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제6사단의 초산전투(1950. 10. 23∼26)
초산전투는 한·만 국경선으로 향한 진격작전이 개시된 후, 국군 제6사단 제7연대가 희천으로부터 초산으로 전진하던 중, 초산천 연변에서 북한군 제8사단 소속의 혼성부대를 격퇴하고 압록강연안의 초산을 탈환한 공격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제7연대는 10월 26일 고장을 출발하여 초산으로 향하던 중 초산천 연변에서 저항하던 북한군 연대규모의 혼성병력을 2시간 동안의 교전 끝에 격퇴시킨 후, 초산으로 돌입하여 압록강변에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한·만간 국경선에 도달한 최선봉부대가 되었다.
10월 24일 국군 제2군단 예하 제6사단장 김종오(金鐘五) 준장은 군단명령을 수령한 후 제7연대를 우, 제2연대를 좌, 제19연대를 예비로써 초산-벽동간의 국경선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제7연대는 초산을, 제2연대는 온정리를 경유 벽동을 탈환하라고 구두명령을 하달하였다.
제7연대는 사단작전 명령에 따라 초산을 점령하기 위한 최초 목표로 회목동을 향하여 24일 07:00 진격을 개시하였다. 희천을 점령했던 제1대대와 하행동에 있던 제2대대는 근거리 접근로인 산간도로를 따라 도보로 회목동(檜木洞)으로 전진하였으며 구장동에 있던 제3대대는 도로를 따라 하월림을 경유하여 역시 회목동으로 전진하였다.
한·만 국경선을 향한 제한 없는 총공격은 서부전선에서나, 동부전선에서나 오직 누가 먼저 압록강이나 두만강에 먼저 도달하느냐에 초점이 집중되어 있어 부대간의 협조가 결여된 채 산간협로를 따라 진격의 속도를 재촉하고 있었다.
제6사단 제7연대는 희천을 떠나 35㎞ 북쪽인 극성령(棘城領)을 넘어섰다. 제7연대(-)는 극성령을 너머 10월 25일 오전에 회목동에 도달하였다. 제7연대는 계속해서 회목동에서 고장으로 향하였고 그 남쪽에서 1개 대대 규모의 인민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이날 18:30에 고장을 탈환하였다. 이제 국경선까지는 불과 30㎞ 밖에 되지 않았다.
이튿날 10월 26일 07:00 제7연대는 드디어 압록강을 향하여 마지막 진격작전을 개시하였다. 이날 새벽에 첫눈이 내려 산야가 하얀 눈으로 엷게 뒤덮인 가운데 전병력이 차량화 된 제7연대 제1대대가 초산(楚山)을 향해 질주하였다.
이무렵 초산 일대에는 연대규모의 북한군이 집결하고 있었다. 낙동강 전선에서 인민군 제8사단을 지휘하던 오백룡(吳白龍) 소장이 남쪽에서 계속 밀려오는 패잔병을 수습하고 있었으며 그 병력이 연대규모에 달했다.
초산 남쪽 6㎞ 지점의 애로지형에 배치된 이들과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대대는 차량에서 하차하여 공격을 개시하였고 대대의 전 화기로 집중사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이제 더 물러날 땅이 없는 그들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아 무려 한시간 반에 걸친 교전끝에 그들은 패주하기 시작하였다.
이 교전을 끝으로 인민군의 저항은 사라지고 제1대대는 지체없이 초산읍으로 돌입하였다. 그러나 시가지는 텅비어 있었고 압록강은 보이지 않았다. 초산읍에서 압록강까지는 6㎞를 더 전진해야만 했다. 대대는 국경선을 향하여 신속히 이동하였다. 신도장(新島場) 일명 앙토동(央土洞) 고갯마루에 올라서자 압록강의 푸른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10월 26일 14:15 국군 제6사단은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압록강에 다다른 것이다.
장병들은 지난 9월 16일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한지 41일만에 조국통일의 최선봉으로써 국군과 유엔군을 통틀어 가장 먼저 국경선에 도착했다는 자부심과 긍지로써 온통 마음이 들떠 있었다. 대대는 신도장에서 만주 통천구(通川溝)로 통하는 뗏목나루가 있음을 발견하고 57미리 대전차포로 이를 파괴해 버렸다. 대대는 제일 먼저 국경선에 도달한 제1중대를 신도장을 중심으로 배치하여 압록강변 경계임무를 수행토록 하고 대대주력은 초산으로 일단 철수하였다.
이보다 하루 앞서, 제7연대가 고장으로 진격하던 10월 25일, 온정리에서는 제2연대가 벽동을 목표로 진격을 개시하여 북진(北鎭)으로 진격하던 도중에 동림산 기슭에서 적과 조우, 격전을 벌이었다. 이들이 북한군일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곧 중공군으로 밝혀졌다. 선두인 제3대대가 분산되자 예비인 제2대대가 투입되었으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이날 오후 포로가 된 중공군 병사는, "그들이 10월 17일부터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진술하였다. 제2연대는 26일 중공군에게 온정리를 피탈당하고 퇴로가 차단되어 붕괴된 채 태평방향으로 철수하였다.
이 전투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한 지 41일만에 국경선에 도달하게 되었으며, 국경선에 위치한 압록강변의 초산을 확보하여 북진통일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전국민들에게 큰 감격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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