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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렘방 공수작전의 한 에피소드

구름위 2012. 12. 2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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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초기, 일본군의 유명한 공수작전으로 팔렘방 강하작전이라는 전투가 있었습니다. 창설된 지 이제 갓 한 달이 되지 않은 육군 정진 제2연대가 낙하산으로 강하,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의 가장 중요한 정유소인 팔렘방(Palembang) 정유소를 점거한 작전이죠. 이때 일본군은 350명의 공수부대원과 3천 명의 보병을 동원, 약 2천의 연합군 수비대를 격퇴하고 정유소를 장악합니다. 그런데 이때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지요(...)



 

팔렘방의 위치




강하작전은 2월 14일 아침의 첫 강하, 15일 낮의 두 번째 강하로 이루어졌습니다. 전 병력을 한 번에 투하해야 기습효과를 볼 수 있음에도 병력을 분산시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수송기 부족이었습니다-_-;;

당시 정진단 소속 정진비행전대에는 수송기 3개 중대가 있었지만 이걸로는 모자랐기 때문에 작전을 주관한 제3비행집단은 제12수송비행중대를 추가로 정진단에 배속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병력수송도 벅찼으므로 물자 투하는 중(中)폭격기를 보유한 전대인 비행 제98전대가 추가로 배속되어 맡게 됩니다. 문제는 폭격기를 보유한 98전대는 공수작전을 위해 물자를 포장해 본 경험이 전혀 없었고 정진단 내에도 숙련자가 없었다는 거죠. 결국 엄청난 혼란이 있었습니다.



 

정진비행전대의 가와사키 키-56 수송기(연합군 코드네임 탈리아Thalia).
적재량 2.4t(혹은 인원 14명), 항속거리 3,300km



 


 

98전대의 미츠비시 키-21 폭격기(연합군 코드네임 샐리Sally).
폭장량 1t, 항속거리 2,700km




사실 이 작전은 본래 1년 전부터 철저하게 훈련받은 1연대가 맡아야 할 작전이었어요. 그런데 2연대가 맡았던 건, 1연대가 남방으로 이동 중 화재사고를 당한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이 타고 가던 수송선에서 항공소이탄의 자동발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고, 인원피해는 없었지만 1연대의 장비 전체가 수송선과 함께 남중국해에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때문에 본국 주둔지에 남아있던 잔여인원을 달달 긁어모아 급하게 제2연대를 창설해서 배에 태워 보냈던 겁니다. 그나마 "부대로서는" 급조한 부대였지만 선발 과정에서부터 정예를 골라 뽑았기 때문에 각개 대원들의 전투능력에는 큰 문제가 없었던 게 다행이었지요.

그런데, 애초부터 수송기 부족으로 연대본부 및 3개 중대(1~4 중대 중 3중대 제외)로 한정되었던 강하병력은 작전비행장으로의 이동 중 낙오기가 발생(34대만 작전투입)함에 따라 또 축소됩니다. 그래서 후속병력으로 제외한 3중대 외에 선봉에 선 1,2,4 중대도 전부 1개 소대씩 빼게 되지요. 하지만 이 병력만으로도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4일 11:26분에 비행장에서부터 강하를 시작한 일본군 정진 제2연대는 그날 단 하루만에 팔렘방 비행장과 정유소 두 목표 모두(비행장은 팔렘방 시가지에서 12km 정도 북서쪽으로 떨어져 있고, 정유소는 시가지 바로 동편에 위치)를 점거하는데 성공합니다. 비록 정유소의 절반은 불타버렸지만.



 

팔렘방에 강하한 일본군 정진대원




다음날인 15일 낮, 13:40에 2차 투하병력인 3중대 90명(역시 1개 소대 빠짐)이 강하하는데, 이때 웃기는 일이 발생합니다.

15일 강하 때는 이미 1차로 강하한 2중대와 4중대가 팔렘방 비행장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대공포와 대공기관총으로 무장하고 비행장을 방어하던 연합군은 공정작전을 지원하는 일본군 전투기 및 폭격기의 공습과 정진대원들의 저돌적인 돌격으로 이미 전날 저녁에 물러났고, 후속부대로 날아온 3중대 병력은 그냥 비행장에 착륙해서 내릴 수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3중대장의 심기가 매우 꼬여 있었다는 겁니다.

"썅! 왜 우리는 1진으로 선봉에 서지 못한거야? %#&%^@#@#@!"
"중대장님, 팔렘방 비행장에 도착했습니다. 내릴 준비를 하셔야..."
"선봉에 못 선 것도 억울한데 그냥 내리라고? 에이 썅! 강하라도 해야겠다! 조종사, 고도 낮추지 마! 걍 뛴다!"




 


 

뛰라면 뛰어주지 뭐




그러고 착륙 안 하고 부하들 데리고 점프를 했는데......뭐 이것까지는 괜찮습니다.

........문제는 비행장 및 정유소 주변에서 저항중이던 연합군 잔여병력들이 이 강하를 보고 쇼크에 빠진 것.


"일본군이 대규모 증원부대를 낙하시켰다! 이대로 버티다간 퇴로가 차단된다!"




 

싸그리 튀어버렸습니다.(응?)




뭐 그 덕에 일본군 정진부대는 이후 별다른 전투 없이 기다리다가 그날 오후 19시, 무시 강을 거슬러 올라온 38사단 229연대와 연결하여 40시간 이상 소요된 팔렘방 비행장 및 정유소 점령작전을 완수합니다. 이후 18일까지 제3항공집단의 비행장 전개가 완료되면서(선견대는 이미 15일 낮부터 진출) 연합군의 방어거점이었던 팔렘방 비행장은 역으로 19일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자바에 대한 항공격멸전의 거점이 되지요. 이 작전에서 일본군 공정대(공중정진부대의 준말입니다)원의 피해는 불과 전사 38, 부상 50, 실종 1명이라는 지극히 약소한 것이었습니다.

이상, 개전초 일본군의 신화 중 하나로 평가되는 팔렘방 공정작전에서의 짧은 에피소드였습니다^^


 

일본군의 공수작전을 그린 일본 화가의 그림 두 점은 덤~~^^
위쪽 그림은 어딘지 모르겠는데, 아래쪽 그림은 가쯔다 대쯔(勝田 哲)라는 화가가 그린 해군 낙하산부대의 메나도 공정작전(1942년 1월 11일~12일)입니다. 메나도는 인도네시아의 5대 섬 중 하나인 셀레베스(요즘은 술라웨시라고 부르죠. 메나도Menado도 요즘은 마나도Manado로 명칭이 바뀐 듯)섬 최북단의 항구 중 하나입니다.




참고자료 :

신화는 또다시 창조될 것인가! - 공정부대의 역사와 미래, 오정석, 일신사, 1991

위키피디아(영)
Kawasaki Ki-56
Mitsubishi Ki-21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Palembang
http://www.geocities.com/dutcheastindies/palembang.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