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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가제는 탈출하지 못하도록 입구를 막았다?

구름위 2012. 12. 2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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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에는 일본군의 가미가제 특공대는 생환 불가능한 자살특공대로, 삶의 미련을 가져 돌아올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이야기가 상식처럼 퍼져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죠.

- 비행기가 목적지까지 딱 갈 수 있을만한 연료만 준다.
- 조종사가 타고 나면 승강구에 못질을 한다(혹은 용접한다).
- 술을 먹여 술기운으로 출격시킨다.
- 히로뽕을 먹여 약기운으로 출격시킨다.


분명히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당장 생각나는게 저것들 뿐이군요. 그런데 이건 다 사실이 아니에요. 그럼 간단하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미국 항공모함 에섹스에 돌입하는 특공기.
(사진출처 : http://www.airgroup4.com/kamikaze-yoshinori-yamaguchi.jpg)



1. 연료
결론부터 말하면, 가미가제 특공기에는 연료를 만땅으로 채워서 보냈습니다. 반만 넣고 그런 거 없었어요.
왜일까요?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목표를 확실히 찾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가미가제 파일럿들은 대다수가 초급훈련만 간신히 마친 풋내기 파일럿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다 위에서 목표를 찾아 날아가는 해상 항법에 대단히 서툴렀고, 툭하면 바다 위에서 헤메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경험 많은 베테랑들(이 베테랑들은 가미가제 작전에 참가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이 호위기로서 이 풋내기들을 이끌도록 되어 있었지만, 전쟁터의 운이라는 것이 있는 게 사실이니 계획대로 날아간 지점에서 적과 마주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았죠. 당연히 연료를 넉넉하게 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연료를 절반 가까이 소모하고도 미국 함대를 찾지 못하면?

돌아옵니다.



왜일까요? 간단한 겁니다. 그대로 정처없이 헤메다가 바다 위에서 연료가 떨어지면 기껏 결심한 자폭도 하지 못하고 값없이 죽게 될 뿐이거든요. 때문에 목표를 찾지 못하고 연료가 떨어지면 다시 기지로 돌아와야 합니다. 물론 죽으러 나가서 살아돌아온 비겁한 놈 취급은 받겠지만, 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폭하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해서 처벌받거나 하진 않아요. 다만 다음에 다시 출격할 뿐입니다. 물론 그 창피를 당하느니 돌아가지 않겠다고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바다를 헤메다가 추락하거나 운 좋게 미군을 만나 돌입한 비행기들도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죠.

둘째, 연료 자체가 폭발의 위력을 증대시킵니다. 포클랜드 전쟁 때 영국 구축함 셰필드 호를 타격한 엑조세 미사일의 경우, 미사일의 탄두는 폭발하지 않았습니다만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발사된 탓에 아직 많이 남아 있던 미사일의 로켓 연료가 대화재를 일으켰습니다. 때문에 셰필드는 결국 화재로 침몰하고 말았죠.
태평양 전쟁 당시의 항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의 제트기들은 비교적 인화점이 높은 등유를 쓰지만 당시에는 가솔린을 사용했고, 아직 탱크에 가솔린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군함에 격돌하면 빈 비행기로 들이받는 것보다 상대편 배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이만하면 출격하는 특공기에 연료를 가득 채울 이유는 충분하겠지요?


2. 봉인
1번의 첫번째 이유에서 이야기했듯, 조종사가 목표를 찾지 못하고 돌아오거나 비행기의 고장으로 출격하지 못하는 경우, 또는 금방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조종사를 내리게 하고 비행기를 다시 정비해야 하는데 조종석을 못이나 용접으로 봉인해 버리면 심히 곤란하죠. 아예 출격하지 못하거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돌아온 조종사는 일단 쉬게 하고 다음날 다시 태워서 보내면 됩니다. 컨디션이 좋아야 조종도 잘 하죠.

또한 가미가제 특공대가 목표를 찾지 못할 경우 귀환하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었다는 것은 적 함대를 발견할 때까지는 탑재한 폭탄의 안전장치를 풀지 못하게 했다는 점에서도 분명히 입증됩니다. 만약 안전장치가 풀려 있으면 활주로에 착륙할 때 비행기가 폭발할 위험이 있고 비행중에는 안전장치를 다시 걸 수 없었기 때문에, 아직 적을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절대 안전장치를 풀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랬더니 초짜 파일럿들이 적을 발견하고도 안전장치 푸는 걸 잊어버리는 바람에 기껏 자기 비행기를 미군 군함에 명중시키고도 폭탄이 터지지 않아 큰 피해를 주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거죠. 당한 미군 쪽에서는 땡 잡은 거지만.


 

오오쯔 섬에서 출격하는 일본의 이호 잠수함 이-370과 갑판 위의 카이텐.
이 잠수함은 오키나와 해역으로 출격했으나 전투도 하지 못하고 격침당했습니다.
(사진출처 : http://www.hnsa.org/ships/img/kaiten2.jpg)



이건 링크한 포스팅에서 다룬 카이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카이텐은 정말 말 그대로 돌아오지 않는 병기로, 항공대의 가미가제 특공대처럼 목표를 찾지 못해서 돌아오는 경우를 아예 상정하지 않았어요. 가미가제가 원거리에서 비행기로 출격, 적을 탐색하여 그 결과에 따라 공격하거나 귀환하는데 반해 카이텐은 잠수함 상갑판에 적재, 잠수함의 잠망경으로 적함의 존재를 육안으로 확실히 인식한 뒤에야 출격했습니다. 일단 표적을 찾아야 하는 가미가제와 달리 뻔히 눈에 보이는 적을 상대로 하니, 돌아올 이유가 없지요.

문제는 카이텐이 기계고장으로 출격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겁니다. 표적을 발견, 카이텐을 발진시키려는데 고장이 나서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어요. 이렇게 되면 당연히 탑승원은 다시 잠수함으로 복귀해야 하고, 고장 원인을 밝혀 수리한다면 재출격할 수 있겠지만 그게 안 되면 다시 카이텐과 함께 기지로 귀환해야 합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러자면 출입구를 용접하는 따위 일은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후기형 카이텐은 수중에서 발진했는데 수중 용접을 하고 있을 여유도 없지요.


3. 술과 뽕
이건 뭐 간단하게 넘어갈게요. 가미가제 조종사들에게 출격 전에 주는 술은 말입니다, 사수관에서 조조가 관우에게 준 술 한 잔 정도의 의미일 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성이 마비될 정도로 술을 처먹은 인간, 그것도 햇병아리 조종사가 비행기를 몰면 그게 제대로 날아가서 처박을 수 있겠습니까?
카이텐 승무원의 경우에는 출격 전에 취하도록 실컷 술을 먹여 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걸 가지고 혼동하시면 안 되는 게, 실컷 먹고 마시는 주연의 밤은 출항 전날 밤입니다. 당연히 적을 향하여 돌입하는 날은 그 뒤로 언제가 될지 모르는 한참 뒤고, 맨숭맨숭한 맨정신으로 돌입하게 됩니다. "여섯 개의 손과 여섯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도 조종이 힘들다고 할 정도로 복잡한 자폭용 어뢰를 술취한 상태로 조종할 수 있다면 그건 신입니다, 신.

히로뽕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이건 병사들을 약쟁이(...)로 만들려고 먹인 게 아니고, 그 시절에는 그게 그냥 피로회복제 내지 각성제로 그냥 일상적으로 먹었거든요. 물론 중독이 된 장병이 없었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일본군에서 뽕은 병사들에게 특별히 의도적으로 먹이고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피곤하면 기운 나라고 한 알 먹고 졸리면 잠 깨라고 한 알 먹고 그런 거였죠. 일본군이 아무리 어딘가 삐딱한 군대라고 해도, 적어도 자기 병사들을 스스로 마약중독자로 만들 정도까지 정신나간 군대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자살특공대라고 해도 말이죠.


아마 제가 여기서 몇 마디 한다고 그동안 가지고 계시던 상식을 고치실 분들은 별로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뭐, 보신 분들만이라도 재미있으셨다면 그걸로 만족입니다. 그럼 다들 즐거운 밤 되시기를~~^^/

덧 : 이 포스팅에서 언급한 "가미가제" 특공대의 특공기에는 오카(일명 사꾸라바나)는 제외입니다. 이놈은 로켓 엔진이고 적함을 확실히 발견한 상태에서 탑재기로부터 발사되기 때문에 그 운용개념에 있어서는 비행기로 격돌하는 일반 가미가제보다 카이텐의 운용사상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이 녀석도 돌아올 수 없습니다.


참고자료 :
승리와 패배 vol.16 - 가미가제 特攻隊 : “地獄의 使者”, A. J. 바아카, 동도문화사,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