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이야기

2008년 코리안 컵 독도레이스 참가기( 미스틱 - X호 )

구름위 2013. 4. 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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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2008년 코리안 컵 독도레이스에 참가한 우리협회 소속의 미스틱 - X호에 대하여
월간 산에 게재된 기사를 퍼온 글입니다.
 
[요트레이스] 2008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 참가기

영일만으로 남서풍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이 지역 특성상 풍속은 2노트.  약한 바람인데도 서해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10월23일 현재 위치는 포항 북부 해수욕장. 울릉도를 거쳐 동경 130도53분4.66초, 북위 37도27분40.33초의 독도로 2박3일간 포항~울릉도 간 141마일과 독도~울릉도 간 47.2마일, 총 188마일을 바람을 타고 파도를 넘어야 한다.

우리 팀은 어제 포항요트대회(스폰서 레이서)에서 어설픈 실력으로 오픈(OPEN)급 3위를 차지했지만, 오늘 스키퍼(skipperㆍ선장)인 박광섭씨의 눈빛이 사뭇 날카롭다. 우리 팀의 크루(crewㆍ선원)는 박광섭 선장을 비롯해 정신적인 지주인 박완진 선배, 첫 국제대회에 참가하고자 학교의 양해를 얻고 동참한 대학생 신동학, 김영랑, 김남욱, 조신영씨, 그리고 여성 크루인 남은선양, 그리고 취재 겸 크루로 참가한 기자까지 8명이다.

어제까지 부슬비가 내리더니 하늘은 검은 구름을 벗는다. 예정 보다 늦은 오후 2시. 출발부터 32척의 요트는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선체 길이 34ft인 우리 미스틱X호의 선원들은 날카로운 박 선장의 지시에 따라 좌우 세일시트를 당기느라 바쁘다. 아직 연습이 부족한 우리 팀은 박 선장의 주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촬영해야 할지, 아니면 배의 컨디션을 100% 올리기 위해 선수들을 도와줘야 할지 나도 갈팡질팡한다.

저녁 5시경 뒷바람을 몇 시간째 등지고 있었는지 신경이 예민하다. 뒷바람이 오히려 앞바람을 받고 갈 때보다 더 위험한 경우가 많다. 배의 뒷부분이 들리기 때문이다. 동해의 파도가 삼킬듯이 덤벼든다. 박 선장이 스피네커 세일(풍선 같은 모양의 세일)을 거두라는 지시를 내린다. 멀리 영일만의 등대가 어둠속으로 가라앉는다. 날씨가 흐리고 어두워서인지 동해는 무서울 정도로 푸르다 못해 검다. 하얀 포말을 머리에 인 파도가 우리의 뒷꽁무니를 수도 없이 내리친다. <이상 허재성>


▲ 독도를 뒤로 하고 아쉬워하며 울릉도로 돌아가고 있는 미스틱X호 선원들.
육교만한 파도가 다가온다고 상상해보라

밤 9시를 넘어서니 풍속이 18~21노트, 파고는 4~5.5m다. 서해에서 비바람 좀 부는 날이 동해의 일반적인 날씨일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광섭형은 동해 파도가 상상 이상이란 점만 알아두라고 했다. 4m짜리 파도라니,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상상이나 할까? 그런 파도는 영화에서나 보던 것이다. 육교만한 파도가 요트로 다가온다고 상상해보라. 정말 끔찍하다.

기회란 건 쉽게 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것도 기회라 할 수 있는지. 광섭형 권유로 좋은 기회를 잡았구나 생각했는데, ‘내가 미쳤지. 왜 내가 이런 결정을 내렸지? 아…’하는 후회가 물밀듯 몰려온다. 밤 늦은 시간으로 갈수록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 패닉 상태-. 바다의 위대함에 내 몸은 얼어붙었고, 머리 속은 새하얘졌다.

그래도 내 포지션은 바우맨(bow manㆍ선수부분을 담당하는 선원)이 아닌가! 배의 앞부분으로 나가 무언가 하려는데 스키퍼인 광섭형은 조용히 “바우쪽에 나가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라”(사실 호통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하네스를 착용하라는 것이다(우리 배에 여성 크루도 한 명 타고 있었는데 대회가 끝 날때까지 절대 하네스를 착용하지 않았다). 순간 자존심이 심하게 구겨졌다. 앉아 있으란 말도 굴욕인데 하네스까지 착용하란 말인가. 스키퍼인 광섭형의 명령을 거스를 순 없어서 형님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대화를 시도했다.

“형님.”

“왜?”

“하네스 좀 풀께요.”

“왜?”

“막 말로 쪽 팔리잖아요.”

“지금 그걸 창피해 할 이유가 없다.”

“여자인 은선 누나도 하네스 안 찼잖아요.”

“너는 바우쪽에 가야 되고 많이 움직여야 해. 그런데 넌 여기서 마음대로 움직일 실력이 안 되잖아. 그러면 네가 위험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일단 지금은 들어가서 자. 새벽에 깨울 테니깐.”

지금에 와서야 광섭형이 그때 했던 말에 깊은 뜻이 있었음을 알았지만, 당시엔 야속했다.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오기가 발동하자, 그 때까지 내 몸을 얼어붙게 만든 파도가 무섭지 않았고 물에 빠져도 좋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상 신동학>
세상 그 어떤 놀이기구 탄 것보다 더한 공포감

각 과목 해당 교수님께 대회 참가를 허락 받은 나는 긴장과 설렘으로 출발했다. 몇 번 서해에서 크루로 배를 타본 경험이 전부다.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별똥별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멀미도 잊었다.

새벽 2시30분경 뒷바람이 강해져서 축범(돛 줄이기)을 하기로 했다. 무엇을 해야 하지? 경험이 없어 어쩔 줄 모르겠다. 몹시 좌우로 요동치는 붐(boomㆍ돛의 아랫활대)을 고정시키고 축범으로 들어가는 스키퍼 광섭형의 몸동작이 예사롭지 않다.

새벽으로 흘러가는 우리 미스틱X호 선상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주 멀리 하얀 파도 사이로 불빛이 고개를 내밀었다가 숨는다. 요트의 마스트(돛대) 항해등에서 비추는 불빛이다. 가까이 다른 배가 있다는 신호다. 하지만 15~20m 이상 높이 솟은 마스트의 불빛이 숨는 순간은 세상 그 어떤 놀이 기구를 타본 것보다 더한 공포감이 엄습한다. <이상 조신영>

▲ (좌)포항을 출발, 울릉도를 향해 가고 있는 요트들. 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위치를 잡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위)뒷바람을 받아 요트의 꽃이라는 스피네커 세일을 올린 요트들. (아래)어둠이 내린 망망대해를 소리 없이 달리고 있는 미스틱X호의 선원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영화 로키 중에서 로키의 대사다. 나는 크루로서 많은 연습을 하지 못한 관계로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얌전히 견학이나 하고 온다는 안일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장거리 항해로 힘들어하는 팀원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단지 깨어 있는 것뿐이다. 지금 새벽 4시47분인데, 울릉도까지는 아직 60km 이상 남았다. 풍속은 18~21노트 이상이나 바람의 방향은 크게 바뀌지 않아 크로스 홀드(요트가 지그재그로 가는 방법)는 아니다.

스톰세일(폭풍이 불 때 배의 앞부분에 사용하는 제일 작은 세일)을 올렸다. 뒤에 따라오던 배들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점점 시간이 흐르자 팀원들이 더욱 힘들어한다.

파도 때문에 간단한 일에도 움직이지 않던 나의 손과 발,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외면하고 있던 것들이 더욱 더 크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남들보다 못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고부터 마냥 힘들고 무섭고 지루했던 레이스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씩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늘어가기 시작한다. 팀원들에게 고생했다는 말도 건넬 수 있었다. 나에게 진정한 레이스는 이 때부터였던 것 같다.

10월24일 아침 9시10분, 파도 사이로 울릉도가 보이기 시작했고, 포항을 출발해 22시간2분만인 오후 12시20분경 1구간 피니시 라인을 지났다. 그런데  10여 척의 요트가 이미 들어와 있는 모습에 스키퍼인 광섭형의 얼굴에 실망이 가득하다. <이상 김남욱>

10월24일 밤, 어제의 어둠과 파도의 공포가 해가 지면서 나를 다시 조여 오는 것 같다. 기상청과 해경,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풍랑주의보가 내려서 독도에서 울릉도까지의 2구간 레이스가 힘들 것이라는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독도를 못 간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난 제발 시합이 중지되기를 기도했다. 난생 처음 장거리 야간 항해에다 최악의 날씨를 겪고나서 우리들은 모두 지쳐 있었다
[요트레이스] 2008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 참가기
▲ (위)포항~울릉도 간 대해에서 강풍을 만나 긴장한 크루들. (좌)구간 레이스를 출발, 독도를 한 바퀴 돌고 있는 요트.<사진=이정식 작가 제공> (우)울릉도 사동항에서 마스트에 올라 요트를 점검 중인 선원.

‘아싸! 시합이 취소된 모양이구나’

우리에게 스키퍼 회의에 참석했던 광섭형이 종이 한 장을 들고 다가온다. ‘아싸! 시합이 취소되고 새로운 룰이 적용된 계획서구나’라고 생각하며 다행스러워했는데, 그것은 2구간 출전신청서였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너무나 밝게 우리를 비추고 있는 달을 원망스럽게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25일 아침 10시, 독도에서 2구간이 시작된다. 북북서 방향으로 5~6노트의 바람을 받으며 밤 12시경 울릉도 사동항의 반짝거리는 등대를 뒤로하고 독도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다시 잡은 러더(rudderㆍ조종간)는 어제와는 다른 감촉으로 느껴진다. 잔잔한 물결, 적당한 바람, 그리고 가시권 안에 있는 다름 팀의 요트들이 내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미국에서 특수대원들을 뽑을 때 가장 특별히 고려하는 점은 체력, 힘과 더불어 약간의 두려움을 느낄 줄 아는 성격이라고 한다. 두려움으로 인한 약간의 긴장감이 두뇌활동과 신체반응을 자신의 능력보다 더 뛰어나게끔 만들기 때문이란다. 나도 이제 두려움을 통해 얻은 긴장감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걸 느낀다. <이상 김영랑>

얼마나 잤을까. 다시 날이 밝았다. 25일 아침 7시53분, 갑자기 바람이 바뀌었다. 북서풍으로 풍속 14~15노트의 북서풍으로 파도도 제법 높다. 2시간 후면 독도에서 출발하는 2구간이 시작된다. 현재 독도까지는 약 33km 남았다. 평균속도 8km에다 설상가상으로 배의 엔진이 고장이다. 멀리 뒤에서 요트 한 척이 스피네커를 펴고 쏜살 같이 우리를 지나 독도를 향한다. 빨리 가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라며 혼자 속을 태운다. 대회에 참가하기 전 이미 머리 속에 우리의 독도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부푼 마음었는데….

결국 2구간 출발시각 10시가 넘어버렸다. 독도는 아직 17km가 남았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리 팀 크루들은 지치기 시작한다. 2구간의 출발도 출발이지만 돌아가는 것도 문제다. 그래도 독도는 보고 가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친 어깨를 추스르고 계속 전진이다. 멀리 독도를 한 바퀴 반 돌고 2구간을 출발한 배들이 하나 둘 출렁거리는 파도 위로 숨었다가 나타나곤 한다. 파고가 다시 5m 이상으로 높아진다.

독도를 3km 남겨둔 지점에서 결국 스키퍼는 “돌아가는 것이 문제”라며 선수를 돌리게 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독도를 등진다. 이미 오후 7시. 해상은 북서풍으로 풍속은 18~22노트, 파고가 무려 5~6m를 넘는 듯하다.

울릉도 앞 3.5km 지점에서 우리 배는 맞바람을 맞으며 전진을 시도한다. 포구가 지척인데도 배는 전진하지 못한다. 조류가 우리 배를 계속 밀어내고 있다.

해경 선박이 밝은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안전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3시간의 사투 끝인 밤 12시14분 사동항 입항을 포기하고 저동항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들 지쳤지만 팀원들 모두 행복감과 해냈다는 성취감에 가득 차 있음을 눈빛을 통해 알 수 있다.

멀리서나마 본 독도지만 독도의 신비로움을 느꼈고, 자연을 대하는 경건한 마음을 배웠다. 동학이는 “단순히 파도와 바람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냈다”며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자신감이 생겼단다. 영랑이는 잊을 수 없는 밤, 잊을 수 없는 동해바다, 잊을 수 없는 별똥별이라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이상 허재성>



코리안컵 국제 요트레이스


한국 최초 장거리 요트경기
10월22~26일 포항에서 열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장거리 요트 레이스가 열렸다. 이번 대회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독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독도 사랑을 고취시키고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대한요트협회가 개최했다.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요트는 태극기를 달고 항해함으로써 의미를 강조했다.

1구간은 포항~울릉도 217km로 빠른 요트는 17시간, 늦은 요트는 30시간 이상 걸렸다. 2구간은 독도~울릉도 87.4km로서 10~15시간 이상 달린 장거리 대회다. 중국, 러시아, 스위스 등 32개팀 243명의 크루가 참가했으며, 러시아 선수들이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세일링 요트레이스는 순수하게 바람을 받고 세일(돛)을 움직이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바람이 좋을 경우 시속 20km로 항해할 수 있다. 장거리 항해에 사용되는 배는 보통 30ft 이상의 요트다. 실내에는 간단하게 조리를 할 수 있는 주방, 비좁으나마 화장실 등을 갖추고 있다.



/ 글 미스틱X호 선원들
사진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