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도요토미 정권의 성립

구름위 2012. 12. 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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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85년 관백에, 1586년 태정대신에 임명되었다. 히데요시는 천황을 대리하는 관백 정치의 형식을 취했으므로 조정이 있는 교토에 호화로운 저택을 짓고 쥬라쿠다이라고 불렀다. 1588년에는 쥬라쿠다이에 고요제이 천황을 맞이하여 다이묘들을 소집하고 관백에세 충성을 서약하게 했다. 정치 조직은 정비하지 않았고, 관백 아래에서 정무를 처리하는 기관으로 5부교를 두었다. 또 만년에는 주요 가신 5명을 5다이로로 삼고 5부교의 상위에 두어 5부교와 5다이로의 합의제를 통해 정무를 처리하게 했다.

도요토미 정권의 재정 기반인 직할지는 약 200만 석이며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었다. 히데요시는 때때로 다이묘 영지에 토지 조사를 실시하고 그 때마다 다이묘 영지의 일부를 할애하여 직할령을 설정했다. 각지에 설치한 직할지는 수입원이면서 동시에 다이묘를 감시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이 밖에 교토, 오사카, 후시미는 물론 오즈, 나라 등의 중요 도시나 사카이, 하카타, 나가사키 등의 무역항도 직할지로 삼았다. 때문에 이들 도시의 거상들과도 관계가 깊었다. 히데요시가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거상들이 군수 물자의 보급에 협력했기 때문이었다. 또 히데요시의 재정 수입에는 광산에서 얻는 수입도 있었다. 히데요시는 사도의 금 광산, 다지마, 이와미의 은 광산을 비롯한 유명한 금, 은 광산을 직할지로 경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