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철포3천정의 신병기를 구사했던 독창력

구름위 2012. 12. 2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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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의지

 노부나가는 천문20년(1551)아버지 노부히데(信秀)의 급사로 織田가를 상속했다. 18세의 「大うつけ」에게 남겨진 영토는 오와리 중남부의 30∼40만석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이 그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천정10년(1582)6월 노부나가가 49세의 나이로 짧은 생애를 마감할 당시 그의 지배지역은 近畿, 北陸, 東海, 中部와 中國지방의 동쪽의 반정도해서 30개국이상이었다. 약 800만석으로 일본전국의 거의 반을 지배하고 천하통일을 목전에 둔 압도적인 세력이었다. 그 시대 최강이라 하던 다케다 신켄(武田信玄)과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일생에 걸쳐 얻은 나라가 기껏해야 3∼4개국 100만석 정도다.

 난세의 풍운아. 노부나가를 그렇게 불리는 것이 걸맞은 남자였다. 이 노부나가의 천하평정의 전투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다른 전국 다이묘보다 앞서 상경에 성공한 것이 노부나가의 생애를 통해서 여러곳에 강적, 난적을 가지게 되었다.

 카이(甲斐)의 다케다, 에치고(越後)의 우에스기, 츄고쿠(中國)의 패자 모리, 이시야마혼간지(石山本原寺)를 정점으로 한 잇코(一向) 잇키(一癸)의 대세력등의 일본전국의 강호가 타도 노부나가의 집념을 불태웠다. 특히 힘들었던 것은 원구(元龜)원년(1570)부터의 수년간이다. 노부나가를 포위한 상황은 절망적 이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노부나가의 도움으로 15대 장군이 된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는 자신이 노부나가의 꼭두각시가 되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15대 장군의 전통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구시대의 대표자인 요시아키는 각지에 밀서를 보내 노부나가에 대한 일대 포위작전을 전개한 것이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용맹과감하게 각개격파의 작전으로 질풍과 같이 전장을 누볐다. 노부나가에게는 악전고투의 상황이었고 사투가 이어졌다. 평범한 무정이라면 망하였겠지만 노부나가는 사방팔방으로 강적을 꾀어내 무찌르고 아수라와 같이 싸워 나갔다.

 

연속사격  

 노부나가에게 이런 큰 위업을 이루게 했던 최대의 요인은 군사력이다. 하지만 노부나가가 18세에 이끌었던 군사는 결코 강한 군사는 아니었다. 당시 막강을 자랑했던 신켄의 기마단에 비해 오와리의 병사는 1당5정도였다. 오와리의 풍부한 풍토가 강한 병사를 길러 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부나가는 이 약병을 이끌고 신시대를 열어 갔다. 이 비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수수께끼의 열쇠는 이렇다. 노부나가의 개성에 그 해답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부나가의 군단은 그의 강렬한 의지, 시대를 앞서간 독창성의 표현이다. 하지만 노부나가 군단은 당시 어느 무장도 뛰어난 사람은 없었다.

 우선 첫째로 철포라는 장비가 있다.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케다 기마단을 압도했던 3천정의 총포에 상징되는 것처럼 노부나가군단은 각종의 신병기를 구사했다. 총포에 관해서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천문22년(1553)네 노부나가가 20세의 봄에 장인인 미노의 사이토 도산과 대면했던 때의 일이다. 도산은 「大うつけ」라는 소리를 듣고 있엇던 사위를 놀려 주려고 대면을 기획했다. 노부나가는 수행원을 7∼800명 정도 데리고 병사들에게는 장창 5백개와 최신병기인 철포5백정을 가지고 위풍당당하게 행진해 갔다. 살모사라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도산도 간담이 서늘해 큰소리 한번 못 쳤다고 한다.

기마철포무사

 하지만 당시에 철포는 이미 각지의 무장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천문12년(1543)에 타네가시마(種子島-철포를 지칭하기도 함)에 전해진 후 순식간에 전국에 퍼져 천문18년(1549)에는 시마즈 타카히사(島津貴久)가 카지키(加治木)성 공략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하고 있다.

 홍치(弘治)원년(1555)에는 신켄이 시나노(信濃)의 아사히야마(旭山)성 전투에서 사용하고 오케하자마(桶狹間)전투에서도 이마가와 군은 철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다른 다이묘와는 철포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그는 서양에서 건너온 신병기의 성능과 유효성, 약점을 숙지하고 있었다. 노부나가가 소년시절부터 하시모토 이쯔바(橋本一巴)을 사범으로 해서 철포를 연습했던 것에서 잘 알 듯이 이는 노부나가의 아버지 노부히데도 비범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왜냐하면 당시 철포는 아시가루(足經)가 사용하는 것으로 이름있는 무장이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겁한 무기라는 생각에 일 것이다. 하지만 노부히데도 신켄도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특히 노부나가는 이 신병기의 탁월한 성능에 반해 버렸다. 예를 들어 천문23년(1554)노부나가가 이마가와가 점령하던 知多반도의 村木성채르르 공격했다. 이때 노부나가는 몇 명의 아시가루에게 철포에 탄약을 장전하고 발사를 해보고 있다. 나중에 나가시노전투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연속사격을 20여년전에 이미 실험해 본 것이었다.

 

집단전법

 모든 것을 자신이 시험해 본다. 전통과 풍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런 유연한 정신으로 노부나가 군단의 철포부대를 창설했다. 그의 독창적인 조직과 전법은 위력이 대단할 수 밖에 없었다. 노부나가 철포부대의 특징중 하나는 신병기의 대량채용이다. 수천정 단위의 철포를 갖추고 게다가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 무장이 위협용이나 저격용으로 사용했던 철포를 1선에 집중배치한 것이다. 게다가 이 조직을 집중사격이 가능하도록 편성했다. 노부나가의 총포대는 적에게 틈을 주지 않고 일제사격을 가할 수 있었다.

 이로써 이런 전법은 당시 오합지졸의 노부나가군을 무적의 군사로 변모시켰다. 집단전이 되면 이미 개인적인 능력과 용기는 요구하지 않고 평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고 훈련이 잘된 병사가 중요할 뿐이다. 이 훈련에 있어서도 노부나가는 항시 염두에 두고 있었다. 「信長公記」는 여러 차례 노부나가의 「お遊び」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이 실은 노부나가의 군사훈련이었다. 노부나가의 전법, 전술에 대해 생각하면 선경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노부나가는 이런 놀이를 소년시절시대부터 해오고 있다. 아시가루의 창의 길이를 3間半으로 했던 것도 16∼17세 경이고 河原에서의 죽창을 가지고 놀던 때의 경험에서 생겨났다.

 이 3間半의 장창에 대해 이야기하면 당시 아시가루(足經)의 창은 3間(5.4m)가 보통이었다. 신켄도 도산도 3間의 창을 사용했다. 왜 노부나가만이 3間半의 창을 사용한 것일까. 이것도 철포부대와 관련이 있다. 노부나가의 전법은 우선 제1선의 철포부대의 일제사격으로 적군의 기를 걱은 다음에 제2선의 장창부대가 돌격해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이것도 집단전법으로 이 때문에 장창의 길이가 긴 편이 유리했다. 개개인은 약하지만 집단으로서의 힘을 발휘하면 뛰어나다는 것을 안 노부나가의 발상이 놀랍다.

 

천재의 독창력

 노부나가가 구사했던 신병기는 총포만이 아니었다. 노부나가가 세쯔쯔(攝津)의 野田, 福島의 공격시 미요시(三好)와의 전투때 대포를 사용했다고 「信長公記」는 전한다. 당시 大坂의 잇코잇키(一向一癸)세력에게는 그 유명한 철포무리가 있어 철포3000정을 장비하고 있었다. 양군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총격전을 벌여 총포의 소리가 천지에 진동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명한 사이가(雜加)군단을 노부나가군단도 총포로는 이들을 압도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노부나가가 생각해 낸 것이 대포이다.

이치죠타니성 공략도

 물론 당시 대포의 존재는 알려져 있었다. 포루투칼의 배가 가지고 들여 왔었다. 하지만 이것은 청동제의 대포로 발사시에 가끔 파열하는 위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달랐다. 화승총과 동시에 철제로 대포를 만들었던 것이다. 노부나가는 이 대포를 공성용으로 사용했지만 그의 독창성을 볼 수 있는 것은 대포를 수군에 이용했던 것이다. 木津川沖해전에서 거대철선에 의해 포격으로 쓰고 있지만 그 이전에도 쓰였다고 한다. 원구(元龜)2년(1571)의 아사이 공격에는 비와호수에 둘러싼 배를 이용해 대포를 싣고 竹生島을 공격하고 있다.  천문(天文)2년(1574)늬 나가시마(長島)의 잇코잇키(一向一癸)의 섬멸전에서도 함선에 대포를 싣고 포격을 하고 있다.

 당시 다른 무장은 이 위력을 알면서도 거의 대포를 준비하지는 않았다. 이동이 어려운 것, 대량의 화약의 준비가 번거로워 실용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배에 싣으면 약점은 단숨에 사라진다. 발상의 전환만으로 대포는 행군의 짐에서 최강의 병기로 변한 것이다. 또 하나 노부나가의 무서운 점은 이 새로운 아이템을 시의적절하게 쓰고 있다는 것이다. 모리(毛利)수군을 격파했던 함재포에서도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