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해군이야기

미 해군의 연식 비행선 이야기

구름위 2012. 12. 2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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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23년, 미 해군이 한창 비행선에 열을 올리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공중항모 아크론」 이야기를 보셨으면 아실테지만, 당시 미 해군은 비행선들에 대해 장거리 정찰 플랫폼으로서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죠. 대형의 경식비행선들이 주로 이 임무를 맡았고 보다 소형에다 구조가 약한 연식 비행선들은 주로 훈련용도나 대잠 초계 임무를 맡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각 비행선들의 구조]

참고로 비행선은 기낭(엔벌로프)·골조·추진장치·조종장치·조종실 등으로 구성되는데, 엔벌로프와 골조와의 관계에 따라 경식(硬式)·반경식(半硬式)·연식(軟式)의 3종류로 나뉩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연식 비행선들은 엔벌로프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골조가 없고 가스의 압력과 엔벌로프강도와의 균형으로 모양을 유지하는 방식이죠.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낭의 구조만으로는 기구와 별반 차이가 없는 셈입니다.

어쨌거나... 미 해군 최초의 연식 비행선은 1924년 5월에 인도되었고 그 뒤로도 수 척의 연식 비행선들이 취역을 계속했죠. 물론 아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당시 대형 비행선들은 뛰어난 항속성능과 탑재량에도 불구하고, 바람에 다소 약하고 속도가 느려서 행동이 민첩하지 못하다는 점, 크기에 비해 탑재량이 적고 지상에서의 취급에 많은 인원과 대규모 시설을 필요로 한다는 점 등의 약점이 있었고, 이는 미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경식 비행선들 대부분이 악천후로 인해 추락하거나 지상 강하중에 파손되는 사고가 잦았던 것에서 잘 알 수 있죠.

게다가 1935년의 메이컨 추락 사고, 1937년 5월의 악명높은 힌덴부르크 폭발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미 해군의 경식 비행선 시대는 완전히 종말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남아있던 소수의 연식비행선들은 이런 일련의 사태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고, 폭발 위험이 높은 수소로부터 헬륨으로 전환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그럭저럭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죠. 하지만 비행선에 관련해서 뼈아픈 체험을 많이 겪은 미 해군은 연식 비행선 세력의 증강에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했고, 결국 이 대가는 1942년에 대서양에서 그대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격납고에서 정비중인 K형 비행선들]


[편대 비행중인 비행선들]


[선단 호위에 나선 비행선들의 모습]

1941년 12월 개전 당시 미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연식 비행선은 여러 기종을 다 합쳐도 고작 10여 대에 불과했고 파일럿은 100명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미 해군은 연식 비행선 건조를 시작한다던가 서둘러서 격납고 4동을 짓는다던가 하고 법석을 떨었지만 이 뒤늦은 조치가 결실을 맺는 것은 1943년이 되어서였죠.

아무튼 이들 연식 비행선들은 8∼10대가 1개의 비행대를 이루어서 주로 대서양의 대잠초계나 선단 호위 임무에 투입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해군은 곧 이들 비행선이 선단 호위에 최적의 수단이라는걸 깨달았죠. 일반 항공기들이 항속거리와 공중 체공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선단 상공 초계에 어느 정도 공백 발생이 불가피했던 반면, 비행선은 사실상 선단과 같은 속도로 행동을 같이 하며 24시간 내내 상공을 커버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죠. 비행선은 선단 상공을 체공하면서 적 잠수함의 징후를 발견하면 즉각 선단의 호위함이나 호위항모에 연락을 취하는 등 감시수단으로써 최고의 기능을 발휘했지요.

물론 비행선 그 자신도 잠수함에 대해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선단 호위용으로 보편적으로 사용됐던 K형 비행선의 경우 폭뢰 4발과 12.7mm 기관총 1문을 장비하고 있었고, 대전 후기에 이르면 호밍어뢰를 탑재한 형식도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비행선이 직접 잠수함을 상대하는 것은 위험한 일에 속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고속 접근/이탈이 가능했던 항공기에 비해 비행선의 속도는 앉아있는 오리나 다를 바가 없었고, 만약에 잠수함이 대공포로 반격이라도 해오면 꼼짝없이 당해야 할 판이었으니까요. 비행선 K-74와 U-134의 대결은 그런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K형 비행선의 무장 : 하부의 흰색 돔이 레이더, 그 옆에 달린 것이 어뢰, 후부에는 폭뢰를 장비]


[U-134의 대공포에 격추되는 K-74]

1943년 7월 18일, K-74는 자매 비행선인 K-32와 함께 플로리다 반도를 떠나 쿠바-플로리다 해협 수역을 초계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해로국의 통보에 따르면 그날 밤에 1척의 유조선과 1척의 화물선이 해협을 통과할 예정이었고 독일 잠수함이 그 둘을 노리고 습격해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죠. 18일 22시경, K-74는 자매함과 떨어져서 곧바로 정남향으로 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방에는 때마침 독일 잠수함 U-134가 환기를 위해 수면 위로 부상해 있었죠.

23시 30분경, K-74의 레이더 스크린에 한 개의 광점이 잡혔습니다. 그 접촉은 곧 기지로 보고되었고 K-74의 승조원들 10명은 제각기 폭뢰를 체크하고 기관총을 점검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죠. 곧 기장은 공격코스를 잡았고, 23시 50분경 K-74는 고도를 80m까지 떨어뜨리고 폭뢰를 투하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잠수함의 견시도 비행선을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곧 잠수함 사령탑 후부의 20mm 기관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갑판 전방의 88mm 포도 여기에 가세했죠.

물론 K-74측도 탑재한 12.7mm 기관총으로 반격을 시작했지만 효과는 미지수였습니다. 반면에 비행선측은 우현 엔진에 불이 붙고 기낭에 구멍이 뚫려 서서히 고도를 상실하는 등 명백한 피해를 입고 있었죠. 23시 55분경, K-74는 잠수함의 직상방을 지나게 되었으며, 폭격수는 재빨리 폭뢰 투하 스위치를 눌렀으나 왠일인지 폭뢰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적 잠수함의 대공포는 머리 바로 위를 지나가는 비행선에 대해 신나게 총탄을 쑤셔박고 있었고, 결국 23시 58분경 K-74는 양측 엔진 모두를 상실하고 기낭에서 쉴새없이 헬륨가스를 뿜어대며 바다에 추락하고 말았죠. 다행히 워낙에 가스로 가득찬 기낭 탓에 비행선은 금방 가라앉지는 않았고, 살아남은 승조원들은 비행선의 잔해에 매달려 이제나 저제나 올 구조의 손길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뭐, 대전중에 교전으로 상실한 비행선은 K-74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나마 양호했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죠. 여하튼 미 해군의 연식비행선들은 대전 말기에 이르면 15개 비행대 120여대에 이를 정도로 증강되었고 활동 범위도 대서양뿐만 아니라 카리브해, 브라질, 지브롤터, 북아프리카 연안 등으로 넓어졌죠.


[전후 해체되는 최후의 K형 비행선]

종전 후 비행선의 역할은 점점 축소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종결로 인해 이전과 같이 대규모의 세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던 것도 있고, 헬기 등 비행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대잠 플랫폼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1962년에 최후의 연식 비행선이 퇴역함으로써 미 해군의 비행선 역사는 일시적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주 : 1980년대에 연식 비행선들이 다시 부활했습니다. 단, 역할은 대잠초계나 수색용도가 아니었고 해군의 홍보·광고용이었지요.)


p.s. 저기 떠있는 것들은 비행선이 아닙니다.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http://www.goldcoast-railroad.org/blimpsub.htm
- http://www.bluejacket.com/usn_avi_ww2_blimps.html
- http://www.dav.org/magazine/magazine_archives/2002-3/LTA_and_WWII--Ro2025_print.html
- http://www.moffettfield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