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해군이야기

쟝·바르와 매사츄세츠의 싸움

구름위 2012. 12. 2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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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9월, 독일은 동부전선에서 한창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치르고 있었고 아프리카에서는 롬멜장군의 아프리카 군단이 엘알라메인에서 이집트에 진입하기 위한 마지막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한편 미국의 입장에서는 참전후 약 9개월이 지났으나 아직까지도 유럽전선에서는 본격적인 실전데뷔를 하지 못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2전선 형성의 시발점으로 설정된 것이 바로 북아프리카를 목표로 한 「토치(횃불) 작전」이었죠.

이 작전에는 북아프리카의 관문인 카사블랑카 침공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육군은 각각 9,000명, 18,000명, 6,000명으로 편성된 3개 그룹으로 나뉘어 해안에 상륙하게 되었고 해군은 이에 대해 영·미 양국의 전력을 합쳐 전함 3척(매사츄세츠 포함), 항모 5척, 순양함 7척, 구축함 38척의 전력으로 화력지원 및 카사블랑카 항내에 계류중인 비시 프랑스 해군의 전력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죠. 연합군 참모부측은 비시 프랑스 측이 그다지 강력한 저항을 하진 않을거라고 보았지만 해군의 경우 2년 전의 메르-엘-케비르 사건 때문에 사력을 다해 반격해올거라고 예측했습니다.


[1942년 11월 당시 쟝·바르의 완공 상태 : 주포탑 1기, 고각포 5문, 기총 수 문이 전부]

한편, 이에 맞서는 비시 프랑스 측은 60,000명 가량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전차나 항공기 등은 불과 한줌 정도에 불과했고 해군은 해안포 수 문과 각종 군함 10여 척, 잠수함 11척을 보유한데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중 가장 거대한 함정은 바로 리슐리외급 2번함인 쟝·바르였습니다. 그녀는 1940년 6월에 프랑스가 패망했을 때 77%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었고, 건조가 채 완료되기도 전에 서둘러서 이곳으로 피난을 와서 다시금 느리게나마 건조를 진행중이던 실정이었죠. 함체는 이미 완공되어 있었으나 탑재된 의장은 2개의 주포탑중 1기, 그리고 5문의 대공포뿐이었습니다. 도저히 이런 상태로 연합군의 전함들과 맞선다는건 누가 봐도 미친 짓에 불과했지요.


[이 글의 또다른 주역 : USS 매사츄세츠]


[공격 준비중의 갑판의 모습]

그리하여 1942년 11월 8일, 그리니치 표준시로 00:00에 미국의 중순양함 오거스타가 포문을 열면서 토치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7시경이 되자 항모 레인저에서 출격한 공격대가 항구를 공습했고, 이에 맞서 프랑스군의 전투기도 교전을 벌여 와일드캣 5기, 프랑스 전투기 7기가 격추되었죠. 이런 와중에 상륙정들이 해안에 접근하기 시작하자 비시 프랑스의 해안포들과 쟝·바르의 15인치 포 4문이 불을 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8시 4분, 드디어 매사츄세츠의 16인치 포가 쟝·바르와  카사블랑카 항구를 향해 일제사격을 퍼붓기 시작했죠.


[카사블랑카 침공작전의 교전 상황도]

양자간의 거리는 약 20,000m였으며 매사츄세츠는 16인치 포 9문, 쟝·바르는 15인치 포 4문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전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매사츄세츠의 16인치 포 1발이 쟝·바르의 1번 주포탑 바벳을 강타했고, 이 충격으로 쟝·바르는 포탑의 선회장치가 고장나 더 이상 매사츄세츠에 포를 지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쟝·바르의 반격은 그걸로 끝장이 났죠. 이후로 16분동안 매사츄세츠는 9회의 일제사격을 실시했고 5발의(7발이라는 설도 있음) 명중을 달성했습니다. 피탄된 5발중 3발은 쟝·바르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했고 나머지 2발은 함수와 함미에 명중하여 해당 부분에 각각 대량의 침수를 일으켰으나 함의 전투력 유지에는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카사블랑카 함락 후 촬영된 사진 : 전반적인 상태]


[구멍 뚫린 함수부 : 왼쪽 부분의 멀쩡한 곳부터 장갑대가 시작됩니다. "All-or-Nothing"의 상징이랄까요?]


[엉망진창이 된 함미 : 부포탑 근처 부근에서 장갑대가 끝나죠]


[전반적인 피해 상황]

일반적으로 이 교전은 "집중방어(All or Nothing)"의 유용성을 잘 나타내는 사례로 여겨지곤 합니다. 명중된 5발중 2발은 집중방어 개념에서 장갑이 가장 집중된 부분에 명중했으나 피해를 주지 못했으며, 함수와 함미에 명중된 2발은 집중방어 구조에서 "nothing"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는데 이곳에 입은 피해가 함 전체의 전투력 유지에 별다른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히, 나머지 1발인 4번째 명중탄은 연돌 부분에 명중한뒤 얇은 철판을 차례로 뚫고 함체와 현측장갑이 맞닫는 부분을 뚫고 물 속으로 폭발해버렸는데, 이것이 중요합니다.

철갑탄은 본래 장갑을 관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일정 이상의 충격을 받아야만 신관이 작동하며, 포탄이 장갑을 관통한 후 내부에서 폭발해야만 피해가 극대화되므로 신관 작동후 폭발까지 약간의 지연이 있습니다. (매사츄세츠의 16인치 포탄의 경우 0.033초) 위와 같은 경우, 우선 신관이 작동하기에는 철판이 너무 얇았고 최후에 신관이 작동해서 0.033초 후에 포탄이 폭발했을 때는 이미 포탄은 물 속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했던 것이죠.


[(좌)4번째 명중탄의 관통 개념도. / (우)리슐리외급의 장갑구조.]

철갑탄이란 두꺼운 장갑을 상대하기에 최적화된 것이고 어중간한 두께의 장갑보다도 저런 비장갑 목표가 오히려 피해를 더 줄이는 방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신관이 작동하지 않으면 폭발 없이 그저 뚫고 지나갈 뿐이므로) 때문에 전체적으로 어중간한 두께의 장갑을 두르는 것보다, 이처럼 가장 중요한 바이탈 파트에 장갑을 몰아줘서 어떤 상황에서든 확실한 방어력을 보장하고 그대신 그다지 중요치 않은 구역을 비장갑 상태로 남겨두는 "집중방어"가 더 효율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주 : 글에 혼란을 더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교전에서 미국측의 포탄은 신관 작동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이론을 입증하는 사례가 되지 못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해안포의 8인치 포탄이 관통한 자취]

어쨌거나... 이후 미국측은 쟝·바르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고 판단하여 사격을 중지했고, 결과는 쟝·바르가 전투불능(사실은 포탑이 고장난 것뿐이었지만)이 된 것 이외에 근처에 있던 부두 시설과 구축함, 잠수함, 민간 선박 등 10여 척이 교전에 휘말려 피해를 입거나 줄줄이 물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한편, 메사츄세츠는 쟝·바르의 포탑이 조기에 무력화된 관계로 15인치 포탄을 맞지는 않았지만 해안포의 8인치 포탄 1발을 맞았습니다. 이 포탄은 1.5인치 두께의 상갑판에 명중하여 신관이 격발되었으나 5.3인치 두께의 주 장갑갑판은 관통하지 못했고 해병대원의 거주구가 피해를 입는데 그쳤습니다. 이 구역은 바이탈 파트가 아니었으므로 전투력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당연히 근처에 아무도 없었으므로 인명피해도 없었다고 합니다. (교전시에 승조원들은 주 장갑갑판 아래에서 대기함)

어쨌거나... 미국측의 예상을 깨고 비시 프랑스측은 재빨리 쟝·바르의 포탑을 수리하여 11월 10일에 중순양함 오거스타를 협차하기도 하였으나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되돌릴 수는 없었고 11월 10일에 비시 프랑스 군이 항복함으로써 토치 작전은 성공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이후 쟝·바르는 미국에서 오버홀이 예정된 언니 리슐리외를 위해 탑재돼있던 주포를 강탈당했고, 종전 때까지 그대로 카사블랑카에 머무르다가 전후 프랑스로 돌아가서 다시 건조를 마무리한 후 프랑스 해군에서 복무했습니다. (퇴역은 1961년)


[언니가 미워! : 잘나가는 리슐리외와 종전후 고국으로 돌아가는 쟝·바르(포가 하나도 없죠?)]


[툴롱 항에서 자침해버린 덩케르크의 잔해]

그리고... 이 전투의 마지막 여파는 리슐리외나 쟝·바르만큼 사정이 좋지 않았던 다른 자매들에게 돌아갔습니다. 11월 8일에 연합군이 상륙한 직후 비시 프랑스 군의 지리멸렬한 대응에 화가 있는대로 오른 히틀러는 비시 프랑스 수반인 페탱 장군에게 "똑바로 안하면 다 엎어버리겠다"고 협박하고는, 11월 10일에 북아프리카의 비시 프랑스 군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이를 정말로 실행에 옮겨버립니다. 그동안 비시 프랑스 정부에 맡겨두었던 프랑스 남부 지역의 "접수"에 착수했던 것이죠. 그 때문에 메르-엘-케비르 사건 후 프랑스 남부의 툴롱 항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프랑스 해군의 나머지 함선들(덩케르크 등)은 11월 24일에 독일군이 다가오자 모조리 자침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힘없는 나라의 해군의 슬픈 운명이랄까요?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러시아 화보집, 『Richelieu』, 1997
- Rob Stern, 『US Battleship in Action : Part2』, Squdron/signal Publications, 2000
- http://www.warship.get.net.pl/Francja/Battleships/1940_Richelieu_class/_Richelieu_class.html
- http://polyticks.com/bbma/jeanbart.htm
- http://www.internet-esq.com/ussaugusta/to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