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판토 해전 당시 승부를 결정지은 것은 배에 승선하고 있던 전투원들의 백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백병전 이전에 있었던 갤리어스나 기타 군선들의 포격이 이후의 백병전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는데 크게 기여했음은 분명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었죠. 그 이래로 해전에서 함포의 역할은 점점 더 증대되어 범선 시대의 해전에서는 오히려 함포가 주역이 되고 백병전은 마무리 역할로 전락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19세기 이후부터는 <대함거포>라는 말처럼 실로 함포의 전성시대가 찾아오게 되는 것이죠. 이번 글에서는 범선시대의 해전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이러한 함포의 발달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초기의 함포
지중해 권역을 포함한 서구에서 대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병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380년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그 후 15세기 중후반부터 비교적 대포 사용이 빨랐던 지중해 권역을 중심으로 군선에 함포를 장착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에 이르죠. 이 당시 사용되던 함포는 <베르소(Verso)>라는 타입의 포였습니다. 이 포는 연철로 된 봉 다발을 원통 형태로 묶은 뒤, 거기에다가 보강을 위해 연철제 테를 두르는 방식으로 포신을 만들도록 되어 있었죠. 또한 포신과 약실도 분리되어 있어서 포신 뒷부분에 머그컵 모양으로 생긴 약실을 결합시켜서 포탄을 발사하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주: 부연 설명하자면, 유럽에서 최초의 대포 내지는 화약병기라고 할 만한 것이 묘사되는 것은 1326년 혹은 1327년의 일이며 백년전쟁 중인 1346년에도 공성전에 원시적인 대포가 사용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병기들은 아직까지 실질적인 위력보다는 심리적인 효과를 갖는데 머무르고 있었고, 대포가 공성전에서 어느 정도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 대략 1380년 무렵부터라고 합니다. -헐..님의 지적으로 2008.12.15에 수정-)
이 타입의 포가 가진 장점은 단 하나 뿐이었습니다. 즉 포탄과 장약을 장전해둔 약실을 미리 여러 개 준비해놓은 다음, 한 번의 사격을 마친 뒤에 약실을 재빨리 교환함으로써 다음 포격을 빨리 할 수 있었던 것이죠. 허나 베르소의 장점은 오직 그것 뿐으로써, 이 포는 연철봉을 묶어서 포신을 만드는 특유의 방식 때문에 포신의 틈 사이로 발사 가스가 새나와서 포탄의 위력이나 사정거리가 형편없었습니다. 또한 포신이나 약실이 발포 시의 압력을 충분히 견뎌내지 못해서 폭발하는 경우조차 종종 발생하곤 했다고도 하네요.
[(좌) 지중해 시대에 쓰인 함포들. 참고로 가운데의 주조제 베르소는 동아시아로 전해져서 불랑기 포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우) 지중해 갤리선의 함포 장착 형태. 위쪽은 1490년대, 아래쪽은 1570년대 무렵.]
2. 16세기 지중해의 함포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연철봉제 포신은 점차 도태되기 시작했고 그 대신 청동이나 철 등을 이용하여 포신을 통째로 주조(鑄造, casting)하는 방법이 주된 포 제작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주조포는 포탄의 장전 방법이나 포탄의 재질 등에 따라 다시 2종류로 나뉘게 되는데, 이중 첫 번째는 포신만 주조로 제작하고 약실은 여전히 분리되어 있는 타입인 주조제 베르소였죠. 두 번째는 베르소와 달리 약실이 분리돼 있지 않고 완전히 일체화해서 주조되며, 포탄과 장약 또한 포미가 아닌 포구를 통해 장전하는 방식인 포구 장전식 포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형식의 포가 범선시대의 말기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함포 형태로 자리 잡게 되죠.
1) 해전에서의 함포의 역할
그렇다면 이렇게 확립된 함포는 해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을까요? 사실 초기의 함포는 당초에는 적군의 군선에 대해 거의 실질적인 효력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지면이 안정돼 있던 육상에서도 잘 맞지 않던 대포가 배가 쉴 새 없이 요동치는 해상에서는 더더군다나 명중할리 만무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점차 함포의 제작방식 등이 개선되면서 사정거리와 위력 등이 개선되자 1520년대 즈음부터 함포는 실질적인 함재 병기로써 기능하게 되기에 이릅니다.
물론 이 무렵의 함포는 적의 군선 자체를 타격하기보다는 그 배에 타고 있는 적 전투원을 살상하는 대인병기의 성격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1528년에는 제노바인 안토니오 도리아의 군선이 뱃머리에 실려 있던 각종 포 7문의 일제사격 한 번으로 갑판 위에 있던 적 승조원들을 40명 이상 살상한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렇듯 적함의 전투원을 살상하는 것 이외에도 함포는 노잡이들을 살상하거나 노열이나 돛, 그리고 마스트 등에 피해를 입힘으로써 적함의 기동력을 저하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아주 드물게는 적함에 화재를 유발하거나 포격 자체만으로 적함을 침몰시킬 수도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을 테죠.
2) 16세기 지중해 함포의 한계
허나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 함포의 역할은 제한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이전의 레판토 해전 글들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듯이 당시 군선이 탑재하고 있던 함포가 기껏해야 5~7문 이내로 소규모였던 것, 발사속도가 2분당 1회 정도에 불과했던 것과 결정적으로 함포의 유효 사거리가 180~400m 정도로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런 제한점은 같은 시기의 대서양 방면에서도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허나 범선이 함포 적재 수량이나 방식 등에 있어서 갤리에 비해 훨씬 발전의 여지가 높았던 반면 갤리 군선은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포문 수도 적고 발사속도도 느렸기 때문에, 결국 갤리 군선에서의 함포는 백병전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보조 병기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마는 것이죠.
3. 범선 시대의 함포와 주요한 발전들
한편 지중해의 베르소와 마찬가지로 대서양 방면에서의 함포도 처음에는 포신과 약실이 분리되어 있는 <조립포(Built-up Gun)>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함포의 대세가 청동이나 황동, 철 등을 재료로 한 주조제 포구 장전식 포로 넘어가는 것은 대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시기의 주조포는 포탄 무게가 0.3파운드에 지나지 않아 사실상 포보다는 총에 가까운 초소형의 <라비넷(Rabinet)>에서부터 18파운드짜리 포탄을 발사하는 <컬버린(Culverin)>과 26파운드 급의 <페드레로(Pedrero)>, 그리고 최대급이라 할 수 있는 74파운드 급의 <캐논 로열(Cannon Royal)>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했죠.
[16세기 영국의 주요 함포 분류 표]
1) 포의 발사절차와 문제점
포구 장전식 주조포는 그 이름처럼 기본적으로 포구를 통해 장약과 포탄을 장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장전이 완료된 이후 도화선이나 부싯돌로 장약에 불을 붙여 포탄을 발사하고 나면, 꼬질대를 사용하여 포강 내에 남은 화약 찌꺼기 등을 제거한 뒤 다음 장약과 포탄을 장전할 준비를 마침으로써 포격의 한 사이클이 완성되는 방식이었던 것이죠.
[범선 시대 함포의 기본 구성과 발사 절차.(우측의 그림은 19세기 야포의 발사 절차를 묘사한 것이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거의 동일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동은 선체에 막대한 부담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포수들이 위치하는 곳과는 반대방향으로부터 포탄과 장약을 장전하고 찌꺼기를 빼내야 했기 때문에 작업에도 불편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16세기 중반 즈음부터 스페인에서는 육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바퀴가 2개 달린 포가에 함포를 얹어서 함포의 전후 이동이 보다 용이해지도록 했지만, 이 또한 사실상 반고정 상태나 마찬가지여서 실질적으로는 작업원들의 힘이 많이 필요했던 상태였다고 합니다.
2) 포가(Gun Carriage)의 개량
진정으로 혁신적인 포가 체계는 16세기 중반 무렵에 영국에서 나타났습니다. 이 신형 포가는 기존의 고정식 포대나 바퀴 2개짜리 포가와는 달리 바퀴가 4개나 달려 있어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포가를 앞뒤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 신형 포가의 장점은 포가 자체뿐만이 아니라 포가를 두터운 완충용 로프로 포문 쪽 선체와 연결하는 것에 의해서만 완전히 발휘될 수 있었습니다.
[(좌) 1588년의 무적함대 해전 당시 스페인의 2바퀴 포가가 달린 함포.
(우) 4바퀴 포가와 완충 로프의 작동 원리. 위쪽이 발사 전, 아래쪽이 발사 후]
즉, 이 체계의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선 포가 발포되면 반동으로 인해 포가는 뒤로 밀려나게 됩니다. 하지만 포가와 선체를 연결하고 있는 로프 때문에 포가는 무한정 움직이지는 않고 최초의 위치로부터 대략 48~61cm 정도만 뒤로 밀려났다고 하죠(로프가 없을 경우는 3m 이상이 다반사였다고 함). 이 지점은 포구를 통해 작업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나오면서도, 그와 동시에 포를 지나치게 뒤로 빼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사격을 위해 포를 많이 움직일 필요도 없는 아주 이상적인 위치였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4바퀴 포가와 로프의 연계 시스템 때문에 영국 해군의 포수들은 그다지 많은 시간과 힘을 들이지 않고도 계속해서 포를 쏠 수 있었고 덕분에 포의 발사 속도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17~18세기 영국의 포수들은 최대 1분당 1~1.5회 정도로 포격을 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중해 시대에 동급의 포의 발사속도가 기본적으로 2~3분당 1회 정도였음을 상기해보면 이는 엄청난 진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18세기에 실험됐던 포가들 중 하나. 포가를 뒤쪽 위로 경사지게 함으로써 자연히 반동을 상쇄하려는 시도였지만, 단순히 앞뒤로 물러나는 포가와 달리 이 과정에서 조준이 어긋난다는 문제가 있었으므로 채택되지 못했죠.]
4. 포탄의 종류들
한편 16세기말에서 17세기 중반 사이의 시기는 포탄의 종류에도 많은 발전이 있던 때였습니다. 본래 최초의 함포에 사용된 포탄은 육상의 공성포와 마찬가지로 돌을 공 모양으로 둥글게 깎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6세기에 접어들면서 포신을 주조로 제작하게 되는 시기에 접어들게 되자, 포탄 또한 포신처럼 쇳물을 부어 주조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발상이 나타나게 되었죠.
결과적으로 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철제 포탄은 돌 포탄에 비해 약 2~3배 정도 파괴력이 더 강했을 뿐만 아니라, 직공이 돌을 일일이 하나씩 수작업으로 깎아서 만드는 돌 포탄에 비해 철제 주물 포탄의 가격이 훨씬 싸게 먹혔기 때문이었죠. 그리하여 우리가 해적 영화나 범선 시대 해전 영화 등에서 자주 보듯이 둥근 쇳덩이로 된 원형탄(solid shot)이 포탄의 기본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 포탄의 기본: 원형탄(round shot)
이런 원형탄은 그 당시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먼 거리까지 날아갈 수 있었으며, 탄도의 정확성 또한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 포탄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관통력이었는데, 이를테면 24파운드 포의 원형탄은 80m 거리에서는 약 1.5m의 단단한 참나무로 된 선체를 관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전열함의 선체 두께가 약 0.6.m 정도 됨).
하지만 작약이 내장되어 있어서 명중 후에는 대폭발을 일으키는 오늘날의 포탄과는 달리 이 원형탄은 단순한 쇳덩어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범위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직격하지 않는다면 기껏해야 관통 후에 발생하는 나무 파편 등을 통해 사람이나 장비 등에 간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정도가 고작이었던 것이죠.
[(좌) 다양한 포탄들: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각각 원형탄, 포도탄, 봉탄, 사슬탄임.
(우) 19세기 초에 미국에서 개발된 별탄(star shot). 봉탄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써 표면적이 늘어나 돛 등에 더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었죠]
2) 보다 특수한 종류의 포탄들
그 때문에 원형탄 이외에도 특정한 상황과 용도에 보다 특화된 다양한 포탄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중 첫 번째 부류는 주로 선체 자체 보다는 돛이나 마스트,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로프나 기타 항해장비들에 피해를 입히기 위한 포탄으로써, 사슬탄(chain shot)이나 봉탄(bar shot) 등이 이에 해당됐죠. 이들 포탄은 원형탄 2개를 쇠사슬 또는 가느다란 쇠막대로 연결해 놓은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포탄은 비록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탄의 표면적이 늘어나므로 원형탄처럼 구멍만 내는 수준이 아니라 돛을 길게 찢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좀처럼 맞추기 쉽지 않은 마스트나 가는 로프 등을 끊는데도 안성맞춤이었죠. 아마도 아령이나 바벨 등을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선체에 대한 피해보다는 대인살상에 특화된 포탄으로써, 포도탄(grape shot)이나 산탄(canister shot) 등이 있었습니다. 산탄은 말 그대로 작은 금속제 통에 쇠구슬 등을 가득 담아놓은 것으로써 오늘날의 샷건 탄환과 비슷한 방식으로 기능한 포탄이었죠. 한편 포도탄은 둥근 원판에 조그만 원형탄들을 다닥다닥 붙여놓은 것으로써 그 모양이 마치 포도송이와 비슷하다고 하여 저런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들 또한 원형탄에 비해 사정거리는 짧았지만, 근거리에서는 그야말로 탄막을 형성하여 단 한 발로 원형탄보다 넓은 범위에 있는 적함의 선원과 전투원들을 살상할 수 있었죠.
세 번째 부류는 특정한 포탄이라기보다는 원형탄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써, 일명 가열탄(heated shot)이라고 불렸습니다. 이는 포탄을 불에 달구어 뜨겁게 만든 다음 발사함으로써 적함에 명중했을 때 화재를 유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아마도 활의 사용법에 일반 화살 외에 불화살이 있었던 것과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 포탄을 사용할 경우에는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었는데, 이는 불에 달궈져서 뜨거워진 포탄 때문에 점화구에 불을 붙이기도 전에 장약이 저절로 인화하여 포가 폭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문에 영국해군은 가열탄을 사용할 경우에는 먼저 포신에 물을 뿌려 포신을 충분히 식힌 후에야 포탄을 장전하도록 했다고 하죠.
3) 16~18세기 포탄들의 한계
그렇지만 이런 다양한 탄종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존재했습니다. 이제까지 언급한 17~18세기의 포탄들은 명중 후에도 폭발하거나 하지 않는 단순한 쇳덩이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당시에도 포탄 내부에 화약이 들어있어서 도화선에 불을 붙인 후 이를 다시 포에 장전하여 발사하는 식의 초기 형태의 작열탄이 존재하긴 했지만, 신관 조정의 어려움 때문에 이는 해안 요새 등에서 접근해오는 적함 등을 포격하는 경우 등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됐을 뿐이었죠.
그 때문에 17~18세기의 함포는 주로 대인용 병기로만 작용했던 지중해 시대의 함포와는 달리 배와 선체 자체를 공격하는 병기로 기능하긴 했지만, 적함을 전투불능 상태로 만들 뿐이지 선체를 침수시켜서 침몰시키는데 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포수가 의도적으로 수면 하부의 선체에 명중탄을 내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주로 피격으로 인해 화재가 일어나거나 선체 하부의 화약고에 유폭이 일어날 경우에만 간접적으로 침몰에 기여하는 수준이었던 것이죠.
[1774년 무렵에 등장한 영국의 신형 함포 캐로네이드. 포탄은 대구경이었지만 사정거리는 극도로 짧았으며, 비교적 무게가 가벼웠기 때문에 근대 해전에서의 어뢰와 마찬가지로 소형함의 필살 병기로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넬슨의 기함 빅토리의 후갑판에 실려 있는 12파운드 포.]
4. 포술과 교전 원칙의 정립
이제까지 살펴본 것을 종합해보면, 17~18세기의 함포는 지중해 시대에 비해 다소 나아지긴 했어도 안정된 명중률이 나오는 유효사거리가 300~500m 정도로 여전히 짧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포탄이 단순한 쇳덩어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포탄 한 발이 선체에 입힐 수 있는 피해 또한 다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죠.
[트라팔가 해전 당시 빅토리의 포갑판 내부의 모습. 오른쪽 아래의 소년은 <파우더 몽키(powder monkey)>라고 하여 화약고로부터 장약 등을 운반해오는 역할을 하며, 불씨 등으로 인해 장약이 인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속제 통에 장약을 넣어서 운반합니다.]
그 결과 이 시대의 포술은 첫째로 <근거리 교전>, 즉 조준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지근거리(18세기의 기준으로는 약 200m)에서 적함과 포화를 주고받는 것을 상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그런 지근거리에서 가용한 함포를 전부 발포하는 것, 즉 <집중 포화>를 기본으로 하기에 이르렀죠. 그러므로 상대방의 함포가 닿지 않는 원거리에서 적함을 일방적으로 난타한다거나 한 두 문의 포를 정밀 조준하여 발포한다는 개념은 이 시대의 해전에서는 성립하기 어려웠습니다.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적함에 입힐 수 있는 피해는 미미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죠.
그리하여 17세기 초중반부터 각국의 함대는 점차 위와 같이 <근거리에서의 집중포화>를 포술의 기본 원칙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에 더해 함포 또한 장포신의 컬버린 타입보다는 단포신의 캐논 계열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죠. 17~18세기의 해전을 다룬 그림이나 영화 등에서 서로 교전 중인 두 함대나 군함들이 모두 한 화면에 들어올 정도로 붙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오늘날 대포를 지칭하는 일반적 단어가
[1781년의 체사피크 해전(Battle of Chesapeake). 이처럼 두 함대의 전열이 근거리에서 서로 나란히 항해하면서 포화를 주고받는 것이 범선 시대 해전의 기본 원칙이었습니다]
5. 근대적 함포로의 이행: 작열탄의 등장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최초 등장 시부터 약 400년 동안 함포의 포탄은 자체적인 폭발력이 없는 쇳덩어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은 19세기 초반에 실용화되는 근대적인 작열탄(explosive shell)의 등장 때문이었죠.
이 당시 트라팔가 해전과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패배 이래 19세기의 프랑스 해군은 전통적 라이벌인 영국 해군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허나 이미 나폴레옹 전쟁 종결 이래 영국 해군의 양적․질적 우위는 확고한 것이었기에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그러한 격차를 따라잡을 방법이 없는 실정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가 택한 전략은 신기술과 신병기 개발을 통한 해상패권의 탈환이었으며, 함포 포탄의 새 지평 또한 프랑스에서 시작되기에 이릅니다.
[19세기의 발전의 산물들: 장갑함 워리어에 실려 있는 포미 장전식 포. 오른쪽 하단에 놓인 것이 바로 작열탄으로써 오늘날의 포탄과 같은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 페크상의 작열탄과 그 특징
1822년, 프랑스 육군 포병대의 앙리 페크상(Henri Joseph Paixhans) 장군은 『새로운 해군력과 포술』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장갑판으로 보호되고 작약을 채운 작열탄을 발사할 수 있는 함포를 탑재한 군함은 아군의 손상 없이 적의 목제 군함을 파괴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년 뒤인 1824년에 낡은 군함을 상대로 한 포격 실험에서 이 신형 포탄의 효과가 입증되자 프랑스 해군은 페크상의 작열탄을 사용하는 함포를 공식 채택했고, 그 이듬해부터 영국해군과 다른 유럽 국가들의 해군 또한 작열탄을 채용하기에 이르렀죠.
페크상의 작열탄은 도화선 방식의 신관을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즉, 장약이 점화되어 포탄이 발사될 때 그와 동시에 포탄 안에 내장돼있는 도화선에도 불이 붙음으로써 나중에 작약을 폭발시키는, 일종의 시한신관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때 시한의 조정은 사정거리에 따라 도화선의 길이를 변경함으로써 조정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손으로 도화선에 불을 붙여서 포탄을 발사하는 범선 시대의 작열탄과 다른 점이 별로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선상에서 직접 불을 다룰 필요가 없어진 것이나 포탄이 조기에 폭발할 위험성 등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페크상의 작열탄은 획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2) 작열탄의 실전 투입 결과: 시노프 해전
이후 작열탄은 1853년 11월에 흑해에서 벌어진 시노프 해전(Battle of Sinope)에서 사용됨으로써 드디어 실전에서 그 진가를 입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터키의 항구 도시 시노프를 급습했던 러시아 함대의 전열함 6척은 모두 68파운드 작열탄을 장비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정박 중이던 프리깃 6척, 코르벳 5척의 터키 함대에 포격을 가하여 6시간의 교전 끝에 이들을 코르벳 1척만 남기고 모두 침몰시키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해전에서 작열탄에 명중당한 터키 군함들은 1~2발만에 말 그대로 선체가 갈갈이 찢겨 나가거나 두 동강이 나는 등, 전통적인 함포탄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의 피해를 입었던 것입니다.
[시노프 항 안에서 불타고 있는 터키의 군함들. 시노프 해전은 작열탄의 일반화에 대해 주저하던 각국 해군들의 인식을 돌변시킨 계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 해전의 결과로 인해 함포탄의 표준이 대대적으로 바뀐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게다가 기존의 목제 군함으로는 작열탄을 견뎌낼 수 없음이 명백해짐에 따라 장갑함의 발전 또한 촉진되기에 이르렀죠. 그 이후로는 19세기의 기술 발달에 따라 포신에 강선이 새겨진 포미 장전식 대포 등이 등장하면서 함포는 구경이나 위력, 사정거리 등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근대적인 함포의 세계가 비로소 열리게 된 것이죠.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아오키 에이치, 최재수 옮김, 『시파워의 세계사: 1, 2권』 (한국해사문제연구소, 1995).
- 김주식, 『서구해전사』 (연경출판사, 1997).
- 윌리엄 맥닐, 신미원 옮김, 『전쟁의 세계사』 (이산, 2005).
- Brian Lavery, The Arming and Fitting of English Ships of War 1600-1815 (Naval Institute Press, 1988).
- Bernard ireland, Naval warfare in the age of sail (Norton,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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