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이야기/잡상

미국인들은 햄버거에 어떤 쇠고기를 넣"었"는가.

구름위 2012. 12. 2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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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서 "었"을 강조한 것은 이게 현재도 그렇게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제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본문은 "예전에는 이런 고기를 넣었지만, 지금도 넣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인식하고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앞 포스팅에서 햄버거 고기 이야기에 대한 리플이 생각보다 다수 이어진 바, 예전에 미국에서 햄버거 패티용 고기를 어떻게 조달했나에 대해 잠깐 다뤄보는 것도 좋지 싶어서 간단하게 씁니다. 음식을 다루는 포스팅이긴 하지만 이게 별로 먹음직한 이야기도 아니고 현재 음식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그냥 역사밸리로 보내죠.

아마 많은 분들이 보셨을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를 보면, 미국인들이 쇠고기를 좋아하게 된 것이 의외로 최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미국인들이 쇠고기를 돼지고기보다 많이 먹게 된 것은 1950년대 이후라고 하거든요. 그 이전까지 미국인들은 돼지고기를 더 많이 먹고 더 좋아했다는 겁니다. 남북전쟁 이전까지는 밀 다음으로 많이 먹는 음식이 돼지고기였고, 19세기의 추세를 보면 쇠고기가 돼지고기보다 더 귀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가 쇠고기보다 더 비쌌다고 하네요.

이 추세가 1950년대 이후에야 역전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고 합니다.

1) 소를 일찍 살찌우는 방법이 개발되어 8개월만 키우면 체중을 800파운드(약 360kg)까지 찌워 시장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교외주택지가 생겨나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정원에서 숯불구이 파티를 즐기게 되었는데, 돼지고기 파이(* 제가 가진 판본은 이렇게 표기했는데, 원문이 정말 "파이"인지는 모르겠습니다)는 그릴에 직접 얹지 못하고 프라이팬을 사용해야 해서 재미가 떨어졌습니다.
3) 기생충 때문에 돼지고기를 완전히 익을 때까지 그릴에 구우면, 너무 질겨져서 맛이 없었습니다. 갈비나 (통)바베큐는 질겨지지 않지만 얘들은 빵에 끼워 먹을 수가 없습니다.
4) 결정적으로, 식사를 준비하기 위한 아무 수고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햄버거의 등장입니다.


<음식...>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쇠고기와 쇠기름만이 햄버거에 들어갈 수 있으며 외에 다른 고기를 패티에 섞으면 "햄버거"로 부를 수 없도록 농무부 규칙에 규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쇠기름도 30%까지만 넣을 수 있고 물, 탄산수, 고착제, 증량제를 넣을 수 없으며 머리에서 발라낸 머릿고기는 일부 경우에만 넣을 수 있다고 하는데, 책이 출간된 시점이 시점이니만큼 지금은 이거 그대로는 아니겠죠. 적어도 머릿고기는 지금은 못 쓰지 않을까요?

이 규정의 핵심은 햄버거는 쇠고기로만 만들어야 하지만, 그 기름과 고기가 같은 소에서 나온 것일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겁니다. 즉 "기름진 질 좋은 고기"로 패티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미국에서 가장 싼 소는 방목장에서 풀만 먹고 자라 비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비쩍 마른 황소(지금은 풀만 먹고 자란 소를 더 귀하게 여기니 아이러니...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말 비싼 한우는 빼고 봤을 때임)인데, 햄버거 회사는 이 소들을 사들여 그 고기를 갈아 패티로 쓴다는 겁니다.
물론 이 소들은 고기에 지방이 부족하기 때문에 얘네 살만 가지고 패티를 만들면 덩어리가 잘 지지 않으며, 덩어리를 만들어 줄 기름이 꼭 필요합니다. 그 기능만 보면 먹을 수만 있으면 아무 기름이나 넣어도 되지만 "햄버거에 대한 법적 규정"을 만족시키자면 꼭 소기름을 넣어야 하죠. 그리고 가장 값싼 소기름은 사육장에서 온갖 혼합사료를 배터지게 먹고 자라 도살장으로 간 소의 내장에서 나옵니다. 이 두 가지가 공장에서 섞여서 햄버거 패티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리고 이는 가능한 최저비용으로 최대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자본의 욕구에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이로써 쇠고기는 돼지고기에게 승리했습니다.

물론 현재의 패티 생산이 <음식...>에서 묘사된 것과 똑같은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집필 시점의 한계(마빈 해리스가 이 책을 출간한 것은 1985년)라는 것이 있는데다 광우병이라는 공포의 대왕이 나타났으니, 지금은 부스러기 고기나 내장지방의 재활용에 있어서 규정이 바뀌기는 했을 것 같거든요. 평소 별 관심이 없다 보니 미국 농무부 규정집 같은 걸 확인할 능력은 없습니다만...

그러니, 이 포스팅은 그냥 예전에 미국에서 햄버거 패티를 어떻게 만들었구나 하는 정도로만 읽고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이런가 하고 의문을 가지시는 것 정도야 괜찮겠지만, 지금도 이렇구나 하고 단정하지는 마시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