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포항~울릉도 간 대해에서 강풍을 만나 긴장한 크루들. (좌)구간 레이스를 출발, 독도를 한 바퀴 돌고 있는 요트.<사진=이정식 작가 제공> (우)울릉도 사동항에서 마스트에 올라 요트를 점검 중인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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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시합이 취소된 모양이구나’
우리에게 스키퍼 회의에 참석했던 광섭형이 종이 한 장을 들고 다가온다. ‘아싸! 시합이 취소되고 새로운 룰이 적용된 계획서구나’라고 생각하며 다행스러워했는데, 그것은 2구간 출전신청서였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너무나 밝게 우리를 비추고 있는 달을 원망스럽게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25일 아침 10시, 독도에서 2구간이 시작된다. 북북서 방향으로 5~6노트의 바람을 받으며 밤 12시경 울릉도 사동항의 반짝거리는 등대를 뒤로하고 독도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다시 잡은 러더(rudderㆍ조종간)는 어제와는 다른 감촉으로 느껴진다. 잔잔한 물결, 적당한 바람, 그리고 가시권 안에 있는 다름 팀의 요트들이 내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미국에서 특수대원들을 뽑을 때 가장 특별히 고려하는 점은 체력, 힘과 더불어 약간의 두려움을 느낄 줄 아는 성격이라고 한다. 두려움으로 인한 약간의 긴장감이 두뇌활동과 신체반응을 자신의 능력보다 더 뛰어나게끔 만들기 때문이란다. 나도 이제 두려움을 통해 얻은 긴장감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걸 느낀다. <이상 김영랑>
얼마나 잤을까. 다시 날이 밝았다. 25일 아침 7시53분, 갑자기 바람이 바뀌었다. 북서풍으로 풍속 14~15노트의 북서풍으로 파도도 제법 높다. 2시간 후면 독도에서 출발하는 2구간이 시작된다. 현재 독도까지는 약 33km 남았다. 평균속도 8km에다 설상가상으로 배의 엔진이 고장이다. 멀리 뒤에서 요트 한 척이 스피네커를 펴고 쏜살 같이 우리를 지나 독도를 향한다. 빨리 가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라며 혼자 속을 태운다. 대회에 참가하기 전 이미 머리 속에 우리의 독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부푼 마음었는데….
결국 2구간 출발시각 10시가 넘어버렸다. 독도는 아직 17km가 남았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리 팀 크루들은 지치기 시작한다. 2구간의 출발도 출발이지만 돌아가는 것도 문제다. 그래도 독도는 보고 가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친 어깨를 추스르고 계속 전진이다. 멀리 독도를 한 바퀴 반 돌고 2구간을 출발한 배들이 하나 둘 출렁거리는 파도 위로 숨었다가 나타나곤 한다. 파고가 다시 5m 이상으로 높아진다.
독도를 3km 남겨둔 지점에서 결국 스키퍼는 “돌아가는 것이 문제”라며 선수를 돌리게 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독도를 등진다. 이미 오후 7시. 해상은 북서풍으로 풍속은 18~22노트, 파고가 무려 5~6m를 넘는 듯하다.
울릉도 앞 3.5km 지점에서 우리 배는 맞바람을 맞으며 전진을 시도한다. 포구가 지척인데도 배는 전진하지 못한다. 조류가 우리 배를 계속 밀어내고 있다.
해경 선박이 밝은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안전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3시간의 사투 끝인 밤 12시14분 사동항 입항을 포기하고 저동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들 지쳤지만 팀원들 모두 행복감과 해냈다는 성취감에 가득 차 있음을 눈빛을 통해 알 수 있다.
멀리서나마 본 독도지만 독도의 신비로움을 느꼈고, 자연을 대하는 경건한 마음을 배웠다. 동학이는 “단순히 파도와 바람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냈다”며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자신감이 생겼단다. 영랑이는 잊을 수 없는 밤, 잊을 수 없는 동해바다, 잊을 수 없는 별똥별이라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이상 허재성>
코리안컵 국제 요트레이스
한국 최초 장거리 요트경기
10월22~26일 포항에서 열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장거리 요트 레이스가 열렸다. 이번 대회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독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독도 사랑을 고취시키고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대한요트협회가 개최했다.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요트는 태극기를 달고 항해함으로써 의미를 강조했다.
1구간은 포항~울릉도 217km로 빠른 요트는 17시간, 늦은 요트는 30시간 이상 걸렸다. 2구간은 독도~울릉도 87.4km로서 10~15시간 이상 달린 장거리 대회다. 중국, 러시아, 스위스 등 32개팀 243명의 크루가 참가했으며, 러시아 선수들이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 세일링 요트레이스는 순수하게 바람을 받고 세일(돛)을 움직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바람이 좋을 경우 시속 20km로 항해할 수 있다. 장거리 항해에 사용되는 배는 보통 30ft 이상의 요트다. 실내에는 간단하게 조리를 할 수 있는 주방, 비좁으나마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다.
/ 글 미스틱X호 선원들
사진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