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색은 잭슨의 후퇴로, 파란 색은 프레몬트의 추격로, 녹색은 쉴즈의 추격로를 나타냅니다.
북군의 함정에서 빠져나온 잭슨은 남쪽으로 계속 진격하고, 북군 3개 부대는 잭슨을 추적하였다. 프레몬트의 1만 5천은 계곡 서쪽에서 추격하고, 쉴즈사단은 동쪽에서 추적하였다. 프레몬트군에는 맥도웰군 휘하의 베이어드 준장의 기병대가 있었다.
베이어드 기병대는 추격하자마자 스트라스버그와 우드스탁 사이의 도로에서 남군의 후위를 기습했다. 남군의 후위부대는 와해됬는데, 애슈비 기병대장이 나타나 재집결시켰다. 다음날인 6월 3일, 애슈비 기병대장은 자신의 기병대와 후위부대로 북군의 선봉을 저지하는 한편, 노스포크 강의 다리를 불태웠다. 애슈비 장군은 북군을 6월 5일 아침까지 저지하여 잭슨에게 24시간의 시간을 벌어줬다. 다음날인 6월 6일, 애슈비 장군은 전사했다.
애슈비 기병대장. 그의 죽음은 초기 남군 기병대 최대의 손실이었다.
6월 7일, 잭슨은 크로스키이와 포트리퍼블릭 지역에 도착했다. 잭슨은 이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를 장악한체, 북군 2부대를 각각 공격할 생각이었다. 잭슨군은 두 지역에 병력을 배치하면서도 다리를 통해 쉽게 병력을 집중할 수 있지만, 북군은 분리되어 있고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야 할 판이었다.
처음 잭슨은 프레몬트군을 공격할 생각이었지만, 6월 8일 아침 쉴즈사단의 기병대가 1천명의 보병을 동반한채 포트 리퍼블릭의 잭슨군을 기습했다. 북군 기병대는 포트 리퍼블릭 시내로 들어왔고, 하마터면 잭슨도 사로잡힐 뻔했다. 기병대는 남군을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까지 거의 도달했지만, 잭슨군의 포병대와 기병대가 반격을 가해 후퇴시켰다. 만약 다리가 절단되었다면 잭슨군은 분리된 상태로 각각 쉴즈사단과 프레몬트군을 상대했을 판이었다. 이 공격으로 인해 잭슨은 쉴즈사단을 더 위험한 적으로 보고, 프레몬트보다 먼저 공격하기로 하였다.
포트 리퍼블릭에서의 잭슨과 포병대
하지만 6월 8일 오후에 프레몬트군이 크로스 키이를 공격했다. 크로스 키이에 배치된 남군은 이웰 사단으로 6천명 남짓이었다. 프레몬트 군 1만 5천은 숫적으로 압도할 수 있었지만, 프레몬트는 자신의 24개 부대 중 불과 5부대만을 전투에 동원하였다. 양측의 포격전이 거의 2시간동안 있었고, 스타헬 장군의 북군이 남군 이삭 트림블 장군의 여단으로 공격했다. 트림블 장군은 60세로 남군 최고령자 중 한명이었다. 트림블의 부대는 스타헬을 격퇴했다. 북군의 생존자는 도주하면서 다가오는 2선 부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같이 후퇴하게 만들었다. 트림블 장군은 자신의 부대 전방 800미터에 북군 포대가 있는 것을 보고 돌격을 명령했고, 북군 포대는 후퇴하였다. 이웰은 추가 공격을 예상했지만 프레몬트는 추가 공격을 하지 않았다.
이웰의 크로스 키이 전투는 프레몬트군을 후퇴하게 만들었지만, 남군의 위치는 프레몬트군과 쉴즈 사단 사이에 끼인채 불안한 상황이었다. 잭슨은 이웰 사단 6천명에게 크로스 키이에서 프레몬트군을 견제하도록 한 뒤, 6월 9일 1만명 남짓한 남은 병력으로 쉴즈 사단의 2개 여단을 공격했다. 당시 쉴즈 사단 중 2개 여단은 콘라드 스토어에서 쉴즈 사단장이 인솔해서 오는 중이었고, 포트 리퍼블릭 근처 루이스톤에 있던 북군 부대는 테일러 준장이 인솔하는 3천명의 병력이었다.
전투는 3시간동안 치러진 격전이었는 데, 처음의 남군은 북군의 축성진지로 인해 돌파에 애를 먹었다. 또한 북군의 반격과 포격전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었는 데, 이웰이 트림블 여단을 남기고 남은 부대를 동쪽으로 지원을 보내서 마침내 북군은 패주하게 된다. 남군의 테일러 여단과 탈리아테로 여단이 이들을 스위프트 런 갭까지 추격하여 쫒아낸다.
잭슨은 프레몬트를 견제하기 위해 남아있는 트림블 여단을 복귀시키고, 6월 10일 전 병력을 브라운 갭 너머로 이동하고 북군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프레몬트나 쉴즈 사단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쉴즈 사단은 콘라드 스토어에서 패주한 부대를 재정비하는 데에 바빴고, 프레몬트는 해리슨버그로 후퇴하고 200명의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두 부대 모두 크로스키이와 포트 리퍼블릭에서의 패배로 인해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잭슨은 북군의 움직임이 없자 6월 12일 숙영지를 와이어스 캡으로 옮기고, 리 장군이 리치먼드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보내기까지 5일동안 휴식했다. 6월 17일, 잭슨은 리치먼드를 향해 출발, 이후 리 장군의 7일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이로써 계곡전투는 모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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