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이야기

레이디 알리아 동승기<펀글>

구름위 2013. 4. 1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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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알리아(Lady Allia)’호 1박 2일 동승기 | ★Yacht Lady Allia 2006/02/06 15:40
http://blog.naver.com/100sailing/15000160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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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년 1월 9일 오전 9시 2분. 레이디 알리아 호는 타히티의 파페테 항을 뒤로하고 푸른 바다를 가르며 흰 물살을 내뿜으면서, 세계 최고의 휴양지로 꼽히는 보라보라 섬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파페테 항을 떠날 때부터 기자의 마음은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1박 2일의 짧은 항해를 통해 100일간의 항해를 취재하는 것이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눈부신 태양과 코발트 빛 바다, 부드러운 바람과 조우하고, 요트를 타고 보라보라까지 가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는 일에 대한 부담을 멀리 떠나보냈다.

세일링 1시간 만에 타히티 섬 동쪽에서 출발, 서쪽의 타이나 마리나에 도착한 레이디 알리아 호는 디젤과 물을 채운 뒤 11시 20분 엔진에 시동을 걸었고, 묶여있던 선수와 선미의 밧줄을 걸어 올리자, 후진하면서 마리나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요트 매입가가 15억 원에 달하는‘레이디 알리아’호는 프랑스 알리오라 마린 그룹이 제작한 최첨단 쌍동선(선체 2개가 결합된 형태)으로 길이 18m, 폭 9.25m에 19.5t이고, 160마력 짜리 디젤 엔진 2개가 장착된 크루저급 요트다. 크루저급 요트의 가격은 천차만별. 보통 2억 원에서 수백억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이나 할리우드 스타가 즐겨 타는 요트는 대부분 크루저급으로 요트 안에

부엌, 침실 등이 갖춰져 있다.‘레이디 알리아’호도 침실 7개(더블베드 4개, 싱글베드 3개), 샤워실 7개, 부엌, 세탁기, 냉장고 등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인공위성에서 자료를 수신받을 수 있는 첨단 위성항법시스템과 위성전화, 팩시밀리, 돛을 자동으로 올리고 내리는 시스템 등을 갖추고 있다.


육지에 상륙하거나 출항할 때만 디젤 동력을 사용하고 먼바다에서는 바람의 힘으로 요트가 움직이게 된다. 요트 인원 7명 중 스키퍼(Skipper:선장) 한 사람 외에는 모두 다 크루(Crew:선원)로 나름대로 역할 분담이 있고, 세일링하는데 착착 손발이 맞을 때 순조로운 항해가 된다.
러더(방향조종핸들)를 잡은 이화수 선장은 마리나를 빠져 나오자 메인 세일을 펼칠 것을 지시했다. 크루들은 민첩한 동작으로 클리트(cleat, 시트나 핼러드를 묶는 부품)와 핼러드(halyard, 돛을 끌어올리고 내리는 데 쓰는 줄)를 조작해 돛을 올린다. 3∼4분만에 메인 세일에 이어 미풍용으로 사용되는 지브 세일(jib sail)인 제노아마저 펼쳐지자 요트는 파란 하늘 아래 또 하나의 섬이 되었다. 이내 동력이 꺼지고 돛으로만 항해가 시작됐다. 온통 바다에 둘러싸인 요트 갑판에서 담소하며 마시는 맥주 맛.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바람 세기도 10∼15노트로 항해하기에 적당했다. 마스트(돛대) 높이만 23m에 달하는 레이디 알리아 호의 세일링(돛으로 바람을 이용한 항해) 시 최고속도는 20노트(시속 37km). 그러나 세일링의 평균속도는 10노트(시속 18.5km) 정도다. 오후 2시 경 타히티 섬 바로 코 앞에 있는 모레아 섬을 벗어나자, 그야말로 망망대해로 접어들었다. 주변은 검푸른 바다 뿐이었다. 바다 앞에 서서 그 푸른 물결을 바라보니 가슴 한 켠이 툭 터지는 것 같은 해방감이 밀려온다.

요트는 하염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가도가도 똑같은 망망대해뿐이었다. 지나가는 요트나 상선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크루들은 갑판에서 선탠을 즐기거나 선실에서 오수을 즐기는 등 그야말로 평온 그 자체다. 선미의 낚싯대 줄조차 미동이 전혀 없다. 새하얀 돛을 세우고 푸른 물살을 가르는 멋진 요트에서 즐기는 바다 위에서의 망중한, 세상살이의 크고 작은 일들이 하나 둘 의식 속에서 사라져 갔다. 온몸 온마음이 바다의 동정을 살피는데로 기울어졌다. 요트 밑바닥에 부딪히는 무심한 물소리 뿐, 자연과 나를 구분하기 어려운 순간이다. 망중한을 즐긴 지 2시간여가 흘렀을까, 약간의 지루함이 하품과 눈꺼풀로 밀려왔다.






저녁 6시, 항해한 지 9시간이 되자 태평양의 한쪽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그 순간 어떤 강렬한 전율 같은 게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대양의 한가운데서 보는 노을, 상상만으로도 황홀한데 그 아름다움을 직접 눈과 가슴으로 담을 수 있다는 기대감은 첫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미완이어서 아름다울 수 있는 첫사랑처럼 태평양의 노을도 미완으로 끝났다.

석양마저 기울자 요트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 묻혔다. 구름이 걷히자 하얀 조각달이 부드러운 빛으로 바다를 감쌌다. 요트 실업팀 감독인 김연식 크루는“태평양 한가운데를 항해할 때는 종종 대양 한복판에 철저히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 견딜 수 없는 고독감에 빠진다”며 “그럴 때마다 머리 위에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들이 친구가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도시에 살면서 잊고 있었던 별자리들을 하나하나 되집어 보았고, 요트는 조류를 타고 바람이 밀어주는 대로 순항했다.

바다에 심상찮은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밤 12시 경이었다. 위성항법장치에 하늘을 가득 메우고 뒤쫓아오는 먹구름이 발견되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당직을 서고 있던 김연식 크루는 “밤중에 항해하는 일이 보통 위험한 게 아니다.
주변을 지나던 상선들이 이쪽을 발견하지 못하고 스쳐 가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좌초당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12시 30분, 갑자기 불어닥치는 비바람에 레이디 알리아 호는 가랑잎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몸의 중심조차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요트가 흔들렸다. 곧 이어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일순간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바람은 35~40노트로 강하게 불고 2~3m나 되는 파도가 앞뒤로 덮쳐와 배를 삼켜 버릴 것 같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파도가 거세지기 전에 이 해상을 벗어나려면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바다는 제 정신이 아니다. 마치 바다는 검은 이빨을 드러내며 비웃는 듯했다.

더 이상 뭇별들과 대화를 나누는 낭만적인 바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럴 때는 돛을 최대한 줄이거나 아예 내려놓는 게 상책이다. 김연식 크루는 러더의 자동장치를 수동으로 전환한 뒤 긴장된 눈빛으로 선미를 응시한다. 선실에서 잠을 자고 있던 크루들은 귀차니스트의 유혹을 뿌리치고 갑판으로 나와 메인 세일의 크기를 줄이고 지브 세일인 제노아마저 내린다. 돛을 내린 뒤 위성항법장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조중덕 크루는 “먹구름 지대를 벗어날려면 30∼40분 정도 걸릴 것 같다”며 “다행히 우리의 기운을 모두 빼먹을 정도의 태풍이 아니다”고 알려준다. 문득 한가로이 지나온 여정들이 빠른 속도로 돌리는 영화의 장면들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요트는 270도로 방향을 틀어 조금씩 조금씩 힘겨운 행군을 강행했고, 크루들은 바다를 향해 온몸의 신경을 열어 놓은 채 돛의 크기와 방향을 수시로 조절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지만 신경은 여간 날카로운 게 아니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후 바다는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당직만 남겨놓고 다른 크루들은 나른해진 몸으로 잠을 청하기 위해 다시 선실로 내려갔다. 요트 하면 이국적인 정취와 함께 귀족 스포츠라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풍랑을 겪으면서 요트야말로 바다를 통해서 자연에 적응할 수 있는 진취적 정신력과 자연의 법칙을 배울 수도 있는 멋진 스포츠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새벽 6시 10분, 저만치서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라보라 섬의 윤곽이 눈앞에 펼쳐졌다. 캐나다 국기가 펄럭이는 요트, 리조트의 수상 방갈로, 사람 사는 마을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란색의 끝없는 바다가 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꿈같은 빛깔로 바뀌는 황홀한 광경이 눈과 마음을 매료시키고 말았다. 미술시간에 바다색을 파란색 크레용으로만 칠했던 것은 무식의 소치였다. 파란색, 청록색, 에메랄드색, 진남색. 바다의 깊이와 햇빛에 따라 온갖 색깔이 펼쳐졌다. 카리브해와 태평양을 건너온 크루들도 한결같이 물빛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정박하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레이디 알리아 호는 리조트 근처의 코발트 빛 바다에 닻을 내렸다. 이내 코발트 빛 바다속으로 몸을 던진 김인범 크루는 “바다가 극성을 떨지만 않는다면 요트안에서의 생활은 무척 단조롭다”며 “항해하면서 원주민을 만나는 것, 다른 나라의 요트맨을 만나는 것, 그리고 스노클링과 수영을 즐기는 것이 요트 여행의 묘미”라며 활짝 웃는다. 다른 크루들도 모터보터를 타고 주변을 둘러보거나 스노클링, 일광욕 등을 즐기며 간밤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날려보냈다.





오후 2시, 짧고도 긴 요트 여행(140마일)은 막을 내렸다. 반나절 휴식을 취한 레이디 알리아 호는 다시 삼각형의 거대한 돛을 펼친 뒤, 위풍당당하게 다음 기항지인 서사모아로 향했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요트는 ‘빨리 빨리’를 외치던 일상에서 벗어나 망중한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바람을 보내주고, 세일러들은 그 바람을 타고 항해를 한다. 순풍에 돛단 듯 평온한 항해도 있지만 엄청난 파도가 덮쳐올 때면 바다는 한순간 통제할 수 없는 마력을 보여준다.


이화수 선장은 “롤링과 피칭을 극복하고 강풍을 벗어날 때 세일러들은 자연과 하나됨을

느낀다”며 “크루저는 거친 파도와 강풍에서도 적응해 가면서 세일링 해야 하기 때문에

끈질긴 정신력과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인생을 다루는 법을 요트에서 배웠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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