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해군이야기

'도시화'의 관점에서 본 군함의 생활 환경

구름위 2012. 12. 2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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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전과 대양 항해가 본격화된 17세기 이래로 군함의 크기는 전반적으로 점점 대형화되는 추세였습니다. 이런 경향은 지난 200년 전부터 급격히 가속화 돼왔는데, 증기기관의 등장 및 장갑판과 작열탄의 실용화는 기존의 전열함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만들었으며 각 열강 간에 보다 더 큰 함포와 함체의 경쟁을 촉발시켰죠. 이런 ‘대함거포주의’가 만연한 결과, 19세기 말에 불과 배수량 10,000톤에 길이 100m를 간신히 넘기던 전함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기본적으로 35,000톤을 초과하는 배수량에다가 길이는 250m를 전후하는 수준으로까지 대형화되었습니다.


[한 배에 이정도 인원이 타게 된다면 이 배는 이미 작은 도시라고 할 수 있을테죠]

하지만 이런 대형화 경향은 비단 병기로서의 측면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함체의 대형화는 그것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사람들의 수를 증가시켰고, 늘어난 사람들을 위해 부대시설들의 규모와 질도 변화되어야만 했으며 이는 결국 배 안의 생활환경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죠. 전반적으로 군함의 생활환경은 하드웨어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편의시설들이 신설되고 미분화되었던 기능들이 독립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소프트웨어적으로는 한 명의 수병이 여러 가지 기능들을 담당하던 것에서 벗어나 점차적으로 전문화와 분업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습니다. 저런 변화를 거친 결과 대형화의 정점에 서있다고 할 오늘날의 니미츠급 항모들은 흔히 ‘작은 도시’라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불리곤 합니다. 이는 아마도 1척의 배에 5,000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인구가 거주한다는 점과 내부에 자체적인 TV방송국이나 슈퍼마켓 등이 존재할 정도로 비 전투적 기능들이 발달해있다는 점 때문일테죠.

그렇게 본다면, 19세기말의 장갑함에서 오늘날의 초대형 항모에 이르기까지의 내부 생활환경의 변화 또한 단순히 편의시설이 좀 늘었다는 차원이 아니라 일종의 ‘도시화 과정’이었다고 바라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1. 시설의 증가와 기능의 분업화

17세기경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서구 해군의 주력함이었던 전열함에서는 '전투공간=수병의 생활 공간‘ 이었습니다. 수병들은 포갑판에서 거주했는데, 식사는 포와 포 사이에 놓인 접이식 테이블에서 이뤄졌으며 밤이 되면 테이블을 접은 뒤 천정에 해먹을 걸고 잠을 청하곤 했죠. 갑판 측면의 포문은 그대로 창문의 역할을 겸했고 수병들이 틈틈이 생기는 비번시간에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거나 휴식을 취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전투가 발생하면 수병들은 테이블과 해먹을 걷어치우고는 바로 조금 전까지 자신들이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던 곳에서 포탄을 나르고 심지에 불을 당겼죠.


[HMS 빅토리의 포갑판. 포 사이사이에 수병들의 식탁과 가재도구가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간만큼이나 수병들의 기능 역시 분화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전투에 관련해서는 포수, 갑판원, 목수, 돛 담당 등 각자의 역할 뿐만 아니라 전투 시에 어느 장소에 위치해있어야 하는지까지 세세하게 지정되어 있었지만 비 전투적인 기능들, 이를테면 전문 이발병, 전문 세탁병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죠. 오늘날 우리나라 육군의 소부대 병사들이 그러하듯이 과거의 수병들은 각자 알아서 자기의 옷가지와 신발 등을 수선하고 서로 간에 돌아가면서 머리를 손질해주곤 했습니다. 심지어 살아가는데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취사병조차도 전임이라고 말하기엔 매우 애매한 위치에 있었죠.


[Canteen Messing : 그야말로 ‘한솥밥을 먹는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것이 바로 범선 시대 이래의 식사방식이었죠]

이를테면 범선 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 서구 각국의 해군들은 식사 공급에 대해 ‘canteen messing' 이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단체급식은 대개 소수의 조리사가 몇 백명 분의 식사를 만들고 나면 식사시간에 사람들이 식당으로 찾아와 손에 식판을 들고 차례로 줄을 서서 밥을 타먹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canteen messing'에서는 저런 중앙집중화된 급식방식과 달리 거대한 식당이나 전임 취사병이 존재하지 않죠. 우선 배 안의 수병들은 각 직별 단위로 15~20명 단위의 조-통칭 'mess mate'라 불리는-로 편성되었습니다. 그러면 매일 조원 중 1~2명이 돌아가면서 자기 조를 위한 식사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메뉴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19세기 초반까지는 식사 준비를 전문 취사병이 하든, 일반 수병이 하던 간에 큰 차이가 없었지만(어차피 누가 하든 전부 절인 고기에 쉽비스킷이었을테니...--;), 19세기 중반 이후 식재료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이 제도는 빛을 발하게 되었죠.

영국의 경우, 해군 당국은 일일 배급 규정에 따라 밀가루, 야채, 고기 등의 식료품을 지급하는 것 외에 1일당 4펜스 정도의 추가적인 식비를 지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각 조는 자체적으로 협의하여 콩, 양배추, 콘비프 등 추가적인 식재료를 보급관으로부터 구입할 수 있었으므로 과거와 같이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닌 다채로운 식단을 꾸밀 수 있었죠. 게다가 각 조의 당번이 그 날의 메뉴를 자기 재량껏 정할 수 있었으므로 같은 식사 때라 할지라도 먹는 것은 그야말로 제각각이었습니다. 식사가 공급되기까지의 대략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식사당번들은 매 끼니 전마다 밑준비를 한 뒤 직접 식재료를 들고 취사장에서 자기 조원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다음 날의 식사당번으로 정해진 수병은 내일 만들 메뉴를 정해놓은 뒤, 손이 많이 가는 메뉴일 경우 그날 저녁에 간단한 밑준비를 미리 해두게 됩니다.(감자껍질 벗기기 등)
다음날 아침, 당번들은 다른 동료들이 일어나서 씻고 아침 티타임을 갖는 동안 잽싸게 전날 밤에 밑준비를 해둔 재료를 들고 취사장으로 뛰어갑니다. 취사장에 도착하면 나머지 세팅을 마친 후 요리를 오븐에 넣게 되죠. 이때 취사장에도 소위 ‘취사병’은 몇 명 정도 있지만 이들은 오직 각 당번들이 준비를 끝낸 요리를 오븐에 넣고 빼는 일만 할 뿐, 다른 조리 과정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요리가 완성되면 당번들은 다 만들어진 요리를 자기 조의 테이블까지 운반해옵니다. 그러면 조 내의 가장 고참 격인 ‘조장’이 조의 인원수대로 공평하게 요리를 분배하고, 식사를 시작하게 되죠.
식사가 끝나면 당번들은 조원들의 식기를 모아서 설거지를 한 후 다시 테이블 근처의 정해진 위치에 가져다 놓습니다. 이후 점심과 저녁식사 때가 되면 각각 ②~④의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하루의 의무를 마치게 되죠.



[1860년대에 건조된 HMS 워리어의 포갑판. 기본적으로 전열함 때의 그것과 별다른 구조적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열함 시대에 확립된 이러한 시스템은 초기 장갑함 시대에 와서도 쉽사리 변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1860년대에 건조된 장갑함 HMS 워리어의 생활공간은 전열함의 그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중포와 장갑판의 발달로 포의 탑재 스타일이 변하게 되자 이런 구조에도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죠. 우선 전투공간과 생활공간이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력함의 설계가 다수의 소구경 포를 현측(배 측면)에 대량으로 장비하던 전열함 시대의 방식을 벗어나 대구경 중포를 소수 탑재하는 방식으로 흐르기 시작하면서 수병들은 전처럼 포와 더불어 먹고 자는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죠. 그 다음으로 수병들의 처우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배 자체의 승조원 규모가 늘어나게 되자, 이전까지 여러 가지 기능이 모두 뭉뚱그려져 있던 생활공간도 점차 독립적인 편의시설로 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중·후반 무렵부터 각국의 대형함에는 인간의 기본적 생활에 필요한 설비들, 이를테면 세탁실, 병실, 세면실 등이 독립적인 시설로써 설치되기 시작했죠. 이전의 수병들이 병에 걸렸을 때 기껏해야 자기 해먹에서 동료의 간호를 받거나, 세탁을 할 때 후갑판에서 단체로 갑판에 빨래를 비비던 것에 비하면 시설 면에서 엄청난 개선이 이뤄진 셈입니다.


[1930년대 전함의 수병 거주구 : 이제 생활공간은 전투공간과 완전히 분리되어, 거주구 내에 병기가 위치하던 과거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탁 : 수병 각자가 후갑판에서 빨래를 문대던 시절도 세탁실의 등장으로 크게 바뀌었죠.]


[이발 :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깎아주던 것에서 마찬가지로 이발실의 설치가 함내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보다 중요한 측면은 편의시설의 설치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생겨난 ‘기능의 분업화’에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대형함에서는 틈틈이 다른 동료들의 빨래를 대신 해주거나 머리를 깎아 주는 대가로 약간의 돈을 받는 ‘부업’을 하는 수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배 안에 여러 가지 편의시설들이 새로 설치되면서부터는 아예 그것을 전담하여 운용할 전문화된 보직들-의무병, 세탁병 등-이 배치되기 시작했죠. 이들은 이전의 수병들이 전투 임무를 주로 하고 부수적으로 필요에 따라 자잘한 비전투 임무를 떠맡았던 것과는 달리 거꾸로 비전투 임무를 본업으로 하고 전투 시에는 포탄이나 환자 운반 등 간단한 잡무만을 맡도록 되었습니다. 즉 이전까지의 방식이 모든 수병들에게 전투 임무 외에도 소소한 생활 잡무에의 부담을 지웠다면, 전문화된 비전투 보직의 등장은 함내 생활에 필요한 지원 기능을 소수의 전문화된 인원들에게 전담시킴으로써 다수의 수병들을 생활 잡무로부터 해방하여 오직 전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 삶의 흐름이 빨라지고 커지면서 예전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했던 일들이 전문 서비스업으로 대두되는-이를테면 베이비시터나 세탁소 등-것이나 대규모 부대에 PC방 관리병, 이발병, 연예병사 등이 생겨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랄까요?)


[한가한 인원이 부업으로 동료들의 옷을 수선해주던 광경도 전문 오바로크병(?)의 등장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초부터 각국 군함에서는 좌측과 같은 ‘canteen messing'이 사라지고, 그 대신에 식판을 들고 식당 앞에 줄줄이 늘어서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canteen messing' 또한 점차 오늘날 일반화 되어 있는 ‘전문 취사병 +거대한 수병 식당’ 체제로 전환돼갔습니다. 19세기말의 시점에서 ‘canteen messing'이 갖고 있던 문제점은 대략 다음과 같았죠.

전함 같은 경우 한 배의 승조원 수가 600~700명을 초과하게 되면서 식사 조의 수가 30개를 초과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식사시간 때마다 취사장은 자기 조의 요리를 준비하려는 당번들로 북적댔고, 설상가상으로 그 많은 조들이 제각기 다른 요리를 준비하려다 보니 혼잡과 시간 지연을 도저히 피할 수 없었죠.
당번들은 자기 조의 요리를 준비해야 했으므로 식사시간 이전에 일과에서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오전 일과를 하다가 도중에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빠져나가는데다 설거지 때문에 오후 일과 복귀에도 늦게 되었으며, 저녁 끼니 전에도 마찬가지였죠. 게다가 이 시점에 이르면 식사 조 숫자 때문에 매 끼니 때마다 50~60명을 넘는 인원들이 일과 도중에 전투 임무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당연히 배의 운용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조금 사소한 문제긴 하지만, 전문 조리사가 아닌 일반 수병들이 돌아가면서 취사를 하다 보니 요리 실력이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당번을 맡는 것에 따라 식사의 질이 들쭉날쭉하게 되는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각국 해군들은 차라리 전문 취사병을 두고 매 끼니 때마다 일괄적으로 같은 음식을 대량으로 만들어 급식하는 편이 배의 운용에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였고, 'canteen messing'은 20세기 초부터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여 1950년대에 영국해군의 소형함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좌) 함내 카페테리아 / (우) 항모 미드웨이에서의 'Steel Beach Picnic Day' 광경. 이쯤 되면 이미 배처럼 보이지 않죠?]

이후 1910년대부터는 함내 PX나 카페테리아 같은 진짜 편의시설들도 나타나게 되었고 취사장도 제빵소와 일반 취사장으로 분리되는가 하면, 진료실도 수술실과 치과 진료실을 따로 갖추는 등 시간이 흐르면서 편의시설과 전문 비전투 보직의 수는 배 크기의 증가에 발맞춰 점차적으로 증가해왔습니다. 오늘날 그런 대형화의 정점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미국의 항공모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배들에는 분명히 함내 방송국 PD라던가 아나운서 병, 함내 헬스클럽 관리병 같은 기기묘묘한 보직들이 많이 있을테죠. 이런 보직들이 일견 우스워 보이기도 하지만, 소수의 수병이 전문 기능을 전담함으로써 전체 조직의 기능이 보다 효율화될 수 있다고 이해한다면 저런 보직들과 시설들이 생겨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 대형화에 따른 규율과 인간관계 측면에의 영향

배의 대형화는 시설과 분업화된 전문 보직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론 함내 승조원들 간의 관계 면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고도 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예전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던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항모에서 탈영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탈영병이 함내 여러 부서를 돌아다니면서 먹고 자는 바람에 아무도 그가 어디 있는지 찾아내지 못하고 결국 항구에 정박해서 현문을 통해 나가려고 할 때에야 간신히 체포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미국 항모의 거대함을 비유하는 이야기로 종종 회자되곤 합니다만, 이는 오히려 같은 배의 승조원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대형함에서의 익명성을 나타내는 이야기로써 더 적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비슷한 예로 우리나라 육군의 경우도 중대 규모를 벗어나면 무조건 ‘아저씨’가 되고 대대 규모가 불과 500명 남짓한데도 대대 내에 모르는 사람이 많은건 다반사죠.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구성원 사이의 개인적인 면식과 교류의 기회는 점점 더 적어지므로 흔히 말하는 ‘소외 현상’이나 익명성 같은 것도 나타날 수 있겠죠.

물론 각 배의 승조원들은 무관계한 개인들이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말단 수병부터 함장까지 정연하게 구성된 조직 안에 위치해있는 것이므로 최하부의 소규모 조직에서조차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매일 매일을 1번 포탑 안에서 보내는 포수와 기관실에서 연료 밸브를 조절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치는 기관병이 상륙 중에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들이 상대방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수병모에 새겨진 함명이 같다는 것뿐이라는 점은 분명하겠지요.


[‘canteen messing' 하에서의 식사 조원들은 그야말로 침식을 같이 하는 배 안의 또다른 ’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가장 친밀한 집단으로 남아있어야 할 최하부 조직조차도 배의 대형화에 따라 구성원 간의 관계가 점차 소원해져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앞서 서술했던 ‘canteen messing' 하에서의 식사 조가 바로 그런 예죠. 식사 조는 단순히 끼니를 같이 하는데 그치는 집단이 아니었고 (물론 ’canteen messing‘ 하에서의 독특한 식사방식 때문에 밥을 같이 먹는 것만으로도 말 그대로 ’한솥밥을 먹는다‘는 정서적 유대감을 주긴 했지만), 사실상 일과 시간이 끝난 후에는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 하는 일종의 ’작은 가정‘과도 같은 공동체였습니다. 이를테면 일과 시간이 끝난 후 같은 조원과 얘기를 나누거나 카드 게임을 하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한가한 조원이 근무중인 다른 조원의 구두를 손질해 준다거나 빨래를 대신 해주는 식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마찬가지로 식사 조의 조장은 끼니때의 식사 분배뿐만이 아니라 아버지처럼 조원들의 생활 전반을 돌보아주고 보살펴주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를테면 조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을 경우 조장은 그것이 규율 부사관에게 통보되기 전에 사태를 중재하곤 했고, 조원 중에 가정 형편이 어려워 급히 송금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조장이 자비를 보태거나 조원들로부터 얼마씩을 거둬서 돕기도 했죠.

이런 이유 때문에 각각의 식사 조들은 이론적으로 구성원 교체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안정적인 형태로 유지되곤 했죠. 그러나 ’canteen messing'이 전문 취사병 체제로 바뀌면서 식사 조 편성의 이유가 사라지자 조원들 간에 서로 의지하고 돕는 유대관계도 이전보다 약화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친한 몇몇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경우는 여전했지만, ‘같은 공동체로서 지켜야 할 미덕’이라는 규범이 사라지면서 그 이상의 관계는 쇠퇴하고 만 것이죠.


[배의 크기가 커질수록 상하간의 관계 또한 공식적인 경계와 규율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게 되곤 했죠.]

다만 규율이나 계급갈등의 경우, 전열함→장갑함→전함에 이르는 대형화에 의해 저런 요소들이 더욱 심각하게 변해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영국해군의 경우는 전열함 시대 때부터 수병에 대한 규제와 처벌이 엄격했으며, 수병과 장교의 계급 자체가 민간 사회의 계층과 거의 완전히 일치했기 때문이죠(수병=노동계급, 장교=중류계급 이상). 이들 문제들은 19세기를 거치면서 나아졌으면 나아졌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형함의 경우는 ‘동시대의 소형함보다 시간에 따른 개선 정도가 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930년대에 들어와서도 순양함 이상의 대형함에서는 분 단위까지 나눠진 일과표에 따라 생활해야 하는 엄격한 규율이 유지되었고 다수의 헌병이 수병들의 생활을 통제하였으며, 장교들은 수병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곤 했죠. 반면에 배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규율은 느슨해지고 장교와 수병들 간의 경계 또한 전반적으로 엷어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장교든 수병이든 구성원 간의 대면과 개인적 접촉의 기회가 적어질수록 공식적인 규율과 계급관계의 힘은 강해지기 마련이었죠. 군함들 중 가장 작은 규모라 할 잠수함이나 구축함에서는 장교와 수병이 서로의 계급을 의식하기보다 일종의 형-동생 사이처럼 지내는 사례가 많았음을 감안한다면, 배의 대형화는 승조원 간의 관계 형성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함선의 대형화는 우리의 수병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우리 해군은 극히 최근까지도 만재 3,000톤, 승조원 수로는 350명 이상을 상회하는 배를 보유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작전이나 전투 상의 문제는 제외하더라도 승조원에 대한 편의시설이나 승조원 간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경험해본 바가 적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해군 최대의 군함이 기어링급이나 구식 LST이던 시절에는 배 안에 별도의 격실을 할애하여 PX를 설치한다거나 하는 사치를 부리기가 어려웠을테죠.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 해군이 대양해군 건설을 지향하며 KD-1급을 위시하여 속속 3,000~5,000톤을 넘어가는 신형함들을 건조하는 한편 가장 최근에는 만재 18,000톤급의 독도함을 진수하면서 우리 해군의 군함에도 점차 승조원을 위한 배려나 편의시설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듯합니다. 뭐..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동하는 것은 미래의 한국해군 함에는 어떤 편의시설이나 전문 보직이 신설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빈 격실에 박스만 쌓아놓고 물건을 파는 수준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PX가 생길 것인가 하는게 기대된달까요.

하지만 보다 초점을 맞추고 싶은 부분은 배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우리 군함 내의 ‘병영 문화’에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승조원이 300명을 넘는다 해도 결국 좁은 공간 내에서 생활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얼굴을 맞대며 서로 부대끼고 살아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허나 장차 배가 커지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같은 배에 타고 있는 승조원이면서도 직접적인 대면의 기회가 적어지고 예전보다 서로 잘 모르게 되는 때가 오게 될테죠. 그런 경우 주변 분대원과의 유대감은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더라도 배 전체의 구성원들과의 관계나 소속감은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게 될까요? 혹은 비전투 보직의 증가에 따른 수병 내부의 영역 분리라던가 대형화에 따른 규율·통제의 강화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을까요?

앞서 서술한 것처럼 배의 대형화는 단순히 작전반경이나 전투 상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그 안의 승조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작금의 대형화 추세가 당분간 지속되거나 적어도 함 크기가 예전처럼 작아지지 않는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 해군도 언젠가 저런 현상들에 직면하게 되겠죠. 비록 직접적으로 전투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군 구성원에 대한 관리라는 측면에서는 구체적 현상들이 나타나기 전에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볼만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Christopher Mckee, Sober Men and Tru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2
- http://www.twogreens.com/wakeup/index.htm
- http://www.hms.org.uk/nelsonsnavymain.htm
- http://www.hmswarrior.org/life1.htm
- http://www.greatwhitefleet.info/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