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병기와 전투, 그리고 여러 가지 통계와 사건을 통해 과거의 전쟁을 판단하곤 합니다. 하지만 모든 병기들은 결국 인간에 의해 운용되는 것이고, 전쟁이란 것도 표면적으로는 각종 기계와 장비의 대결로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그런 부분들.... 당시 수병이나 군인들이 어떤 생활을 했고, 어떤 음식을 먹었고, 어떤 생각으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는지는 잘 알려져있지 않지요. 전쟁이란 것이 인간에 의해 수행된다면, 그 전쟁에 임하는 사람들의 실상이 어땠는지를 알지못하고서는 전쟁의 실상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해군의 여러 분야에서도 가장 밑바닥이고 가장 열악했다고 알려진 잠수함 승무원의 생활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한편, 2차대전 당시 세계 여러 나라의 잠수함 승무원들 사이에서 국적을 불문하고 이상할 정도로 많은 공통점이 나타나는 것도 주목할만한 일입니다. 열악한 환경, 잠수함 근무에 지원한 동기, 잠수함 생활 중에 나타나는 인간관계의 양상 등 많은 부분에서 각국의 잠수함 승무원들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왜 그들은 잠수함 승무원이 되었는가?
2차대전 당시의 잠수함이란 오늘날의 원잠처럼 막강한 성능을 지닌 함선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의 원잠이 사실상 수상에 나오지 않은 채 계속해서 수중항해를 지속할 수 있는 반면, 디젤기관과 축전지를 동력으로 하는 2차대전 당시의 잠수함은 수중항해는 전투시에 그것도 단시간 동안 저속으로 행할 뿐, 대개는 수상항해를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가잠함" 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잠수함에 비해 배수량도 턱없이 작아서 승무원을 위한 편의시설도 제대로 갖추기 어려웠죠. 공기정화기, 샤워시설, 침대, 식당... 이런저런 시설들이 부족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좁은 공간 때문에 운동부족이 되기 일쑤인데다 햇볕 한번 쬐기도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이런 열악한 조건 때문에 당시의 잠수함 승무원은 국가를 불문하고 모두 지원병으로 채워지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징집된 요원으로는 사기유지도 힘들거니와, 가혹할 정도로 높은 기술수준과 숙련도를 요구하는 잠수함의 환경에는 자질이 낮은 자를 태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각국에서는 잠수함 근무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모병 포스터 (좌측 : 잠수함에 근무하면 애인이 생긴다는 의미? -_-;;)]
그 이유로는, 우선 잠수함 근무에는 그 열악한 조건을 감내할만한 여러 유인요소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잠수함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지원자가 부족할 것을 우려한 각국은 언제나 잠수함 근무에 대한 홍보활동에 몰두했고, 각종 서적이나 영화, 출판물 등을 통해 잠수함 근무의 이점을 알리는데 주력했습니다. (독일의 경우, 이러한 수단이 특히 큰 유인책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겐 "1차대전 당시 잠수함의 활약"이라는 명확한 전적이 있었으니까요)
또한 잠수함의 근무환경이 너무나도 열악하고 위험했기 때문에 잠수함 승무원에게는 일반 수상함 승무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생명수당이 지급되었다는 점도 큰 매력이었죠. 장교들의 경우는 수상함에 비해 함장 보직시기가 훨씬 빠르다는 점(대형함의 경우 함장이 되려면 대령, 소형함의 경우 적어도 중령까지 진급해야 합니다. 반면, 잠수함은 대위∼소령 정도에 함장이 될 수 있었죠), 진급이 확실히 보장된다는 점 등이 유인책이 되었습니다.
[1944년 7월에 촬영된 USS Seahorse의 승조원들. 이들의 나이 차는 기껏해야 5∼6살 이내였죠. (*06. 7.13에 사진 수정)]
한편, 잠수함의 인간관계가 수상함의 그것에 비해 화기애애하고 따분하지 않다는데 매력을 느낀 수병들과 장교도 많았습니다. 수상함과 달리 잠수함은 승조원들간의 나이 차가 많지 않았으며 잠수함의 열악한 환경은 계급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함에서 가장 계급이 높다는 함장조차도 그에게 할애된 개인실은 겨우 승합차의 내부공간 크기 정도에 불과합니다. 수상함에서의 함장과 수병의 차이가 얼마나 막대한지 생각해본다면 이는 거의 격차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또한 단 한사람의 실수만으로도 함이 대형사고에 몰릴 수 있는 환경상, 함장부터 수병까지 각 승무원들은 하나같이 "정예"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그들에게 해군의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이처럼 공평하게 부여되는 시련과 고통을 함께하고 해군의 핵심이라는 자부심을 공유하면서 잠수함 승무원들 사이에는 일종의 형제와도 같은 전우애가 형성되었죠.
2. 잠수함에서의 생활 - 실전항해의 개요
승무원의 훈련과 배치, 잠수함의 준공과 의장 등을 마치면, 그 함은 비로소 취역식을 갖고 정식으로 함대에 편입됩니다. 그리고나서도 바로 실전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실전훈련과 각종 검열 등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실전항해에 나서게 되죠. 모든 과정을 마친 후에 함은 본격적으로 초계임무를 시작하게 되며, 이는 모항을 출발한 후 다시 회항할 때까지 보통 4∼8주 정도가 소요됩니다. 물론 그동안에 중간보급을 받기는 어려우므로 항해시에 필요한 각종 보급품, 식량, 병기 등을 모두 미리 탑재해놓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식량의 경우 대개 8주분 정도를 준비했다고 하며, 공간이 비좁은 잠수함의 특성상 함내 이곳저곳에(어뢰실, 지휘실, 거주구역 및 심지어 화장실에도) 식량을 매달아놓아야 했습니다.
항해 중의 일상은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몇 시간마다 돌아오는 견시 임무를 맡을 때에는 파도가 수시로 넘나드는 함교 위에서 바닷물을 흠뻑 뒤집어 쓴 채 오랫동안 서있었어야 했죠. 견시를 마치고 다시 함내로 들어온다고 해서 몸이 편해지는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2차대전의 잠수함이 수중보다는 수상에 많이 머물렀다고는 해도 그 역시 근본적으로는 일종의 폐쇄공간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함내의 공기순환과 산소농도는 대단히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공기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일정이상으로 올라가면 서서히 판단력이 마비되기 시작하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 당시에는 그런 것에 대한 개념조차 잡히질 않아서 잠수함 승무원들은 만성적인 피로와 두통, 현기증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공기가 워낙 탁하기 때문에 잠을 푹 자고 일어나도 전혀 상쾌하지 않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폐쇄공간인 잠수함의 내부는 항상 기름냄새, 음식냄새, 옷과 집기류에 찌든 악취, 배설물의 냄새 등이 뒤섞인 형언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함내생활의 한 단면]
물론 땀을 흘리고 바닷물에 몸이 젖으며, 오랜 기간 같은 옷을 입어서 악취가 배어도 세탁이나 제대로 된 세면 따위는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미국 잠수함처럼 공간이 좀 넓은 경우에만 그럭저럭 세탁과 샤워시설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충분한 것은 아니었고 대개는 1주일에 1회 정도로 사용이 제한되었습니다. 물론 이마저도 없는 독일 잠수함은 겨우 레몬수로 몸을 닦아내는 정도였으니 그 고충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잠수함의 경우 수상함보다 음식의 질이나 양이 뛰어나다는 점이었습니다. 먹는 문제는 사기유지에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잠수함도 타 함종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았죠. 그렇지만 이 역시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항해 초기뿐이고 후반에 들어서면 겉에 곰팡이가 핀 빵을 껍질만 도려내고 먹는다던가, 통조림 음식만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것은 몇 주일동안 계속되는 폐쇄생활과 위험입니다. 좁은 함내에서 각종 소음과 악취,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는 생활을 계속해야 하고, 항해중에는 철저히 외부와 단절되는 일상이 반복됩니다. 출항 전에 가져온 음반이나 영화도 몇 주일 지나면 금세 시들해지고, 가장 안좋을 때는 적 수상함의 폭뢰 공격에 쫓겨 몇 십 시간이나 잠수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운이 좋지 않다면 거기서 그대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고 말이죠.
그런 열악한 상황과 고통을 모두 감수하고 인내하는 것이 잠수함 승무원입니다. 그런 역경과 고통을 함께 하면서 그들은 점차 한 덩어리처럼, 한 형제처럼 뭉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국적을 불문하고 대개의 잠수함들이 거의 다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었기에 그들은 민족과 국경을 떠나서 모두들 비슷한 일면을 가졌나 봅니다.
3. 각종 시설과 생활상
이번에는 각국 잠수함 내부로 들어가서 그 안의 시설들을 살펴보고 승무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먼저 미국이 주력으로 채택한 가토급의 경우 수중 배수량이 1,800톤이나 되었고, 그 때문에 병기로서의 부분 외에도 승무원의 생활에 대한 배려가 비교적 충실한 편이었습니다. 식당, 샤워 및 세탁시설, 수중에서도 쓸 수 있는 화장실 등 갖출 수 있는 것은 모두 갖추고 있었죠. (그러나 이들이 호텔생활이라도 했을거라고 생각하는건 오산입니다.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결국은 잠수함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하니까요)
독일의 경우, 주력인 VII형은 수중 배수량이 871톤, 보다 대형인 IX형조차도 수중 배수량이 1,232톤 정도였으므로 승무원을 위한 설비를 충분히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독일은 잠수함에 쓸 수 있는 자원과 규모가 제한되었으므로 (1935년 영-독 해군협정에 따라) 자연히 소형의 잠수함을 다수 보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기 관련 설비는 소홀히 할 수 없었으므로, 결국 독일 잠수함은 "병기"로서는 타국의 잠수함과 대등 또는 우월했지만 "생활"의 부분은 모두 승무원들의 희생으로 버텨야 하는 잠수함이 되었습니다. 독일 잠수함대 사령관 되니츠 제독 또한 그의 저서 『10년 20일』에서, "우리 독일의 잠수함은 병기로서는 1류이지만 승무원에 대한 배려는 크게 희생되었기 때문에, 잠수함의 초계항해는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1944년 후반 수중배수량 1,800톤의 XXI형이 취역하고 나서야 해결되었죠.
일본의 경우는 잠수함의 건조목적에 따라 승무원의 생활조건도 천차만별이었지만, 광대한 태평양을 무대로 한데다 수상함 부대의 지원목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 대부분 대형의 잠수함으로 건조된 것이 많았습니다. 시설 자체는 미국에 비해 다소 열악했지만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는 승무원에 대한 배려가 잘 돼있었고, 무엇보다 공간 자체가 넓다는 점이 큰 이점이 되었습니다. (물론 병기로서의 성능은 논외로 하고 말입니다. 일부 일본인들이 승무원의 생활조건만을 갖고 일본의 잠수함은 세계제일이며 "독일은 잠수함 후진국이었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일본의 잠수함이 대전기간 내내 무슨 활약을 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정말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병기로서의 성능과 사용자에 대한 배려 모두가 중시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일단 유사시에는 병기로서의 성능이 중요하고 그 다음이 사용자에 대한 배려인데, 일본의 경우는 그것이 거꾸로 되어있었죠.)
1) 식생활과 관련 시설
독일, 미국, 일본, 영국을 막론하고 항해중에 무엇을 먹는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잠수함에는 사기 유지 문제도 있어서 보통의 수상함보다 많은 식량이 지급되었지만, 출항 전에 실었던 신선한 채소와 고기들은 대개 10일 이내에 모두 소모되고 그후에는 점차 베이컨, 햄 등 가공육류나 통조림 등의 저장식품만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다반사였죠. 취사는 전기레인지로 이뤄졌기 때문에 산소를 많이 소모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함내 공기를 꽤나 탁하게 하였기 때문에 대개 야간에 함이 부상하여 내부 공기를 순환할 수 있는 동안에 이뤄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물론 작전 중에는 부상시간이 일정치 않았으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몇 십분 이내에 80명분 이상의 식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었죠.
[항해중에 먹을 보급품들을 싣고 있군요. 좌측 하단의 병들은 술?]
[식사시간. 사실 이렇게 여유있게 밥을 먹는 것도 하나의 행운이었습니다.]
또한 적의 공격이 계속되거나 상황이 좋지 않아서 야간에 부상을 할 수 없을 때는 조리도 되지 않은 차가운 통조림을 그냥 먹어야만 했습니다. 사실 따뜻한 식사를 여유있게 하는 것은 적의 세력권에 들어가기 전에나 가능했고 대전 중반 이후의 독일 잠수함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했습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이 음주입니다. 대개의 수상함들은 작전중에 술을 마실 기회가 흔치 않으나 식생활 면에서 상당한 배려를 받았던 잠수함은 전과 달성 후의 경축식이라는 명목으로 주류가 지급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독일과 일본의 경우 상당한 전과를 달성했다고 여겨질 경우 함장의 재량으로 승조원 1∼2인당 맥주 1병씩을 (일본의 경우는 청주도) 지급할 권한이 있었고 영국의 경우에는 아예 대놓고 승조원 1인당 하루에 반컵씩의 럼주를 지급했다고 합니다. (물론 장교는 절대 금주였습니다만) 다만 미국 잠수함만은 20세기 초부터 미 해군이 군내 금주 정책을 취해왔기 때문에 이런 혜택을 맛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외에 쓰레기 처리도 곤란한 문제였는데, 대개 취사장에 쓰레기 압축기를 설치하여 쓰레기를 압축한 다음 함내에 보관하거나 별도 장비가 있을 경우에는 수중으로 사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식당은 미국과 일본의 잠수함은 수병을 위한 식당이 따로 마련되었던 반면, 독일의 경우는 거주구역에 간이식탁을 펼쳐서 그곳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1)-① 미국
이곳은 함 중간에 위치한 주방입니다. 이곳에서 함내의 모든 승조원들의 (총 80명) - 수병, 하사관 및 장교들 - 식사를 모두 준비하죠. 오른쪽 구석에 있는 것이 대형믹서이고 그 외에 오븐과 전기 레인지, 갑판 아래에 냉장고와 창고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로도 공간이 충분치 않아서 함내의 곳곳에 식량을 분산해서 보관해야 했죠. (모든 잠수함들의 공통적인 문제입니다)
이곳은 수병용 식당입니다. 하루에 3번 음식이 제공되었고 당직 근무자를 위해서 24시간 내내 간단한 간식이 제공되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점심은 간단한 샌드위치류가 나왔으며 저녁에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푸짐한 정찬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곳의 수용인원은 16∼24명 정도이며, 식사시간이 아닐 때는 승무원들의 휴식공간으로 애용되었습니다.
좌측 사진은 장교용 조리준비실입니다. 이곳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은 아니고, 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이곳에 날라온 다음, 다시 덥히거나 세팅해서 장교 식당에 내보내는 것이죠. 오른쪽은 장교식당 겸 회의실입니다. 수병 식당이 식당 겸 휴게실로 쓰이듯이 이곳도 겸용으로 쓰였죠. 공간이 좁은 잠수함에서는 이런 식으로 공간효율을 최대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② 독일
독일 잠수함의 경우, 주방은 있지만 식당은 없었습니다. 장교의 경우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회의실이 식당으로도 사용되었고, 하사관 등은 수병들처럼 거주구역에 식탁을 펴고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외에는... 공간부족으로 함내 곳곳에 식량을 매달아둔 것은 공통적이죠.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거주구역에 식량을 쌓아놓는 것입니다. 위에 매달린 것들은 흑빵과 햄, 베이컨들, 아래에 놓인 것은 각종 과일과 야채들입니다. (사진은 U-505)
좌측은 VII형의 주방입니다. 전기레인지 몇 개와 오븐 등, 설비는 비슷했지만 공간이 좁아서 효율성은 좀 떨어졌던 모양입니다. 우측은 XXI형의 주방으로써, 함 크기가 커짐에 따라 공간도 넓어지고 설비도 더 현대화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VII형 및 IX형 잠수함들은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별도로 승조원용 식당을 설치할 공간이 없었고 이렇게 거주구역에 간이테이블을 놓고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사진은 영화 「Das Boot」에서)
잠수함 승조원들을 포함해 독일 군인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먹은 음식이, 바로 "아인토프(Eintopf)"라고 하는 독일식 스튜입니다. 베이컨, 소세지, 당근, 감자, 양파 등이 들어간 걸쭉한 음식이지요. 오른쪽은 마찬가지로 독일군이 일상적으로 먹었던 빵입니다.
1)-③ 일본
일본 잠수함의 조리 설비는 본격적인 대양형 잠수함의 경우, 대개 주방에 전기밥솥 1개와 전기 레인지가 1개 장비된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자료는 구할 수 없었지만 먹는 것은 밥과 된장국, 그리고 일본식 반찬들이었다고 하며, 각종 밥 통조림이나 건조 즉석면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또한, 함내에 수경재배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서 양파 등을 기르고 이로써 오랫동안 신선한 야채를 먹어보려는 시도를 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특이한 부식으로써 "고형 케챱"이라는게 있었다고 하는군요. 개전에 즈음하여 잠수함 승무원에 대한 특별 배려로써 케챱이 보급됐는데, 이것은 유리병에 들어있는 상태로 보급되었기 때문에 다 쓴 병을 처리하는 문제라던가 보관 등의 문제에서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고형 케챱으로써, 액체상태의 케챱을 열풍에 의해 건조시켜서 담배갑 정도 크기의 반고체로 만든 것입니다. 일본 승무원들은 이것을 주로 밥에 비벼먹었다고 하더군요.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타국 해군의 잠수함이 수상함에 비해 훨씬 많은 양과 좋은 질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던 반면, 일본해군의 잠수함은 수상함보다 적은 양의 식사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수상함의 경우 1일당 4400kcal, 잠수함은 그 절반 정도인 2400kcal였음) 그 이유로는, 좁은 공간에서의 실내 생활이 계속되는 잠수함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칼로리의 음식을 제공하면 비만이나 피부병, 간질환 등의 원인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글쎄... 그 당시부터 다이어트를 생각한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사기 유지에는 그다지 보탬이 되지 않았을 듯 하군요.
2) 주거 환경
잠수함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주거공간이 부족하다는 것과 침상이 극도로 좁다는 점입니다. 어떤 국가에서도 장교와 하사관의 침상만은 충분히 확보했지만, 수병의 경우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사람은 많고 침상 수는 적을 때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대책이 바로 악명높은 "핫 벙킹(hot bunking)"입니다. 핫 벙킹이란 함내의 일과를 2교대 또는 3교대로 편성하여, 당직인 승무원이 침상을 비우는 동안 비번인 승무원이 침상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방식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랜기간 동안 함내생활을 하면 침상뿐만 아니라 몸에도 악취와 땟구정물이 배게 되고, 뒤에 들어간 사람은 앞사람의 악취와 체온 등등을 참아내며 잠을 청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이런 식으로 침상을 공유하다보니 한 사람이 병에 걸릴 경우 함내에 순식간에 병이 퍼지는 것도 종종 있는 일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승무원수의 2/3 정도의 침상을 확보했고 배수량에 여유가 없었던 독일은 승무원수의 1/2 정도를 확보했다고 하며, 일본의 잠수함은 공간이 충분했으므로 승무원의 정수에 맞춰 침상을 충분히 마련했습니다.
침상 자체의 수준은 어디나 다 비슷했고, 대개 3층 내지는 2층으로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높이도 길이도 좁기 때문에 대단히 협소했겠죠. 하사관이나 장교침상의 경우는 높이가 약간 높고 사생활 보호를 위한 커튼이 달려있다는 점을 빼고는 모든 점에서 수병용 침상과 동일했습니다. 오직 함장만이 개인실과 제대로 된 사생활용 공간을 가질 수 있었죠. 게다가 잠수함 승조원은 항상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잠을 청해야만 했습니다. 좁은 함내에서는 가벼운 생활 소음조차도 완전히 차단되지 않았고 저편에서는 24시간 내내 디젤기관과 모터의 시끄러운 구동음이 쉴새없이 들려오고 있었을 것입니다.
2)-① 미국
수병의 거주공간은 함 중간에 위치했고, 이곳에는 가로 3열, 높이 3층의 형식으로 침상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곳 이외에도 전방 어뢰실이나 후방 어뢰실도 상황에 따라 거주공간으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전방 어뢰실 : 사진 위쪽 구석에 접혀진 침상이 있네요.]
[(좌)장교용 침상 / (우)부사관용 침상]
[함장실 : 좌로부터 세면대, 책상, 침상]
2)-② 독일
수병용 거주구역은 따로 할당되지 않았고, 모든 수병들은 전방 어뢰실과 후방 어뢰실에서 수면과 식사, 휴식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전방 어뢰실에 있는 수병 거주구역.]
[부사관용 침상 (VII형)]
[부사관용 침상과 휴게실 (XXI형) : 마찬가지로 VII형보다 훨씬 좋아졌군요]
[XXI형의 장교식당 겸 휴게실]
[함장실 (VII형)]
2)-③일본
사진자료가 없어서 넘어갑니다.
3) 세탁, 세면 및 샤워시설, 화장실, 냉난방
미국의 경우는 역시 배수량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나마 세탁기와 샤워실이 있었고 화장실은 수중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으며, 주 작전지역이 열대인 관계로 에어컨도 충분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잠수함 내부가 무척 추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잠수함 내부는 냉방을 하지 않을 경우 37∼40도에 육박하며 에어컨을 틀어도 실내온도가 31도를 넘어간다고 합니다. (사실 에어컨은 승무원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함내의 기계류를 보호하기 위한 측면이 강합니다)
화장실의 경우는 큰 문제인데, 독일의 잠수함이나 일본의 초기형 잠수함들은 압력을 이용하여 배설물을 직접 함외로 배출하는 시스템을 취했기 때문에, 함이 잠망경 심도 이하로 내려가서 수압이 강해지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 경우, 소변은 함내에 배치된 양동이로 해결하고 대변은 함이 부상할 때까지 참거나 중간의 구획에서 일을 보는 식으로 해결해야 했죠. 당연한 얘기이지만 잠수중에 폭뢰공격이라도 받으면 양동이가 엎어져서 배설물이 함내로 흩어지는 일도 많았고, 이는 결국 승무원들의 사기문제와도 직결되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이와 달리 화장실을 위한 별도의 오수탱크를 마련했고, 이를 어뢰발사관과 마찬가지로 압축공기를 이용하여 "충수-배출-배수"의 시스템으로 배설물을 함외로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밸브조작의 순서가 틀리면 배설물이 함내로 역류할 염려가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잠수 중에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죠. (단,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반드시 오수탱크의 공기가 함내로 들어오게 되므로 악취문제 때문에 부득이한 경우 외에는 그다지 자주 사용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미국 잠수함의 위생시설 : 좌로부터 샤워실, 세면장, 화장실]
4) 의료지원
질병에 극도로 취약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생활하면 병이 나지 않는 것이 신기한 일일 것입니다. 또한 항해중 누군가가 병으로 쉬게 되면 누군가가 대신 그 자리를 메꿔야 하는데 한 두명의 승조원이 아쉬운 잠수함으로서는 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죠. 이 당시 미국과 독일의 잠수함에는 군의관이 존재하지 않았고 장교나 부사관중 1명이 육상기지의 정규 군의관에게 간단한 의료 교육을 받은 것으로 의료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항해시에 제공할 수 있는 의료행위도 기껏해야 증상에 맞춰 약을 주는 정도였고 급성 질병이라도 발병하면 환자가 회항 때까지 버티지 못할 경우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물게 미국 잠수함에서 의료교육을 받은 장교가 함내의 설비만으로 맹장수술을 성공시킨 사례가 있었긴 하지만요. 반면, 일본 잠수함에는 정규 군의관이 반드시 작전항해에 동행했습니다. 이 군의관은 일반적인 수상함의 군의관이 외과의였던 것과는 달리 대개 피부과나 정신과 의사였다고 하는군요. (잠수함은 수상함과 달리 직접적인 부상의 가능성이 적고, 대신 오랜 함내생활에서 오는 피부병이나 정신적 스트레스쪽이 많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이 군의관은 진료행위 외에도 오랜 함내생활에서 오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조정하는 역할도 담당했으며, 전쟁 말기에 함장이 위궤양으로 쓰러져서 패닉상태에 빠진 잠수함을 군의관이 간신히 진정시켜서 무사히 모항으로 복귀했던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4. 마치며
이상으로 각국 잠수함의 생활여건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았습니다. 저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저나 다른 분들은 감이 잘 안올 것 같지만 해군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마 공감이 가는 부분들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조금이나마 저런 기분을 맛보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면 된다고 합니다.
① 낮동안에는 햇빛을 보지 않으며 해뜨기 전에 출근하고 해진 후에야 퇴근할 것.
② 매일 매일 집안의 전기·가스·수도 계량기 눈금을 15분마다 확인해서 기록할 것. 단 하루에 6시간동안만.
③ 냉장고에 있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모두 버리고 냉장고 온도를 최대한 떨어뜨린 다음, 안에 통조림들을 집어넣고 그것만 먹을 것.
④ 옷장이나 장롱을 비운 다음 그 안에 매트리스와 모포를 깔고 거기에서 잘 것.
⑤ 빨래는 1주일에 한번만 하고 더러워진 옷을 입은채로 잠자리에 들 것.
⑥ 잠자기 전에 거실에다 잔디깎는 기계를 갖다놓고 그걸 작동시킨 다음에 잠자리에 들것.
⑦ 밤에 불특정한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은 다음(볼륨은 최대한 크게), 알람이 울리면 재빨리 침상에서 일어나서 옷을 갖춰입고 뛰쳐나갈 것.
(후략.....)
딱 잘라 말하자면 폐인 그 자체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대전기간동안 각국의 잠수함들은 전쟁사에 남을 무수한 전과를 달성했지만 그 안에는 잠수함 승조원들의 저런 드러나지 않는 땀과 눈물이 서려있었던 것이겠죠. 또 한편으로 저렇게나 고통스러운 생활과 낮은 생환율에도 불구하고 잠수함 승조원들의 사기가 유지되고 전출희망율이 높지 않았던 것도 주목할만 합니다. 사람이란 역시 기본적인 욕구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걸 보여주는 사례랄까요?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Robert Jackson, 『Kriegsmarine : the Illustrated history of German Navy in ww2』, 연도·출판사 미상
- 피터 패드필드, 이진규 譯, 『제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잠수함전』, 2000, 한국해양전략연구소
- 제프리 브룩스, 문근식 譯, 『U보트 비밀일기』, 2003, 들녘
- http://www.usscod.org/
- http://www.maritime.org/tour/index.htm
- http://www.usstorsk.org/
- http://www.mackinnon.org/gato-diagram.html
- http://www.uboat.net/
- http://indigo.ie/~pauldar/
'전쟁..... > 해군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군과 미신/금기 (0) | 2012.12.22 |
---|---|
수병의 눈으로 본 전쟁 (0) | 2012.12.22 |
한 전함을 통해 본 오스트리아 사회사 (0) | 2012.12.22 |
함내 PX 이야기 (0) | 2012.12.22 |
해상의 생활문화 : 적도제 (0) | 2012.12.22 |