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근대화 개장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아마도 지난 20여년간 운용해오던 기어링급 구축함일 것입니다. 기어링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문구가 바로 "물새는 구축함"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기어링급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그녀들이 도입되기 전까지 어떤 개장을 받았는지, 그리고 도입후 추가적으로 취해진 개장들은 뭐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기어링의 운용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었는지 등등을 간략히 풀어보도록 하죠.
1. 2차대전 후의 기어링급
2차대전 종전 직후 미해군이 보유한 구축함 수는 건조중인 것까지 포함해서 무려 380척에 달했습니다. 마침 종전으로 인해 구축함을 대량으로 보유할 필요성이 낮아진 것도 있어서 구식 구축함들을 포함한 대규모 구조조정이 실시되었죠. 그러나 1940년대 후반부터 냉전이 시작되고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구축함의 수요는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소련은 독일을 본받아 막대한 잠수함 세력으로 대서양을 차단, 미국과 서유럽을 단절하여 나토국가들을 패배시킨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고, 이에 따라 미국 역시 소련의 잠수함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금 구축함 세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시 대두된 구축함들은 그동안 함재병기의 기술적 진보와 전술 발전 등을 반영하여 3가지 형태로 세분화됩니다. 즉, 대공전투를 담당하는 DD형 구축함, 대잠 공격임무를 담당하는 DDE형 구축함, 장거리 수색 레이더를 탑재하여 조기경보 임무를 담당하는 DDR형 구축함이 바로 그것이었죠. DD형 구축함은 기존의 대전형 구축함에 신형 FCS를 도입하고 마스트에 대공·대수상 레이더를 설치하는 한편 전자전 대응장비, 신형 76mm 대공포 등을 설치하여 일반적인 함대방공 임무를 맡은 가장 보편적인 함형입니다. DDE형 구축함은 대잠전 능력에 특화된 함형으로써 우선 5인치 연장 포탑을 모두 폐기하고 대신 전방위 투사가 가능한 회전식 헤지호그 런쳐와 Mk108 대잠 로켓 런쳐, 그리고 신형 소나와 대잠용 장어뢰 발사관을 탑재하였죠.
[이것이 바로 Mk11 폭뢰 투사기(헤지호그)]
[잠수함 수색/공격 훈련중 : 헤지호그 발사]
[폭뢰 투하용 궤조]
[잠수함 수색/공격 훈련중 : 폭뢰 투하]
마지막으로 레이더 피켓함의 유래는 2차대전 말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전 말기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에 진절머리가 난 미국은 구축함 24척에 대형의 대공·대수상 레이더를 탑재하여 조기경보와 아군항공기 유도 임무를 수행하게 했죠. 전후에도 항모 기동함대의 호위함정으로써 이들 레이더 피켓함들이 유용하게 사용되었고 이들은 항모 호위 이외에도주로 미 본토 주변 해역에 배치되어 본격적인 조기경보기가 등장할 때까지 광역 경계임무를 수행했습니다.
2. FRAM(함대 재정비 및 근대화) 계획
[위로부터 기어링 원형, FRAM 1, FRAM 2]
2차대전 말기에 건조된 기어링급 구축함들은 전후에 장비 교체 등을 통해 성공적으로 운용되어 왔으나, 이는 오직 장비의 근대화였을 뿐 함 자체의 근대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1960년대 초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기어링급 구축함들이 함체 및 추진기관 노후화로 인해 정상적인 전력발휘가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이들 노후 구축함들을 모두 퇴역시킬 경우 전력 공백이 발생하여 소련에 대한 견제가 어려워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후함들을 모조리 신조함으로 대체하기에는 너무 많은 예산과 시간이 걸리게 돼서 이 또한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죠. 결국 미 해군 당국은 기존 노후함정의 선체보수와 추진기관 교체, 전투시스템 현대화 등을 골자로 하는 구식 함정 근대화 계획을 내놓았으니 이것이 바로 FRAM입니다.
FRAM은 크게 FRAM 1과 FRAM 2로 나뉩니다. FRAM 1이 함을 처음부터 다시 건조하는 수준에 가까웠다면 FRAM 2는 함체에는 그다지 손을 대지 않고 신형장비만을 도입하는 "함정 근대화" 수준에 가까웠죠. 각각의 개장으로 연장할 수 있는 수명도 틀려서 보다 철저한 개장인 FRAM 1으로는 8년을 연장할 수 있었던 반면, FRAM 2로는 5년을 연장하는 것이 한계였습니다.
[FRAM 개장공사중인 기어링급 구축함]
[FRAM 개장중인 DD-844 Perry함]
1) FRAM 1 : 함 재건조(Reconstruction)
[FRAM 1 개장함의 주요 개장 포인트]
FRAM 1은 주로 기어링급 구축함에 적용된 프로그램으로써 요점은 함의 완벽한 재건조였습니다.
① 함체의 부식된 부분을 새것으로 완전히 교체하고 함교와 상부구조물을 혁신하며 거주성을 향상시킴
② 엔진과 전기배선 계통을 완전히 오버홀하고 불량부품을 교환하여 화재사고를 예방
③ 5인치 포탑중 1기를 제거하고(2번 혹은 3번포탑) 대신에 아스록 대잠로켓 발사기와 DASH(무인 대잠헬기)시스템, SQS-23 신형소나 등의 최신장비를 탑재함
[(좌) 8연장 아스록 대잠로켓 발사기 / (우) 아스록 미사일 발사!!]
이에 따라 3번포탑 전방에 DASH 무인헬기를 위한 비행갑판과 격납고가 설치되었고 함교 후방에는 아스록 발사기가 설치되었습니다. 또한 DASH 헬기를 추적하기 위한 레이더도 증설되었죠.
※무인대잠헬기(Drone Anti Submarine Helicopter) 시스템
소련 잠수함 세력의 급증에 따라 대잠헬기 탑재의 필요성은 증대됐으나 1950년대 후반의 기술로는 기어링급 같은 소형의 함선에 헬기를 탑재하는 것은 위험하고 수지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대신에 무선으로 조종되는 무인헬기에 대잠어뢰를 탑재하여 운용하는 방안이 제시됐으니 그것이 바로 DASH 시스템입니다. 초기형인 QH-50A는 이중반전로터를 사용하여 헬기 특유의 토크현상을 제거하고 소형 격납고에서도 운용할 수 있을만큼 컴팩트한 크기를 달성하는데 성공하였고 제식형인 QH-50C에 이르면 Mk44 단어뢰를 2기 탑재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습니다.
[QH-50C 무인헬기 : 아래쪽에 어뢰 2발을 탑재]
[(좌) 착함중인 QH-50C / (우) 이함중인 QH-50A]
최초의 FRAM 1 개수공사는 1959년 5월 1일에 시작되었으며 이후 1965년까지 총 80척의 기어링급 구축함들이 FRAM 1 개수공사를 받았습니다. 참고로 1척당 든 비용은 평균 770만 달러였다고 하는군요.
2) FRAM 2 : 장비 근대화 (Modernization)
[FRAM 2 개장함의 주요 개장 포인트]
함을 완전히 갈아엎다시피한 FRAM 1에 비해 FRAM 2는 함체 자체에는 그다지 손을 대지 않고 신형장비만 탑재한 방식입니다. FRAM 1과 공통적으로 DASH 무인헬기 시스템과 비행갑판, Mk32 단어뢰 발사관 등이 탑재되었고 추가적으로 가변심도소나(VDS)가 탑재되어 대잠 수색능력 강화에 일조했습니다. (아스록은 탑재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가변심도소나란 소나를 바다속 깊은 심도까지 늘어뜨리는 시스템으로써, 급격한 수온변화나 밀도변화 등으로 인해 표면의 함정소나가 깊은 심도의 음파를 잡아내지 못할 경우에 대처할 수 있는 장비입니다.
[Mk32 어뢰발사관]
[어뢰 발사는 이렇게!!]
[가변심도소나 : 낚싯줄 풀듯이 소나를 바다 깊숙이 집어넣는 방식]
FRAM 2는 알렌.M.섬너급 구축함이 주 대상이었으나 일부 기어링 급들에도 적용되어 최종적으로는 15척의 DDR형 기어링급들이 FRAM 2로 개수되었다고 합니다.
3. 한국해군과 기어링의 눈물겨운 현대화
[DD-921 광주함의 (FRAM 1) 추가 개량 항목]
성공적으로 FRAM 개수를 받고 현역 임무에 종사하던 기어링급들도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수명연한이 다해가고 신형 프리기트들이 취역하는 등 점점 입지가 좁아져 갔습니다. 1972년까지는 대부분의 기어링급들이 해체되거나 예비역 함으로 돌려졌죠. 그러나 이런 구식 구축함마저도 일부 국가들에겐 감지덕지할 수준이었으니 바로 대만, 터키, 한국 등 중소 해군국들이 그러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72년 7월에 USS Chevalier(DD-805)를 DD-915 충북함으로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1981년까지 총 7척의 기어링급을 도입하여 사용했지요.
그러나 도입 당시부터 이미 함령 25∼30년을 초과한 함들을 운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인 한계는 대략 20년 전후입니다) 도입된 함들은 FRAM 1 적용함이 5척, FRAM 2 적용함이 2척이었는데, 후부 헬기 격납고와 헬기 갑판은 남아있었지만 정작 DASH 무인헬기는 인도받지 못하여 헬기갑판을 승조원들의 체력단련장으로 사용했다는 어이없는 에피소드도 전해져옵니다. 물론 후에 프랑스제 대전차헬기(!) 알루에트Ⅲ를 도입하면서 헬기부재로 인한 애로사항은 어느정도 해소됩니다만...
그뿐만 아니라 도입된 함들중 FRAM1 대응의 경우 아스록 대잠미사일이 없었고 (후기 도입분인 경기·전주함 2척에만 장착됨. 단, 미사일은 없고 발사기만-_-;;). FRAM2의 경우는 함미의 가변심도소나가 제거되어 있었죠.
[바로 이 녀석이 알루에트3입니다. 그런데 어째 좀 미덥지가..]
[알루에트3 : 어수룩한 겉모습과는 달리 대간첩선 작전에서 많은 활약을 하죠]
[40mm 보포스 기관포 : 참고로 위의 녀석은 2차대전 시기의 모델로써 80년대에는 신형이 탑재됩니다]
1979년에는 대함공격용 하푼 미사일이 장착되었으며 당시에는 극비사항에 속했을 정도로 중대한 변화였다고 합니다. 하푼은 함체 중앙부의 아스록 발사기가 있던 위치에 장착되었으며 4개 1조를 기본으로 2조가 장착되었습니다. 참고로 하푼 도입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니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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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제 2경제수석으로 무기개발을 주도했던 오원철씨의 회고록에서 발췌했습니다 (출처 : http://www.ceoi.org)
(전략...) 필자 일행이 유럽을 시찰하는 목적은 유럽 국가들의 방위산업을 시찰하는 데 있었지만 함대함 미사일에 대한 조사 임무도 있었다. 그 연유는 다음과 같다.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 해군의 신예 구축함이 이집트 해군의 「스틱스」미사일을 맞고 침몰 당했다. 이 미사일을 발사한 이집트의 함정은 소련제 「코마형」초계정이었는데, 배수량이 75톤밖에 안 된다. 즉 100톤도 안되는 소형 함정에 의해 수천 톤이나 되는 구축함이 격침 당한 것이다. 전세계의 뉴스거리가 되었다. 우리 해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북한도 「스틱스」 미사일 2기를 장착한 「코마형」초계정을 4척이나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스틱스 미사일의 유효사거리는 40㎞로 구축함의 5인치 포 사거리보다 길고, 「코마형」초계정의 속도는 40노트로 우리 구축함보다 빨랐다. 만일 우리 구축함이 75톤짜리 초계정에 격침이라도 당하는 날이면 북한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이고, 우리 국민의 사기는 그야말로 땅에 떨어지고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부득이 우리 해군은 방어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으며, 우리 구축함은 북한의 「코마형」초계정만 나타나면 피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이 때 미국에서는 신형 함대함 미사일인 「하푼」이 개발되어 구식인 「스탠더드」와 교체 중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 해군이 우리 돈으로 「하푼」을 구매하겠다고 했는데도 미국은 「스탠더드」만 팔겠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 일행은 유럽 시찰을 갔을 때 「스틱스」미사일보다 더 우수한 최신형 함대함 미사일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역점을 두었다. 필자 일행은 여러 함대함 미사일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실물을 보고 난 후, 프랑스에서 만든 「엑조세」미사일이 우리나라 실정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 귀국보고 때 「엑조세」미사일을 구매할 것을 건의했다. 그 후 해군에서는 이를 검토한 후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엑조세」미사일을 긴급 구입했다. 그런데 「엑조세」미사일을 구입해서 구축함에 탑재하려고 할 때 미국측이 거세게 반대를 했다. 프랑스로부터 병기를 구매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미국은 "한국 해군에서 쓰고 있는 함정은 엄연히 미국 정부의 재산이므로 「엑조세」미사일은 탑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건국 후 4반세기가 지난 대한민국 해군의 재산이라고는 ―1970년 한국 해군의 방송선이 납치 당한 후 KIST에서 설계, 국내에서 긴급 건조한― 소위 「KIST 보트」라는 120톤급 PKM과 70톤급 PK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전부 미국 정부의 재산이었다. 이것이 당시 우리 국군의 적나라한 실상이었다. 이 비애를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불과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정밀 검토한 결과 국산 PKM에 미사일 탑재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함대함 미사일을 탑재한 우리나라 초유의 함정은 PKM이 되었다. 그 후 북한의 미사일함(코마 및 오사)은 「엑조세」를 장착한 우리 함정만 나타나면 얼씬도 못했다. 그리고 여덕(余德)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엑조세」미사일을 구매하고 나니 그제야 미국에서 「하푼」을 팔겠다고 해서 우리 해군은 「하푼」으로 무장하게 되었다.
종합하면, 미국은 우리나라가 우리 돈으로 미국 무기를 사겠다는 데도 신형 무기는 팔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 대신 폐기처분할 구형 무기를 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군사적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무기를 구입했다. 이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은 미국에서는 미국으로부터 대여받아 한국 해군이 사용하고 있는 함정에 탑재하는 것조차 반대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국산 함정의 건조를 시작하고 여기에 탑재할 미사일(엑조세)을 추가 구매할 기미를 보이자, 미국은 안 팔겠다던 신형 미사일(하푼)을 팔겠다고 나선 것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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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기어링 급은 2001년에 마지막 함이 퇴역할 때까지 약 30년간 운용되면서,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개량이나 장비 교체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입시부터 전반적으로 사양에 차이가 나던 녀석들이 장비개량마저 제각각으로 받으면서, 결국 함체를 제외하고는 거의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각양 각색의 형태로 변해버렸다는게 제가 받은 인상입니다.
일단 같은 FRAM1 대응의 함선 중에도 아스록이 없는 녀석, 헬기를 운용하지 못하는 녀석 (헬기갑판에 무장을 탑재했으므로)이 있는가 하면, 함체 중앙부에 40mm 보포스 2연장 기관포를 달거나 20mm 시발칸 2기를 다는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니까요.그나마 공통적인 특성이라면 1979년의 하푼 대함미사일 도입이나 알루에트 대잠(?)헬기 도입, 40mm 보포스를 신형으로 교체(FRAM1 대응형만), 기타 센서류 교체 정도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은 각 함 단위의 장비 차이입니다.
① DD-915 충북 / DD-916 전북 : FRAM2 대응. 5인치 포탑이 3기인 대신 40mm 보포스 미탑재.
② DD-919 대전 : FRAM1 전기형. UPX 1-12 피아식별장치 탑재. 아스록 없음.
③ DD-921 광주 : FRAM1 전기형. 타함과 달리 SPS-40이 아닌 SPS-37형 레이더 탑재.
④ DD-922 강원 : FRAM1 전기형. 가장 표준적인 타입.
⑤ DD-923 경기 : FRAM1 후기형. 중앙부에 아스록 발사기가 있기 때문에 (단, 미사일은 없음) 시발칸을 장비하지 못함.
⑥ DD-925 전주 : FRAM1 후기형. 경기함과 마찬가지로 중앙부의 아스록 발사기 때문에
시발칸을 헬기갑판으로 옮겼고, 덕분에 헬기운용능력을 상실.
[90년대 이후엔 시 발칸으로 교체했지만 한때는 이렇게 육상용 발칸포를 그대로 싣기도 했죠]
[2000년 5월에 전북함이 안인진 현 통일공원 자리에 안치돼던 모습 : 낡을대로 낡은 함 바닥]
그러나 이렇게 장비를 일선했어도 역시 개량에는 한계가 있었고 무엇보다 수명이 한계에 도달하여 운용상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는군요. 이것도 근대화라고 불러야할진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함 바닥을 몇 차례나 땜질했다고 하죠. 그렇게 했는데도 물새는걸 막을 수 없었다고 하지만. 최초 취역 당시 33노트에 달하던 최고속도도 1980년대에 이르면 노후화로 인해 25노트 정도밖에 발휘하지 못했고, 승조원들의 불편함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쥐가 들끓어서 쥐가 부식을 다 먹어치우거나 심지어 잠자는 승조원 발바닥의 굳은 살을 파먹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져옵니다.-_-;;) 결국 한계에 다다른 기어링급들은 1994년부터 차례대로 퇴역하여 지금은 단 1척도 현역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4. 기어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강릉 안인진에 안보공원으로 안치돼있는 전북함]
우리 해군의 기어링 운용은 말그대로 근대화 개장을 통한 운용연장의 극한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 한번 근대화 개장을 거쳐 수명을 연장한 함선을 계속해서 보강해가며 마르고 닳도록 운용했으니 말입니다. (물론 기어링 자체가 우리 해군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20여년간 수행한 임무의 중요성 등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오죽하면 미 해군으로부터 "작전을 벌이다 격침되기보다는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다 침몰할 가능성이 더 높은 노후한 배를 보유한 한국 해군에서 단 한 번의 중대한(?) 안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기적”이라며 한국 해군의 군함 정비 능력과 관리 수준은 가히 세계적이라는 "냉소적인" 찬사까지 받았을까요.
글을 시작하며 맨처음 던졌던 화두.. "철저한 근대화 개장을 할 것인가, 그럴바엔 차라리 신형함을 건조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사실 상당히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비싼돈 들여 신조함 몇 척 건조하는 것보다 같은 돈으로 적당한 수준의 중고함을 고쳐서 두고두고 써먹는 편이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점에서 근대화 개장과 신조함 도입은 간단히 답을 내기 어렵고 논쟁거리가 되기 싶상입니다. (약간 경우가 틀리긴 하지만 라팔과 F-15K 논쟁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해군의 경우 전력증강 사업을 벌이면서 중고함 도입이 신조함 도입과 맞먹을 정도로 공론화된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한때, 비싼 돈들여 KDX-3를 건조하는 대신 타이콘데로가 초기형을 도입하자는 말도 있었고 미국이 퇴역시킬 키드급 구축함을 개량해서 사용하자는 의견도 나오곤 했지만 모두 한때의 말이었을 뿐, 금세 쑥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어찌 보면 솔깃할 수도 있는 얘기인데도 말이죠. 본래 기어링의 도입부터가 어쩔 수 없어서 한 선택이었고 (예산도 없고 건조할 능력도 없었으니), 20여년간 운용하면서 오직 헬기운용이 가능하다는 것 하나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 림팩 훈련에서 수만톤급 항모와 1만톤급 구축함들 가운데 3,000톤급 고물 구축함을 세워놓고 느껴야했을 서러움과 당혹감..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모여 "이젠 우리 힘으로 우리 배를 만들어보자"라던가 "이제 중고함 운용은 끔찍하다"라는 공감대를 만들어낸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어쨌거나 한국 해군은 "중고함 도입 & 근대화 개장" 대신 마땅히 가야할 길인 신조함 건조를 선택했고 벌써 KD-1과 KD-2가 취역한 상태이고 KDX-3의 건조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젠 두 번 다시 낡은 배에 서러워하지 않아도 될 당당한 대한민국 해군을 기대해봅니다.
p.s. 언제나처럼 경험자 분들의 생생한 체험담을 부탁드립니다.^^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월간 「해군전력」2000년 4월호(기어링급 구축함), 2000년 12월호(미해군 구축함 변천사), 2001년 2월호(한국해군 발전사)
- http://www.roknavy.com/
- http://www.gyrodynehelicopters.com/fram/
- http://www.ussjpkennedyjr.org/
- http://www.ussorleck.org/
- http://gunsa.nared.net/Navy/Destroyer/Chungbuk.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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