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1군단의 평양 탈환작전(1950. 10. 15∼20)
평양탈환작전은 북진 당시 서부전선으로 진격한 국군 제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이 중부전선으로 진출한 국군 제7사단 제8연대와 함께 평양을 포위공격하여 북한군 제17사단과 제32사단으로 주축으로 편성된 8,000여명의 혼성부대를 격퇴하고 평양을 탈환한 공격작전이었다. 이 작전에서 국군 제1사단은 평양 동측방으로 진입하고 미 제1기병사단은 남쪽에서 흑교리로 진격하였으며, 국군 제7사단 제8연대는 북쪽으로 진입하여 3면에서 포위공격을 가하여 평양을 탈환하였다. 이 때 국군 제1사단은 맨 먼저 평양시내로 돌입하여 평양 첫 입성의 영광을 안았다.
10월 9일 38선을 돌파한 미 제8군의 최대 목표는 적의 심장부인 평양 탈환이었고, 이 임무는 미 제1군단에게 주어졌다. 이에 따라 평양을 목표로 미 제1기병사단과 국군 제1사단이 경합을 벌이게 되었고, 10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의 "평양만은 국군이 먼저 점령해야 한다"라는 지시에 따라 제7사단과 제8사단도 뒤늦게 평양 점령 경쟁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엔군의 평양탈환적전 부대는 미 제1기병단과 국군 제1사단이었다.
국군 제1사단은 서부전선에 투입된 단 하나의 국군부대로서 미 제1군단 예하의 다른 부대들과 더불어 북진경쟁을 벌였다. 10월 11일 뒤늦게 고량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국군 제1사단은 보·전·포 협동작전부대로 지정된 사단예비 제12연대(연대장 김점곤 중령)는 한순화(韓順華) 소령이 지휘하는 제1대대를, 연대에 배속된 미 제6전차대대 C중대에 탑승시키고 고랑포 북방 14㎞ 지점인 구화리를 목표로 진격하게 되었다.
보·전·포 협동부대는 10월 12일에 사미천(沙尾川) 하안(河岸)을 따라 일거에 구화리로 진출하였다. 이 보·전·포 협동작전은 상호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데다 협동작전의 경험이 없었던 까닭에 처음에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 날 오후부터는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사단의 좌일선인 제11연대는 작일 가장 멀리 서두정장까지 진출한 제2대대가 적의 저항이 뜸해진 01:00에 행동을 개시하여 8㎞를 더 진격한 다음 고미성(古美城)에서 사미천을 이용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였다. 우측의 연대(-1)는 구화리를 거쳐 두곡리로 진출하였다.
10월 13일 국군 제15연대의 선봉 제1대대가 토산리로부터 시변리를 목표로 우회기동을 계속하여 시변리 동쪽 끝부분을 점령하였고, 제15연대(-1)는 제2대대가 시변리 서쪽 구성리(龜城里)로 진출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였다. 제12연대는 이날 보·전·포 협동작전으로 주간에 25㎞를 주파하여 오후 일찍이 시변리에 도착 제15연대와 연결하고 시변리 북쪽을 차단하기 위하여 외곽으로 진출, 야간 급편방어에 들어갔다. 사단예비가 된 제11연대도 제12연대를 후속 이 날 시변리에 도착하였다.
국군 제1사단은 그 이튿날 배속된 미군 M-46패튼 전차에 병사들을 분승시킨 제12연대를 선봉에 세우고 그 뒤를 제11연대가 초월공격이 가능하도록 후속하게 하였으며, 제15연대는 사단예비로 후미에서 진격하도록 하였다. 사단은 신계-곡산 쪽으로 후퇴하는 적을 추격하여 시변리 북서쪽 미우동 일대에서 T-34전차 6대를 위시한 각종포의 지원을 받는 연대규모의 적을 격퇴하고 이 날밤 신계까지 급속도로 진출하였다.
국군 제1사단장은 10월 14일 신계(新溪)를 점령한 후 그 날밤 사단 작전회의를 개최하고 상원(祥原)-율리(栗里) 축선 진격계획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이 회의에서 제12연대가 우익에서 신계-수안-율리 축선으로 진격하고, 제11연대가 좌익연대로서 신계-능리(綾里)-상원 축선으로 진격하며, 제15연대가 사단예비로써 사단 사령부와 함께 제12연대를 후속하도록 하였다.
10월 15일 아침 사단은 계획대로 진격을 개시하였다. 신계 서쪽 2㎞ 지점인 삼거리로부터 신계-수안 도로를 따라 진격을 개시한 사단 우익의 제12연대는 보·전 협동부대의 선도하에 일몰직전까지 약 30㎞를 진격하여 수안 남쪽 하유리(下有里)까지 진출하였다.
그 이튿날인 16일 제12연대는 하유리를 출발하여 그 북서쪽 수안(遂安)을 목표로 진격하였다. 사단의 좌익인 제11연대는 이 날 일몰까지 좌인접 부대인 미 제1기병사단과의 전투지경선 가까이에 있는 능리로 진출하였다. 10월 17일 사단의 주공인 제12연대가 아침에 수안에서 율리를 목표로 진격을 개시하였다. 율리를 점령한 제12연대 제2대대는 좌일선의 제11연대와의 연결을 위하여 미군 전차 10여대에 분승, 보·전 협동으로 율리 서쪽 17㎞ 지점인 상원으로 진격을 계속하였다.
이와 같이 10월 17일, 국군 제1사단은 38도선 돌파이후 일일진출거리로서는 최고기록인 42㎞를 진격하여 평양 동남쪽 26㎞ 지점 상원-윤리선을 점령한 것이다. 국군 제1사단은 기동력이 열세하고 2일이나 늦게 38도선을 돌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상원선에 도착함으로써 같은날 황주까지 진출한 제1기병사단을 훨씬 앞질러 평양에 근접하고 있었다.
이무렵 북한군은 평양 방위사령부(사령관:崔仁 소장)를 설치하고, 대동강 및 동평양 일대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여 완강한 저항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적의 저항은 그들의 기관이 철수할 시간을 얻고 후퇴하는 부대를 엄호하기 위하여 국군 및 유엔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미 제8군 정보참모부는 인민군의 평양 방위부대 규모를 인민군 제17사단과 제32사단 소속의 잔류병 약 8,000여명 정도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었다.
평양 탈환작전은 10월 18일에 포위망을 압축한 미 제1기병사단, 국군 제1사단, 그리고 국군 제2군단에 의해 전개되었다. 미 제1기병사단은 황주에서 비교적 기동로가 양호한 경의선 철도와 국도를 따라 북으로 진출하여 평양 남쪽방향으로 공격하게 되었다. 사단장은 황주의 미 제7기병연대를 주공으로 하여 평양공격을 재개하였다. 이날 여명을 기하여 진격을 개시한 미 제7기병연대는 제3대대를 선두로 황주천을 도하하고 평양 남쪽 12㎞ 지점인 흑교리(黑橋里) 근교(近郊)로 진출할 때까지 거의 적의 저항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선두가 흑교리 가까이 접근함에 따라 대대는 적으로부터 대전차포와 120미리 박격포사격을 받고 진출이 지연되었다. 이에 돈좌상황을 타개하고 공격기세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날 제5기병연대가 투입되어, 5대의 전차와 공병 1개 소대 그리고 중기관총 1개반으로 증강된 F중대(중대장 James H Bell 중위)를 선두로 흑교리에서 미 제7기병연대를 초월하여 평양을 목표로 진격을 개시하였다. F중대는 평양남쪽으로 진출하여 대동강 지류인 무진천(戊辰川)을 도하하여 11:02분에 동평양을 점령하였다.
국군 제1사단도 10월 18일 아침 평양탈환을 위한 마지막 공격을 재개하였다. 사단의 주공인 제12연대는 배속받은 미 제6전차대대 2개 중대와 보·전협동으로 초귀동에서 제11연대를 초월하여 대동리를 목표로 진격하였다. 연대가 대동리 못미처 관음산과 반용산 사이의 애로지역을 막 통과할려고 할 때 2개 대대 규모로 예상되는 적의 사격을 받았다. 이에 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급히 작전회의를 개최하고 교착된 전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였다. 여기서 연대는 보·전협동하에 야간공격을 실시하기로 결정하였으며 23:00경 제1, 제2대대가 공격의 선봉에 나서 야음을 이용, 도섭으로 상원강을 도하하고 적의 진지가 있는 능선 하단부까지 진출하였으나 적의 저지선을 돌파하지 못한 채 날이 밝았다.
10월 19일, 사단의 주공 제12연대는 이날 여명을 기하여 각종 지원포병과 전차의 엄호하에 적 진지에 돌격을 감행하여 목표를 점령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작일 강력히 저항하던 적진지에는 적이 이미 진지를 포기하고 도주한 후였다. 이리하여 제12연대는 인민군이 평양외곽에 구축한 3개의 저지선중 2개의 저지선을 돌파하고 제1, 제2, 제3대대 순으로 된 종대대형을 형성하여 낙랑평야로 진격을 계속하였다.
연대의 선두부대가 동평양 못미처 오류리(五柳里)에 이르렀을 때 약 2개대대 규모의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아 연대는 진격이 돈좌되었다. 이곳이 평양 외곽에 설치한 인민군의 3번째 저지선이었다. 북한군의 3번째 평양 방어선을 돌파한 제12연대는 동평양까지 순조로운 진격을 계속하여 동평양의 선교리(船橋里) 로터리까지 진출함으로써 제일 먼저 평양에 입성한 부대가 되었다. 또한 제11연대는 이 날의 최종목표인 문수리 비행장을 점령하였다. 제15연대는 전날 늦게 대동강 상류에 진출하여 도섭지점을 대대별로 확보하여 도강을 완료한 다음 본평양 모란봉과 김일성대학을 목표로 진격을 계속하였다.
한편 미 제5기병연대 제2대대 F중대가 양각도로 진출하고 있을때 제2대대의 잔여주력은 무진천을 건넌 다음, 우측으로 우회하여 대동교로 향하였다. 이때까지도 대동교는 폭파되지 않았으나 제2대대의 선두부대가 교량 가까지 접근하는 순간 요란한 폭음과 함께 교량의 중앙부분이 대동교 북쪽에 배치된 인민군에 의하여 폭파되었다. 이로써 대동교와 대동강 철교가 모두 절단되었다. 바로 이때 제5기병연대 제2대대는 이들보다 조금 앞서 대동교 동쪽 100m 거리인 선교리(船橋里) 로터리에 도착하여 도섭장소를 찾고 있던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와 만났다. 모란봉을 탈취한 제15연대는 본평양의 중심부로 진출하여 북한정권의 주요 행정기관을 점령하는 한편 인민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패잔병의 소탕작전에 들어갔다. 연대직할대(교육대)는 전술한바와 같이 미림비행장을 거쳐 문수리 비행장을 점령하고 뒤이어 도착한 제11연대에 비행장을 인계한 다음 비행장 북쪽 1㎞ 지점의 나루터에서 대동강을 도하하여 기 점령한 모란봉에 진출하였다. 이로써 국군 제1사단은 제11연대와 제12연대를 동평양에, 그리고 제15연대가 본(本) 평양을 점령함으로써 평양 탈환 주역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육군 작전명령 제218호에 의해 평양으로 공격하던 국군 제2군단 예하부대중 제7사단 제8연대(연대장 김용주 대령)도 제15연대를 후속하여 본 평양에 진출하였다. 제8연대는 10월 18일 아침 율리를 출발하여 21:00경 삼등(三登)에 도착하였다. 10월 19일 아침 제8연대는 삼등을 출발하여 이미 제15연대가 통과한 진로를 따라 삼산리에서 물속으로 뛰어들어 두팔로 소총을 머리위까지 떠받들고 도하하였으며, 13:00 조금 지나 도섭장 서북쪽 노산리(魯山里)로 진출하였다. 이곳은 평양-강동간 도로의 길목이며 제15연대가 오전에 통과한 곳이었다. 연대는 그곳에서 접적없이 서쪽으로 진격하여 해질 무렵에는 김일성대학으로 진출하였으나 이곳도 제15연대 제3대대가 점령한 지역이었다. 다시 그곳에서 모란봉을 향해 진격을 재개하여 모란봉-기림리(서평양역)선까지 진출하였다. 또다시 시내로 진입하였으나 이미 국군 제1사단이 주요시설을 점령한 뒤였으므로 모란봉으로 복귀하였다.
10월 20일 아침이 밝자 동평양에 있던 제11연대와 제12연대가 지난밤에 미군공병이 준비한 M-2 단정과, 대동교와 반월도 사이에 가설한 부교를 이용하여 대동강을 도하하였으며 전날 본 평양으로 진출한 제15연대와 합류하였다. 이로써 국군 제1사단은 이날 10:00를 기하여 평양시를 완전히 장악하였으며 국군의 입성을 환영하는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가두를 메웠다.
미 제1기병사단도 국군 제1사단에 이어 대동강을 도하하였다. 먼저 제5기병연대가 공격단정과 부교를 통해 동평양에서 본평양으로 이동한데 이어 사단주력도 도하를 완료하였다. 제1기병사단은 본 평양에 진출후 제5기병연대가 평양시 남쪽외곽에, 제8기병연대가 평양시 북쪽 외곽에, 그리고 제7기병연대가 이날 야간 강행군으로 진남포로 향하였다.
북한의 심장부 평양을 목표로 한 미 제1군단의 평양탈환작전은 10월 9일 38도선을 돌파한 이래 만 11일만인 10월 19일 국군 제1사단의 제11연대와 제12연대, 그리고 미 제1기병사단의 제5기병연대가 동평양을, 국군 제1사단 제15연대와 그 뒤를 따른 국군 제7사단 제8연대가 본평양을 각각 점령함으로써 종료되었다.
이 작전으로 북한군은 평양에서 후퇴하여 청천강 북쪽으로 물러서게 되었으며,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한·만 국경선으로 향한 진격작전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의 심장부를 점령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최대한 살리지 못하였다. 즉, 북한의 주요 수뇌부는 이미 평양을 버리고 함경도나 중국지역으로 들어간 후 중공군의 지원을 요청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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