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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이버크 제독에 대한 에피소드 몇개

구름위 2013. 1. 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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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백선엽 장군의 저서와 알레이 버크 제독

 

 

 

-현대 미국 해군의 아버지-

 

켄 존슨&허버트 켈리 주니어 저/ 김주식 역

 

한국 해양 전력 연구소 출판 2012년 에서 발취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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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노트 버크


이 별명은 처음에는 조소가 섞인 뜻이었지만, 나중에는 전설적인 의미로 받아 들였다.

 

태평양 전쟁 당시 대령이던 알레이 버크는 23구축함전대장이어서 몇척의 구축함을 지휘했다.


어느날 할시 제독의 참모가 일본군 구축함들을 발견하고 이들을 공격할 23구축함대를 호출하면서 이동 가능한, 함정, 속도, 목표지 도착 예상시간을 보고하라는 전문을 보냈다.


이때 버크의 구축함 한척이 보일러 고장이 발생하여 여기에 참가못 할 상황이었으나 31노트로는 이동 가능하니 제발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한다.


버크는 보고하기를 31노트로 10시에 도착예정이라는 전문을 송신한다.


이 전문을 들은 할시 제독의 참모는 기가 찼다.


그는 버크의 구축함이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들 플레처급 구축함은 34노트까지 가속이 가능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미해군장교들은 모두 다 아는 전설적인 별명을 만들어 답신을 한다.


수신자 명으로 23전대장이 아니라 ...


"31노트 버크에게"로 한것이었다. (그뜻은 34노트인 구축함가지고 31노트로 간다니 놀고있냐? 라는 뜻)


하지만 버크는 목표지점에 도착하자 마자 일본군 함대를 두둘겨 부수기 시작했다.


보통 태평양전쟁 당시 구축함끼리의 전투에서는 일본군이 더 유리한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뛰어난 그의 지휘로 일본군 함대는 23전대에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고 일본해군의 무적 무기인 산소어뢰를 발사할 타이밍조차 잡지 못했다.


23전대가 31노트로 추격하자 일본함대의 남은 2척의 전투함은 최고속도로 그대로 내빼버린다.

 
31노트로는 이들을 따라잡을수 없자, 보일러 고장난 그 구축함은 그냥 두고 34노트로 추격에 들어간다.


최고 속도로 간신히 도망가던 남은 일본전투함들은 안심하다가 따라잡혀서 박살이 나 버렸다.


일명 tin man( 깡통-구축함 별명- )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알레이버크의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적함과 교전하며 포화를 교환하면서도 우리는 피해가 적고 적은 심대히 파괴하는 그것은 어느 해군장교가 마다할 순간인가?


31노트 버크 라는 별명은 이제 영악하고 최고 속력으로 전투에 임하는 버크라는 뜻으로 전쟁중에 미해군내에서 널리 알려졌다.

어쩌면 무모하고 저돌적이며 전투적인 전투장교의 표상처럼 보이는 버크의 성격에 다 치밀한 면은 그를 최고의 해군장교로 만들었다.


거기다가 미쳐제독의 참모장으로 근무하면서 항공모함과 항공대의 운용법까지 철저히 배우고 놀랍도록 뛰어난 과감하고 뛰어난 솜씨로 참모장을 해내었기 때문에 처음 그를 쫓아버릴려고 한 미쳐제독은 버크를 자신의 함대 2인자로 완전히 인정한다.


이런 버크의 초급장교 시절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남미의 어디에서 그가 탄 함이 정박하자 근처 호텔에서 하루밤을 지내게 된다.


프론트에 몇시에 깨워줘야 승선할수 있다고 부탁하고 잠을 잤지만 깨워주기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군함이 이미 출항을 하였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대 사고였다.


버크는 근처 영국군함의 보트가 나와있는 것을 보고 그 보트의 정장(부사관)에게 자신을 자기 군함까지 태워달라고 요청했다.


함장의 명령으로 부두에 나와 정박중인 영국해군의 부사관은 웃기지 마쇼 하는 반응을 보인다. 아무리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자......버크는 단호하게 말했다.


" 장교로 명령한다. 나를 저기까지 태워라!!!!!!!!!"


이 뭔 황당무계한, 미해군이 어딜....???


보트의 정장은 혼란에 빠졌다. 거의 20년은 족히 부사관으로 근무했을 이 사람은 머리에 피도 안마른 나이의 장교라도 그것도 미해군 장교라도 (자긴 영국해군인데) 장교를 장교인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미해군 부사관이었으면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부사관은 명령에 복종한다. -o-


출항때 승선하지 못한 애송이 장교가 웬 영국군함 보트를 타고 승선했으니 함장이 화가 나기 보다 웃기에 바빴고 버크의 장래는 망쳐지지 않았다.

 

 


필요한때에 과감히 행동하는 버크의 에피소드는 정말 많다.


미해군 역사를 좀 아는 사람은 킹제독이 얼마나 고집불통인 노인네인지 알것이다.


태평양전쟁에 이기려고 가용한 모든 함대를 태평양으로 밀어버리는 통에 대서양에 호송함 조차 부족하여 독일 유보트들에게 엄청나게 피해를 입음에도 눈껌쩍하지 않았다.


영국측에서 킹제독이 죽으면 전쟁은 더 빨리 승리할것이다 라고 불평할정도였다.


실제로 킹제독의 딸이 백발이 되어 출연한 다큐멘타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누굴 미워하시진 않으셨어요, 모두를 싫어하셨거든요"


친 딸이 이렇게 말할 정도이니.....


태평양에서의 작전을 마치고 귀국할때 미쳐 제독은 ' 나 사라질것이니 자네가 가서 보고하고 해라 무슨일이 벌어지지 전까지 내가 준 쪽지를 절대 열어보지 말라'


나 낚씨 가니 모르는 척해라'....하고 사령부로 버크를 보냈다.


버크는 유머스럽게 보고서 첫페이지에 만화나 그림 등을 포함시켰는데 킹제독에게 가는 작전보고서에 아가씨 그림이 있었다.


아주 고약한 이 영감 껀수 하나를 잡는다.


이거 뭐야?
미쳐 제독의 보고서입니다.
이게 뭐냐고?
미쳐제독이 서명했습니다.
이게 뭐냐니깐?
보고서를 읽고 계십니다.
이 염병한 여자들 니가 넣었냐?
......
니가 넣었구만
제가 넣었습니다.
-이후 5여분간의 연설(???)- 그리고 숨좀 쉬고 다시 시작할려는 찰나.
버크의 반격
터너 제독의 작전보고서 기억하십니까?
몰라!(알게 뭐냐 쌍)
그거 가져 와도 됩니까?
가져와!
엄청나게 두꺼운 터너제독의 작전명령서....
이건 안읽어보셨네요
그래서 뭐!
그런데 저희건 읽어보셨네요
??? 어쩌라구??
그게 이 여자 그림이 있는 이유입니다. 터너제독 보고서는 아무도 안읽지만 우리껀 모두 읽습니다.(더구나 두께도 얇다) 우하하하~


킹제독 아무말도 않하고 그냥 버크를 한참 노려본다. 그리고 한마디.


그래 가져가라 가져가!!! 껴져!


넵 (씨익 ^^ 랄라랄라라~)

 

 

 

2차대전이후의 미해군에서 버크는 전설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하는데 이른바 '제독들의 반란"에서였다.

 

국방장관의 미해군 축소 계획에 반기를 둔 제독들과 이에 동조한 당시 대령의 알레이버크의 사건은 현대 미해군이 있게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장거리 폭격기가 있으니 항공모함은 필요가 없다는 논리에 반기를 둔 이 사건으로 몇명의 제독이 옷을 벗게 되는 결과와 버크의 제독 진급을 누락시키게 된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미국에 항공모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을 완전히 박아 넣어버렸다.

 

한국전쟁에서 함대를 지휘한 버크는 유명한 백선엽장군과의 우정과 한국지상군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구상한 사람으로 한국에 깊이 관여했다.


휴전회담 대표의 일원으로써도 그렇고.


어느 해군 제독이 지상군의 작전에 참여하여 총격전까지 벌였겠는가?


한국육군의 수색작전에 참여했는 이 이야기는 백선엽장군의 계획이 아니라 버크제독의 아이디어였다.

 

몇가지 에피소드를 더하자면 한국전쟁 당시 백선엽 장군이 우리 같이 어디 좀 가자라고 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고 따라간 버크.

 

그 자리는 미8군 제독 리지웨이 장군에게 보고 하는 자리였다.

 

그냥 그 자리에 구경하던 버크는 갑자기 백선엽장군이 본인의 포병 사령관 버크제독이 함포지원에 대하여 보고 드릴겁니다 라고 리지웨이에게 말하는 것을 듣고 혼비백산한다.


"당했다!"


어쩌겠는가?


리지웨이에게 그냥 간단한 브리핑을 해야 했다.

 

 


하루는 리지웨이랑 버크는 아이스크림을 버크의 기함에서 먹기로 작당한다. 한국에 냉장고가 있는 곳이 얼마나 됐겠는가?


헬리콥터를 타고 전함으로 가서 착륙을 하는데 문제는 조종사가 초보였다.


승객은 한국전선에서 미해군과 전체 UN군을 지휘하는 버크과 리지웨이. 조종사는 그만 쫄아버렸고 헬기는 착륙장에 거의 꺼꾸로 처밖혔다. 약간만 옆으로 빠졌으면 동해물속으로 꼬르륵 할뻔.


기어서 빠져 나온 두 사람은 실의에 심각하게 빠진 조종사를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로 갔다.


이제 돌아갈때 헬기가 안되니 보트로 리지웨이를 바래다 주려는 버크.


리지웨이를 파도가 치는 동해의 해변에 내려주고 보트의 정장에게 말했다.


" 자네 파도치는 해변에서 보트를 후진할줄 알지?"


경험 없는 정장과 보트운용 수병들은 혼이 나갈뻔 했다. 그들은 해본적이 없었던것.


하는 수 없이 버크가 고래 고래 소리치고 보트의 수병들을 갈궈대면서 겨우 그 해변을 빠져나왔다.


그날 보트의 수병들과 정장은 함대사령관에게 직접 한참 동안 욕처먹는 영광을 누려야 했다.

 

 


공격적인 성격의 버크는 따분한 해상생활이 지겨웠다. 백선엽 장군에게 이런 제의를 했다."나 수색대랑 같이 전방 수색하고 싶어."


졸지에 백선엽 장군은 버크를 데리고 전방의 전초를 넘어 수색하는 한국군 수색대에 참가했고 그날 밤 실제 교전이 벌어졌다.


북한군은 몰랐겠지만 바로 앞에 별이 몇개가 나와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땅을 치며 후회했을것.ㅋㅋ

 

 


백선엽 장군이 참모총장이 되어 미국을 방문했을때 새벽까지 미군친구들과 떠들다가 막 자려는 찰나 호텔방을 누가 두두렸다. 나가보니 당시 한국에서 근무중이던 버크 제독.


오랜만에 만나 술한잔 하자고 온게 아니었다. 중대한 이야기를 하려는것.


당시 미국은 휴전을 준비중이었고 신임 대통령인 아이젠하워가 이를 추진중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한국에 대한 지원이 드러나지 않았다.


버크는 백선엽 참모총장에게 중요한 제안은 한다. 바로 미 대통령에게 한미상호수호조약을 하자고 이 기회에 요청하자는 것이었다.


아무리 일국의 참모총장이지만 지금으로 치면 미얀마정도의 국력을 가진 당시 한국의 참모총장이 백안관에 가서 아이젠하워를 마음대로 만날수도 없었지만 이런 조약을 요청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났다.

 

그러나 버크는 한국의 전후를 걱정해서 백총장을 일부러 만나러 온것.


백선엽장군과 버크는 극초특급지한파 미군장교들과 함께 이것을 은밀히 계획하였다.


결국에 아이젠하워를 백악관에서 직접 만난 백선엽 장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제시하는데 성공한다.


이것은 한국이 휴전에 동의해주여야 하는 것인데 당시 이승만대통령은 휴전에 동의할 생각이 없었는데 백선엽장군이 버크와 짜고 독단으로 추진한것.


이 사실은 알레이버크 전기를 쓰는 미국사가들도 모를 정도로 은밀히 진행되었는데 나중에 백선엽장군의 회고록 출판이후 세상에 들어났다. 버크와 백선엽장군을 포함 두어사람만이 알고 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해사에 도서 기증을 주도한일과 막대한 해군 장비를 한국해군에 원조한일 등만 봐도 알레이버크는 지한파이다.

 

반면 일본은 그의 진급에 꽤 도움을 준 정도이다. 일본해군을 두둘겨 팸으로써.

 

버크가 지일파인가 지한파인가? 대한민국 국군참모총장과의 관계처럼 일본 자위대 사령관과 허울 없이 지냈던 사이였을까?

 

버크 제독의 전기에 보면 일본에 대한 언급을 공격했다는 이야기 밖에 없다.


해군 참모총장을 3번 역임한 사람으로써 동맹국에 대한 지원 정도일뿐.

 

 


한 인간의 일생에서 이렇게 두두러진 족적을 남긴 사람도 드물지만 미해군 역사상 처음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을 군함에 명명한것은 더욱 그렇다.


바로 미해군의 신형 이지스구축함인 알레이 버크급이다.


1991년에 이 구축함이 취역할 당시 완전히 다 늙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버크제독이 나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군들 이 군함의 이름이 무엇인가? 알레이 버크이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이 항상 공격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비스므리하게 얘기했다.... 정확히 기억이 안나네..)

 

 


그의 일생중 중요한 것만 요약하자면.

 

일본해군과 구축함전대로 해전 승리.

미처제독의 참모장.
제독들의 반란에서 미해군의 항모전단을 사수.
한국전쟁에서 백선엽장군의 부대 지원.
한국전쟁 휴전회담 초대 대표단.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하여 최초 주장하고 백선엽참모총장을 지원.
미해군 참모총장 3번 역임.
현대 미해군의 기틀을 마련.
생전에 이지스 신형구축함에 자신의 이름이 명명됨.

 

 

 

아래 사진은 딕 체니가 91년 알레이버크함 취역식에 나와 연설 중 우측에 버크 내외가 앉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