 신품이었다. 없는 예산 때문에 항상 중고 항공기만 몰아야 했던 이스라엘 조종사들은 무척이나 반갑게 미티어를 환영했다. 나중에 11기를 추가 도입해서 이스라엘 공군의 미티어 기는 25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거래 중에 이스라엘은 영국이 미티어 야간형 전투기를 아랍 쪽에 판매하였다는 정보를 접했다. 2차 세계 대전 중 영국과 독일에서 가해졌던 야간 폭격의 피해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때였다.
더해서 이집트는 야간 폭격이 가능한 IL-28, 경폭격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IL-28 기는 실제로 수에즈 전쟁 중에 이스라엘에 야간 폭격을 하였었다.
이스라엘은 영국에 같은 야간형 전투기의 판매 요청을 했고 영국은 이 양다리 걸치기 거래를 수락했다.
미티어 야간 전투기
수에즈 전쟁이 터지기 전 9월, 주문했던 6기중 3기가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도입에 앞서 8월에 이미 편제가 마무리된 제119 Atalef 야간 요격 편대가 훈련에 들어갔다.
3기로 구성된 야간 전투 편대의 편대장에 앞의 차또가 임명되었다. 나머지 3기는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의 세월이 지난 58년도에 도입되었다.
이 미티어 야간형 전투기의 모델명은 Meteor NF.13 이었다. 일반 미티어 형과 달리 텐덤 형의 복좌 형이고 레이다를 장치한 기수가 훨씬 더 길게 만들어졌다. 후방석에는 레이다 조작 조종사가 탔다.
2차 세계 대전 때의 야간 전투기처럼 기수에 레이다 안테나가 삐죽삐죽 나와 있던 모습보다는 진일보했지만 그 무렵 전투기 레이다는 아직도 초보 수준에 있어서 고장도 잘 났고 오작동도 자주 있었기 때문에 작전 비행을 나가기 전에 매번 미리 한번 이륙해서 레이다를 조절해야 했다. 마치 보병들이 전투 출동 때마다 소총의 영점 사격을 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이날 오후 2시에 톨코우스키는 야간 전투기 편대가 주둔한 기지에서 날아온 차또와 만났다. 그는 작전의 개요를 잘 설명하고 물었다.
‘ 당장 출격 가능한 야간 전투기가 몇 기나 되나’
차또는 대답했다.
“ 두 기는 지금 출격 가능합니다.”
“ 좋아! 가서 준비하고 출격하게! 성공을 비네! ”
저녁 식사 이후 차또는 모든 준비가 완료된 뒤 전투기에 탑승한 채 관제실에서 지시가 올 때까지 기다렷다.
드디어 이집트군 참모본부 요원들을 태운 소련제 수송기 일류신 IL-14가 다마스커스 공항에서 이륙했다는 정보가 들어왔고 즉시 차또에게 출격 명령이 하달되었다. 차또는 정확히 그날 밤 여덟시에 출격했다.
물론 조종사는 차또였고 후방석의 레이다 담당 항법사는 쉬비였다. 체공 시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서 전투기에 연료를 가득 채웠다.
작전은 이집트군의 수송기가 지중해로 진입해서 이스라엘 레이다에 포착되는 이스라엘 하이파 항과 키프러스의 중간 상공에서 격추하기로 되어 있었다.
차또는 이륙하자마자 전투기를 수송기가 다니는 고도 3,000미터로 상승시켰다. 후방석의 쉬비는 좌석 앞의 레이다를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지상의 관제실에서 오는 지시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미티어는 계속 이집트 수송기가 올 방향에 기수의 레이다를 향해 놓고 적기를 탐색했다. 그러나 아무런 흔적이 안 보였다. 이륙한지 한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고 연료는 무섭게 소모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불안감이 슬슬 늘어날 때 드디어 관제실로부터 이집트 수송기가 이스라엘 기지 지상 레이다에 잡혔다는 송신이 있었다. 후방석의 쉬비는 지상과 교신하며 차또에게 방향을 지시했다. 이 상황에서 비행의 결정권은 후방석의 쉬비에게 있었다.
갑자기 쉬비는 흥분 된 큰 소리를 외쳤다.
“ 접속! 접속! 접속!”
전투기의 레이다 화면에도 적기가 나타난 것이다.
두 조종사들에게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파고 들었다.
몇 초의 간격을 두고 그가 다시 외쳤다.
“ 적기 두시 방향! 거리 5키로!”
차또는 즉시 기수를 돌렸다.
쉬비는 레이다를 응시하며 다시 지시했다.
"속도 감속! 속도 감속!"
카토는 즉시 스로틀을 내려서 속도를 늦췄다.
그러나 쉬비는 다시 말했다.
‘ 감속! 감속! 아직 너무 빠름!“
조금 후 쉬비의 목소리가 울렸다.
“ 적기 열한 시 방향, 거리 700 미터! 150 미터 하강!"
차또는 쉬비의 지시대로 150 미터를 하강했다.
드디어 검은 그림자 같이 보이는 전방의 이집트 수송기가 두사람의 시야에 나타났다. 다시 이어폰이 울렸다.
‘시각 확인! 시각 확인!“
이번에는 지상에서 레이다를 지켜보고 있는 지상 관제소 책임자 메이르 로프에게 하는 보고였다. 그는 얼마 전까지 무스탕 전투기 편대의 노련한 편대장이었다. 그는 지시했다.
“ 재차 확인 바람 !”
차또와 쉬비는 다시 한 번 바로 앞을 날고 있는 수송기를 자세히 관측했다.
전체 모양은 이륙 전에 몇 번이나 확인한 바와 꼭 같았다. 이스라엘 공군에게도 익숙한 DC-3와 비슷했지만 조금 달랐다. 창문이 둥글지가 않고 네모난 것이었다. 게다가 독특한 꼬리 날개 모양이 소련 수송기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소련은 전쟁 중에 미국이 지원해준 DC-3를 모방해서 LI-2를 만들었으나 이 초기 수송기는 여러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개량해서 만든 것이 IL-12, 이것을 또 개량한것이 IL-14였다. 소련은 물론이고 여러 공산 국가로 수출 되었었고 중국도 이 수송기를 많이 사용했었다.
이번에는 더 관측이 용이한 전방석의 차또가 관제소로 보고했다.
“재차 확인 완료! 적기 확실함!”
“확실한가?”
"확실함!”
격추 명령권자인 지상의 관제소장 로프의 명령이 떨어졌다.
“격추하라!”
차또는 쉬비의 지시와 자신의 육안으로 미티어를 조종해서 수송기의 바로 후방에 위치시켰다. 사격하기 좋은 위치였다. 하지만 이집트 수송기는 차또의 제트 전투기가 보조를 맞추기에는 너무 느리게 날고 있었다. 차또는 속도를 낮추기 위해서 착륙 할 때처럼 후랩을 내렸다.
적기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비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차또는 지상 관제실에 보고했다.
‘발사 !“
동시에 미티어가 장비한 네 문의 20미리 기관포 방아쇠를 당겼다. 20미리 기관 포탄이 전방 일류신의 기체에 맞아서 작렬하는 불꽃이 보였다. 일류신은 벽에 부딪힌 양 충격에 흔들리면서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왼쪽 엔진에서 붉은 불 덩어리가 흘러 나왔다. 첫 총격에 일류신은 이미 추락의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러나 이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차또는 관측을 위해 벌렸던 거리를 다시 좁혀서 사격 위치로 다가갔다. 재차 기관포의 예광탄들이 일류신의 오른쪽 날개를 두들겼다. 일류신은 커다란 불꽃을 뿜으며 어두운 해상으로 추락했다.
미티어는 즉시 고도를 올려서 추락하는 일류신에서 떨어져 나오는 파편들을 피했다. 격추 확인을 하자 차또와 쉬비는 동쪽으로 기수를 돌리고 귀환을 재촉했다. 연료가 거의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등화 관제 중인 활주로의 유도등이 깜박거리는 활주로에 착륙했을 때 연료 탱크는 거의 비어있었다.
그들을 이스라엘 국방군 참모총장 모세 다얀과 공군 사령관 톨코우스키가 반갑게 맞았다. 그러나 최대 표적으로 삼았던 아마르 원수는 일류신 탑승 마지막 순간에 계획을 바꾸어 다마스커스에 하루 더 체류하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톨코우스키는 낙심해 하는 차또와 쉬비를 위로 했다.
“괜찮아 ! 자네들이 이집트군 참모 본부를 와해시켰으니까 이스라엘 전체 공군이 한 것보다 더 큰 일을 한 것이지.”
톨코우스키 사령관의 말에는 힘들게 마련한 '최소의 전투 무기로 최대의 성과'를 올리려고 노력하던 이스라엘군의 철학이 들어있었다.
IL-14 기
일부 기록에 의하면 출격 전 공군 사령관 톨코우스키는 차또에게 이집트기를 발견하면 조종석에 총격을 가해서 추락전 이집트 본부와 교신하는 것을 막으라고 했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전을 극비로 했었다는 말이다.
이 격추로 이집트 참모 본부 장성 전부가 사망했고 압도적인 공군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공군은 이스라엘에게 별다른 공세 작전을 펼치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그 뒤 이 비밀 작전에 대해서 철저히 함구했고 이집트는 이스라엘이 이들을 납치해서 억류했다고 의심했었다. 그러다가 1962년 소련의 정보 자료를 통하여 격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스라엘은 오리발 부인으로 일관했다.
모든 사실이 알려진 것은 33년의 세월이 지난 1989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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