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일본도의 즈쿠리고미(造りこみ)의 종류 日本의 刀劍

구름위 2013. 7. 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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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도의 造り込み(Tsukuri-komi)

 

    통상적으로 일본도라고 하면 카타나를 말하는데 실제로도 현재 일본에서 만들어지거나 해외에서 생산되는 일본도는 대개 이 카타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살펴보면 카타나는 打刀(우치카타나)의 줄임말로 전국 시대를 거쳐 에도 시대에 이르러 그 형이 완성된 것으로 상고 시대로부터의 일본도의 역사를 보면 최후기형에 속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장에서의 칼의 효용이 줄어든 에도 시대 이후에는 칼은 사무라이의 상징이 되어 형식화되고 장식성이 풍부해지는 동시에 일부 도공들의 복고회귀 작풍등도 있어 다양한 형태의 일본도가 생겨났지만 어쨌든 대외적으로 일본의 칼을 대표하는 것은 카타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카타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카타나의 특징이라고 하면 도신의 휨이 적당하고 요코테가 있는 양손칼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의 칼들과 구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문화유산들이나 공예품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고유의 특성들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선대의 작풍과 사회상의 변천, 또는 외래 문물의 영향을 받아 서서히 이루어지고 그것이 후에 다듬어 지면서 특정한 전형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일본도에 있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인데 일본도의 여러 형태를 통해 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도에는 造り込み(Tsukuri-komi) 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도검, 특히 도신의 제작 형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상고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도는 점차 그 형태와 제작상의 기법이 변하였는데 이는 전투의 양상, 제조 기법, 수요층의 취향 등 여러 요소의 변화에 따른 복합적인 요인이 배경이 됩니다.

 

    도표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도표는 일본도의 여러 형태와 각 도신별 단면을 나타낸 것입니다.(도신 그림 중에 검정 도형 부분이 해당 도신의 단면을 나타낸 것입니다) 번호순을 시대순이라고 생각하면 비슷한데 1, 2, 3번의 형태는 일본도가 아직 고유의 모습을 갖추기 전의 도검 형태이며 4번을 경계로 하여 그 이후로 점차 전형적인 일본도의 형태를 갖추어 갑니다. 5번 이후로는 대개 와키자시, 탄토 등의 소형 도검에 사용되는 도신의 형태이나 드물게는 카타나 등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도신을 수평으로 놓고 보면 보다 이해가 쉬운데 1, 2번의 도신은 칼날이 곧은 형태의 직도이며, 3번은 칼날이 곡선으로 가는 과도기적 단계이면서 칼등에도 칼끝쪽으로 날이 세워져 있는 일종의 의사도 방식의 도신입니다. 4번은 카타나 전에 주로 사용하였던 타치의 형태이나 카타나의 도신도 제작 방식상으로는 이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5번은 일본도에서는 보기 드믄 양날형 도신이며 6번과 같은 경우에는 조각도처럼 한면에만 날이 세워져 있는(치즐 그라인드) 형태입니다.

 

    이를 개별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Hira-zukuri 平造(ひらづくり)

 

    통상적으로 전형적인 카타나에는 칼등과 칼날면 사이에 경계선처럼 솟은 부분이 있는데 이를 시노기스지라고 합니다. 히라즈쿠리 방식은 이 시노기스지를 만들지 않은 방식이므로 도신의 면이 평평한데 주로 일본 상고 시대의 직도는 이러한 방식으로 제조되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나이프로 치면 주방칼이나 면도칼에 가까운 풀플랫 그라인드 방식으로 예리하고 절삭력이 좋은 장점이 있는 반면 충격을 흡수하는 데에는 불리합니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이 방식은 주로 탄토나 와키자시 등의 소형 도검에 많이 사용하였는데 전국 시대 초기의 짧은 기간 동안에는 타치 등에도 이러한 형태의 도신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2. Kiriha-zukuri 切刃造(きりはづくり)

 

    1번의 히라즈쿠리에 이어 출현한 방식으로 휨이 있는 후대의 만도(일본도는 크게 직도와 만도로 나누는데 직도는 상고 시대, 만도는 카타나를 포함한 후대의 굽은 칼입니다)출현 이전의 직도 형태입니다. 이 방식에서부터는 시노기스지가 나타나는데 2번의 키리하즈쿠리 방식에서는 칼날 쪽에 가깝게 시노기스지가 형성됩니다. 전체적으로 만도형 일본도의 선구적인 방식입니다.

 

 

 

 

 

3. Kissakimoroha-zukuri 鋒兩刃造(きっさきもろはづくり)

 

    킷사키모로하즈쿠리는 말 그대로 도신의 끝 부분이 양날형인 제작 방식으로 일본도가 직도에서 만도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를 대표하는 도검의 제작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양날이기는 해도 칼의 앞부분에만 양날형인 방식으로 베기와 찌르기를 모두 고려한 제작 방식으로 보여 집니다.

 

 

 

 

 

4. Shinogi-zukuri 鎬造(しのぎづくり)

 

    시노기즈쿠리는 도신의 중간쯤에 칼날면과 칼등면의 경계가 되는 시노기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제작 방식으로 헤이안 시대(A.D. 794 ~ A.D. 1191) 이후의 만도에서 보여지는 형태입니다. 헤이안 시대 초기는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한국에서는 통일신라가 자리를 잡고 융성하는 시기입니다. 일본에서도 그 전대인 나라시대의 타이카 개신(645년) 이후 천황제가 자리를 잡고 비로소 국가의 틀이 정착된 시기로 문화, 사회면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헤이안 시대는 천황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후지와라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여 통치하던 시기로 후에 귀족간에 분쟁이 격화되어 전문 전투 집단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바로 사무라이입니다.

 

    사무라이는 원래 사적인 무력 집단으로 초기에는 귀족들의 경호 업무를 맡았으나 귀족간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사무라이는 대규모 무사 집단을 형성하여 군대를 장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헤이안 시대의 후기에 이르면 부패한 후지와라 가문을 대신하여 사무라이를 대표하는 두 가문인 미나모토와 타이라 가문이 권력 쟁탈전을 벌이게 됩니다. 이 와중에서 사무라이들의 비중이 커지고 도검의 수요도 급격히 늘어 일본도의 제작 기술도 급격히 발전하였고 일본도의 틀이 잡힌 시기이기도 합니다.

 

    헤이안 시대 이전의 일본도가 주로 직도였던 것은 중국, 한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상대적으로 국가 체제가 미약했던 일본으로서는 선진 문화를 수용하기에 급급하였던 시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체제를 확립하고 통치 영역이 전국으로 확대된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면 일본에서도 민족에 대한 자각과 고유 문화를 숭상하게 되면서 더 이상 자신의 문화가 중국에 비해 열등하지 않다는 의식이 팽배해 지면서 무기에 대해서도 고유의 작풍들이 선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제작되기 시작한 도검들은 빈번한 전투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므로 상당히 빠른 진보가 있었다고 생각되며 이 시기에 확립된 시노기즈쿠리 방식은 이후 일본도의 전형이 됩니다.

 

 

 

 

 

5. Moroha-zukuri 兩刃造(もろはづくり)

 

    3번의 킷사키모로하즈쿠리 방식과 유사한 양날형 도신 방식이지만 무로마치 막부가 유명무실해진 전국시대에 유행하였던 제작 방식입니다. 하바키 부분에서부터 칼끝까지 시노기스지가 있고 이를 경계로 양쪽에 모두 칼날이 있는 형태로 칼끝에만 양날인 킷사키모로하즈쿠리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주로 비젠 지방에서 생산되었으며 탄토와 같은 소형 도검에 주로 사용된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찌르기와 베기에 모두 유리한 방식으로 근접 격투에서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체 시노기스지를 세우면서도 양날로 제작하는 방식은 현재의 대거 나이프처럼 매우 높은 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어려운 제작방식인데 현재 남아 있는 유물들도 대개 도검 자체가 우수한 수작들이라고 합니다.

 

 

 

 

 

6. Katakiriha-zukuri 片切刃造(かたきりはづくり)

 

    2번의 키리하즈쿠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도신의 한면에만 시노기스지를 세우고 칼날 역시 조각도처럼 한면에만 세운 형태입니다. 원래는 2번의 키리하즈쿠리 방식처럼 고대에 사용하였던 방식이나 에도 시대(1603 ~ 1867)의 초기, 또는 후기에 복고회귀적인 작풍으로 인해 탄토나 와키자시 등의 소형 도검에서도 유행한 방식입니다.

 

 

 

 

 

7. Shobu-zukuri 菖蒲造(しょうぶづくり)

 

    쇼부즈쿠리는 칼끝의 형태가 창포와 닯았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으로(일본어로 창포를 쇼부라고 합니다) 일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코테가 없고 시노기스지가 칼끝에서 하바키 부분에 이르기까지 연장된 형태입니다. 찌르기에 유리한 형태로 주로 탄토, 와키자시 등의 소형 도검에 많이 사용된 제작 방식이나 창포가 무를 숭상하는 의미가 있다고 무장들이 특히 애용하여 카타나와 같은 대형 도검에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최근 제작된 일본도들 중에도 이러한 쇼부즈쿠리 형태의 도신을 가진 제품들이 있습니다.

 

 

 

쇼부즈쿠리 방식의 칼끝(킷사키) 부분으로 일본도 특유의 요코테가 없으며 시노기가 칼끝까지 연장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도 막부를 창건한 도쿠카와 이에야스 자신도 쇼부즈쿠리 형태의 칼을 애용했다고 전해집니다.

 

 

 

 

 

8. Unokubi-zukuri (うのくびづくり)

 

    시노기스지의 상단 부분(점선 안쪽 부분)을 칼날면처럼 좌우를 깎아내어 마치 단면이 마름모 형태와 유사한 제작 방식입니다. 위에서 보면 도신의 중간과 상단 사이가 마치 물새인 가마우지의 목처럼 길쭉하게 보인다고 하여 붙인 명칭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도신은 주로 탄토류의 소형 도검에서 볼 수 있으며 고도기(일본도를 시기별 특성으로 나눈 시대별 구분으로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고도는 대략 987 ~ 1599 사이의 시기로 봅니다) 야마토 도공들의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9. Kanmuriotoshi-zukuri 冠落造(かんむりおとしづくり)

 

    8번의 우노쿠비즈쿠리와 유사한 방식이지만 칼끝까지 마름모꼴 단면이 연장되어 칼끝이 뾰족한 형태가 됩니다.

역시 고도기의 야마토 도공들의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10. Osoraku-zukuri (おそらくづくり)

 

    10번의 오소라쿠즈쿠리는 매우 희귀한 형태로 일본 전국시대의 유명한 무장인 다케다신겐(武田信玄)이 소지하였다고 전해지는 스케무네(助宗)작의 탄토에서 보여 집니다. 이 탄토는 휨(소리)이 크고 도신의 중간에 요코테를 만들어져 있어 사실상 도검의 반 이상이 킷사키에 해당되는 형태입니다. 이처럼 극도로 킷사키가 큰 형태의 도신은 매우 드물며 절삭력을 최대한으로 높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를 오소라쿠즈쿠리라고 하며 이 탄토에 오소라쿠라는 명문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에 붙은 명칭입니다. 오소라쿠는 의미는 일본어로 문미에 부정사를 수반하여 필시, 아마도, 틀림없이 라는 의미를 가지는 단어인데 정설은 아니지만 일설에는 이 오소라쿠가 가리키는 것은 "おそらく他に例のない(필시 다른 예가 없을 것이다)" 라는 의미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