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이 잭슨의 기동로, 파란색이 뱅크스의 이동로이며, 노란색은 윈체스터 전투 이후 도주로입니다.
밀로이 사단을 멀리 쫓아보낸 잭슨은 자신의 부대를 다시 맥도웰로 돌아간 다음에 계곡 남단의 해리슨버그로 들어갔다. 뱅크스는 자신의 부대에서 쉴즈 사단을 맥도웰군에게 보낸 상태였다. 워싱턴에서는 쉴즈 사단이 맥도웰군에게 도착하는 즉시 리치먼드 쪽으로 진격하여, 맥클레란의 주력군의 우측과 연결하도록 하였다. 4만의 군이 도착하면, 이 병력만으로도 남군은 버거울 판이었다.
이 상황에서 이웰사단의 위치가 애매하게 되었다. 분명 잭슨은 자신과 합류하라고 했지만, 수도에서는 뱅크스의 부대가 계곡을 나올 경우에는 즉시 귀한하라고 한 바가 있다. 뱅크스의 군의 일부가 빠져나온 이 상황에서 이웰은 어떻게 해야될 지 몰랐다. 직접 해리슨버그의 잭슨 사령부까지 가서 이 문제를 상의했다. 잭슨은 수도에 공문을 보내, 계곡에서의 재량권을 부탁했다. 수도의 리 장군은 잭슨의 계획을 승인하고, 이웰 사단을 사용하도록 했다.
지휘권의 문제가 해결되자, 잭슨은 해리슨버그에서 북상하였다. 당시 뱅크스는 2만의 군에서 쉴즈사단의 11,000이 빠지자 8000명만이 남았다. 그나마 1,000명을 보급기지인 프론트 로얄로 분산시켰다. 나머지 7천 남짓한 병력은 스트라스버그에 있었다. 뱅크스는 증원을 요청했지만 누구도 상대하지 않았다. 반대로 잭슨은 이웰의 사단이 합세하자 16,000명이 넘었고, 포가 48문이었다.
잭슨은 해리슨버그에서 스트라스버그를 향해 올라갔다. 중간에 뉴마켓에서 오른쪽으로 빠져서 마사누텐 산맥의 동쪽으로 빠져나갔다. 애슈비 기병대는 계속 올라가서 북군을 남쪽에서 괴롭히는 동안, 이웰의 부대와 루레이에서 합류한다. 이웰은 잭슨의 명령에 따라 산맥의 동쪽에서 올라가고 있었고, 리처드 타일러 여단을 잭슨에게 보내 길안내를 하게 한 것이다.
뱅크스는 전에도 그렇듯이 애슈비 기병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잭슨군은 1만 6천의 병력으로 프론트 로얄을 공격했다. 애슈비 기병대가 뱅크스의 주력과 프론트 로얄 사이의 통신을 절단하고 다리를 차단하고 있는 동안, 잭슨은 1천명 남짓의 북군 수비대를 기습했다. 북군은 사상자와 포로를 포함해 904명이었다. 남군의 피해는 35명이었다.
프론트 로얄의 잭슨 장군
이제 잭슨은 뱅크스의 바로 옆에서 2배가 넘는 병력을 보유한 셈이다. 잭슨은 이웰 사단을 스트라스버그와 윈체스터 사이의 도로로 보내 뱅크스의 퇴로를 막도록 하였다. 뱅크스를 완전히 고립시킨 다음에 앞뒤에서 분쇄할 생각이었다. 기병대도 보내서 뱅크스의 측면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이 무렵 뱅크스는 남쪽에서의 공격을 기다리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5월 23일 프론트 로얄의 그 몇안되는 생존자 중 일부가 뱅크스에게 잭슨의 기습을 보고했다. 뱅크스는 그것은 적의 위장이라며 진짜 공격은 남쪽에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생존자가 프론트 로얄이 완전히 점령됬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잭슨의 기병대가 너무 난리를 쳐서 마치 1개 사단이 와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보고가 들어오고, 부하들이 간청하자, 뱅크스도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신속하게 윈체스터로 행군하여, 잭슨보다 먼저 도착하기를 희망했다. 이 상황에서 뱅크스가 살 길은 잭슨보다 더 빨리 윈체스터에 도착하여 북쪽으로 빠져나가는 길이거나, 잭슨을 따돌리고 프론트 로얄 쪽으로 행군하여 계곡을 탈출하는 길이었다. 잭슨은 북군이 어느 쪽을 선택할 지를 알기 위해 애슈비 기병대에게 정찰을 명령했다. 마침내, 애슈비는 북군의 보급 열차가 빼곡하게 윈체스터 방향으로 향한다고 보고했다. 잭슨의 군은 지체 없이 윈체스터를 향해 떠나 뱅크스를 추격했다.
북군을 기만하고 추격한 남군 애슈비 기병대장
잭슨의 군은 뱅크스의 보급부대를 따라잡고 무수하게 노획했다. 잭슨에게 따라잡혔다는 것을 알게 된 뱅크스는 부대가 윈체스터에 도착하는 데로 잭슨에게 대항하기로 하였다. 당시 북군은 6,400명으로 잭슨은 1만 5천명이 동원가능했다고 한다.
뱅크스는 윈체스터에서 매우 좋은 방어진지를 가질 수 있었는 데, 잭슨과 동급생이었던 북군 고든 대령의 도움이 컸다. 처음 스톤웰 여단으로는 돌파가 힘들었다. 여단장 위드는 잭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잭슨은 테일러 여단을 우측으로 보냈다. 왼쪽으로는 이웰 사단을 보냈다. 뱅크스는 부대의 35퍼센트의 손해를 보고 무너지듯이 후퇴했다. 북군을 추격하는 부하들을 보면서 잭슨은 “내 기병대가 여기있내.”이라는 말을 남긴다. 아마 이 말에서 도보기병대라는 말이 유래되었을 것이다.
잭슨에게 진짜 기병대가 충분히 많았다면은 뱅크스군을 완전히 섬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에 수가 적었기 때문에 후퇴하는 북군을 차단하지는 못했다. 북군은 14시간만에 50킬로가 넘는 길을 주파하면서 도주했다. 하지만 프론트 로얄과 윈체스터 전투에서 얻은 전과는 엄청났다. 포로가 2,300명이었고, 북군 전체 손실이 3000명이 넘었다. 노획한 소총이 9천정이었고, 의복이나 식량도 엄청나게 확보했다. 잭슨의 손실은 불과 4백명이었다.
잭슨은 처음 뱅크스의 추격을 받으며 계곡을 빠져나갈 것처럼 기만하다가, 서쪽의 밀로이 사단을 공격하여 프레몬트 군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에 계곡으로 들어와 뱅크스를 공격했다. 그것도 남쪽에서 공격할 것처럼 속이다가 부대를 산맥의 동쪽으로 보내 뱅크스를 위에서 기습했다. 정원대로였다면 각각 압도할 수 있었던 북군 2개 군이 잭슨의 부대에 농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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