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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국 남북전쟁- 잭슨의 계곡 전투 3. 프레몬트 공격 [맥도웰 전투]

구름위 2012. 10. 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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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이 뱅크스 군의 추격로이며, 붉은 색은 잭슨군의 기동로, 녹색은 프레몬트 군의 밀로이 사단의 도주로이다.

 

 

  퀸스타운에서 패배한 후 3일 뒤, 잭슨은 마운트 잭슨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잭슨은 호치키스라는 지도 제작자에게 정밀한 계곡지도를 만들도록 했는 데, 지도 크기가 2.6미터나 되었다. 잭슨은 이 지도를 걸어놓고, 계곡의 통로나 지형, 북군의 배치와 남군의 기동로를 면밀히 연구했다.

  한편 뱅크스는 퀸스타운에서 잭슨의 뒤를 추격하였다. 잘 알지 못하는 지형인데다 남군의 기습을 두려워하면서 무척 천천히 추적하였으며, 톰스 개울에서는 600명 남짓한 애슈비 기병대와 부딪치자 1주일동안 그 자리에서 정지하였다. 4월 2일에 다시 움직였지만, 이번엔 스토니 개울에서 애슈비 기병대와 만났다. 여기서는 다시 2주일 동안 정지했다. 당시 링컨이 증원해준 1만을 더해 3만 5천의 병력으로 그는 5천명 남짓한 남군을 그렇게 추격한 것이다.


 북군이 이렇게 꾸물거리는 동안, 남군 사령관 존스턴은 잭슨에게 이웰 사단을 증원하면서 뱅크스의 군이 수도 리치먼드 근처에 오지 못하도록 임무를 내렸다. 뱅크스는 4월 16일에 뉴마켓에 도착했지만, 역시 애슈비 기병대와 남군 포병대에게 저지되어서 잭슨의 후퇴를 막지 못한다. 잭슨은 계곡을 빠져나와 스위프트 런 갭 근처의 콘라드 스토어에 숨었고, 뱅크스는 뉴마켓에서 잭슨의 행방을 놓치고 만다. 뱅크스는 워싱턴에 “잭슨은 영원히 계곡을 떠났습니다.”라는 보고를 한다. 4월 30일, 뱅크스는 계곡에서 할 일이 끝났기 때문에 맥클레란에게 가겠다는 보고를 올린다. 링컨은 5월 1일, 맥도웰의 쉴즈 사단과 뱅크스의 군은 계곡에 계속 남아있으라는 명령을 한다.

   잭슨은 콘라드 스토어를 출발해서 계곡의 남단 포트 리퍼블릭 쪽으로 행군했는 데, 당시 비가와서 진흙이 사람 무릎까지 찼다. 한참 고생하다가 마침내 방향을 돌려 계곡 동쪽으로 빠져나갔다. 계곡은 이제 군사작전이 힘들정도로 지형이 안좋기 때문에, 리치먼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했다. 부하들이 그럴 정도였으니 북군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남군은 메쿰 철도역에 승차하고 리치먼드로 갈 생각을 하고 있는 데, 철도가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가자 모두 깜짝놀랐다. 철도는 서쪽 스톤튼 역에서 정차했다. 당시 스톤튼 역에는 프레몬트 휘하의 밀로이 사단이 진격하는 중이었다. 스톤튼 역을 점령하면 잭슨과 남군 수도의 보급로가 차단되고, 뱅크스의 군과 프레몬트군이 연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잭슨은 스톤튼에서 하루 야영을 한 뒤, 10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서 존슨 사단과 합류했다. 당시 잭슨의 병력은 이웰에게서 연대를 증원받아 6천명 정도였고, 존슨의 병력은 3천명으로 총 9천명이었다. 밀로이 사단은 2개 여단으로 불과 2,500명이었다.


  밀로이 사단은 맥도웰에서 잭슨과 존슨에게 기습당했다. 북군은 남군에게 압도되어 ‘단지 도주할 시간을 벌기 위해’ 공격을 시작했다. 밀로이는 남군의 우측 존슨 사단 쪽을 밀어붙여서 거의 돌파할 뻔했는데, 잭슨이 탈리아페로 여단을 증원해서 우익을 방어했다. 이어서 북군은 중앙을 공격하였고, 당시 남군 중앙에는 12 조지아 연대가 배치되었다. 이들은 후퇴하라는 명령조차 거부하면서 싸워서 북군을 격퇴한다.

   

   전투가 종료하자 북군은 바로 백도웰을 빠져나왔다. 이 전투에서 남군의 사상자는 500명 정도였으며, 3분의 1이 12 조지아 연대에서 발생했다. 이 승리로 프레몬트군과 뱅크스 군의 연결은 실패하게 되며, 프레몬트의 선봉인 밀로이 사단은 북쪽으로 도주한다. 

     당시 이웰은 콘라드 스토어에 주둔하면서 뱅크스의 군이 계곡을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했다. 이웰은 콘라드 스토어에서, 잭슨이 무엇을 하는 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라 매우 불만이 많았다. “내가 보기에는 말야, 잭슨은 미친 것 같아. 그는 나를 여기 박아두고 어디가서 뭘하는 지 말하지도 않았어. 나는 상황봐서 여길 빠져나갈 거야. 내 부하를 저런 미친 놈 때문에 희생시킬 수는 없어” 이웰이 부하 참모에게 한 말이다.


  한편 잭슨은 맥도웰에서 승리한 뒤, 북군을 계속 추적하여 밀로이 사단은 프랭클린까지 후퇴하였다. 잭슨은 호치키스와 상의하여, 프레몬트 군이 계곡 쪽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고갯길을 차단하면서 계곡 내에 진입하였다. 링컨은 프레몬트에게 잭슨이 언급한 그 고갯길을 통해 진군할 것을 명령하자, 프레몬트는 계곡이 차단되었다고 답문을 보낸다. 그 후 10일 동안 프레몬트 군은 2만에 가까운 군대를 프랭클린 주변의 거점에 주둔하면서 혹시나 있을 지 모르는 남군의 공격에 대비한다. 물론 그런 공격은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프레몬트군은 잭슨이 자유롭게 계곡을 누비도록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되었다.  뱅크스나 프레몬트나, 지나친 신중함으로 훨씬 열세한 남군을 제압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끌려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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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도웰전투를  앞둔 잭슨과 존슨 장군



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jag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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