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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steeljawscribe.com/wordpress/wp-content/uploads/image/FF-skipbomb/b-25.jpg)
일단, 물수제비 폭격(skip bombing)은 정확한 표준 용어는 아닙니다. 사전에서는 이걸 가리켜 반도폭격(反跳爆擊)이라고 하지요. 이 전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선의 미 육군항공대에 의해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 이후 전쟁에서는 이론상으로는 확립되어 있되 실전에서 쓰인 사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겁니다. 왜냐고요? 일반적인 자유낙하식 폭탄에 의한 대함공격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오늘날의 항공기에 의한 대함전은 대부분 미사일에 의해 수행되며, 2차 세계대전 이후 항공기가 멍텅구리 폭탄으로 적선을 공격한 것은 포클랜드 전쟁 때가 아마도 거의 유일한 사례일 겁니다(혹시 다른 사례가 있으면 추가바랍니다). 그런데 이때 아르헨티나 공군 전투기들이 영국군에게 물수제비 폭격을 시도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니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해상전 자체가 별로 발생하지 않기도 했지만.
하여간, 물수제비 폭격의 창시자는 조지 케니 장군의 지휘 아래 남서태평양 지역에서 작전하던 미 육군항공대 제5공군이었습니다. 이들은 대함공격에 있어서 전통적인 수평 폭격이 "격침"에는 큰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죠. 어뢰가 선체 측면이나 바닥에 구멍을 뚫는 것과는 달리 폭탄은 상부구조물에 맞으니까요.

그래서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결과를 내기 위해 연구한 결과 나온 것이 물수제비 뜨기 폭격이었습니다. 이 방법의 원리도 그림으로 나타내면 이렇게 돼요.

저공에서 폭탄을 투하하면, 이 폭탄은 보통 폭탄이지만 물 위를 통통 튀다가 목표 선박의 측면을 뚫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여기에 지연신관(지발신관)을 장착해 두면, 맞자마자 터지는 게 아니고 표적 내부에서 폭발하여 한 방에 대타격을 줄 수 있게 됩니다. 제5공군 소속으로 이 전술을 착안한 라머 소령은 연이은 훈련과 연구 끝에 표적을 100m 앞에 두고 약 60m 고도에서 320km 속도로 5초 지연신관을 장착한 500파운드(227kg)폭탄을 투하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물론 실전 상황에서는 그렇게 빡빡하지는 않아서, 대략 고도는 30~60m, 속도는 300~350km, 거리는 18m까지 근접하기도 했다는군요. 폭탄도 천 파운드(454kg) 짜리까지 사용하고요.
그런데 여기까지 듣고 나면 한 가지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어뢰가 있는데 왜 어뢰를 안 쓰고 폭탄으로 뻘짓(?)을? 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여기 대해서 공식적인 근거가 있는 이유는 보지 못했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얘들은 "육군항공대"니까요. 어뢰는 해군의 "뇌격기"들이 쓰는 거지 말입니다(먼산). 하지만 독일군을 보면 공군 폭격기들도 어뢰를 썼고, 소련군에서는 해군항공대의 B-25들이 어뢰를 쓰기도 합니다. 근데 이건 해당 국가의 해군이 갖는 항공력의 비중 탓이 아닐까요.
하여간 이 방식이 사실 어뢰보다 유리한 것도 있었습니다. 일단 어뢰보다 빠르기 때문에 명중율이 높고, 지연신관 덕분에 지나간 뒤에 터지니까 투하한 항공기가 피해를 입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위력도 어뢰보다 더 크고, 폭탄은 어뢰보다 제작비도 덜 들지 말입니다.
이렇게 수련한 물수제비 폭격의 첫 실전 투입은 1943년 2월 28일부터 시작된 비스마르크 해 전투였습니다. 이날 라바울을 출발하여 뉴기니의 라에로 가던 구축함 8척, 수송선 8척의 수송선단이 그 대상이었죠. 첫날과 둘째날은 고고도 수평폭격과 기총소사라는 전통적인 전술만 사용되었지만 선단이 출발한지 3일째, 제5공군 사령관 케니 장군은 신전법의 사용을 명령했습니다.
먼저, 10여기의 오스트레일리아 공군 보우파이터 편대가 기총소사로 함상의 일본군 대공포 요원들을 쓸어버렸습니다. 그리고 15기의 A-20과 11기의 B-25 편대가 저공비행으로 폭탄을 투하, 구축함 8척 중 4척과 남아있던 수송선 8척 전부를 쓸어버렸죠. 선단이 수송하던 일본 육군 제18군 51사단의 6,900명 장병 중 절반 이상이 익사했으며, 살아남은 구축함 4척이 구조한 병력은 약 2,400명에 불과했습니다. 빈손으로나마 뉴기니에 어떻게든 도달한 병력은 약 950명.
* 이 전투에서 벌인 미군의 잔혹행위는 훗날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군 어뢰정 및 항공대는 전선 합류를 막기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물 위에서 헤메던 일본군의 구명정 및 생존자들에게 기총소사를 퍼부어 막대한 인원을 살상했습니다. 실제로 뉴기니에 상륙한 일본군은 신속히 우군과 합류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만약 미국이 패전했다면 충분히 전범재판에 올라갈 수 있는 일이었죠.
이로써 유효성을 입증한 물수제비 폭격법은 그 후로도 애용되었습니다. 그 후 벌어진 어떤 전투에서는 37발을 투하, 28발을 명중시킬 정도였거든요. 나중에는 B-17도 이런 짓을 했다고 하죠. 심지어 미군 뿐 아니라 소련군 북해함대 소속의 해군항공대도 렌드리스로 공여받은 P-40과 A-20, 소련제 IL-2 슈토르모빅 등을 동원하여 이 전술을 애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전술했다시피 오늘날은 별로 안 쓰입니다. 미사일이 있으니...^^
참고자료 :
라이프 2차대전사 vol.09 - 남태평양 戰鬪, 라파엘 스타인버그, 한국일보 타임라이프, 1985
태평양전쟁 이야기 vol.3 - 나잡 비행장 : 남태평양 뉴기니 전투, 권주혁, 지식산업사, 2009
위키피디아(영) - Battle of the Bismarck Sea, Skip bomb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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